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정의란 무엇인가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3명은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은밀히 수행하던 중 염소를 치는 농민 2명, 소년 1명을 만났다. 민간인이었지만 이들을 풀어주면 자신들의 소재가 탈레반에게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루트렐이 반대해 염소치기들은 풀려났다.
1시간 반 뒤 이들 미군 4명은 중무장한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루트렐을 제외한 3명과 구출 작전에 나선 미군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루트렐은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렇다면 3명을 희생시켜 19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최근 20여 년간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힌 자신의 정치철학 강의 ‘정의(Justice)’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민주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는 자유 사회에 걸맞지 않은 혐오스러운 짓이라는 견해와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마지막 수단이라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공존한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인간사회의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인 ‘정의(Justice)’. 샌델 교수는 정의를 판단하는 관점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제시하며 독자들이 자신의 정의관을 고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다. 사진 제공 김영사
미 국 특수부대의 사례를 철학적 사고로 치환해보면 정의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데 제동장치가 고장났다. 앞에는 인부 5명이 철로에 있다. 오른쪽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1명뿐이다. 전차를 돌리면 1명이 죽는 대신 5명은 살릴 수 있다. 1명을 희생해 5명을 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나.
이번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 저 아래 철로로 제동장치가 고장 난 전차가 질주하고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당신 옆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있어서 그를 전차 앞으로 밀어뜨리면 열차가 멈춰 5명은 살릴 수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희생자의 수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이번에는 부담스러운가.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관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정의에 대한 논쟁은 이런 가치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한 관점이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방안이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큰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권리장전에 언론이나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다수의 힘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들이 규정돼 있다.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방임주의자와 공평주의자로 나뉜다.
정의를 미덕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해석하는 이론이 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도덕을 어느 정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덕과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예컨대 폭리를 취하는 자들은 법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2009년 구제금융 위기 때 미국 투자회사들이 세금에서 나온 구제금융 기금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인 일, 2004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뒤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폭리 논란 등 생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도록 도덕적·철학적 ‘사고(思考) 여행’으로 안내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하버드 최고 인기강의 샌델 교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이한우 기자 hwlee@chosun.com
허리케인 때 바가지요금은 정당? 동성혼은 허용? 일부다처는 안돼?
다양한 질문들, 세가지 시각으로 조명
'정의(正義·justice)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해진다.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뿐인데 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그것을 '당신은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역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정의를 다룬 책을 좀 읽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다. 정의(正義)에 관한 명쾌한 정의(定義)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빈도에 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빈도가 한참이나 낮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정의와 올바름, 정당함, 공정함을 캐묻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들이 정의를 묻는 것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사회가 보다 정의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공동체주의자'라고 부른다. '덕의 상실'(이진우 옮김, 문예)의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 '마르스의 두 얼굴'(권영근 등 옮김, 연경문화)의 마이클 월저, '불안한 현대사회'(송영배 옮김, 이학사)의 찰스 테일러, 그리고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그들이다. 맥킨타이어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덕성(virtue) 회복을 통해, 월저가 '정의로운 전쟁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테일러가 이기심과 허무주의에 빠진 현대사회의 '그릇된' 지적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정의 회복을 꿈꾸었다면, 샌델은 우리를 곧장 다양한 쟁점들이 부딪치고 있는 일상현실 속으로 밀어넣는다.
▲ 김영사 제공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다. 전력부족으로 냉장고나 에어컨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려들었다. 얼음주머니를 사기 위해서였다. 주유소는 평소 2달러인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다. 250달러 하던 가정용 소형발전기는 2000달러로 뛰었다. 이런 바가지요금 업자들을 한 일간지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라고 비난했다.
그 러나 시장주의 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사를 반박했다. 기존의 가격은 '어쩌다 익숙해진 가격 수준'일 뿐 도덕적으로 신성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상황에 따라 높여 받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얼음·생수·발전기 등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고 공급자는 피해지역으로부터 먼 곳에서까지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높아져 곧 '정상'을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재난지역에서 가격폭리금지법을 입법하는 행위는 정의로운 것인가 정의에 반하는 것인가?
