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ノ물ノ대ノ담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과 대담

[김용락]

                     분단시대의 사림파 평론가 임헌영

때: 2006년 2월 4일 오후 3시
장소: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임헌영 선생 자택

대담: 김용락(『사람의 문학』발행인)

  『사람의 문학』봄호 대담자로 임헌영 선생을 정해 놓고 인터넷 홈페이지 '임헌영의 문학광장'(http://www.yimhy.pe.kr)을 비롯해 이런 저런 2차 자료들을 읽었다. 이 자료에는 지난 여름 친일파명단 발표 시 대구경북시민신문의 인터뷰를 비롯해, 의성문학회에서 펴낸 『의성문학14집』(2000)에 실린 「나의 문학수업기」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문학수업기」는 말 그대로 임 선생의 청년기 문학 수업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가 나와있어서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보였다. 이 글은 후에 확인한 바로 『문학사상』엔가 어딘가에 발표한 것을 재수록한 것이라고 했다. 아주 재미있고 의미있는 글이다.
  가장 최근의 글로는 계간 문학지『문학과 경계』(2004. 가을호)에서 평론가 김성수 씨와 나눈 대담이었다. 이 대담의 제목이 '경계에 선 전방위적 지식인 임헌영'이라고 되어 있었다.  공감이 가는 제목이었다. 특히 '전방위적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임헌영 선생의 정체성을 가장 적절히 일컫는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학평론가로, 민주투사로, 사회운동가로  말 그대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그의 활동력은 눈부신 바가 있다. 지난 여름 우리사회를 들끓게 했던 친일인사 명단 발표도 그가 대표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도한 사실을 보면 그의 활동의 진폭을 짐작할 수 있다. 동년배 작가들이 대부분 뒷전에 물러 앉은데 비해 그의 활동은 여전히 열정적이다.
  사실 한국사회와 같은 학벌, 연고사회에서 그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대학교수도 아니며, 창비나 문지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에꼴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정열적으로  쓰고 일해 우리사회가 인정할만한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한 존재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그와 나는 경북 의성이 고향인 동향이다. 문학을 하면서 임 선생이 나와 동향인 사실에 대해 긍지를 느낀 적이 많다. 나도 열심히 해서 저 정도급의 문인은 돼야지 하고 사표로 생각한 적도 있다.
  애초 이 대담에는 신기훈 시인이 동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다. 서울역에 내려 전화를 하니 지하철 방배역 2번 출구로 오라고 하신다.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일러 준 곳에 도착하니 선생께서 저 만치 마중을 나와 계셨다.
  많은 책과 깔끔한 분위기의 거실에 앉아 대담을 시작했다.

김용락: 선생님,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임헌영: 대구에서 막 올라오는 길이지요. 추운 날씨에…

김용락: 대구의 문학을 보면 군사정권 아래 보수적이고 제도화된 문학관이 대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봐도 대부분 지역이 60년대 김동리 서정주 류의 문협 문학이 쇠퇴해서 명맥 유지가 급급한 편인데 유독 대구만은 아직 문협이 나름대로 힘을 쓰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역사랄까 전통의 뿌리가 깊긴 깊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 지요.

임헌영: 저도 경상도 사람인데… 지난 74년 일어난 인혁당 사건은 대구가 중심이었지요. 대구가 부산보다 나았어요. 이재문 씨라고 남민전에 사형 당한 분이 계셨는데 이런 분들이 남아서 시민운동을 계속했더라면 지역 감정같은 것은 없어요. 대구는 인혁당 이후에는 인물이 안 나타나요.
  군사이데올로기가 대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인혁당 복권은 단순히 명예회복 문제가 아니고, 대구 시민의식의 회복 문제입니다. 그들이 대구 시민들이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점을 숙고해야 합니다. 단순히 명예회복이나 보상의 문제는 아닙니다.
  문학도 보면 대구문학이 부산보다 약해요. 타 지역과 비교하면 기분 나쁘겠지만 대구는 타 지역에 비해 굉장히 가치 일원론적이에요.  군사독재 하 제도화된 문학만 남아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경상도 문학권을 남부의 대구문학권, 경주를 중심으로 한 포항까지 아우르는 문학권, 울산 포항의 노동자 문학권, 북부의 안동 유교 문학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울산 포항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문학권은 특이하지요. 새로 생긴 도시의 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울산, 포항 쪽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은 거의 한 30-50년 전의 문화예술, 교육, 의식이 바탕에 있는 것 같아요.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말하자면 아름답다고 하는 데, 그 정도로 아름다우냐 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식이지요. 시를 이야기할 때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그게 무슨 시냐” 이런 식입니다. 그게 아마 제일 심한 게 대구문학권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경남은 좀 달라요. 부산이나 창원, 마산, 진주, 즉 경남은 그래도 그런 부분에서 개방적이고, 현실의식이 있는데 경북, 대구 쪽은 작가회의 활동에서도 그렇고, 민족, 민중문학 계열의 문인이 고생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교조는 상주 이쪽이 세다고 하는데, 이게 다른 분야로 확산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예전을 생각해 보면 안동 같은 데가 대표적인 곳이지만 식민지 시대 때 가장 민족의식이 강한 곳이 경상도였지요. 이상화, 이육사가 다 경상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상화 문학이 대구에서 얼마나 영향을 주고, 이육사 문학이 안동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의해 얼마나 재조명되고 있는 지 반성해야 합니다. 정말 지하의 이육사, 이상화 시인이 통탄할 일입니다.
 지금은 경상도의 경우 지역문화가 왜곡된 상태에서 분단시대의 독재체재에 맞춘 문학이 되어 버렸어요. 순수예술이 너무 고착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를 순화시켜서 여러 가지 예술적인 향수력을 길러 주는 것이 앞으로의 문화운동의 쟁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용락: 인혁당 관련해서는 지난해가 30주년이었는데, 대구에서 비교적 큰 행사를 했지요. 저도 행사장에서 기념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소설가 김원일 선생이 인혁당 관련 『푸른혼』이란 소설을 써서 창비에서 주는 무슨 상도 받고 했지요.

