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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2-23 철도여행기152 나주1(강진군의
숨결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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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에 대한 설명은 강진군 홈페이지(http://www.gangjin.go.kr/) 및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퍼왔습니다. 오늘은 기차여행기를 적는 사람들 12차 기차여행정모가 실시되는 날입니다. 장소는 강진군 일대이며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내심 기대가 됩니다. 이번 여행은 정기현님이 여행그룹의 가이드를 하면서 알게 된 김은규님의 도움으로 실시되는 여행입니다. 정확히는 대관령 눈꽃 열차의 까페객차의 크리스마스 트리 등의 장식을 할 때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6:05분 서울역을 출발하는 #417을 타고 난 후 오늘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저는 서울역에서 탑승을 하고 오늘 여행을 하게 되는 정기현님, 유덕상님, 정지수님은 수원역에서 박영희님은 서대전에서 탑승을 하게 됩니다. 열차에 탑승을 한 후 피곤하기도 하고 일단 잠을 청하게 됩니다. 수원역에서 다른 분들이 타는 것도 보지 못하고 피곤함에 서대전까지는 정신없이 잠을 잔 것 같군요. 서대전역에서 박영희님이 탑승하게 되고 모든 분들을 만나게 된 후 이제 잠이 좀 깬 것 같습니다. 간만에 만났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여행, 친구 등......)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열차는 익산을 지나는 중입니다. 어둠 속을 달리던 열차는 장성과 송정리를 지나 드디어 나주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의 4시간 30분 여의 여행이었습니다. 나주역에 도착하자마자 이틀간 강진여행을 도와주실 김은규님이 보입니다. 인사를 드리고...... 저희를 위해 강진에 있는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시는군요. 해남 가는 길을 따라 계속 가는데 숙소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드디어 오늘 머물 숙소에 도착을 했는데 외관부터가 상당히 특이하군요. 이번 여행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정말 내일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머물 곳은 [자연이 좋은 사람들 061) 433-3377 김은규]입니다. # [자연이 좋은 사람들 061) 433-3377 김은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전화 : 061) 433-3377~8 우리가 머물 방에 가방을 놓고 주인 아주머님과 김은규님이 차실로 안내를 받아 약간은 특이한 방으로 이동합니다.(참고로 이 곳은 왠만해서는 보여드리는 곳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특이하기도 하고 신기한 방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난로에서 갓 구워낸 감자를 먹으며 주인장님의 강진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지금 기억해서 적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군요, 아마 강진에 대해 더 공부를 하고 자주 가게 된다면 그 때가 되어야 알게 될 듯) 그리고 주인장님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도 듣고요. 너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접해서 그런지 기억이 안날 정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영희님은 주인장님에게 심리테스트를 받게 되는데 결과는 거의 정확한 것 같군요. 영희님 결과도 그렇고요.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습니다.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큰 □를 그리고 O, S, □ △ 이 네 가지 도형 중 하나를 세 번, 나머지 도형을 한번씩 아무 곳에 아무렇게나 그리면 됩니다.(크기, 위치 관계없이) 이 것에 대한 저의 그림이나 결과치를 가지고 있지만 홈페이지나 까페에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것은 의식을 하고 그리게 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정말 궁금하신 분은 차후에 이 곳을 여행하시어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이 곳에서 사진을 좀 남겨보았습니다. 사진에 담긴 방의 모습을 보니 꼭 방문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난로로 인하여 따뜻한 방 안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홍차를 마시니 약간은 숙연해 지는 것 같군요.(이런 분위기는 참 오래간만인데다 참 부담없이 편함 그 자체입니다.) 베어온 나무를 부러뜨려 장작을 난로 안에 넣고...... 아주머님은 우리에게 홍차를 대접해 주시고...... 감자의 담백한 맛과 향을 느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듭니다. 특색있게 꾸며놓은 방도 정말 좋고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각자 방으로 이동합니다. 