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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133) 2010. 7. 31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곳 고국에도 한 여름의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연 중 내내 무더위와 씨름하는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 너무 덥다고 불평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일 뿐입니다. 종종 전기 공급도 중단되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지난 세월 동안 꿋꿋하게 인내해온 여러분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은 그동안 김영일 형제 부부의 둘째 딸 지나가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어 지난 15일에 사역지로 돌아갔습니다. 김형제 부부와 지애, 지나가 함께 출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지난 14개월 동안 부부가 떨어져 생활하였습니다. 형제는 지애를 데리고 천진에서, 자매는 지나의 간병을 위해 경기도 이천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온전히 치료되어 가족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의 기도에 성실하게 응답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또한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신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우리는 동일한 비전과 부르심 안에서 하나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격려하며 고통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나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성장되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오는 8월 6-8일까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제로 전체 여름 수양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경주 토비스 콘도에서 자녀들과 함께 약 160여명이 참석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형제 자매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넘치며, 여러 활동들 가운데 안전한 수양회가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번의 Message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의 동행, 주제 메시지-와 1번의 Workshop, 가족 및 팀 장기대회, 하루 오후는 구룡포 바닷가 해수욕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있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제가 전할 메시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말씀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이것은 형제 자매들을 대상으로 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을 돕는 사역에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유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경험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생각할 때 격려가 됩니다. 각자가 이 말씀을 중심으로 간증을 기록하여 보면 은혜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간증은 너무 많아서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부족한 저에게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모든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김용범 형제 가족이 지난 6월 말, 3년 만에 귀국하여 대구에서 함께 교제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영적으로 재충전의 시간이 되며, 신체적으로 강건한 시간들이 되도록 기도하여 주세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하며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진리 안에서 박 남 규 부부 서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표준 새번역)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아가페 쉬운 성경)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공동번역)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현대어성경)
“너희는 하나님이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뭔가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매일의 삶에 필요한 것은 모두 채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온전히 집중 하여라”(The Message)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언제나 부딪히고 있는 두 가지의 중요한 중심 질문을 다루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어떤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나에게 진정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생명 안에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누가 진정으로 선한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모습을 보이는 자가 가장 선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서 번역된 <복>은 헬라어의 ‘마카리오스(makarios)’라는 단어로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이 신들의 특성으로 지복(至福)의 실존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이 산상수훈을 일컬어 ‘천국의 대헌장이다’라고 하였습니다.(Tholuck) 또한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교훈은 산상보훈의 주해였다”고 Olshausen은 말하였습니다. 산상수훈 전체를 간단히 요약하면 마5장은 <천국시민의 자격>에 대하여 논하고 있으며, 6장은 <천국시민의 생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7장은 <천국시민으로서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의를 요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마6:33은 산상수훈 전체의 절정을 이루는 교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너희는
여러분들은 땅에 속하여 물질적 요구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방인을 본받지 말고, 하늘에 속한 생명적 요구,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앞세워 구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물질적 요구까지 모든 것을 겸하여 축복하여 주시겠다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6:30절에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신 후, 33절의 말씀으로 도전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여러분(너희들)들은 이방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는 우리들은 달라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날의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들(그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과는 구별된 삶(성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엡2:10-13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는>하고 말하실 때에는 우리에게 적어도 두 가지 사항을 요구하신다고 생각됩니다. (1) 믿음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너희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구별되고 성별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는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보았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 저희들의 삶의 양식이 우리와는 다르다(different)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2. 먼저(우선순위)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먼저’(First)라는 단어입니다. 순서가 올바르면 다 얻게 되지만, 순서가 잘못되면 모두 다 잃게 됩니다. 순서는 바로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우선순위란 “그리스도인이 두 가지 일(관계)을 당면하고 있을 경우, 주님의 관점에서 본 마땅히 먼저 해야 할 일의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나(I) 중심에서가 아니라, 주님(Christ) 중심으로 일을 계획하고, 계획한 순서대로 순종하여 시간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먼저냐? 주님이 먼저냐? 누가 첫째(First)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기 어머니와 자기 아내가 동시에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건지느냐? 이와 같은 넌센스 같은 질문을 T.V에서 하는 질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즈음에는 강아지를 먼저 건진다는 우스꽝스러운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Priority! 이것은 우선권을 먼저 드리라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 누구에게 먼저 우선권을 드리겠습니까? 그 회사의 비행기를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에게 먼저 우선권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고객에게 제일 먼저 수속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최고의 우대권을 드리라는 표시입니다.