임헌영: 김 선생, 그 책 읽어 봤어요. 어때요?

김용락: 사서 여정남 편하고 서도원 편 만 읽고 바빠서 밀쳐 두었습니다. 일전에 고은 선생이 대구에 강연와서 좋은책이라고 대구사람들 꼭 읽어보라고 권하던데요.

임헌영: 평가가 부정적이던데… 읽은 사람들 이야기가 무슨 수필처럼 성의없이 대강대강 썼다는 평이 있던데…

김용락: 그런 측면도 있는것 같아요. 구성이나 언어의 밀도도 떨어지고, 사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두고 꼭 누가 쓰라는 법은 없지만 정통 리얼리즘 기법으로 민족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이 썼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해요. 사실 김 선생이 뛰어난 작가이긴 하지만 7,80년대 변혁공간에서의 역할은 아무래도… 이게 다 대구 사는 저희들의 힘이 부족해서 그렇지요 뭐. 기회되면 저도 10.1 사건하고 이것은 제대로 한 번 쓰고 싶어요.

임헌영: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김용락: 오늘은 우선 제가『문학과 경계』(2004년 가을호)에 선생님과 문학평론가 김성수 교수가 대담한 걸 읽었습니다만 오늘 대담에서는 그 내용과는 가급적 중복이 안 되는 것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질문이 되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임헌영: 어릴 때 작문을 잘했어요. 백일장 같은 대회에 나가서 상 받은 적도 있어요. 어릴 때 굉장히 시골에서 살았어요. 조금 성장해서 사범학교를 다닐 때는 대회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 대회 참가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문학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6. 25가 제가 10살 때 났는데,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그냥 밥은 먹고 사는 집이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집은 상대적으로 제법 사는 집이었지요. 논이 15마지, 밭이 10마지 정도이고, 기와집은 마을 전체에 서너집인데 우리집은 기와집이었지요. 그런데 10살 때 6.25를 만났는데 그때 몰락했어요. 전쟁을 거치면서 남자는 거의 없어져 버리고, 집이 완전히 몰락했어요. 집안 사람들도 술주정꾼이라든가 싸움꾼 같은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쟁으로 인해 4학년 때 제일 큰 남자가 됐지요. 10살 때 어느 순간 가장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가 신세한탄하면서 울었고, 정말 사는 게 뭐냐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 속에서 제일 위안을 찾는 게 문학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냐”,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못 사는 거냐.”하는 의문이 생겼지요. 연좌제 때문에 교사 노릇밖에 할 수 없어 사범학교를 다녔습니다.
교직 생활을 하는 중에도 연좌제 때문에 가끔씩 순사들이 와서 신문보는 거 까지 물어 보고 가곤 했지요.

김용락: 전쟁 때문에 집안의 남자들이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조숙해 지신 것 같습니다.

임헌영: 위로 누나가 3명 있는데 당시 누나들이 아버지가 그리워서, 가사의 ‘어머니’를 아버지로 바꾸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참 마음이 안 됐었어요.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왜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다소 염세적이면서 세상에 대해 한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후 고등학교 가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고,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경제학원론, 상법을 공부 했습니다. 어쨓든 우리 집이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가면 상대에 진학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범학교 담임 선생과 상담하면서 국문과를 가는 게 어떠냐며 원서를 국문과로 썼지요. 그게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으로 생각이 되요.

김용락: 담임이‘국문과’를 권할 정도로 고등학교 시절 문예능력이 뛰어났던가 봅니다.

임헌영: 뛰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동기들 간에, 책을 많이 보기로는 소문이 나있었지요. 좀 불량학생이었습니다(웃음). 술먹고 극장가고… 사는 데 별 위안이 없었어요. 집안 사정을 남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그래서 한 친구만 그런 사정을 알아요. 그 친구도 비밀로 해 주었어요. 문예반 활동이나 독서습관 같은 것을 보고 당시 선생님이 그렇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김용락: 선친께서는?