방으로 가는 도중 마루에 컴퓨터가 보이는데 잠깐 인터넷 접속을 해서 까페에 연결하고 싶더군요. 주인장님의 허락을 받고 각자의 아이디로 접속해서 까페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이제 내일의 여행을 위해 피곤함을 달래어야 하겠지요. 방으로 들어와 각자 잠자리를 준비하고. 잠깐 옆을 볼까요? 오래된 미싱이 보이는데 잠시나마 옛날 어머님의 손길이 느껴지는군요. 잠시 오래된 물품을 구경한 후 슬슬 잠이 들기 시작합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지만 잠이 별로 오지 않고 해서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남들 다 자고 있는 새벽 아직은 어둡지만 조용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이따 다들 일어나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게 되면 주변 사진을 못 찍을 것 같아 주변 사진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천천히 주위를 돌아봅니다. 난쟁이 마을-재미있네요 안개로 가려진 월출산-가려져서 그런지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졸리다 졸려-정말 잠이 덜 깬 듯 졸리네요 숙소를 보면 상당히 특색있게 지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주위를 돌아보게 되면 조그마한 연못도 있고, 나무들도 많고 정말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순수한 자연의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히 잠시 이런 곳에서 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렇게 밖을 구경해 본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잠시 인터넷을 하니 08:00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들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는군요. 영희님을 깨우러 갔는데 먼저 일어난 듯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합류하기로 한 유덕상님을 데리러 가기 위해 들풀님(주인장님)은 차량으로 송정리역으로 갑니다. 드디어 유덕상님이 합류 저희 여행인원은 총 5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맛있는 아침식사를 시작합니다. 따뜻한 밥과 미역국 그리고 김 등 정성이 가득한 식사를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시간이 08:47분 이제 슬슬 오늘의 여행을 시작해볼까요? 숙소가 있는 월남리를 출발해서 마량리까지의 여정입니다. 참고로 숙소가 있는 곳 근처에 마지막으로 들를 차밭, 무위사, 경포대가 있죠. 경포대 하니까 강릉의 경포대가 떠오르지만(정지수님은 부산에 있는 경포대라는데 부산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1시간 여 동안의 여정 동안 강진만을 따라 가게 되는 데 중간에 보이는 경치가 정말 멋있었습니다.(2번 국도와 23번 국도 이용) 잠깐 기와를 만드는 조그마한 공장을 지나가기도 하고, 이따가 들를 고려청자 도요지도 지나가고요. 09:40분쯤 마량리에 도착하니 약간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이군요.
# 마량항 마량항은 광주에서 강진을 지나 우리나라 서남부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완도 다도해 및 제주도를 연결하는 청정해역으로 돔, 농어, 우럭 등 바다낚시의 보고이다. 이곳은 장급 여관 5개소와 여인숙 3개소 및 텐트설치가 가능하며 '95년 7월 말경 전국 낚시대회가 개최되어 전국각지의 많은 낚시꾼들이 다녀가 인기가 높은 천혜의 낚시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 화 : (061)432-5416 주 소 : 전남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987 (우527-910) 대상어종 : 돔, 농어 등 다수어종 낚시방법 : 갯바위낚시, 방파제 낚시, 배낚시, 보트낚시
도로안내
광주버스터미널 - 나주 - 영암방면 국도 13호선 - 강진군 성전면 삼거리에서 강진으로 직진 - 강진읍 - 국도 23호선 마량 방면 24Km지점 마량항 도착 현지교통
(철도)서울역 - 목포 또는 나주, 광주역에서 하차후 버스로 광주에서는 1시간 30분, 목포 에서는 1시간, 나주에서 1시간 소요
(버스)광주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시외버스 이용, 강진버스터미널 (1시간 30분 소요) 하차후 마량군내 버스를 이용 마량항 하차(30분 소요) 배삯은 8~9만원선 이다. 문 의
광주낚시
: (061)433-0505(강진)
장날인데다 갓 잡은 싱싱한 어류를 수협 직판장에서 판매하는 중입니다. 오징어, 꽁치...... 싱싱한 해산물을 구경하면서 손으로 신호를 하면서 열심히 경매 중인 경매인을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먹고 싶었지만 점심이 기대되기도 하고 충분히 보는것만으로도 배부른 것 같습니다. 잠시 여기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도선장에 큰 배에 자동차를 싣고 다른 도서로 이동하려는 것이 보이는데 신기하군요.(배가 자동차를 싣고도 바다에 뜬다는 것 자체가 흥미있는 일이죠) 이제 잠시 이동을 합니다. 아까 지나가면서 본 까막섬을 보고 싶어서요. 상록수가 우거진데다 혼자 바다 가운데서 지킴이 노릇을 하는 섬인 것 같습니다. 까막섬이 잘 보이는 곳에서 역시 사진을 남겨봅니다 까막섬에 가고 싶어도 앞으로 1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관계로(천연기념물 보존 차원에서......).
