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요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빠, 저 좀 태워다 주세요~"라고 흔들어 깨우는 재원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말 이틀간의 아르바이트 때문에 늘 아빠를 흔들어 깨우거든요. 재원이를 낙생 육교 쯤에 데려다 주고 집에 오면 솜이와 밍구를 잠에서 깨고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고는 교회로 향합니다.
늘 자각해서 안내하는 할아버지를 뵐 낯이 없지만...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가을과 열매'라는 주제입니다. 아... 목사님도 가을을 타시나 보나... 하나 역시 목사님은 다르시네요.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전도를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는 전도를 강조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밍구는 뮤지컬 연습을 하러 서울로 떠납니다. 극단 '날으는 자동차'에서 벌써 4년째 활동 중입니다.
크게 사교적이진 못해도 워낙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 멀리까지 다니고 있네요. 이제 연말이면 성남 시청에서 아니 대학로에서 마무리 공연을 하겠지요. 하루하루 성장하는 연기력을 보면서 흐뭇해 하곤 한답니다.
교회가 끝나면 늘 가야하는 정기 코스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롯데백화점입니다.
예전 같으면 ' 도대체 백화점에는 왜 가는데?'하면서 가는 이유와 목적을 정확히 캐 물었겠지만 이제 제 나이도 50을 훌쩍 넘기다 보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혹은 김미영의 잔소리가 무서워서? ...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운전만 합니다.
백화점은 목하 가을 세일 중이군요.
지하 식품 매장에서는 와인 박람회가 한창입니다.
아내가 제 눈치를 슬쩍 보더니 와인을 한 병 결제하네요.
요즈음 김미영씨는 막걸리에 꽂혀 있는데 이게 웬일인지....
망구를 백화점에서 이것 저것 막여서 보내고 간단히 짐을 챙겨 율동 공원으로 향합니다.
시범 단지에서 율동 공원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어느새 가을로 가득 찬 느낌입니다. 양쪽 주변으로는 토마토를 파는 상인들로 활기가 있고 언덕길을 올라가니 벌써 길 양옆으로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로 가득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한 손으로 휴대폰을 눌렀는데 역시 갤럭시S5는 손떨림 보정 기능이 매우 괜찮은 듯...
지금은 사는 사람이 없지만 분당의 율동은 본래 청주 한 씨 집성촌입니다.
아빠가 구몬 교사로 관리했던 지역이 바로 이곳 율동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회원 관리를 위해 시범 단지에서 야트막한 언덕 길을 넘어가면 한적한 농촌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약 30여 과목에 10명 남짓이었던 아이들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겨울이면 늘 김장을 담가 제 차에 실어주시던 회원 어머니께서 "선생님, 옆집이 매물로 나왔는데 한 번 만나보실래요?"하면서 흥정을 붙여 주셨는데, 그 해 관리자로 발령이 나면서 없던 일이 되어 버렸죠.
계산을 해 볼까요?? 그때 매입을 못한 덕분에 아마 시세차익만 억대를 날린 셈입니다. 생각만 하면 얼마나 아까운지...
호수 주변을 따라 있었던 동네의 집들은 모두 카페나 음식점으로 탈바꿈되어 있습니다.
그때가 1994년도 이야기니까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율동 공원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번지 점프장과 호수 한가운데의 분수죠.
예전에는 늘 호수 한 바퀴를 돌면서 북 테마파크나 매점 등을 들락거렸는데 오늘은 김미영과 둘이 나온 탓에 그냥 잔디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본래 율동 저수지였는데 인근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저수지는 쓸모없는 애물 단지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저수지 부근을 공원으로 개발하면서 애물단지는 분당 시민의 주말 쉼터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누군가 제게 '분당이 왜 좋습니까?'라고 물으면 '탄천과 율동 공원이 있기 때문이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만큼 율동 공원은 분당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죠.
한동안 중국발 미세먼지 덕에 '아...이제 우리나라의 파란 하늘은 영영 못 보나보다...'하고 탄식을 했었는데 오늘 율동의 하늘은 정말 말로 표현이 어려울 만큼 아름답기만 합니다. 정말 높고 푸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제 아내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하늘을 향해 열심히 휴대폰 셔터를 눌러 댑니다.
율동공원은 본래 번지점프대가 있고 책 테마파크가 있는 광장과 중앙 매점이 있는 곳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지만 우리는 우리끼리만의 장소가 있습니다. 번지 점프장의 호수 건너편 골프 연습장 옆의 잔디밭이 바로 그곳이죠. 한적한데다 그늘도 있는 편이 이서 자리를 펴고 책을 보기에는 안성 맞춤입니다. 특히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제격이죠.
자리를 잡고 김미영과 나는 서로 커피를 한 잔씩 나누고는 이내 독서 삼매경에 빠집니다.
허나 역시 의자에서 내려와 자리에 누더니 바로 꿈나라로 직행하시는 우리 마님...
시간이 한시를 넘기자 바로 배꼽 시계가 시간을 알리네요.
소박하기 그지없는 가을 날 율동 공원에서의 점심.
하지만 그 맛은 고급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 못지않게 예술입니다.
김치와 김, 멸치볶음, 오외와 당근 그리고 시골에서 택배로 보내온 상추가 전부네요.
눈 깜짝할 사이에 맛있게 먹어 치웁니다. 아니...이 사람이 언제 이렇게 양이 늘었지???
폼 좀 잡아보세요~ 라고 외치길래 살짝 고개를 들어 폼을 잡아 봅니다.
서로가 몇 장씩을 찍고 마저 몇 장을 더 일고 하다 보니 어느덧 4시가 넘어갔네요.
이제 곧 아르바이트 갔던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앞으로도 몇 주 정도는 율동에 더 올듯싶습니다. 혹 중간에 바라산 휴양림의 데크라도 잡히면 모르겠지만...
첫댓글 오호 이글이 2015년인데 이제야 미안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남편이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