저자는 '바가지요금 사태'를 통해 정의를 바라보는 데는 세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행복 극대화가 정의라는 입장으로, 제레미 벤덤이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공리주의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의 자유(혹은 자율) 존중을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존 로크나 칸트가 기초를 마련했고 20세기 들어 존 롤스가 '정의론'을 통해 설파한 견해다. 세 번째는 덕성 추구를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저자를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공동체주의자들이다.
이어 본격적인 질문던지기가 시작된다. 먼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질문던지기다.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정신적 손상,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참전군인은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2005년 6월 미해군 특수부대원 4명은 정찰임무 중 100마리 염소를 모는 열네살짜리 아이를 발견했다. 논쟁 끝에 그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한 시간 반 후 이들은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총격전 끝에 3명이 사망하고 이들을 구출하려던 헬기까지 격추돼 16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아이를 살려준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는가?
가정(假定)의 질문은 더 곤혹스럽다. 국가가 결혼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혼의 다양화가 그 이유라면 일부다처(一夫多妻)나 일처다부(一妻多夫)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마구잡이식 질문집은 아니다. 분배의 불평등, 교도소의 민간운영, 소수집단 우대 정책, 징병이냐 고용이냐를 둘러싼 병역논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공리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정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자신의 공동체주의적 주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전체 10장 중에서 2장이 벤덤과 밀의 공리주의, 5장이 칸트의 동기주의, 6장이 롤스의 자유주의, 8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 강조로 구성돼 있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치철학자로서 샌델은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독립을 내세우는 정치에 비판적이다. 그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정의론에 비판적인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功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시민들이 도덕이나 종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좋은(정의로운)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이견(異見)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꿔야 한다.
이 제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약점을 지적할 차례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덕성이란 무엇인가?' 덕성의 내용이 공허하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즉 정의의 정의(定義)를 향한 지적 모험을 감행하도록 강력하게 유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샌델의 '정의(Justice)' 강의는 해마다 1000여명의 학생들이 듣는 하버드대 최고의 인기강의이며, 이 책은 20년에 걸친 강의를 토대로 집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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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지·못·미'?…김용철·금태섭·우석훈이 나서다
['정의란 무엇인가' 대담 ①] 한국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기
기사입력 2010-07-03 오전 8:03:10
'정의'에 대한 책 한 권이 화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 대학의 강의를 묶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정의를 정의(定義)하고자 재담가들이 모였다. 금태섭·김용철·우석훈이 바로 그 주인공.
<프레시안>과 김영사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한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간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간담회에서 이들은 500여 명의 청중을 상대로 3시간 동안 걸쭉한 입담을 풀었다.
'이기는 게 정의'라는 말이 쉽게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다 한 번씩 '피'를 봤던 혹은 그런 세대의 정의를 대변했던 이들 3명이 말하는 정의. 그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며 나섰다.
▲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정의란 무엇인가> 간담회의 주인공. 왼쪽부터 김용철 변호사,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금태섭 변호사,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에서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
김민웅 교수 : 검사 시절에 왜 우석훈 박사를 빨갱이라고 안 잡아가셨어요?
금태섭 변호사 : 아니 그게……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세 시간 동안 분위기는 이랬다. 우석훈 2.1 소장과 김민웅 교수는 기타도 꺼내 들었다(우 박사는 해금도 배웠단다). 김 교수가 리듬을 넣고, 우 소장이 솔로 연주를 더해 김광석의 '일어나'를 열창했다. 심각한 주제에도 이내 폭소가 터진다. 수다 중에 목이 타니 맥주도 등장했다.
김민웅 교수는 "정의를 쉽게 풀자면 뭐가 옳은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딜레마에 빠졌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 보자"라며 대담자를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거운 말들이 오갔을 리 없다. 우석훈 소장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엔 두 가지가 없어요. 정의가 없고 진리가 없어요. 제 생각엔 진리는 쓰레기통에 있는 거 같아요. 기자나 피디가 그런 걸 써오면 데스크가 쓰레기통에 버리니깐. 정의 쪽은……복잡할 게 없죠. 생각해봐서 '이 짓을 하면 지옥 갈 거다' 싶으면 정의롭지 않은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정의의 정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라고나 할까요.