임헌영: 삼촌이 대구사범 출신입니다. 8.15 해방되고 대구 10.1 때 행동을 했어요. 아버지게서도 휩쓸려 들었지요. 아버지 형제가 네 분인데 한 분은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세 분이 계셨는데 두 분은 보도연맹으로 죽고, 한 분은 행불이 되었어요. 막내 삼촌은 사범학교 다닐 때 독서회 사건에 연루 돼 전라도 여수로 발령을 받았다가 후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삼촌이 8. 15 때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당시 5촌도 행불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중학교도 안 나온 학력인데, 삼촌은 당시에 많이 배운 셈이지요. 아버지 형제 3형제가 6.25 때 다 없어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5촌 아저씨도 그 때 돌아가셨어요. 우리 아버지하고 작은 아버지는 보도연맹으로 학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고, 막내 삼촌과 형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지금도 북에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용락: 생가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어디쯤인지, 고향집은 지금도 있는지요?

임헌영: 그곳에 아직 생가가 있습니다. 풍천 임씨인데 임동재라고 집안에 아저씨뻘 되는 분이 살고 있습니다. 동네 452번지입니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구절1리)

김용락: 그렇군요. 도리원에서 초전 가다가 있는 오른쪽 그 동네군요. 저도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다음 번에 가면 작은 팻말이라도 하나 설치해야겠는데요.
 저는 조탑동(안동시 일직면)에 자주 갑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계셔서 저의 시골집에 들렀다가 인사드리러 자주 가는데, 언젠가 제 고향 단촌역과 조탑동을 묶는 문학기행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선생님의 생가까지 넣어서 문학기행 코스를 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임헌영: 그래도 좋겠군요.

김용락: 이런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가족문제 때문에 선생님이 문학운동 쪽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었군요. 자료를 보니 선생님은 중앙대학교 백철 선생님의 제자이시죠. 문학 스승은 누구예요?

임헌영: 대학 재학 때 당시 현역문인으로 중앙대학교에 오신 분이 조병화, 최인욱, 백철, 김의정(불어선생) 선생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세 분 다 저와 각별했지요. 참 나를 아껴 주셨고, 특히 최인욱 선생 집에 자주 갔습니다. 최인욱 선생(소설 「벌레 먹은 장미」의 저자)은 소설작법을 가르쳤는데, 이분이 정말 명 강의를 하셨어요. 자신 소설은 별론데, 강의는 정말 명 강의였습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셨지요. 선생의 집에 가면 정말 반가워했고, 통금도 없이 밤새도록 술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이 골아 떨어지셔야 우리가 집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절대 못 나가요. 특히 술 마시면서 그 광기, 그게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인격적으로 큰 감화를 준 분이에요.
 조병화 선생은 명망성이 있었어요. 시집 낼 때, 제가 읽고 의견을 말하면 “정말 그렇다”고 말씀하시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어요. 백철 선생은 학장으로 계급이 높아 있어서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대학 3, 4학년, 대학원 들어가서였습니다. 그야말로 그 분 한테는 도제생활을 한 셈인데, 원고료 주는 대로 받고 대필도 많이 했습니다.(웃음)
 그러다가 문단에 나와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한 게 당시 남정현, 최인훈, 이호철, 중앙대학교 선배 소설가 박용숙-이 분은 남자인데, 중대 선배였지요.-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굉장히 친했습니다. 이 분들은 틈만 나면 찾아가고, 남정현 선생 같은 경우는 집에 찾아가서 책도 많이 빌려 봤습니다.
 우리 또래 중앙대 출신으로는 신상웅, 백승철이 있고‘상황’동인 구중서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중서 선생은 우리 동문처럼 느껴져요. 신상웅 선생은 대학신문사 2년 선배이기도 하고 같은 의성 동향이었어요. 학교 안에서 서로 알고 있었는데, 신문사 시험 치다가 한문 문제를 못쓰니까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웃음).

김용락: 어떤 자료를 보니까 플레하노프, 노신과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던데…

임헌영: 사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친구 보여주면 욕만 얻어먹고 안 됐어요. 시도 써 봤는데 또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초등학교 선생할 때 평론습작을 했는데. 대학 와서 혼자 소설, 시 써 봐도 안 돼서 평론을 하게 되었지요.

김용락: 처음에는 정치평론, 현장평론에 관심이 많으셨는데요.

임헌영: 대학에 와서 문학에 못지 않게 정치 사상 관련 책을 많이 봤습니다. 역사, 사상책을 많이 본 셈이지요. 대학원 할 때도 계속 정치, 사상, 평론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도 문학 못지 않게 역사관련 책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김용락: 플레하노프나 노신의 저작이 선생님의 문학 뼈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겠네요.

