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토리가 불타고 있다.”
- 공격 중 체첸 반군이 보낸 메시지
체첸의 절대 강자, 람잔 카디로프.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체첸 공화국 부총리로 경력을 시작한 카디로프는 푸틴의 지지와 가문의 힘, 놀라운 집념과 출중한 수완으로 친러시아 진영 내 주요 경쟁자를 모두 제압하고 경제 성장과 반군 토벌이라는 두가지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람잔 카디로프
그를 다룬 모든 자료에 공통으로 붙는 수식어는 '잔혹함'이었다. 반군 가족의 집을 불태우고 친척들을 납치하여 고문하고 협박하는 일을 결코 꺼리지 않았다. 심지어 카디로프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감옥이 있는데, 그 안에서 카디로프의 부하들이나 필요하면 카디로프가 직접 고문한다는 내부 경호원의 진술이 있었다. 이 진술을 한 우마르 이스라일로프는 20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암살당한다.
우마르 이스라일로프
그 감옥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은 람잔 카디로프의 고향이자 거주지인 첸토리(체첸어로 호시 유르트)였다. 인구 5천명이 거주하는 첸토리는 마을 주변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고, 모든 통행로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어서 마을 주민 외에는 함부로 오고갈 수 없는 곳이었다. 실제로 2006년 유럽고문방지위원회에서 위 진술을 조사하려고 하였지만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첸토리에 위치한 람잔 카디로프의 저택
첸토리는 체첸 반군들에게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공포의 장소였다. 특히 람잔 카디로프는 이미 2번의 자폭 공격을 포함한 6번의 암살 시도를 피한 만큼, 첸토리를 철통같이 방어하였다. 자신이 먹고 자는 장소만큼은 체첸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2010년 8월 29일 새벽 4시 30분, 첸토리는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체첸 반군들은 첸토리의 검문소 2곳을 파괴한 뒤 마을 중심부를 향해 3방향으로 진입하였다. 갑작스럽게 잠에서 깬 람잔 카디로프는 반군들이 마을 중심부까지 침투한 것을 발견했다. 기존의 반군 공격과는 다르게 이번 작전에 참가한 반군들은 거의 퇴로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격에 직접 참가한 체첸 반군들
마을에 진입한 반군들은 최소 12명이었는데, 배낭 속에 음식은 하나도 넣지 않고 오직 탄약만 가득 채웠다. 각각 AK, 기관총, RPG를 나눠든 반군들은 옷 주머니에 초코바(고열량인 만큼 작전 시에 많이 활용하였음), 응급약품과 붕대를 넣었고 가슴에는 자폭 벨트도 차고 있었다. 한마디로 살아서 빠져나가거나, 산채로 카디로프의 사설 감옥에 끌려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첸토리 공격을 준비하는 체첸 반군들
반군들은 2시간 가까이 마을 내에서 격전을 벌이며 최소 6명의 친러시아 체첸군을 죽이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시민 7명이 다쳤으며, 최소 3대의 집이 불타고 4대의 차량, 1대의 경찰차가 파괴되었다. 반군 측에서는 1대의 장갑차를 파괴하고 카디로프의 측근 10명의 집을 불태웠다고 주장하였다. 불탄 차량 중 1대는 람잔 카디로프의 집에서 불과 1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반군들이 얼마나 카디로프에게 가까이 접근했는지 보여줬다.
첸토리의 불탄 차량
6시 반, 점점 동이 뜨기 시작하면서 태세를 정비한 친러시아 체첸군이 포위망을 좁혀들었다. 람잔 카디로프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했다고 하는데, 마을 중심부에 고립된 반군들은 한명도 생포되지 않았다. 죽은 반군 12명 중에 최소 7명이 자폭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되었다. 카디로프는 전투에 참여한 반군 외에도 3명이 당시 상황을 촬영하고 빠져나갔다고 하였는데, 올라온 영상은 없었다. 다만 반군 중 한명이 언론사 ‘라디오 프리 유럽’에 “첸토리가 불타고 있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
사살된 반군
람잔 카디로프는 자신이 '이미 체첸 반군이 공격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고', '마을 중심부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위했다'고 주장하였지만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카디로프가 자신의 집 앞까지 반군의 침투를 허락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카디로프는 전투 이후 며칠간 마을의 통행을 봉쇄하고 내부 정보를 유출한 주민을 대대적으로 색출하였다. 자세한 전투 상황에 대한 불리한 뉴스가 전파되는 것도 방지한 것이다.
전투 종료 후 보고 받는 람잔 카디로프
당시 상황의 목격자는 반군들이 사실상 첸토리 마을을 '장악했다'고 표현하였는데, 참가한 반군의 정확한 규모는 불분명했다. 최소 12명(러시아측), 최대 60명(체첸 반군 측)이었다. 3명의 지휘관이 작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양쪽 모두 이견이 없었는데, 체첸 동부 쿠찰로이 지역 에미르(지휘관) 자우르벡 아브도하노프, 구데르메스 에미르 압둘라흐만, 첸토리 에미르 마흐란이었다.
