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비평 - 주몽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존인물인가?
요즘 드라마 주몽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남는다. 월드컵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주몽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1960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후 다루는 첫 고구려 사극의 출발이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드라마 주몽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그와 더불어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주몽은 역사 고증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이는 본인과 같은 사학도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여러 사람들이 드라마 주몽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많은 이들이 드라마와 역사를 혼동하지 않으면 괜찮을 듯 싶다.
주몽에 대해 본인은 많은 글을 썼다. 그 글에 대해 격려해주는 분도 있고, 쓰레기라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주몽 아니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내 나름의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드라마 주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드라마 주몽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우선 주인공인 주몽과 그를 낳은 어머니 유화부인, 아버지인 해모수, 그리고 그의 평생 동지인 오이, 마리, 협보, 그리고 그의 영원한 동반자 예씨부인(드라마에서는 예부영이라 나오지만 그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부영이라는 이름 역시 가공 이름일 뿐)과 소서노,
그리고 소서노의 아버지이자 졸본부여의 임금 연타발, 소서노의 첫번째 남편 우태, 주몽의 라이벌 대소, 그리고 그의 아버지 금와와 대소의 동생이자 좀 바보스러운 영포, 그리고 주몽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무송, 부여의 신녀 여미을, 대사자 부득불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여기서 본인은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겠다.
실존인물: 주몽, 유화부인, 해모수, 금와왕, 대소, 소서노, 예씨부인, 우태, 연타발, 오이, 마리, 협보
허구인물: 영포, 무송, 여미을, 부득불 그리고 위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주몽 일행을 괴롭히는 도치, 야철대장 모팔모
그런데 문제는 이들 허구 인물을 실존 인물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영포 같은 경우 드라마에서 만든 가공의 인물일 뿐인데 마치 그를 실존 인물이라 여기고 그가 갈사국의 왕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대소에게는 일곱 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생 들 중 어느 누구도 영포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없다. 게다가 고구려 대무신왕의 공격으로 대소가 죽임을 당하고 부여가 내분에 빠지자, 부여왕 대소의 막내동생이 해두국 왕을 죽이고 갈사국을 세운 바 있으나, 그의 이름이 영포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만든 가공 인물을 실존 인물이라 여기고 있으니.....
사극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픽션,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현실과 다르다. 그리고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사극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을 변형하고 가공의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다. 영포의 존재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가공의 인물일 뿐이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한 서동요가 있다. 많은 이들은 서동요에 등장하는 목라수를 실존 인물이라 믿고 있었다. 게다가 고구려에서 발명한 온돌(정확히는 온돌의 원형인 쪽구들)을 목라수가 만들었다고 믿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사극의 폐해가 아닌가 싶다. 사극이 딱딱한 역사를 재미있게,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 데려온다는 이점은 있으나, 잘못된 사실, 허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극에서 일일이 역사 고증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이 점은 학교에서 사극과 역사를 가르치면서 사극과 역사가 다르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즉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는 눈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만이 사극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한다.
역사 고증 문제가 나와서 한 마디 더할까 한다.
드라마 주몽에서는 해모수가 다물군을 이끈 대장이자 금와의 친구였으며, 한나라군에 잡혀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고 묘사했다. 물론 이는 드라마의 픽션일 뿐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삼국사기에는 부여왕 해부루를 내쫓고 북부여를 세운 군주로, 삼국유사에는 해부루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는 금와와 시대가 다르고, 일개 유민의 지도자가 아닌 한 나라의 군주이다.
소서노 역시 주몽과 비슷한 연배로 그렸다. 하지만 소서노는 주몽보다 15세 많은 여자였다. 주몽이 졸본부여에 내려왔을 때 졸본부여 임금인 연타발은 자신의 딸 소서노와 주몽을 결혼시켰다. 당시 소서노의 나이는 37세였고, 전 남편 우태와의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를 낳은 유부녀였다.
우태 역시 드라마에서는 연타발 상단의 호위무사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부여왕의 서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북사 등 중국사서를 보면 우태의 오기로 보이는 구태를 설명하면서 구태, 즉 우태가 해부루왕의 서손이라 말하고 있다.
즉 적어도, 우태는 연타발의 가신, 호위무사가 아니라 부여 임금의 혈통을 지닌 , 적어도 왕 급 정도 되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의 철기군....
이게 가장 말이 많았던 부분이다. 한나라에는 철기병, 즉 전신과 말에 철갑을 씌운 기병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헌상으로보면 서기 3세기 고구려에서 철기병의 시초가 보인다. 즉 고구려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는 재미를 위해 당시 흉노의 침입과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나라 힘이 약해진 한나라를 강력한 제국으로 그린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당시 한나라의 일개 태수가 우리의 옛 왕조 군주들을 호령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요, 자칫하면 고대 조선은 중국 한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동북공정 논리에 편승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나라는 이미 지는 달이었고, 한나라가 세운 한사군은 이미 부여 등 우리의 옛 왕조들의 침략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사군의 위치 역시 오늘날의 평양 일대가 아닌 요동과 북경 일대였다.
사극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사극은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고, 역사고증이 필요한 작품이다. 여타 드라마와 달리 사극은 까다로운 부분이 많은 드라마이다.
사극의 잘못된 역사 고증, 그리고 지나친 사극의 믿음은 결국 또다른 역사 왜곡을 낳을 뿐이다.
결국 이 문제는 사극과 실제 역사의 비교를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역사를 다룰 때 이런 점을 다룬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극은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그리고 역사를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고, 역사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사극에 대한 비평과 토론, 이것이야 말로 사극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극을 좀 더 업그레이드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