# 까막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 172호)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172호 지정일 : 1966년 1월 13일 규 모 : 까막섬 일원(4,380평) 소재지 :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산191 까막섬은 마량리 포구에서 200m전방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썰물 때는 걸어서 갈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후박나무 숲처럼 보일 정도로 후박나무가 가장 많으며 가슴높이 둘레 80-85cm, 높이10-12m의 후박나무가 임관을 형성하고 있다. 낙엽활엽수로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팽나무, 쥐똥나무, 구지뽕나무, 초피나무, 개산초, 찔레나무, 검양옻나무,예덕나무, 푸조나무 등이 자라는 가운데 배풍등, 노박덩굴, 계요등, 청가시덩굴, 청미래 덩굴,담쟁이덩굴, 개머루, 댕댕이덩굴 및 인동덩굴이 이리저리 엉켜 있다. 바닷가에는 바닷가 식물로서 흔히 볼 수 있는 갯개미취, 갯명아주, 나문재, 갯메꽃과 갯질경 이가 보이고 희귀한 종류로 모새달의 군락이 있으며 민땅비사리와 풀싸리가 자란다. 또한 모서리에는 소나무도 몇 그루 보이며 숲속으로 들어가면 맥문아재비와 더불어 콩짜개덩굴 나무의 밑둥이나 바위에 붙어서 자라고 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 이번에는 청자도요지로 가게 됩니다. 도요지하니까 철새들이 모이는 곳으로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철새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아래의 글을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약 10분 정도 소요되어 10:00쯤 도착합니다. 먼저 바깥의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난 후 천천히 입장합니다. 이 곳은 대구면이라는 곳이군요. 근처에 대구초등학교라는 곳도 있고......(대구광역시와는 한글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기 때문에 뜻도 다르죠) 잠깐 고려청자, 청자 도요지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시고요.
# 고려청자와 강진 고려청자는 한국문화 예술사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것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이며 비색상감무늬는 기술과 아름다움의 극치로 표현되고 있으며 인공을 떠난 천공의 경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청자는 중국에서 5∼6세기경부터 생산했으며, 우리나라는 8∼9세기경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런 시기에 강진에서는 20km 떨어진 청해진에서 중국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한 장보고 대사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14C 쇠퇴기까지 고려 500년 동안 대구면 정수사에서 미산까지 6km의 산하에서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하였다. 우리나라 국보, 보물급 청자 중 80%가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세계 여러 곳에 귀중품으로 보존되어 있는 명품들 대부분이 강진의 작품들이며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400여기의 옛 가마터 중 188기의 가마터가 강진에 현존하고 있을 만큼 강진이 청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점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다른 지방에 비하여 태토, 연료, 수질, 기후 등 여건이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 고려청자 도요지 지정번호 : 사적 제 68호 강진의 고려청자 요지는 대구면 일대와 칠량면 삼흥리에 산재해있다. 1914년 이곳 고려자기 요지가 널리 알려진 이래 세계에서 도자기에 관심있는 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진 청자 요지의 핵심은 대구면이다. 대구면 중에서도 용문천인데 상류는 용운리로, 동북쪽 산골짜기에 정수사가 있으며, 요지는 정수사 밑 운곡마을로부터 용문천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해변에 까지 산재해 있다. 용운리 가마는 몇 개소를 제외하고는 10세기 후반경으로부터 11세기 중엽까지 사이의 초기 요지로 중국의 월주요, 여요와의 관계를 살필수 있는 파편들이 각 요지에서 산견된다. 한편 계치 골짜기를 지나 용문천 하류의 넓은 들을 지나면 사당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고려청자의 절정기를 맞았던 곳이다. 고려시대에 가장 양질의 청자를 굽던 유일한 관요지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출토 청자에는 국립 박물관 소장의 청자기와가 있어 명성이 높다.