며칠 전 김영일 선교사 가족이 모두 중국으로 출국하였습니다. 둘째 딸 <지나>가 완전히 회복하여 가족 모두 기쁨으로 돌아갔습니다. 수속할 때 일반석 Class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을 길게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닝컴 회원 라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가서 부탁했습니다. 모닝캄 회원인데 이분들 좀 우선적으로 수속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렇게 하지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김영일 선교사 가족도 우쭐해졌습니다. 누구보다도 우선적으로 대우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KAL 비행기를 많이 탔기 때문에 마일리지 적립점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중요한 고객이 되었습니다. 수하물에도 우선순위(Priority)라고 붙여줄 때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3 P의 원리가 있습니다. 삶의 목적(Purpose)이 분명하여야 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한 때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목적과 연관된 우선순위(Priority)가 명확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목적과 연관된 우선순위에 따라 열정(Passion)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과 연관된 우선순위의 삶을 훈련하여야 합니다.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는 행동양식을 가져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에서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바로 우선순위의 생활화와 습관화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Mission), 즉 삶의 목적과 연관된 목표에 초점을 두고 충성하여 가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오직 한 가지 일에 목표를 두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관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는 매우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목적과 연관된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선순위의 삶을 생활화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우선순위의 삶을 생활화하지 못하면,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첫 번째 중요한 우선순위는 아침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 기도하는 삶 등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적으로 두어야 합니다. 이것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할 때, 생애에 있어서 큰 위기(crisis)를 맞게 됩니다. 우리 생애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위기는 영적 위기입니다. 영적 위기는 삶의 전반적인 위기로 발전되며, 나아가서는 영, 혼, 육의 모든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항상 주님과의 은혜롭고 풍성한 교제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소망이 넘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 활력이 넘치며 육체적으로 강건하며 사명감에 불타는 열정적인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좋은 본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막1:35)
S. D 고든은 “우리 삶에 있어서 기도만큼 중요하면서도 긴급한 일은 없다”라고 기도의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째 우선순위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는 것에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가령, 성경공부나 운동, 학생의 경우에는 학과 공부 같은 것은 당장에 긴급하지만 않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긴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들을 등한시 할 때, 언젠가는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학생시절에 꾸준하게 공부하지 않을 경우, 졸업 후에 취직을 하려고 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매일의 삶에서 운동하는 일은 당장에 긴급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건강이 나빠졌을 때 후회하게 됩니다. 먼저 부지런히 건강관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사고의 틀을 무엇이 중요하면서도 긴급한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생활하는 영적 분별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긴급한 일의 횡포로부터 마음의 자유와 여유로움으로 시간에 쫓기지 말며 시간을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는 일에 우리의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릴 때 소중한 것을 항상 먼저 하였는가의 질문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선순위의 삶은 우리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여 줍니다. 임종 직전에 많은 사람들은 후회하는 아픔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걸”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가족들에게 사랑을 베풀 걸’, ‘자녀들과 좀 더 좋은 시간을 가질 걸’, ‘주님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할 걸’, ‘그 때 그 일은 하지 말 걸’, 등 많은 회한과 안타까움으로 괴로워하지만 결코 돌이킬 수 현실이 되고 맙니다. 후회 없는 삶은 분명한 삶의 목적과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시간관리, 즉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갈 때 주어지는 기쁨의 열매입니다.
(1) 먼저 시간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떼어놓은 시간에는 결코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빠도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에는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 종종 마음이 매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박사과정 가운데 있는 형제들이 밤새도록 연구하고는 아침에 주님과의 교제시간에 잠을 잘 때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드릴 시간에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 시간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막1:35)
(2) 먼저 물질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최우선적으로 구별하여 두고 생활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가지고 타협하거나 흥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First Priority(최우선적으로 먼저) 확보하여 둔 후에, 나머지 금액을 가지고 계산하고 조정하며 타협하여야 합니다. 이것저것 계산해보니 하나님께 드릴 것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데 어떡하면 되지? 이것이라도 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시50:10-15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3) 먼저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까요? 아브라함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보다 이삭을 향하였기 때문입니다. 100세의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엽고 신기하며 인간적인 정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먼저 얻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만약 사라에게 그렇게 마음이 갔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것입니다.