가운데가 자우르벡 아브도하노프
위 3명의 지휘관은 모두 아슬란벡 바달로프와 함께 도쿠 우마로프에게 반기를 든 체첸 반군지휘관들이었다. 8월 15일에 반기를 든 이후 불과 2주 만에 이 대담한 작전을 수행하였는데, 도쿠 우마로프와 분리된 상태에서도 충분히 전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체첸에서 가장 침투가 어려운 지역에서도 전투가 가능하다면 어디든 공격할 수 있었다. 물론 살아 돌아올 희망을 버렸을 때 가능했다.
약 한달 반이 지난 2010년 10월 19일, 어느 정도 충격을 정리한 람잔 카디로프는 체첸 공화국 의회로 출근하였다. 참고로 체첸 공화국에서는 2007년도 총선에서 유권자의 99.2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하여 푸틴의 통합 러시아당이 99.3퍼센트의 득표율을 보였다.(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는 총 유권자수보다 찬성표가 더 많은 107프로의 득표율을 보였다.)
투표하는 체첸인
당장 카디로프가 '푸틴 찬성표가 더 많은 지역에 포상을 주겠다.'는 식으로 공공연히 독려할 정도였고, 의회 역시 '야당'이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람잔 카디로프는 출근하면서 야당 의원의 비판 등으로 머리 아플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이날은 러시아 연방 내무부 장관 라시드 누갈리에프가 방문하는 날이었는데, '체첸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가'에 대해 브리핑하고 언론에 공개할 생각이었다.
체첸 의회 건물
의원들의 차량이 연이어 의회 정문을 지나가던 8시 45분, 택시 1대가 정문에 도착하였다. 앞서 도착한 의원 차량을 바로 뒤따라가던 택시는 정문 검문소에 도착하자 3명의 남자가 내렸다. 2명의 친러시아 경찰관들이 세우기도 전에 남자들은 바로 AK를 사격하고 1명이 검문소에 뛰어들어 자폭하였다. 바로 경찰관 1명이 죽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다른 2명의 남자들은 파괴된 검문소를 넘어 순식간에 의회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의회에 에워싼 친러시아 경찰 특공대
탄약을 잔뜩 짊어지고 온 체첸 반군들은 의회 건물 안에서 경찰 제복이 보이는 대로 AK를 사격하면서 건물 깊숙이 침투하려고 하였다. 건물 내에 람잔 카디로프와 러시아 내무부 장관이 있는 만큼 친러시아 경찰도 필사적으로 저지하였고 반군들이 1층 이상 올라오지 못하게 차단하였다. 그 뒤 테렉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여 격전이 벌어졌는데 반군들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자폭하였다. 최소 2명의 경찰관이 죽고 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민 11명이 다쳤다.
전투 종료 후 의회 건물
- 공식적으로는 15-20분 만에 종료되었으나, 2시간 이상이라는 증언도 있었다.
람잔 카디로프는 공격을 정리한 뒤 태연하게 러시아 내무부 장관을 맞았다. 장관은 "오늘일은 매우 드문 상황이며, 체첸은 안전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치하하였다. 하지만 체첸 반군은 두 번씩이나 카디로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러시아 내무부 장관이 방문한 시간을 노려서 공격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물론 2002년 정부 청사 전체를 폭파시킨 샤밀 바사예프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공격을 지휘한 에미르 후세인 게카에프는 자신의 노력을 다했다.
후세인 게카에프
- 도쿠 우마로프와 결별한 체첸 반군들이 체첸 에미르로 선출하였다.
도쿠 우마로프와 결별한 체첸 반군들은 람잔 카디로프를 상대로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줬다. 물론 카디로프 본인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대는 실패 했으나, 그의 왕국이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우마로프의 지휘를 받지 않고도 자신들의 전투력과 사기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였다.
우마로프에게 반기를 든 체첸 반군 지휘관들
이에 대해 도쿠 우마로프도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코카서스 에미레트의 타 지역 반군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그는 그 나름의 일을 계획한다. 약 3달 뒤 러시아 도모데도프 국제공항을 테러한 것이다.
도쿠 우마로프와 아슬란벡 바달로프, 무하나드
출처 : https://www.nytimes.com/2009/02/01/world/europe/01torture.html
https://en.wikipedia.org/wiki/Ramzan_Kadyrov#Accusations_of_human_rights_abuses
https://www.ecoi.net/de/dokument/1316314.html
https://en.wikipedia.org/wiki/Umar_Israilov
https://en.wikipedia.org/wiki/2010_Chechen_Parliament_attack#Aftermath
http://english.sina.com/world/p/2010/1019/344142.html
첫댓글 자살폭탄테러에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는 반군들의 끈질긴만큼 친러시아적인 체첸이 바뀌기를 바라는듯
항상 필사적이었고 그만큼 대담했습니다
아 1등 실패 ㅠㅠ
고생하십니다 ;
인세지옥이네요 ㄷㄷ;;
정말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