# 청자 박물관
가. 설립배경 및 목적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이에 고려청자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위하여 1997년 9월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나. 기 능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청자박물관으로, 고려청자의 수집, 전시, 연구, 교육 등을 통하여 청자문화의 계승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박물관과 다른 전시 방법과 유적지 주변에 세워진 역사성으로 현재 추진중인 공립박물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세워져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 및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다. 소장품 및 시설(2002년 11월 현재) 소장유품 완 품 : 120점
전시유물 (총 500점) 완 품 : 80점
기증유물 (총 112점) 완 품 :
49점 본관에서는 기증유물을 중심으로 1999년과 2002년에 "기증, 대여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라. 시설현황 공간시설 연 면 적 : 2,108㎥(638평) 지하1층,
지상2층 전시실 기획전시실 : 104㎥(31평) 부대시설 시청각실, 수장고, 도서실, 촬영,
세척실, 기계실 등 마. 박물관 추진 사업
바. 관람현황 및 안내
사. 교통 안내
슬슬 구경을 해야지요. 앗 이 곳은 입장료가 있군요. 일반 1,000원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천천히 입장! 박물관 앞의 고려 청자 모양이 흥미롭습니다.(여러 종류의 꽃 그림이 가득......) 먼저 박물관 보다 다른 곳을 들를 것 같습니다. 아담한 초가 지붕으로 만들어진 휴식공간을 지나 도착한 곳은 청자 재현 작업동입니다.(참고로 이 곳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관리하시는 분의 배려로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과 상형, 성형, 조각실로 나누어져 있으며 실제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일요일이라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실제로 작업하시는 분을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고려 청자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천천히 구경을 하며 사진을. 청자 문양-박물관 외벽에 붙은 것과 비교를 하시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실제로 작업하는 곳을 구경하니 정말 저도 하고 싶지만 괜히 작업을 했다가 작품을 망칠 것 같군요. 만들어져 가는 작품을 보며 느낀 것은 옛 선인들의 뒤를 이어 고려청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우리의 고려 청자가 세계 어떤 문화유산과 비교를 해도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멋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업동을 나오면 강진당이라는 곳이 보이는데 이 곳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입니다. 초벌, 재벌 구이 등을 하는 곳인데 초벌구이는 750~800도씨, 재벌구이는 1300도씨 정도에서 굽는데 온도가 안맞으면 일순간에 파손이 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온도를 어떻게 맞추는지 의문이 가지요. 온도를 맞추는 방법은 가마 위에 보면 조그마한 구멍이 보이는데 그곳에 온도를 알아낼 수 있는 봉으로 된 전자 온도계를 넣어 온도를 체크하면서 불을 조절한답니다.(옛날에는 이 과정을 어떻게 했을지) 가마를 나오면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는 청자 분수가 보이고 옆에는 청자 빚기 체험장이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해 볼까요? 잠깐 청자 빚기 체험 안내에 관련된 글을 읽어보고 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봅니다. 이렇게 만들어 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할까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직원 분이 한번 청자 빚기 체험을 해 보시겠냐고 물어보시는데 약간 망설여지더군요. 