약4:4-5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나의 마음의 중심과 무의식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하는 것을 항상 점검하여 보아야 합니다. 잠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3. 그의 나라(하나님의 나라)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게 되면 두 종류의 여행객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가고자 하는 나라의 목적지 시간에 맞추어 시계를 조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전히 떠나온 한국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되돌아갈 것이기에 한국의 상황과 시간에 맞추어 여전히 생각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한국을 떠나왔으면 여행하는 동안은 한국에 대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여행하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생각과 시간에 따라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목적지에 가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옛 생활에서 떠나 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시민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초점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Destination)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제는 또 다른 세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됩니다. 지나온 과거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가올 미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때 우리는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첫 일성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마가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가장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서의 첫마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1:1)고 기록하면서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된 소식(복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
4복음서에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119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태복음의 주제의 하나로 이미 여러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천국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의 지배하시는 영역을 천국으로, 그리고 그의 추종자를 천국의 시민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팔복에서 천국개념이 더욱 뚜렷합니다. 첫째 복으로 천국을 보장하신데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에 기초한 하나님의 왕권,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통치권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 임한 것처럼 땅에도 임하도록 기도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참된 소망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정수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모든 선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9-13)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성도들이 첫째로 그리고 언제나 심령에 간직해야 할 축복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종국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마지막 초점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바로 종말론적 심판입니다.
벧후3:8-14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나는 지금 무엇을 마지막으로 소망하고 있는가? 나의 시야는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이 마치 종착점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그날이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적지를 바라보며 목적지와 연관된 생각을 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목적지-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1-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인생과 민족을 통치하신다는 것은 성경전체에 흐르는 기쁜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4. 그의 의(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인간적인 의로움이나 옳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의에 대하여 경계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마6:1)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義)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하는 것에 우리의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한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삶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지금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영적 후손들이 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추구하는 삶이 바로 의로운 삶입니다.
히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믿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하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최근의 말씀 가운데 축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평균수명은 912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365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에녹을 의로운 자라고 칭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육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비록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수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그는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바로 데려 가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온전히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맺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의롭게 여기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복음 전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의롭게 여기시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12:1-3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는 자는 그와 그 후손이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신12:25)
5. 구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을 때, <구하라>(seek)의 원어적 의미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제테요>는 ‘기도하라’, ‘목적을 삼다’, ‘온 정력을 다 기울여 힘쓰다’라는 의미입니다.
(1)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우리의 기도의 핵심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57:9-11)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온 세계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가득하며 높아지기를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모든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와 주권이 각 심령가운데 온전히 임하여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최고의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Destination)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가서 안식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심령가운데 임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는 일에 나의 삶의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3)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온 정열을 다 기울여 힘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리고 그 성취를 위해 자신의 정열을 다 기울여 살았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바울의 삶의 간증을 보면서 자신은 때로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의 성취를 위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자문하여 봅니다. 참으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온 정열을 기울이지 못하였습니다. 안일하였습니다. 깨어 있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인하여 은혜와 축복만을 누리기만 한 것 같습니다. 주님,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 나라 확장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항상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삶의 최종적인 평가도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 이루어지라는 깊은 확신가운데 행하여야 합니다.
6.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다윗이 죽고 난 후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은 너무 부족하여 많은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지도해야 할 지 모르니, 그들을 잘 인도할 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인도할 지혜를 구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한 우선순위가 분명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하고자 하나님의 의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모두 다 얻게 되었습니다.(왕상3:5-13)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하여 부와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않는 것들도 보너스(덤)로 주십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부족하고 불충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덤으로 주신 것들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자신이 주님께 처음 헌신하였을 때와 지금의 삶을 비교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보너스(덤)를 인하여 약속의 성실하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기회가 되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셨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Park-133(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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