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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맛 추억따라 중국집 문 앞에 서다 | ||||||
청주 중국집 짜장면, 배고픈 시절 최상의 먹거리로 꼽혀 만춘관, 회빈관, 극동반점, 왕산원, 경화반점 등 시내 밀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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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한 탓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안도현의 소설 ‘짜장면’에서 - 한때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부르도록 강권하던 시대가 있었다. 마치 홍길동전 속의 길동이처럼… 기억 속의 맛은 시간 이라는 숙성된 재료가 더해지며 오묘해지는 법이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본 어미 새의 모습을 인식하는 행위를 각인이라 하는데 새들은 어른 새가 되어 죽을 때까지 어미를 잊지 않는다. 음식의 맛도 그러해서 어릴 적 맛 본 충격적이고도 기막혔던 짜장면 맛의 기억은 각인이 되어 환갑 지난 내 혀끝을 지금껏 따라 다니고 있나보다.
잊지 못할 13살의 첫 자장면 맛 내가 처음 그 짜장면 맛을 본 해는 열세 살 때였으니 햇수로 약 50년 쯤 되었다. 시골에서는 장날 장터에나 가야 맛을 볼 수 있기에 청주로 이사 오기 전 까지는 그 희한한 맛을 겪어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는 말이다. 짜장면에 관한 내 기억을 늘어 놓아보면 이렇다. ①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지금은 사라진 중앙극장 옆에 있는 극동반점으로 데려가서 첫 짜장면을 사 주셨다. ② 고등학교 때 교지를 편집하고 인쇄는 대전에서 했는데 교정을 보러 간 대전 삼성동 인쇄골목의 출판사에서 지도교사께서는 끼니마다 짜장면을 시켜 주셨다. ③ 군대 시절 근무지인 철책선에서 어쩌다 강원도 화천읍까지 출장을 나오면 언제나 짜장면을 먹고 귀대했다. ④ 한동안 정치를 꿈꿨던 내 친구 장모군은 짜장면 한 그릇을 언제나 세 젓가락으로 끝냈다. 청주역 만춘관 아직도 제 자리에 내 살던 북문로에는 기차역이 있었기 때문에 잘 되는 음식점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엔 중국집이나 설렁탕, 곰탕집, 국수집 등이 제법 많았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늘 붐볐기 때문이다. 청주역전의 만춘관과 인근의 회빈관, 중앙극장 옆의 극동반점과 왕산원, 수아사 근처까지 내려오면 철도 건널목 옆에 덕생원이 있었는데 변하여 오래 전 일이 되었다. 사라지거나 이전하거나 하여 예전 모습으로 영업하는 곳은 이제는 만춘관이 유일하다. 나의 아버지는 이 중에 제법 규모가 컷던 극동반점에서 생애 첫 짜장면을 아들에게 먹인 것이다. 그러니 극동반점을 어찌 잊겠는가 ? 시청근처이며 청주역 앞이었던 만춘관 일대가 청주 철도역사박물관을 짓는다고 하여 머지않아 헐릴 처지가 되었고 중앙로통의 회빈관은 사라진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철도 건널목 옆에 있었던 덕생원도 철길이 걷히면서 기적소리와 함께 없어지고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은 남궁병원 근처에 있다가 북문로로 현대식 4층 건물을 지어 이사한 경화반점이 청주화교의 중심이 되어 옛 짜장면 맛을 재현하고 있다. 중국 산둥지방 출신 청주 화교들 통계를 보면 「한국인 매일 8명중 1명이 짜장면을 먹으며 전국 2만 4000여 중국음식점에서 하루 평균 600만 그릇이 소비되고 외래음식점으로 유일하게 한국 100대 문화상징물로 선정된 음식이며 정부의 중점 물가관리품목으로 지정 되었다」그러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임에 틀림 없겠다. 그리고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와 함께 인천, 즉 제물포항을 통해 들어온 중국 음식으로 중국식 짜장면에 양파와 당근을 넣고 연하게 풀어 만든 한국식 중국음식」이라고 연원을 풀어 놓은 것을 보면 한국인의 입맛을 지배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청주의 화교들은 대개 중국본토인 산둥지방에서 인천으로 들어온 한족들이 대부분인데 그동안 한중 수교문제로 인해 거의 대만국적을 가지고 산다. 그러다 20년 전 한중수교이후 화교들의 입장이 더 꼬여 버렸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대만의 복잡한 삼국 외교관계가 그 원인이 된 것이다. 그들의 말로는 ‘공중에 뜬 처지’로 여러가지 불편한 것들이 생활 곳곳에 널려있다고 한숨을 쉰다. 화교의 삶, 재일 한국인과 비교돼 한국인이 화교와 ‘중국집’의 이야기를 하려면 일본 속의 한국인 즉 재일교포의 입장을 견주어 말하는 게 맞다. 재일교포들과 한국내의 화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에게 모진 멸시와 핍박을 받아가며 절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생존을 위한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몸부림을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짜장면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집 음식은 짬뽕인데 내겐 짜장의 각인이 우선인지 중국집에서 짬뽕을 선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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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주엔 중국집이 그 전에는 관자가 붙었지 태동관 극동관 태화관 중국사람들 양파도 수곡동 남들에서 재배하는 화교들이었고 밀가루 도매상 철물점도 중국인들이 많이 했지 그들은 돈만 생기면 금으로 바꾸어 보관 했지 나중엔 대만은행에 보관 했고 지금도 그들은 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지 ... 화교들도 중국 본토에 투자를 많이하지 화상 아닌가 ........ 짜장면생각난다 태동관 빽알하고 잘읽고가네 동기회때 만나 짜장먹자,,,
그래도 중국집하면 태동관이 제일 생각이 나네요..청원군청과 도청에 근무하면서 점심때 가서 먹고.. 저녁때 야근하면서 배달해서 또 먹고..
청주고 44회 동창회는 태동관에서 20년은 계속해왔는데...브레드하임빵집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현대식리모델링하여 코오롱스포츠대리점이 들어와 잇지요.
인사이동때면 제일 먼저 외상장부 갖고 찾아오는 태동관 그친구 이름이 뭐였더라...고추가 엄청커서 다방아가씨들이 자주 먹었다는데..ㅎㅎ
민기
아마 그친구 "민기"도 50이 넘었을꺼야. 매일 오도바이 타고 열심히 배달하며..뭐가 그리 즐거운지..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태동관 사장의..사위 유사장은 프랑스가서 말어먹고 대만가서 다 말어 먹었는지 안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