누가 먼저 해볼까 서로 망설이다 박영희님이 먼저 실시하게 되었고 저도 뒤따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직원 분이 처음에 간단히 모양을 만들어 주고 시작 이렇게 잠깐이나마 실시를 했는데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는 쉽지 않군요. 특히 저게 완전히 망친 경우는 힘을 너무 주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힘을 주어야 하는데 엄지손가락으로 너무 누르다 보니...... 그래도 박영희님은 잘 만드시네요.(예술적인 재주가 있으신 듯) 그리고 덤으로 청자 빚기를 하다 흙이 완전히 바지에 묻어서 지우기도 쉽지 않을 듯.(그 정도야 괜찮지요) 정말 청자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잠깐의 체험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이색적인 경험을 해보는 것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고요. 옆을 보면 청자 빚기 체험 작품들이 보이는데 어찌나 잘 만들었던지 부럽더군요. 이제 밖으로 나가면 잠깐 민속 옹기 전시장, 강진 대구면 청자 도요지 안내가 보이고 드디어 강진 청자 자료 박물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곳에 들어가면 특이한 것이 하나 보이는군요. 바로 기념 스템프입니다. 흔히 103개의 철도역 방문 기념 스템프만 생각을 하게 되지만 실제로 큰 박물관(예 :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곳)에는 스템프를 비치해서 기념으로 날인하여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곳에 방문 기념 스템프가 있는데 모양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청자 박물관답게 청자의 모습을 남, 녀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는데 재미있더군요. 박물관은 예외없이 사진촬영금지라 사진으로 담지 못했습니다.(아쉽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청자 도요지에 대한 설명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청자 도요지 강진에 대해 설명을 해 놓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청자 도요지관람을 마치고 이번에는 영랑생가로 가볼까요? 11:20분쯤 출발! 23번 국도를 따라 가다(계속 강진만을 타고 따라가는 도로라 바깥으로 보이는 경치가 너무 멋있군요) 잠깐 강진읍 내에 있는 푸른쉼터라는 곳에 내려 잠깐 구경을 하였습니다. 김영랑 시비도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라고 적힌 김현구의 시비(현구시비)입니다.
# 김현구(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퍼옴) 시인. 전라남도 강진 출생. 본명 현구(炫耉). 1930년 박용철(朴龍喆)이 주관하던 《시문학(詩文學)》 2호에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물 위에 뜬 갈매기》 《거룩한 봄과 슬픈 봄》 《적멸(寂滅)》 등 4편을 발표하고, 그 뒤 《문예월간(文藝月刊)》과 《문학(文學)》지를 통해 1934년 4월까지 8편의 시를 더 발표하였다. 그후 낙향하여 계속 시를 썼으며, 그것을 묶어 《무상(無常)》이라는 제목의 시집 발간을 준비했으나 6.25전쟁 중에 사망함으로써 좌절되었다. 1970년에 아들 원배(元培) 등에 의해 《현구시집(玄鳩詩集)》(유고 70편, 발표작 12편 등 82편 수록)이 비매품으로 만들어져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계기로 서울대학교 교수 김용직(金容稷), 서강대학교 교수 김학동 등에 의해 연구논문이 발표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구는 대표적인 간판시가 없으며 또한 졸작도 없이 모두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남겼다. 시문학파(詩文學派)에서 특히 영랑시(永郞詩)의 높은 음악성이 평가되나 현구의 시어(詩語)는 그보다 폭이 넓고 유연하며 감각이 섬세하다"는 것이다. 그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 《검정 비둘기》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뉘 눈살에 시들리어 그 맵시 쓸쓸히/외로운 넋 몰고 오는 검정 비둘기/해 늙은 느릅나무 가지에 앉아/구구꾸 목놓아 슬피 우노나/깨우면 꺼져 버릴 꿈 같은 세상/사랑도 미움도 물 위의 거품/그 설움 향화(香火)처럼 피워지련만/날마다 못잊어 우는 비둘기"
그리고 영랑생가 앞에 도착하니 11:45분이니까 대략 15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푸른쉼터에서 보낸 시간 제외) 조용해 보이는 곳이지만 영랑생가에 제법 사람들이 보이는군요.