임헌영: 노신은 「고향」「약」과 같은 소설을 보고 너무 좋아서 지금도 노신에 관한 건 거의 다 봅니다. 중국 원서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플레하노프도 마찬가지예요. 대학원에 가서 처음 일본원서로 읽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플레하노프를 읽었는데, 정치적으로는 멘셰비키로 나오지만 문학평론가로서 너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학평론가이면서 사회평론가이지요. 이런 게 정말 옳은 평론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
다.

김용락: 선생님이 생각하시기로 좋은 문학은 어떤 건지요. 또 좋은 비평가가 가져야 할 덕성은 무엇인지요?

임헌영: 좋은 문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어야 하고, 읽히는 흥미가 가치이월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달에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1년 뒤에 잊혀져 버린다면 그 것을 진정한 대중성이라고 할 수 없어요. ‘가치이월’은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야 가능하지요. 사람들이 원시시대 때 치부만 가리고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앞으로의 시대나 역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을 진솔하게 거짓말 없이, 누구나 공감하도록 그려야 좋은 문학입니다.
 그 예로, 세계의 정상급 문학, 톨스토이, 위고, 괴테의 문학과 같은 적어도 그런 정도의 문학이 세계 최고의 문학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런 문학을 지향해야 합니다. 아무리 컴퓨터 시대를 떠들어도 그 정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대 작가들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그 세 천재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쓴 걸작이 주는 감동, 그것이 가장 위대한 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쓴 문학을 읽으면서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작가들이 한물갔고 지금 자신이 쓴 게 최고라고 오늘의 작가들이 착각만 안 하면 돼요. 마치 시대가 변하고, 문학의 의미가 바뀌어서 지금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건 불행한 일이지요.

김용락: 좋은 문학이 그런 거라면 좋은 비평가는?

임헌영: 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비평가는 플레하노프, 루카치 같은 사람입니다. 문학비평은 단순한 문학만이 아니고, 사회, 시대,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평론가가 문학작품 평가에만 그치는 것은 가장 하위의 평론가라 할 수 있지요.
그 보다 한 단계 높은 평론가는 그 작품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고,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평론가라 할 수 있지요. 또 그 보다 더 한 단계 높은 평론가는 거기에서 그 시대의 올바른 미학에 대한 통찰력과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하는 안목을 보여 주어야 하지요.
 그런 안목을 가지려면 역사 특히 민족사에 대한 심도있는 실력이 있어야하고, 거기에다가 정치, 철학 등 소위 문사철에 대한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비평가는 문학이야기 뿐 아니라, 사회평론, 문명비평, 정치, 시사평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평론을 할 수 없다면 평론가로서는 결격사유라고 할 수 있지요.

김용락: 그런 평론을 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잖습니까?

임헌영: 많지는 않지만 백낙청 선생 같은 분은 다 하지 않습니까. 플레하노프나 루카치 같은 분도 그랬지요.

김용락: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비평가로 모델이 될 분이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백낙청 선생님 같은 분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임헌영: 요즘은 경희대 영문과 도정일 선생도 열심히 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락: 그 분은 근래에 와서 열심히 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그분은 문화평론가에 가깝습니다. 정통 문학평론가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평론가 중 어떤 분을 높이 평가하시는지요?

임헌영: 근대에 신채호도 대단한 분이고 그 뒤에는 임화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임화는 평론가의 역할과 기능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순발력이 있는 평론가였지요.
분단이후에 와서는 몇 가지 유형이 있지요. 백(낙청)선생 같은 분은 차원이 세계적입니다. 영미 쪽 등 세계적인 지성의 사상을 꿰고 있었고, 그런 속에서 우리 문학을 조명했지요. 세계문학과 민족문학 같은 평론이 대표적입니다. 그 다음에는 김윤식 선생이 있는데, 문단에서 알고 있는 김윤식과 실제의 김윤식은 다릅니다. 이분은 서양 철학 사상사를 다 꿰고 한국근현대사를 다 꿰고 있어요. 그래서 그분의 비평에는 깊이가 있지요.
  또 김우창 선생이 있습니다. 김우창 선생은 서양철학사, 서양사상사에 대한 조예가 깊어요. 글을 보면‘서양철학사상사’에서 정리한 개념으로 서술을 하지요. 같은 단어라도 내가 말할 때보다 더 서양철학사의 깊이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몇 분은 우리나라 근현대를 거치면서 큰 가르침을 준 평론가들이지요.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준 분들입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어령 선생한테도 한 때 반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문학을 보는 관점, 이를테면 50년대에 이미 순수참여문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논쟁을 이끌어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문학적 결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형이상학적 저항문학으로 흘러서 나중에는 아쉬웠지만, 당시에는 그분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종호 선생도 그 무렵에 문학작품을 범세계적인 관점으로 보는 법을 가르쳐 준 분입니다.
  그러다가 대학 오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백철 선생에게 우리나라 문학사를 배우면서, 나도 문단에 나오고 여러 비평가와 교류하게 되었지요.

김용락: 선생님의 저서가 20여권 되죠?