정의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 해가 1981년이에요. '전또깡'이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외치며 민정당(민주정의당)을 만들었잖아요. 그 당시 모두가 정의를 말했어요. 그 뒤론 한나라당이 정의를 이야기하면 전두환이 말하던 정의로 들려요. 그래서 요샌 '부당'이란 단어로 표현하죠. 집회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면 '부당하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김용철 변호사는 까칠하다. 나름 베스트셀러 저자답게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놓고 "너무 좀 한가한 거 아닌가요"라고 촌평을 날린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정의는 무엇일까?
"제가 느낀 정의는 상당히 비장한 게 들어 있는 거예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 손해 보면 정의가 아니다'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게 정의죠. 그런데 이런 말 잘못하면 빨갱이가 되더라고요. 굳이 좌우를 나눠 좌파가 공동체 평등과 분배를 고려하고 우파가 경쟁 시스템을 지키는 걸 중시한다면, 난 좌파 할래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게 지성인, 교양인이고 더 폼 나는 거 아닌가요."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금태섭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점잖다. 그는 "이 책이 잘 팔리는 건 정의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정의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너무 바빠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새벽까지 해도 숙제가 밀려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대학교에 가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기다리고 있고, 직장에 들어가면 승자독식 구조에서 살아남아야 하죠. 옳고 그름을 논의할 여유가 없어요.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 정부에서 정답을 주고 따르라고 하죠. 잘못되고 엉뚱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항상 옳은 것만 말할 수는 없는데. 틀린 이야기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왼쪽'의 우석훈부터 '오른쪽'의 김용철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청중들이 정의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려 이곳을 찾았을 리 없다. 한국의 '진짜 권력'에 덤벼들었던 김 변호사,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권력' 검찰에서 사고를 쳤던 금 변호사, '88만 세대의 대부' 우 소장이다.
화려한 경력답게 각각이 지닌 정의감의 '색깔'도 다르다. "나는 센 빨갱이"라는 우석훈 소장, "빨갱이란 소리 듣기 싫어 빨간색 넥타이도 안 맨다"는 김용철 변호사, 그 사이에서 서글서글한 금태섭 변호사. 자리 배치도 '맨 왼쪽'의 우 소장부터 금 변호사, '오른편'의 김 변호사 순이다.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여기선 맛보기만 풀자.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가 잘 안 됐다는 거 몰랐어요. 트위터에서 '광고가 안 된다더라'는 '광고'가 6만 명에게 전달됐다고 하기에 트위터를 만들어봤죠. 몇 번 글을 써봤는데 그날 밤에 누가 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번개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차도 끊겼는데, 재워주기도 뭐하고……." (김용철)
"4대강 환경영향평가 같은 걸 보면 불법은 별로 없어요. 정부와 여당이 법을 바꾸니깐. 그래서 법에 대한 이야긴 잘 안 해요. 대신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에 맞춰서 보면 이명박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가 없죠. 제가 어디 가서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헌법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에요. 적을 이롭게 하는 등 운운하기 전에 헌법에 있는 거니깐." (우석훈)
"화학적 거세는 법리적 문제를 떠나 굉장히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니 '무슨 화학적 거세냐, 그냥 실명을 시키자'는 말이 있더군요. 정말로 눈이 멀면 거의 100퍼센트 재범을 막을 수 있잖아요. 화학적 거세는 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추진하면서 눈을 멀게 하자면 양심에 걸려 머뭇거리죠. 우리 사회에서 자유 의지를 떼어내면서까지 처벌한 적이 없어요." (금태섭)
심심한 이야기라고? 우석훈이라면 '88만 원 세대'를, 김용철이라면 '이건희'를, 금태섭이라면 '검찰 수사' 이상을 말해야 하는 게 '정의' 아니냐고? 맛보기라고 하지 않았나. 5일부터 이들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나다순대로 금태섭-김용철-우석훈 차례다.