# 김영랑(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퍼옴)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남 강진(康津) 출생.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세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 영랑생가 지정번호 : 지방기념물 제89호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7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이 시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듯 영랑 김윤식의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죠. 시에 음악이 실린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렇게 구경하면서 잠깐이나마 영랑 김윤식의 생활공간과 시, 마음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다 철새가 보이는 곳에 잠깐 내렸습니다. 철새를 가까이 보기 위하여(가장 보이기 좋게 하기 위해 망원경 조정 중인 김은규님) 이렇게 망원경을 이용하여 철새를 구경해봅니다. 그냥 육안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망원경을 이용하니 새의 색상은 기본이고 움직이는 그 모습 그 자체가 크고 자세히 보이는군요. 다시 차를 타고 다산초당으로 이동하기 시작. 이번에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코스이죠. 일단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식사를 해야지요. 다산촌 먹거리에서 간단히 먹기 위해 무엇을 먹을까 고민의 시간을 가져 본 후 간단히 녹차수제비를 먹기로 했습니다. # 다산촌 먹거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귤동 061) 433-5555 친절하신 주인님이 서비스로 찹쌀약주를 주시는데 점심으로 곁들여 마시는데 좋군요. 녹차수제비와 찹쌀약주 - 어때요 정말 먹고 싶지 않습니까? 한 잔씩 들이키자고요 - 크 좋다 이렇게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정말 수제비의 색상이 흰색이 아닌 녹색이라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합니다. 녹차수제비의 수제비는 물론 국물 심지어 반찬까지 모두 먹고......(정말 배가 고프긴 고팠던 듯) 이제 배부르게 식사를 했으니 운동을 해야지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코스는 약간의 산행을 해야 합니다.(적당한 산행이라고 보면 될 듯) 이 곳에서는 정다산의 유배생활 중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지나가며 구경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정약용 위인전을 읽으신다면 좋지요)
# 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 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0여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 다산 유물 전시관 전 시 관 : 122평 다산유물전시관은 다산초당 남쪽 700m 지점에 위치하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판넬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되어 있으며,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을때는 컴퓨터를 활용한 터치스크린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 영상실은 다산의 일생과 강진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약7분 동안 상영되는데 관광객이 영상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상영되므로 누구나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 앞 광장에 대형버스 15대 이상이 주차할 수 있어 학생들의 수학여행 등 단체관광에도 아무 불편이 없다. # 다산 유물전시관, 다산초당 관광 코스
# 백련사
동암 -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저술활동을 하던 곳 천일각에서 - 고향이 생각날 때 강진만을 바라보며...... 유덕상의 엽기포즈 - 정말 엽기군요 갑작스런 등산 - 신발이 진흙천지가 되고...... 그림 같은 곳1 - 정말 멋지죠? 그림 같은 곳2 - 정말 멋지죠? 다산 정약용의 책 중에 가장 알려진 것이 목민심서라는 책인데 바로 이 곳에서 쓰여졌죠. 후세에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수원성을 예로 들 수 있고요. 정말 우리나라 실학의 완성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백련사는 8국사를 배출한 곳이고요(국사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임금님한테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죠, 승려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신분이라고도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곳은 하멜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죠? 그리고 나무에 대한 사연은 한번 하멜표류기(김태진 역 서해문집, 6,700원)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멜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woaba.com.ne.kr/hamel.htm #국사 국가나 임금의 사표(師表)가 되는 고승(高僧)에게 임금이 내리던 칭호
구경을 하는 동안 박영희님은 백련사를 기념할 만한 조그마한 수건?을 구입하시고 이렇게 구경을 마치고 다시 829, 814 지방도를 이용하여 간 곳은 병영면 일대입니다. 홍교와 한창 건설 중인 병영성 그리고 네덜란드식의 특이한 담장과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죠. 홍교는 병영성의 관문이고 병영성은 지금 한창 복원공사를 하는 것 같은데 언제 완공될지는 모르겠습니다.(예산문제 때문에......) 병영면 비자나무와 은행나무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고요.
