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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는 소나무와 일본이깔나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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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 봉정리에 왕의 교지(敎旨)를 받은 사람이 살았다 하여 왕지산(王旨山)이라 했다는 산이 있다. 어쩌다 지금은 왕치산(王峙山)이 되어 버렸다. 위치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북면 경계에 있다.
왕지산 산행들머리로 택한 큰 너그니재(큰노근령)의 42번 국도는 정선아라리를 닮아 늘어지고 된 통 구불텅거려 멀미가 날 지경이다. 큰 너그니재나 작은 너그니재를 넘을 때는 아라리를 목청 높여 부르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실제로 정선 여랑에서 소금 사러 바다가 있는 강릉이나 삼척으로 갈라치면 꼭 큰 너그니재를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헐께 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게 부끔떡 세 쪼각을 회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 냥 옷집 지고 강릉, 삼척으로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표지석이 있는 큰노근령(760m)에서 남쪽으로 휑하니 뚫린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에는 강원도에서 중댕가리라 부르는 쥐오줌풀과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호제비꽃들이 앙증맞게 제 나름대로 꽃을 피웠다. 임도는 산 능선을 넘어 왼편으로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따가운 햇살을 가려줄 소나무가 많다. 꿩이 앉은 방석처럼 땅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운다 하여 생약명으로 치자연(稚子筵)이라고 부르는 양지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철쭉도 여기저기, 콧노래 나오는 트레일이다. 오지산행 취재만 20여 년을 다녔지만 이렇게 좋은 길은 처음이다. 우스개 소리로 털 나고 처음이다. 마루금을 따라가도 좋고 바로 옆으로 따라가는 임도로 걸어도 뭐라 하는 가이드도 없다.
해발 870m의 전망 좋은 헬기장에 닿았다. 남으로 왕치산 정상이 건너편에 있고, 동쪽은 작은노근령 도로가 보이고, 북으로는 노추산·사달산이 하늘금을 그었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주릉선을 따라 숲길을 간다. 한참 만에 묘가 나타나며 다시 임도다. 임도 왼쪽은 하늘을 찌를 듯한 일본이깔나무, 오른쪽은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는다.
전혀 경사도를 높일 줄 모르는 평탄한 길이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오른편 소나무 숲 능선을 5분쯤 따르다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왼편의 일본이깔나무 사이로 등봉동이 내려다 뵌다.
임도를 따른 지 5분쯤에 임도 삼거리가 나왔다. 여기서 임도와 헤어져 앞에 보이는 소나무들이 있는 주능선을 따라 오른다. 이제야 산행하는 맛이 난다. 관목들을 헤쳐 가며 10분쯤 오르니 다섯 평 가량 넓이의 왕치산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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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루마을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사방에 향기를 풍기는 조팝나무 군락지대를 지난다.
- 정상을 에워싼 나무 틈새로 북으로 노추산·사달산·노목산, 동쪽은 말루동앞산과 말루동뒷산, 가랑이산이 건너편에 솟았고 남쪽은 반륜산·반논산·고양산·자후산·단봉산·문래산 넘어 눈 닿는 데까지 산 첩첩이다. 서쪽은 염장봉·왕재산·고비덕산 뒤로 상원산·옥갑산봉이 흐릿하게 멀리 솟았다.
하산은 남서쪽 월루마을로 잡아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제법 경사가 급해지는 잡목구간이다. 철쭉꽃이 초여름을 알린다. 양치식물 고사리도 많다.
정상을 떠난 지 15분 만에 다시 임도다. 소나무들이 호위하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조금씩 고도를 낮춘다. 마사토 위에 부드러운 솔갈비가 쌓인 길 모다기 모다기(작은 무더기) 철쭉꽃도 반긴다. 임도를 따라 걸은 15분 후에 솜나물, 솜방망이, 꽃다지, 구슬붕이, 양지꽃이 핀 길가 묘 잔등에서 점심을 폈다.
중식을 끝내고 나서 이어간 임도는 노송들이 한국의 멋을 풍기는 환상적인 길이다. 고도를 낮추니 철쭉이 더 화려하다. 구불구불 이러한 길이 하염없이 이어졌으면 싶다.
잣나무 군락을 지나자 눈이 내린 것 같은 하얀 조팝나무꽃 사이로 월루마을 전경이 이발소 그림 같다.
“야아! 저곳이 엘도라도 무릉도원 아니가?”