임헌영: 논문, 평론, 수필이 한 2천여 편이 되고, 저서가 그 정도도 됩니다.

김용락: 그렇다면 대표 저서를 뭐라고 보는지요?

임헌영: 평론집으로는『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길사), 연구서로는『분단시대의 문학』(태학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뒤의 연구서는 내가 심층 연구한 것이고 처음 자료를 발굴해서 한 게 많은데 크게 빛을 못 봤어요. 논문은『해방전후사의 인식』에도 있는 것이었는데, 그 분야를 처음 개척한 것이었지요. 지금은 해방공간 연구가 많은 데 당시는 그 시대의 문학연구가 황무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김용락: <민족문제 연구소>의 소장이신데, 이것도 평소의 문학관과 연관이 있죠?

임헌영: 제가 남민전 사건으로 79년에 구속되었다가 83년에 나왔는데 나오니까 참 막연했습니다. 그 때 주변사람과 시작한 게 ‘역사문제연구소’였습니다. 당시 감투는 부소장이었는데 거의 상근하였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당시 영남대 정석종 교수가 소장이었고, 그 분은 아예 미국에 가 계셨지요. 거기에 만 3년 있으면서 근현대사 공부 많이 하고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팀, 학자들 조직을 거의 다 했습니다. 그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서 다른 활동을 하다가 ‘민족문제연구소’를 맡았는데 이 연구소는 처음 91년 생길 때부터 관심을 가졌습니다. 생길 때는 김봉우 소장이고 저는 지도위원 혹은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4년 전에 부소장을 맡게 되었고, 3년 전부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민족문제연구소’의 중요한 멤버들이 다 역사문제연구소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필진들이 지금은 거의 대학교수가 다 돼 있어요. 생각해 보면 역사는 공짜가 없고 만들어 놓은 데서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용락: 포항에 손춘익이란 분이 계셨어요. 아동문학가이자 소설가이신데요. 염무웅 선생과 이분이 가깝게 지냈는데, 신경림 시인 같은 분이 강연을 오게 되면 가끔 대구에서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한 번은 그 분이 임헌영 같은 사람이 교수가 안 된 게 참 신기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저 역시 저간의 정치적인 배경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선생님같은 실력자가 대학 교수, 물론 대학 교수가 대단하다거나 실력 있다고 반드시 교수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임헌영: 손춘익 씨 이야기를 진작 들었으면 살았을 때 술이나 살걸.(웃음) 그 분은 거의 포항 지킴이었지요.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참 좋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번은 공항에서 만났을 때 참 반가워하더라고요.
  가끔은 나 같은 사람이 분단한국사에서 위치가 뭐냐 생각해 봅니다. 분단사에서 지식인으로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어요. 평론가들 중 직업 없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요. 김병익 선생 또한 지금 직업이 없지만 문학과 지성사가 있었지요. 어떻게 보면 나는 방목상태의 야생마인게지요. 내 팔자가 왜 이럴까 생각해 봤는데, 나는 분단시대의 사림파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지식이 야생적이에요. (이건 내 자랑인데) 나는 어떤 회의에서 사회를 보면 다른 사람보다 반은 시간을 줄입니다. 그 정도로 실무적인 부분에서 빠른 면이 있어요. 결론도 합리적으로 내립니다. 작가회의 같은 데 가서도 논쟁을 정리하고 합의를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 능력이 만약 내가 관료가 되었으면 큰 역할을 발휘했겠지만, 사림파적 지식인이어서 그 길로 안 간 것 같습니다.
  살아온 전력, 두 번에 걸친 공안적 사건이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특히 ‘남민전’ 때문에 삶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습니다.

김용락: 선생님은 동향 선배이신데, 저는 안동 서부초등학교, 안동 경안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단촌에서 기차 타고 통학한 적도 있는데, 어떤 글에서 보니까 선생님도 제가 다닌 그 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더군요.

 임헌영: 우리 다닐 때는 고등학교만 있었어요. 내가 그 때 안동사범에 시험 쳐놓고 떨어지면 경안고에 가려고 했지요. 그래서 경안고에서 입학시험보고 있는데 안동사범 쪽에 합격자 발표가 나서 시험을 중도에 안 치고 나왔습니다. 서부동에 아직 학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 탑리에서 안동을 오갔는데, 겨울에는 자취하고 봄 되면 통학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자취방값이 아까워서 그랬는데, 기차 연착을 당시에 얼마나 하던지, 학교에 가서 청소도 하고 해야 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단촌 지역에도 당시 통학생이 많았어요.

김용락: 선생님 연세쯤에는 사범학교에 간 사람들은 당시 공부를 아주 잘 한 편인데요.

임헌영: 우리 중학교에서 경북고등학교에 하나 갔고, 안동사범은 열 몇 명 정도 갔습니다.

김용락: 저는 중학교도 추첨을 해서 갔고, 고등학교도 그래요. 고등학교 동문들 가운데 알려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임헌영: 최봉태 변호사는?

