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스님은 “불교는 복을 달라고 비는 종교가 아니라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늘 강조한다. 염불수행에 집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설산스님은 북과 징을 이용한다.
◇극락정토를 발원하며 염불수행에 전념해온 설산스님. 내년 9월 만일염불을 회향한다.
*약력
·1919년 경북 문경 生
·15세에 금강산 건봉사
에서 출가
·건봉사 강원을 졸업하
고 상원사 청량선원에
서 10하안거 성만
·혜화전문학교
불교학과 졸업
·조계종 8대 종회의원
과 도선사 실달학원
원장 역임
·현재 정토사 주지,
배달문화선양회와
설산장학회 회장
·저서로 <명산고찰따라>
<뚜껑없는 조선역사책>
이 있음
고려시대의 스님 나옹화상은 염불수행을 하면 법신불이 된다고 설파했다. “아미타부처님이 어디에 계신가. 철저히 마음으로 잘 챙겨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 일체 망념이 없어진 무념처에 이르면, 이 몸이 법신불 되어 금색광명을 발하리라.”
서울 평창동 삼각산 자락 한켠의 작은 법당 정토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가 골짜기 아래 흘러내린다. 30여년 전 이곳에 정토사를 세우고 염불정토를 발원해 온 설산스님. 내년 9월이면 만일염불을 회향한다. 설산스님은 “염불을 하면 내가 곧 부처님이며, 미타세계에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산스님에게 왜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염불수행의 방법과 그 공덕은 무엇인지, 염불수행의 길을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30여년 전부터 염불수행을 해오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염불의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염불문으로 들어선 연유를 듣고 싶습니다.
▲청담스님께서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종회의원을 하다 그만 두고 도선사 강원에서 학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여러 의식문에 정토발원이라는 큰 뜻이 있는데도 염불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저녁 송주(誦呪)를 하며 “어김없이 안양국에 태어나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옵고, 미진세계 국토에 몸을 나투어 모든 중생 남김없이 건네지이다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願我分身遍塵刹 願我廣度諸衆生)” 하고 발원합니다. 그래서 염불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지요. 건봉사가 염불왕생극락 발원의 중심도량이니 건봉사에서 아미타불 염불을 하려 했으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요.
30여년 전 삼각산 자락에 정토사를 세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을 시작했지요. 내년 9월이면 만일염불(萬日念佛)을 회향합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부처님이 언제나 곁에 계신다며 염불을 강조하시는데, 여러 수행법 중에 염불을 권유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강조하는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발원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수행에는 참선도 있고 간경도 있는데, 성불하겠다는 뜻이 있지요. 성불하기 위해서는 여러 겁을 닦아야 합니다. 시일과 노력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염불을 아주 쉽습니다. 경전을 보기 위해서는 글 공부를 해야 하고,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화두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만 부르면 돼요.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시장에 가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경에 보면, 아미타부처님은 10만억 국토 밖에서 항상 설법을 하고 계시니, 아미타부처님을 염하면 항상 곁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과 항상 함께 있으니 극락세계인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착한 사람들이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이름을 마음깊이 새겨 하루 이틀 혹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를 두고 한결같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외우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여러 성인들과 함께 그사람 앞에 나투시느니라.”
─기도와 수행은 다른 것인가요?
▲기도는 부처님과 보살에 의존하는 것이고, 수행은 자신이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되 염불이나 좌선을 꼭 해야 합니다.
부처님 믿는 데 종파도 많고 수행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요즘의 불자들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도 하지만 소원을 들어달라는 소리만 해요. 아들 낳게 해달라, 부자가 되게 해달라,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빌어요. 그러나 사바세계에는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고, 몸뚱이는 늙어가고, 이것이 중생의 세계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법력으로 기도한 만큼 복을 주시지만, 그것을 까먹으면 또 괴로움이 옵니다. 그래서 고해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생사를 초월해서 고해를 건너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압축해놓은 반야심경에 보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다는 것이 부처님 법인데, 그걸 체득해야지요.
<초심(初心)>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
사흘을 닦으면 천년의 보배를 쌓고, 백년 탐한 물건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라는 뜻이지요. 복만 구하지 말고 수행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많은 신도들이 천불, 만불 조성해놓고 빌고 있어요. 탐내지 말고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를 찾아서 영생토록 인류평화를 건설하라고 했는데, 이런 말씀은 따르지 않고 내가 조성한 부처님께 절하면 복을 주시겠지, 이러고 있어요.
수행을 해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도 연연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법화경에서는 불타는 집에 비유하고 있어요. 한시도 편안할 겨를이 없지요.
그러나 나는 사바세계라고 부르지 않고 미타세계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이 나와 같이 합니다. 내가 곧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미타세계에 소요(逍遙)하는 것이지요.
─참선이 최고이며, 염불은 하근기의 수행법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참선을 한다, 무엇을 한다며 자랑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염불이 참선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은 뽐내려는 소치이지, 그런 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염불은 만용을 부리지 않습니다. 염불을 해야 반드시 성불한다고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염불은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들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물을 마셔도 염불이요, 밭을 메도 염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염불의 방법이 있을텐데요. 혼자 할 때와 여럿이 할 때의 방법이 다른가요?
