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스러운 거짓말
김명희
저녁 식사 시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로 가득 채웠다. 달걀찜, 달걀국, 달걀후라이 등 식탁 전체가 노릇노릇하여 흐뭇해진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젓가락이 내 것만 식탁 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옆을 보니 식구들이 불만 가득 반찬을 바라보고만 있다. 먹을 것이 없다면서 달걀반찬을 하찮게 취급한다. 예전엔 귀하고 귀하던 달걀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집에서 닭을 다섯 마리 키웠었는데 매일 한 마리가 달걀 하나씩 낳았다. 그 당시엔 달걀이 아주 귀하여 먹는 날은 소풍갈 때 뿐이었다. 많이 모았다가 장날에 돈으로 바꿀만큼 소중히 다루어졌다.
그렇게 귀한 달걀이 매일 아침마다 한 개는 오빠 몫이었다.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정성은 참으로 놀라웠다. 딸들에게 주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큰언니는 먹고 싶어 돈을 줘가면서 오빠를 감언이설로 꼬드기곤 했다. 아무리 꼬셔도 아쉬울 것 없는 오빠는 약만 살살 올리다가 혼자 맛있게 먹곤 했다. 오빠는 야멸차게도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달걀을 양보해 준 적이 없었다.
그 날도 오빠에게 달걀 얻어먹기는 실패했다. 맛있게 먹는 오빠 옆에서 입맛만 다시다가 뒤돌아섰다. 툴툴거리면서 소죽을 끓이는데 닭 한 마리가 항상 달걀을 낳던 둥지를 놔두고 불쑤시개로 사용하는 짚단 위에 달걀을 낳았다. 그 때 확 스치는 멋진 생각……. 저 달걀을……. 꿀꺽……. 오우 예! 좋았어. 저건 내꺼다! 하며 들킬세라 얼른 갓 낳은 달걀을 소죽 솥에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전엔, 그런 도둑질 같은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감히 도둑질이라니 안 먹고 말지.
매일 몇 개가 있는지 감시하는 엄마가 있는데 감히 어떻게 그런 얕은 생각을 하겠냔 말이지. 그런데 내 앞에 달걀이 보이니 마음이 동했다. 원래가 첫 도둑질이 두렵고 죄책감이 강한 편이다. 뒷간에 숨어서 행여 들킬세라 정신없이 먹었다. 얼마나 환상적인 맛이었던지 훔쳤다는 죄책감이나 엄마에게 들켜서 혼날 거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 달콤한 맛에 계속 달걀을 훔쳐서 삶아먹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소죽 끓이는 그 지긋지긋한 일이 기다려지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소죽물 끓이고, 깊숙이 파묻어두었던 달걀을(완숙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불을 세게 때어도 반숙밖에 안됐다.) 끄집어내어 외투 속에 집어넣고 집 밖의 외진 곳에 숨어서 까먹는 재미라니 스릴 만점이었다. 소죽 끓이는 건 둘째언니랑 내 몫이었다. 둘이서 번갈아가며 불을 지폈는데 정말 고되고 하기 싫은 일이었다.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쉼 없이 장작을 밀어 넣어야 한다. 생솔가지라도 아궁이에 들어갈 땐 눈이 아려 눈물이 쏟아지고 연거푸 재채기에 목 안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둘째언니랑 나는 서로 안하려고 싸우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로 패자를 가리기도 했다. 소죽 끓이는 건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데 달걀 맛을 한번 보고나서 나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나의 앙큼한 계획을 절대로 들키지 않으면서 혼자서 소죽을 도맡아서 끓이기 시작했다.
완전범죄를 꿈꾸었는데 달걀 하나가 매일 없어진다며 엄마가 난리가 났다. 그 귀한 달걀 누가 먹었냐며 큰언니랑 둘째언니만 쥐 잡듯이 잡는다.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렸고 순하고 정직하게 보였었는지 의심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니 죄 없는 언니들만 표적이 되었다. 난 모르는 척 멀뚱멀뚱 뒤에서 뒷짐지고 구경만 했다. 언니들은 안 했다고 방방 뛰고 엄마는 거짓말한다며 날았다. 끝까지 엄마는 자신이 내린 판결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두 언니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며 엉엉 울었다.
그 사건 이후 다시는 도둑질을 안 해야지 다짐했지만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다. 안 먹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들킨 이유가 뭘까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 매번 같은 장소의 알을 훔쳤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달걀 중에 무작위로 골라야겠다는 이상한 계산이 나왔다. 나로선 완벽한 알리바이였다. 초등학교 일 학년의 머리로서는 최고의 묘안이었다. 엄마를 속이기 위한 조삼모사였다. 한참을 훔쳐 먹어도 엄마가 잠잠하더니 어느 날은 이랬다 “이제 보니까 여기 닭 중에서 한 마리가 늙어서 달걀을 안 낳는구나. 하긴 닭들도 늙으면 알 못 낳는다고 하던데. 어떤 놈이 못 낳는지 모르겠네. 알면 잡아먹을 텐데. 아이고, 야들아! 엄마가 미안하다. 닭 한 마리가 알을 못 낳는지도 모르고 죄 없는 너것들만 못살게 했구나.” 그러셨다. 너무나 엉성한 작전인데도 엄마가 낚였다. 이건 하늘에서 금싸라기 떨어지는 소리였다. 울 엄마의 솔로몬의 지혜에 감격했다.
그 이후로 난 죄책감 따위 멀찌감치 출장 보내고 마음껏 달걀을 원 없이 삶아 먹었다. 먼 훗날 큰언니에게 그 얘기를 해줬더니 “ 아이고 더러워라. 소죽물이 전부 다 구정물로 끓이는 건데 거기다가 삶아서 어예먹노? 어이구 더러버라. 나는 줘도 안 먹었겠다.”그런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 못 먹고 상하거나 지저분한 것들을 다 모아두었다가 끓이니 더럽기야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달걀의 껍데기가 좀 견고하고 단단한가? 구정물은 구정물이고 달걀은 달걀이다. 맛과 영양은 조금치의 손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원 없이 먹는 게 낫지, 오빠 앞에 애처롭게 앉아서 구걸하는 것 보다야 백배천배 현명하다고 말했다.
달걀을 삶아 먹기 시작한 그 날 이후론 소죽은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끓였다. 그렇게 힘든 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이 어린 게 한다며 집안 어른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꿩 먹고 알 먹고였다. 원 없이 먹고 싶은 것 먹고 칭찬은 독차지 받았으니 신바람이 났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언니들은 여전히 오빠 앞에서 달걀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눈치를 보았다. 나는 그딴 거 탐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빠처럼 손에 쥐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 손으로 챙겨서 먹었으니 오빠 앞에서도 비굴할 이유가 없었다. 시커먼 속셈을 하얗게 바꾸었던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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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 195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