분지 속 달과 같이 둥근 지형에 형성된 자연부락이 흡사 달빛 아래 빛나는 누각과 같다 하여 월루(月樓)라 이름하는 마을이다. 조팝나무 향에 취하여 월루가 더 월루처럼 보인다.
묵정밭을 벗어나 월루마을로 들자 복사꽃이 먼저 반긴다. 분지형의 넓은 토지에 말끔하게 빗질한 밭, 각양각색의 꽃과 지붕, 삼단 같은 머리채를 푼 보리밭이랑 용트림하는 소나무와 당산나무, 동화의 나라에 나오는 미니학교, 연못에 떠다니는 연꽃……. 반원을 그리며 조용히 동네를 돌아나가는 길, 마을의 안녕이 모여 있는 성황당은 음나무, 전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자두나무들이 에워싼 월루다.
마을의 풍정에 취하여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 본 후 월루마을을 뒤로하고 도장골 길을 따라 걷는다. 개울가에는 달빛을 받은 조팝나무꽃이 길을 안내한다.
- [주말산행코스] 오지의 산ㅣ왕치산ㅣ강원 정선
- >> 산행 길잡이
왕치산은 근동에서 왕지산으로 불린다. 산행들머리는 큰너그니재다. 산행길은 한가롭고 수월하여 어린이나 노약자도 산행 가능하다. 환상적인 임도를 따라가도 되고 주능선만 고집해도 된다. 두 길은 숨바꼭질 하듯 자주 만난다.
산행의 백미인 월루마을에서 도장골의 포장길을 따라 30분쯤 걸으면 ‘고양 ←반천→임계’ 삼거리 버스정류장이다. 산행시간은 3~4시간쯤 걸린다.
>> 교통
정선과 임계를 잇는 42번 국도를 왕복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임계에서 정선 여량 방면 버스로 10분 거리인 큰너그니재에서 하차하면 된다. 버스는 07:55~19:40, 하루 20회,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정선에서 임계행 버스는 05:40부터 19:10까지 있다.
임계에서 반천리, 고양리, 봉정리로 다니는 버스는 하루 4회 운행(08:10, 13:00, 16:00, 18:00)한다. 시골 버스 시간은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고 조금 일찍 기다리는 편이 버스를 놓칠 염려가 없다. 마을버스도 평일 5~6회 있다. 5일, 10일 임계 장날에는 시간마다 버스가 있다. 정선버스터미널(033-563-9265), 임계시외버스터미널(033-562-6138), 여량버스정류장(033-562-4548)
>> 숙식(지역번호 033)
여랑에는 옥산장(562-0739), 아우라지장(563-2222), 대추나무집(562-1810), 숲속가든(562-5141), 콧등치기와 보리밥 전문 청운식당(562-4262), 민물고기 매운탕 전문 영주식당(562-4341), 달동네식당(562-0560), 닭백숙 전문 삼거리쉼터(562-5190), 감자탕 전문 양지식당(562-4015) 등이 있다.
임계에는 노블레스모텔(563-2326), 청송장(562-2687), 대성장(562-0273), 부일펜션하우스(563-3504), 반천두메아리체험관(562-6603), 장어구이 전문 길목식당(562-9220), 콧등치기국수 전문 대동식당(563-1252), 황기백숙 전문 바위안식당(563-5476), 한우영농조합(562-7887), 해물칼국수 전문 영진면옥(563-6655) 등이 있다. 임계는 장터거리에 있는 식당들이 음식 솜씨도 좋고 한우 가격도 저렴하다.
>> 볼거리
골치천은 경치가 좋아 볼거리가 많다. 반천초등학교 옆 구용소, 이조 숙종 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자 선생이 노닐던 구미정의 아홉 가지 풍치가 좋다. 첫째 어량: 물고기가 폭포로 올라가기 위해 뛰어오를 때 통발로 고기를 잡은 경치. 둘째 전주: 밭뚝의 전원경치. 셋째 반석: 넓고 평평한 바위. 넷째 층대: 층층을 이룬 절벽. 다섯째 석지: 구미정 뒤의 작은 연못. 여섯째 평안: 넓고 큰 바위. 일곱째 등담: 등불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 여덟째 취벽: 구미정 앞 석벽사이에 있는 쉼터. 아홉째 열수: 암벽에 줄지어 뚫려 있는 바위 구멍. 골치천은 백패킹과 물놀이 장소로 최적이며 이외에도 고수당, 난포정, 장찬산성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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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