# 전라병영성지 지정번호 : 사적 제397호 지정일 : 1997년 4월 18일 규 모 : 약30,000평 시 대 : 1417년(태종 17년) 소재지 :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일원 전라 병영성은 조선조 500여년간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였던 곳으로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 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설한 것이다. 초대 병사인 마천목 장군이 축조한 것이며, 꿈속에 계시를 받아서 눈의 자국을 따라 축조 하였다고 하여 설성이라고도 하는데 평지에 축조된 성으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총 연장은 1,060m이다. 1599년(선조 32) 도위수 권율의 상소로 일시 장흥으로 이설되었다가 1604년 다시 당초의 위치로 옮겨 왔으며,제주도에서 표류 중이던 네델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8여년 동안을 억류되어 있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는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복구가 되지 못하고 폐영되었다. 전라 병영성지는 당초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어 오다가 1997년 국가사적으로
다시 지정되었다. # 병영성 홍교 지정번호 : 지방유형문화재 제129호 지정일 : 1986년 2월 7일 규 모 : 높이 4.5m, 폭 6.75m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323-3 병영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남해 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하여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어 500여년 동안 호남을 지켜온 군사 요충지였으며 홍교는 병영의 관문이었다. 이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라고도 하는데, 장방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처럼 쌓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다음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홍예의 상단 중앙에 돌출시킨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풍운조화를 일으키려는 듯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그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며 그 의장 또한 만인월교의 외경 신앙을 함축성 있게 시사하고 있는 듯 하다. 축조연대는 숙종 무인(1698년)에 가선동추 경술(1739년)에 숭록대부가 된 류한계의 금의 환향을 기념하여 양한조가 감독, 준공하였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축의 수작이다. # 병영면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 39호)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39호 지정일 : 1962년 12월 3일 소재지 :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376 이 비자나무는 수령 약 400년으로 높이가 10m이고 가슴높이 둘레가 5.2m이다. 북향 경사지에 있으며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밑에는 자주괴불 주머니가 자란다. 앞에서 볼 때에는 지상 1.87m에서 커다란 가지가 길게 뻗었으며, 뒤쪽에 가지는 짧고 양쪽 가지는 비슷하게 자랐다. 가장 큰 가지의 밑부분 둘레는 2.6m나 된다. 태종 17년에 전라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정했을 때 쓸만한 나무는 모조리 다 베어 버렸으나 이 나무는 굽었고 키가 작아서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남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조선 500년 동안 호남지방의 방어 진지였던 병영성이 갑오동란으로 동학군에 함락되어 마침내 폐영될 때가지 이 근처에는 많은 병사가 있었으나 열매를 촌충구제에 사용하기 때문에 잘 보호되어 온 것 같아 보인다. # 병영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 385호)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385호 지정일 : 1997년 12월 31일 규 모 : 2,825㎡(855평) 소재지 :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70 병영면의 은행나무는 강진읍에서 북동으로 14.8㎞ 떨어진 병영면 소재지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에 도강(도강)현의 현청이 있던 곳으로서, 조선시대 태종 17년(1417년)에 병영을 설치하여 병마 절도사를 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으로부터 은행나무는 약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은행나무는 동성마을 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으로 되어 있으며 수고 30m, 흉고둘레 6.75m, 수관폭은 중심에서 동쪽으로 16.5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0.9m, 북쪽으로 3.5m나 뻗어 있다. 은행나무(Ginkgo biloba)는 은행나무과에 속하며 중국을 원산지로 하고 있는 낙엽교목으로서 장수하는 나무인데 전라남도 화순 이서면의 은행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의 크기나 마을의 역사성으로 볼 때 수령은 500년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여름철에 폭풍이 휘몰아쳐 큰 은행나무의 크고 작은 가지들이 많이 부러졌다. 이를 보고 받은 병사가 부러진 큰 가지를 성안으로 가져오게 하고 이로써 많은 가구를 만들게 했다. 