/김봉규 기자,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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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충돌할때…‘공동선’을 고민하라 20년 지속된 하버드 명강의 엮어
숱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 지침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샌델의 수업은 하버드대에서 가장 있기 있는 강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그가 2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정의’(justice)라는 강의는 교수의 유창한 진행과 학생들의 열띤 참여로 하버드대 최고의 강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무장한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샌델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분명하게 논증한 정치철학 이론서가 됐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내는 것도 도덕적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도덕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데, 정치철학도 다르지 않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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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
샌델이 여기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딜레마적 상황을 살필 때 샌델이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전체의 행복이 최대치가 되게 하는 것을 정의로 간주한다. 벤담은 이런 생각을 1780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서 피력했는데, 5년 뒤 이마누엘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에서 벤담의 사상을 맹비판했다.
벤담의 논리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 소수 개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정의다. 칸트는 인간이란 이성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입각해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200년 뒤 롤스는 칸트의 이 주장에 입각해 ‘평등적 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 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오늘날 정의의 이론이 공동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샌델이 보기에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이런 공동선을 외쳤으나, 그가 암살당한 뒤 진보파가 이 문제를 놓아버렸다. 그랬던 것이 2008년 대선에서야 버락 오바마와 함께 공동선의 문제가 진보적 의제로 부활했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 찬 기반을 제공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열 개의 강의를 통해서 정의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를 이리저리 뒤집고, 세 가지 항목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이다. 이 셋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말한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정의가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의 각각 다른 시선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기존 인식을 뒤흔든다. 이 흔들림이 즐겁고 유익하다.
첫 장부터 그는 묻는다. 옳은 일하기에 대해서 말이다. 2004년 미국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덮치고, 많은 사람이 죽고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가격폭리 논쟁이 발생했는데 평소 2달러 얼음주머니가 10달러에 팔리고, 건설업자는 지붕을 덮친 두 그루의 나무를 치우는데 2만 3천 달러를 요구했다. 이런 엄청난 가격폭리는 결국 논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이군인을 둘러싼 논쟁도 소개하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으로 등록되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많아지고 있는 정신이상을 제외하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마지막 사례로 선택에 따라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보통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것이다. 가격폭리는 너무 심하고, 정신이상도 상이군인으로 등록되어야 하며, 한 사람의 목숨과 몇 사람의 목숨의 무게는 똑같다고 말이다. 이런 대답이 쉽게 나오는 것은 공식처럼 배운 바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씩 반박 논리를 제시한다면 쉽게 그것을 다시 반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논리가 일관성을 가지고 다른 사례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사실 자신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 나에게 정확한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정치적 이해도 같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옳은 일하기를 지나면 그 유명한 벤담의 공리주의를 살펴본다. 그것을 반박하면서 자유지상주의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징집과 고용이란 문제를 펼친다. 사실 한국의 상황에서 이 문제는 정말 민감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은 인식의 폭을 우리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대리출산을 둘러싼 법해석과 논쟁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성이 사라지고 단순히 아이를 낳기 위한 살아있는 기계처럼 된 인도 여성들의 현실은 경악스럽다.
한때 너무나도 어렵게 읽은 칸트를 다시 만나면서 쉬운 몇 가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역시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존 놀스의 평등 옹호를 만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입장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 속에서 현재의 나의 위치와 입장을 풀어낸 해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몇 가지 이론적인 허점으로 답을 내지 못한 것을 해결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존 놀스의 정의론을 비판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는 대목은 저자의 다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소수집단우대정책과 선조들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는 매킨타이어의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312쪽)란 말에서 왜 이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저자의 주장과 가장 가까운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행복을 극대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미덕을 추구하는 등의 여러 개념과 엮여 있다. 그리고 정의를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라고 한 대목에선 다시 올바른 가치 측정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제시한다. 독자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읽었던 정의를 복기하게 만든다.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번갈아 가면서 정의를 파헤치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가볍게 읽기는 조금 힘들지만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얻는 소득은 크다. 현실에서 실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현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의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물음에 대한 사고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마이클 샌델 1953년 미네소타에서 출생했다. 브랜다이스대학교를 졸업하고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책에서 '공동체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 교수 등과 함께 공동체주의의 4대 이론가 중 한 명이자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평가된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정의(Justice)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이러한 명성으로 2002년 앤 티 앤드 로버트 엠 벳 교수, 2008년 미국정치학회가 수여하는 최고의 교수로 선정되었다.《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외의 다른 주요 저서로 《민주주의의 불만》(1996),《공공철학》(2005),《완벽함에 대한 반론》(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