▲애초의 염불은 부처님의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을 마음속에 상념하여 자신이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관상염불(觀想念佛)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 염(念), 부처 불(佛),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 염불이죠.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것도 염불입니다. 그런데 말법천년에는 아미타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했으니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것이지요. 비가 내리고 있는니 비를 맞지 말고 우산 속으로 들어와라,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라는 것입니다. 효봉, 청담, 동산스님 모두 참선을 한 도인인데도 아미타부처님을 불렀습니다. 원효스님도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라고 일렀습니다.
염불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에 따라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북과 징을 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또 나무아미타불을 하면서 손바닥을 치거나, 두 손의 손끝이 맞닿도록 합니다. 집중하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집중하도록 돕는 방법일 따름이지,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염불의 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만의 불광산사에 가봤더니, 신도들이 염불을 하며 조그만 종을 치더군요. 나무아미타불을 함께 부르고 땡, 종을 치고, 그렇게 반복해서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염불삼매라는 말은 어떤 경지를 이르는 것인지요. 염불의 공덕은 무엇인지요.
▲삼매는 자기의 본래 청정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삼매에 들면 삼라만상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매에 들어 무엇을 봤다는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매의 경지를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도를 깨쳤다고 하면 벌써 도가 아니라는 이치와 같습니다.
중생들은 결과를 미리 보여줘야 따르지요. 염불을 하면 열 가지 공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행을 하는 데는 잠이 가장 큰 마구니인데, 능히 수마를 이겨내는 것,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 여러 신이 무섭지 않게 됩니다. 전파가 두루 퍼지듯 염불소리가 온 세상을 덮습니다.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의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불(諸佛)이 환희하며 큰 지혜를 얻습니다. 용맹스러운 정진을 성취해 왕생정토에 이릅니다.
─수행을 하려면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상원사 선방에서 수행 중 열병을 앓았을 때 한암스님 등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쌀에서 뉘와 돌을 골라내야 하듯이, 공부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골라낼 줄 알도록 가르쳐 주는 스승을 꼭 모셔야지요. 특히 참선을 하는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뭣꼬’ 하다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망상이 들어옵니다. 피가 머리로 몰려 얼굴이 시뻘개지고, 심지어는 정신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해야 합니다.
─염불할 때도 상기된다든지 하는 위험이 따르나요?
▲염불은 절대 부담이 없어요. 편안해야 염불이 되고, 가르쳐준 방법대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됩니다. 그렇다고 스승이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참선수행을 하다 금강경을 공부하셨는데, 왜 금강경이었습니까?
▲금강경은 12인연, 아뢰야식 등 우리 마음의 근본을 열리게 하고 다독이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선방에서 금강경을 많이 배웁니다. 반야심경이 금강경의 요지인데, 없어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는 것,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하면 부처님이 함께 하시며, 내가 곧 부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금방 말씀하셨듯이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인 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는 꼭 불상에 금칠을 하고, 백호를 넣어 광명을 발하도록 해야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먼지가 거울을 잔뜩 덮고 있는데, 들여다본 들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요. 물을 흔들어봐요. 거기에 얼굴이 제대로 비치지 않겠지요. 번뇌망상을 닦지 않으니 나타나지 않음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불교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내가 체험한 부처님의 진수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일제 때 발가락 네 개를 자르고 학병에 나가지 않았는데, 발가락을 잘라 하반신이 마비됐어요. 메디컬센터에서 수술하고 열 달만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먹지를 못해 송장과 같았어요. 하루는 내가 육신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중 울음소리와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미 내가 죽었으니까 염하는 중이었고, 내가 어느 큰 산의 돌문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가라”고 지르는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졌어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는지 “살아있다” 그래요. 죽음을 경험한 것이죠.
육신을 느낄 때는 괴롭지만, 육신을 느끼지 않을 때는 편안합니다. 수행은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입니다. 죽음을 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돌아가셨습니다. 본성을 깨달아 생사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재물과 명예에 눈이 멀어선 안되겠지요.
─스님께서는 시를 쓰시기도 하는데요. 한 편 소개해 주시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로써 전하려는 뜻인지요.
▲염불하고 정신이 맑아지면 가끔 쓰지요.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멀리 하고 있습니다. 산거(山居)라는 제목을 붙인 것인데, 들어보세요.
낮달이 걸려있는 소나무 가지 바위 아래 / 주리면 열매 따고 풀섶으로 바람 비 가려 / 옹달샘 달빛을 움켜 마시면 저 멀리 / 도솔천 별빛이 진주알처럼 흩어진다 / 연(緣)은 무상(無常)이요, 정(情)은 환멸(幻滅)인데 / 산에서 사는 사람 마음이 없다 하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설산스님은 . 진즉 회향하셨고 ...설산스님은...지금쯤 서방세계에 나투셨을 것임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