이 때 목침도 만들어 이것을 병사가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목침을 베고 잠을 자던 병마절도사는 그 날로 병이 나서 신음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유명한 의원도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백약이 무효인지라 끝내는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굿)를 하고 점도 쳐보니 은행나무 목침을 병사가 사용한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지가 부러진 은행나무에 제사를 올리고 목침을 다시 붙어 주어야 완쾌가 된다고 하였다. 이에 무당의 말을 따라 그대로 하였더니 병사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지금도 은행나무 고목을 살펴보면 목침덩이가 들어있는 듯이 볼록해진 곳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잠깐 차를 타고 가게 되면 와보랑께 박물관이란 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 와보랑께 박물관 전남 강진군 병영면 도룡리 596-1 061) 432-1465
자세한 내용은 와보랑께 박물관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lycos.co.kr/~kswy) 참조 바랍니다. 이름이 참 재미있죠?(전라남도의 구수한 사투리라는 것을 유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추억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죠. 예전에 쉽게 버리고 넘어갔을 물품을 하나 둘씩 소중히 모아 놓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체계적이거나 그런 것보다 서민적인 것(남들이 버리는 것 등)을 모아서 조그마하게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이런 모습이 더 좋기도 합니다.) 요술공주 밍키 도시락 - 이게 언제적 만화더라? 이렇게 와보랑께 박물관을 관람하는 동안 박물관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관장님이 저술하신 책을 하나 받았습니다.(사투리를 해설해 놓은 책이죠) 이런 곳도 있구나 느낀 점도 있지만 어두운 곳에 그냥 쌓아둔 듯한 소박하게 인위적으로 꾸며놓지 않은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이제 오늘의 여행코스는 거의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처음에 있던 숙소 쪽으로 돌아갑니다. 차밭을 지나(이따 방문할 듯-바로 지나가는 것이 아쉽지만) 무위사에 도착합니다. 유홍준의 문화답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는 글로 표현이 되어 있는 곳이죠. # 무위사 극락보전 지정번호 : 국보 제13호 무위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경내에 현존하고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명에 의해 알려지고 있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네번째 중건인 서기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전 만은 최근(1956년경)에 실시된 보수공사에서 보존 후벽의 벽화 명문에 "십이 병신삼월초길 화성"이란 기록이 판독됨으로써 성화 12년(서기 1476년)보다 앞서는 건물일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해왔다. 그러나 1983년 옥개부 이상을 해체 보수할 때 중앙간 종도리 장혀에서 "선덕오년"이란 묵서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건물이 세종 12년(1430)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전혀 기둥이 없는 널찍한 공간을 이뤘고 내부 벽에는 여러 보살 및 천인상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당대 인물화가인 오도자의 신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무위란? - 한번 읽어보시길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 - 아래를 자세히 보시면 발톱이 나온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합니다. 이 곳은 다른 곳과 달리 벽화가 상당히 특색이 있습니다. 상당히 오래되었고요. 무위사 관람을 마치고 오늘의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차밭 구경입니다. 먼저 잠깐 백운동 계곡을 구경하고(10분 정도 내려가면......) 차 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설록차로 많이 알려진 곳이며 보성차밭과는 다른 이국적인 멋이라고나 할까요? 날씨 때문인지 안개가 끼어 더욱 멋있게 보입니다. 이 곳에서 정말 오래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제 시간이...... 아쉽습니다. 다시 숙소에 들러 김은규님은 연락을 위해 휴대전화를 가지고 오고 남은 시간 동안 잠깐 다른 곳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무덤이 있어 아름다운 집이란 곳이란 곳이며(이름 모를 낭자의 무덤 18세, 애견 메리의 무덤 등이 있는 곳이죠) 이렇게 구경을 하고 난 후 오늘의 여행을 마치고 나주역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오늘 여행일 주인님의 말씀으로는 1/3정도 구경을 했다는 이야기. 오늘도 많이 본 것 같은데 또 얼마나 좋은 곳이 많이 남아있을지. 아쉽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17:50분쯤 도착해서 표를 구입하고 스템프도 찍고 다른 분들은 철도자료를 구하는 사이 천천히 승강장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426열차를 타게 됩니다. 배고픔에 스넥카에서 간단히 도시락(5,000원)을 먹고(그런대로 맛있군요)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서대전역에서 영희님이 내리고 저와 다른 분들은 영등포역에 내리게 되고 오늘의 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ps. 우산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비도 많이 맞고, 옷, 신발은 엉망이 되고...... 정말 저로서는 색다른 경험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