김용락: 그 분은 한참 후배입니다. 대구고 나와서 서울대 법대 나와서 지금은 시민운동을 합니다.

임헌영: 최봉태는 대구에서도 활동했죠?

김용락: 그 분이 대구에서 민변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여기 저기 다니다가 한번은 광주서 송기숙 선생이 너 왜 교수 안하냐고 하셨습니다. 교수는 일하기에 매우 좋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가 얼마나 많은 프리미엄을 누리는지 아느냐고 하시면서 대학에 가길 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 하는 게 아니고 안 시켜줘서 못한다고 하며 웃곤 했는데, 선생님 같은 분이 적절한 나이에 제도권으로 진입했다면 보다 일찍 명망을 얻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결국은 둘러 오거나, 느릴 뿐 하시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임헌영: 나도 지방대학 가서 교수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방대학을 갈 기회가 없지 않았는데, 내가 목을 맸다면 갔을 것입니다. 근데 그게 싫었어요. 어쨌든 이곳(서울)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보다는 하는 활동을 하면서 서울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서울에 있으면서 가능하다면 모교(중앙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74년에 중앙대 강사 나갈 때 첫 사건이 나고, 그리고 진출할 수 있는 문이 닫혔어요. 항의도 하고, 보안사까지 찾아도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뭘 모르고 참 어리석었어요. 당시 보안사 책임자가 내 앞에서 중앙대 총장한테 전화도 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18년 동안을 거의 대학 강단에 못 섰지요. 첫 번째 사건뿐이면 복권이 되었을 텐데, 두 번째 사건인‘남민전’ 사건으로 또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투옥된 것으로 인한 제한은 없는데, 이미 후배들이 대학에 많은데 내가 대학에 갈 때가 아니지요. 이제 정년 퇴직할 나이인데… 그 때 만약 내가 대학에 갔더라면 (내 자만심인데) 크게 학풍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인 활동을 더욱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내가 아니라도 지금 생각하면 딴 사람들이 많이 했으니까 괜찮습니다(웃음).

김용락: 저도 대학 강사를 하다가 안기부에 의해 쫓겨나고 했습니다. 안기부 대구지부장이 와서 자기가 자른적 없다고 해명도 하고 그런 적이 있습니다.
  DJ정부 들어서고 나서도 대학 강의에서 제약을 받았습니다. 결국 대학 강단에 가는 것이 잘 안 되었고, 그럴 때에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교수가 안 되더라도 선생님처럼 활동을 잘 하는 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같은 거 말이지요. 요즘 얘들 말마따나 선생님은 멘토가 된 셈입니다.
 약간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저는 대학교수가 꿈은 아니었지만 염무웅 선생이라든가 문학하는 교수들을 따라다니다가 보니까 교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에 이력서를 넣으면 상대편에서 저 작자가 들어오면 학교 망한다든가, 빨갱이라든가 해서 온갖 난리를 쳐요. 한 번은 안기부 때문에 시간강사 자리마저 홀랑 쫓겨난 적도 있는데 그때 임헌영 같은 분도 있는데 나는 실력도 안 되고 반드시 교수되라는 법도 없지, 밖에서 좋은 글 쓰고 활동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은 적도 있어요.

임헌영: 평론가는 교수가 안 되면 할 일이 없어요. 옛날에는 기자나 출판사도 했지만. 교수 아니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나지요. 그런 점에서 농담으로 스스로를 평론가 국보라고 합니다(웃음).

김용락: 선생님의 고정급은 어떻게 되세요?

임헌영: 사람은 안 굶어 죽어요. 83년에 감옥에서 나와서 출판사 고문, 자문위원 같은 걸 맡겨 줘서,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 같은 분이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교육방송에서 최장수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문화센터 강의가 굉장히 많고, 아마 전국에서 제일 많을 겁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오전 시간에는 강의를 합니다. 그게 요즘 주 수입원이지요. 우스갯소리로 나는 나 스스로를 ‘보따리장수’라고 합니다.

김요락: 선생님의 연보에 보니까 ?월간독서?의 주간도 하셨는데요.

임헌영: 그 때가 70년대 후반이었는데, 유신독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고, 그걸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이달의 좋은 책’코너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박현채, 손봉호 등 각 분야 심사위원을 위촉해서 한 달 중에 나온 책을 다 조사해서,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그 책 해설을 다 해 주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민주주의, 민중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적 역할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락: 제가 그 무렵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신문을 봤습니다. 막내 누나가 그 신문 정기구독자여서 저도 보게 되었는데, 당시 철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임헌영: 당시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거의 모든 신문에서 다 내 주었어요.

