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교도소에 다니기 시작한지 7개월 째, 여름에 방학이 있었으니 여섯 번째 방문이다.
가는 길에 안양교도소에서 자오나눔 주소를 통해 내게 온 편지를 두 통 건네 받았다.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새벽 시간에 쓰기 시작해서 햇살이 창가를 넘어 들어오는 시간까지 성경구절까지 예쁘게 꾸며 넣어 투박한 손으로 보낸 편지가 뭉클하다.
안양교도소를 방문하면서부터 줄곧 써 오던 봉사 후기를 잠시간의 흔들림으로 멈추려고 했던 내가 참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갈 때마다의 새로운 감동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그 분들과의 못 다 한 대화를 하는 기분으로 후기를 쓰곤 했었다.
방문 횟수가 거듭될수록 가슴에 새록새록 솟는 애틋함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말에 상처 입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 해 필을 꺾어 버린 내 손을 간지럽게 했다.
내게 무엇이 있어, 전에 내가 알지 못 하던 세상과 연결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얀 담 안, 단절된 세상에 또한 무엇이 있어, 내 모자라는 글재주를 통해 세상으로 연결하라 하시는지 또한 모를 일이다.
이번에는 꽤 많은 인원수가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언젠가 여덟 명 이상 가는 봉사에는 참여하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이제는 어떤 봉사의 자리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정이란 것이 그런 말을 하지 못 하도록 내 입을 막아 버렸나 보다.
멀리서 와 주신 정승훈 목사님의 차에 자오나눔의 뿌리가 있는 목양교회 집사 님들이 여러 분 타고 뒤를 따라 오신다. 내가 탄 차안에는 목양교회 목사님의 후원금으로 장만한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제법 많은 짐들이 차에서 내려지고, 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를 마치는 동안 버릇처럼 하얀 담 위를 쳐다본다. 지난달에는 이렇게 기다리며 쳐다 본 담 위로 담 안에서 날개 하얀 까치가 날아 나왔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교도소에 오는 날은 늘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파랬다.
여전히 밝은 얼굴로 맞아 주시는 교도 주임 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들어 선 교실에는 지난 달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신 듯 하다.
정승훈 목사님의 예배로 1부가 진행되는 동안 나보다 자유롭게 하나님께로 영혼이 열린 그 분들이 보인다.
2부 시간, 1년에 한 번 몰아서 여는 생일잔치를 위해, 색 고운 무지개떡 위에 촛불이 켜지고, 축가를 부르고, 대표로 누군가가 불을 끄고, 통닭과 음료수와 과일들과 과자 접시들이 여느 때보다 푸짐하게 식탁에 놓여진다.
"많이들 드세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 조금 못 먹는다고 해서 무슨 걱정들이 있겠는가만, "드시면서 하세요." 하는 답례의 인사가 더욱 고맙다.
부산한 가운데 11월에 있었던 개인적인 등단소식이 소개되고, 어느 분이 축하한다며 음료수를 따라 주신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지난달에 낸 숙제 검사가 시작된다.
영치금으로 주는 상금까지 준비되었건만, 단 두 분이 숙제로 낸 야고보서를 외운다.
화가 난 듯한 나눔님의 말에 모두 다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나는 왜 철없이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지... (손들고 반성해야 한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또 다시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가 얼마 전에 수감된 사람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 주신다. 후회가 가득 담긴 그 편지를 들으며 이젠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음이 아프다. 처음으로 내 시를 한 편 낭송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덕분에 다 잊어 버렸다. 이 분들 만이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 후회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니, 이 분들께 바라기 전에 사회가 깨어 선입견으로 굳어진 마음들이 열리기를 먼저 기도해야겠다.
교도소에서 온 그 편지를 들고 와, 타이핑해서 올리고, 후기를 쓰면서 앞으로 두 달 더 있어야 만나볼 수 있을 안양교도소 장애인 재소자 여러분들이 몸은 비록 추운 곳에 있을지라도 믿음 안에서 마음만은 따뜻하기를, 새보다 자유롭기를, 다시 보는 시간까지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출소되어 나오신 분들과 사회의 편견에 다리 역할을 하는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