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2)-영웅본색
1. 80년대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영웅본색>을 이제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영웅본색’ 하면 떠오르는 것은 쌍권총을 든 주윤발의 총격신 뿐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영화가 ‘주윤발’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는 폭력배 보스 적룡과 그의 동생 장국영과의 갈등과 화해가 주축이다. 주윤발의 역할은 갈등과 화해의 매개체이며 극적인 모습으로 영화의 긴장미와 비장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주윤발은 비극적인 ‘히어로’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2. 영화는 동양적 르와르의 전형을 제시한다. 폭력 조직의 보스 적룡은 냉혹하고 강단있는 암흑계의 전설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에게 따뜻하고 친절하며 특히 동생과의 우애가 깊은 인물이기도 하다. 폭력배임에도 인간적 장점을 고루 지닌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적룡의 친구 ‘주윤발’ 또한 위트 넘치고 친구에 대한 의리로 뭉친 인물이다. 폭력배들을 사랑, 우정, 의리라는 매혹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그들의 세계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한동안 ‘폭력배 미화’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게 했다. 그러나 영화 속 강한 힘을 지닌 자들이 선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존재로 비치고 있는 점은 영화에 기분 좋게 집중하게 해준다.
3. 르아르 영화의 ‘악’을 담당하는 자들은 대부분 폭력 조직의 배신자들이거나 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이다. 대개 이들은 결탁하여 문제를 확산시키고 비열한 책략을 통해 악한 세력에게 이익을 제공한다. <영웅본색>에서 ‘악’은 적룡과 주윤발의 후배 ‘이자웅’이 대변한다. 그는 철저하게 선배들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들을 배신하고 조직의 보스가 되면서 선대들을 제거하는 배신과 모략의 전형적인 악한으로 설정된다. 영화는 이 악한 세력에 대한 응징이 중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4. <영웅본색>의 동양적 정서는 적룡과 동생 장국영과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서 절절하게 표현된다. 우애가 깊었던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이 형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생으로 인해 급격하게 갈등의 상황으로 돌입한다. 증오로 가득 찬 동생은 복수와 범죄를 소탕할 목적으로 조직에 접근하지만 오히려 목숨에 위협을 받는다. 아버지 죽음 이후 범죄와 단절하려던 ‘적룡’도 대의와 복수 그리고 동생의 보호를 위해서 주윤발과 협력하여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이러한 과정은 적룡이 폭력에 다시 참여하는 과정을 필연적인 이유로 포장한다. 그가 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악’의 세력이 계속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르아르의 전형적인 설득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이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고 설득할 수 있는 적절한 효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웅본색’의 전개는 충분히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기꺼이 ‘악을 제거하기 위한 폭력’에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끝 공동의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형과 동생은 화해하게 된다. 그 과정은 화해를 위한 주윤발의 영웅적 죽음이 동반되는 슬픔이기도 하다. 성공과 평화는 누군가의 비극적 죽음이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평화는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닌 ‘피의 댓가’라는 점을 잔혹한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5. ‘악을 제거하기 위한 폭력’, 이 주제는 영화가 개봉된 1987년 매우 설득력있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잔인한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5공 세력은 대부분 시민들에게는 하나의 ‘악’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죽음을 올라타고 권력의 자리에 앉은 자들은 군인의 책무와 가치를 저버린 ‘배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들에 대한 저항은 비록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허용되어야 하는 형태이다. ‘악’이 창궐한 데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 폭력적인 방법밖에 없을 때, ‘폭력’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의 시위 방식이 화염병과 돌로 상징된 폭력적 시위였을지라도 그것은 정당한 시위였던 것이다. 그러한 의식이 지배하던 80년대 <영웅본색>의 해결방식도 충분한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주윤발의 ‘쌍권총’ 솜씨도 획득하길 원했을 것이다. <영웅본색>이 개봉된 후, 주윤발이 주목되고 주윤발의 행동에 대한 모방이 유행이 된 것은 그런 내면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30년이 더 지난 시점 당시에는 못 본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첫댓글 제목을 재미있게 붙였네!!!
영웅에 대한 집착에서 그랬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