김용락: 선생님은 서울 계시니까 이런 문제에 별로 생각을 안 해보셨을 수도 있는데, 지방에서 문학활동이나 문화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역문학의 과제나 지역문학을 보는 선생님의 입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임헌영: 이런 것 같아요. 지역문학이 한 4분의 1정도를 전국 단위의 문학인을 필진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지역에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중앙에서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는 지역연구, 경북지역 문인들의 전기, 사료 등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대구 같으면 이상화 생가 등을 연구해야 합니다. 중앙의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안보면 안 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문학지가 동인지화 되었어요. 80년대는 문단주류 잡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서울에 있는 중앙지라고 다 좋은 거 아닙니다. 교수들 보면 서울의 교수들이 실력이 더 좋아서 서울에 있는 게 아닙니다. 지방에 너무나 전문가가 많아요. 중앙에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가 없고, 이제 중앙이 주류가 아닙니다. 문예지만 해도 중앙의 문예지가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옳지 않아요. 지역문학지들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지역민들에게 후원을 받을 자격이 있고,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봐요.
   실제로 몇 몇 잡지들은 이미 중앙지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예지의 영업은 어차피 안 되는 거니까 나가는 부수도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도 중앙지는 전통과 이름 때문에 조금 형편이 나을 뿐이지요.
 앞으로 지역문예지는 지역문학인 연구를 해야 합니다. 나도 그런 것이 실린 지역문학지는 꼭 보관을 해요. 현지 사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부분의 잘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지요.

김용락: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지난해 여름(8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친일인사 3090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했습니다. 이 속에는 박정희 전대통령, 정일권 전국무총리, 언론쪽에에  조선일보 방응모, 동아일보 김성수 등과,  교육쪽에에 김활란 전 이대총장,유진오 전 고대총장, 법조계에 민복기 전대법원장, 문학에 이광수, 모윤숙 등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주요 13개 분야에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던진 바 있다.
   당시 편찬위는 친일인사 선정 기준을 을사늑약 전후부터 8,15 해방에 이르기까지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들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고 곧 2차 명단을 발표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이 명단 발표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임헌영: 광복 60년만에 처음으로 민족사의 숙제를 풀기 위한 첫 걸음마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 작업으로 이제는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영령들이 저승에서라도 해원(解寃)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지요. 당연히 후손들도 화해의 마당으로 나서야 할 역사적인 전환기를 마련코자 함에서입니다.
   특히 연좌제 반대를 원칙으로 천명했습니다. 누구도 친일파 후손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여전히 친일 청산을 극력 반대하는 후손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잘 살았으면 됐으니 이제는 자성하고 쓰라렸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입장을 이해, 용서와 화해를 청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실지로 친일파 후손들 중 몇몇 분들은 이런 취지에서 우리 연구소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는데,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게 바로 ‘민족 화해’이며, 지역감정,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기폭제가 되는 길입니다. 청산 않으면 계속 원한을 품고 살게 될 것입니다.
 

김용락: 근래 과거청산 문제로 한창 논란이 있었잖습니까? 왜 과거 청산이 중요한지요? 국민 일각에서는 과거청산이 국민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만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임헌영: 다 반대를 위한 억지지요. 잘 사는 나라들, 유럽이 원래부터 민주화되고 복지가 잘 된 줄 아십니까? 나치 침략 이후 다시는 그런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얼마나 무자비하게 과거사를 철저히 청산했는지, 지금 우리가 보는 유럽의 인권과 평화와 번영을 구축하기 위하여 과거사 청산을 얼마나 냉혹하게 감행 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세요. 우리가 지금 이 지경으로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건 유럽처럼 과거사 청산을 못해서 그런 겁니다.
   상식적으로 따져 봅시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거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게 국론분열 입니까, 그런 사실을 밝히는 게 분열입니까? 도둑이 나쁩니까, 도둑 잡으려는 경찰이 나쁩니까? 왜 60년이 지난 지금 하느냐고들 야단인데, 600년이 지나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경제를 왜 여기에 갖다 붙이죠? 과거사 청산 한다고 경제가 더 나빠질 이유도 없고, 않는다고 더 좋아질 까닭도 없습니다. 일본이 과거사 청산 않는다고 지금 경제가 좋습니까?  독재 시절에 특권을 누리며 떼돈을 벌었던 대기업인들이 투명사회가 싫어서 개발해낸 억지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과거사 청산이란 부정부패 비리를 비판하는 작업이기에 오히려 경제적인 자생력을 탄탄히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정부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게 다 지난 시절의 특권의 악습인데, 그걸 비판하자는 게 과거사청산입니다. 부패를 없애자는데 왜 그게 경제의 발목을 잡습니까. 경제는 특권 위에서라야 발전합니까? 경제는 친일파들이 설쳐야 발전합니까? 
 

 김용락: 자리가 적절한 지모르겠습니다만 부대끼는 세상살이에 대해 대구경북쪽 고향 사람들에게 특별히 한 말씀 하시죠.
 
임헌영: 내 고향 경북은 일제 통치 시기에는 독립운동이 가장 강했기에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친일파 청산을 위한 ’10.1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당연히 자유당 독재 타도의 선봉에 섰던 건 데, 박정희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변해버렸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잘 사는 계층, 독재권력 덕에 한몫 잡아 대대손손이 돈 걱정 없는 분들이야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는 분들, 도시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분들, 저도 촌놈인데, 농민들, 그런 분들이 왜 ‘박정희 향수’에서 못 깨어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대체 오늘의 한국 농촌, ‘조국 근대화’란 구호 아래 농민을 그 첫 희생자로 만든 게 누구인데..... 
  아니, 1970년대에 살아본 분들, 따져 보세요, 잘 살았습니까? 그때 정말 어려웠습니다. 불경기니 뭐니 해도 지금이 훨씬 낫지요. 물론 이 말은 참여정부가 경제정책을 잘 하고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미칠 지경이지요.
   그러나 역사는 발전합니다. 투명성, 재벌의 특권 없애기, 빈민층 복지 향상, 이런 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은 경제 발전에 큰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바른 역사 인식은 아니지요. 박정희가 진정 국민을 위했다면 그때 사회복지정책을 폈어야 했습니다. 보십시오, 노인문제 지금 집안마다 심각하지요? 노인정이 뭡니까? 노인정 대신에 노인복지시설을 그때부터 서서히 했어야지요. 지금 갑자기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걸 하려면 수십 년 걸립니다. 전두환 때라도 시작했어야는데, 특권층과 재벌들이나 봐줬지요.
  
김용락: 요즘은 고향에 자주 가십니까?
 
임헌영: 한참 못 갔습니다. 고향에는 아직도 어렸을 적의 친구들과 일가들이 있는데....60살을 넘기자 자꾸만 고향 들판과 산, 냇물, 길들을 걷고 싶어집니다. 틈만 나면 다녀오고 싶은데....

김용락: 선생님은 정년이 없죠? 앞으로의 계획은?

임헌영: 정년을 마음속으로는 정해 놓고 하려고 한다. 앞으로 대학 강의는 안 하고, 그동안 글을 굉장히 많이 썼는데 그걸 정리하고 싶습니다. 1993년 이래 책을 못내고 있습니다. 너무 많아 엄두를 못내요. 아마 15권은 될 거예요. 내가 써 온 글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게 첫 번째 과제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쓰고 싶었던 저서들, ‘현대문학사회사’, ‘문학과 혁명’…등 이런 몇 가지 저서를 다시 한번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곳에서 안 밝힌 이야긴데, 내가 월간지 하나를 준비하고 있어요. 고급문화예술지 형태인데, 책의 성격은 ?샘터?나 ?좋은 생각? 보다 조금 더 고급지로 만들어,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동향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제목이 ‘에세이 플러스’입니다. 범우사와 합작으로 준비 중인데 처음으로 내가 기획하는 겁니다. 제목은 에세이지만 고급문화예술지 형태로 만들어 갈 겁니다.

김용락: 리영희 선생과 『대화』라는 책을 만드셨는데, 이 책은 내가 주위에 선물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내기도 했는데요, 학생들 반응이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됐다,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임헌영: 젊은 얘들도 이 책을 많이 좋아합니다. 젊은애들로부터 노인까지 골고루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저력이 있는 나라예요. 이 책 준비기간에 돈을 받은 거는 없고, 인세를 조금 받았습니다. 리 선생과는 이사 오기 전에 같은 동네에 있을 때, 둘이 알아서 약속해서 했습니다. 정리는 한길사에서 하고, 나도 한번보고, 리영희 선생이 마지막에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저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보고 지금도 계속 나간다고 들었어요.
 한길사에서 냈는데 한길사와 인연이 깊어요. 역사기행 이런 걸 그 때 처음 ‘한길사’에서 했습니다. (선생께서는 내가 갖고 있다고 하는데도 친히 서명을 해서『대화』를 한 권 주셨다)

김용락: 꽤 오래 전에 한겨레신문의 고종석이라는 기자가 평론가 열전을 하면서 4.19 세대의 좌측에 염무웅 선생과 선생님이 있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4.19세대라는 자의식이 있습니까?

임헌영: 4.19 당시 현장에는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골에서 선생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세대적인 공감대는 4.19세대와 마찬가집니다. 따지고 보면 문학판의 딴 친구도 당시에는 현장에 없었던 점은 마찬가지이지요.

김용락:『문학과 경계』대담에 보니까 창비의 역할 중 80년대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셨는데. 김승옥, 정현종 같은 분도 초기에는 창비에 글을 썼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분하고는 덜 맞으셨던 게 아닐까요. 평론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설정했는 셈이니까요.

임헌영: 동의합니다. 나 같은 경우는 독특해요. 후배들 중에 나 같은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지금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은 평론가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 질 것입니다.

김용락: 저도 창비 출신이고 그쪽 친구들이랑 가깝습니다. 젊은 비평가들, 가령 김성수 교수 같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창비가 문단권력화 되면서 선생님은 희생이 된 것 아닌지요?

임헌영: 양쪽에서 다 견제를 하니까 그런 점도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입니다.

김용락: 독자들에게 오늘 대담이 평론가 임헌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읽을거리로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의문학> 2006. 봄호(통권 49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