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에 유투브에 올라온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내용 중 한 컷입니다.
세종 19년에 '지리산과 삼각산에 대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어 사람들이 따 먹었다."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해설 문에는 삼각산의 언급하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지리산에 많이 열려 사람들이 따 먹었다고' 했습니다.
추론 컨데 이 학자가 볼 때도 한반도의 서울(한양)에 대나무가 서식하기 어렵고, 더군다나 대규모 대밭이 있어 많은 대나무 열매가 대량으로 열렸다는 것은 선듯 받아들이기 난감했기 때문에 해설 문에는 지리산만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때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며 흘려버리면 역사 공부는 암기공부와 다르지 않을뿐더러, 특정 시기에 만들어 놓은 역사 패러담의 덫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전(②)을 찾아 봤습니다. 역시 동해안을 제외한 지역의 대나무 북방한계선은 결코 부여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대나무가 부여 이북 지역에 심으면 겨울에 동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북방한계선입니다. 어떤 분은 서울에도 대나무가 자란다고 하는데 그것은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된 근자의 현상이며, 한파가 심할 경우 언제든지 부여 이북지역의 대나무는 동사할 수 밖에 없으며, 경북 지역 등에서 대밭이 대량 동사했다는 기사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투브 인용문을 신뢰할 수 없어, 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본(③)을 통으로 확인해봤습니다.
황당하게도 삼각산의 위치를 '서울의 동북쪽 삼각산에 ....'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④)로 확인해봤습니다. 삼각산(북한산)은 결코 서울의 동북쪽이 아닌 정북 방향이며, 도저히 정북은 인정하기 싫다는 분을 위하여 위치 조정을 하더라도 결코 '동북'은 될 수 없으며, '북북동'이 됩니다.
정리하면
대나무의 식생을 고려할 때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서울(한양)은 북위 37도 30분에 위치할 수 있는 지명이 아니며, 삼각산과의 위치로 볼 때도 현재의 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서를 인용하려면 정확한 분석을 통한 왜곡된 지명 찾기를 하거나, 아니면 사서(조선왕조실록)가 오류가 있다고 명확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불교사 역시 이런 모순 투성이의 해석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된지 60년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일제식민사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① 오늘의 조선왕실록
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대나무 검색
③ 한국고전동합DB의 관련 기록 번역 전문
④ 삼각산(북한산) : 도성의 정북방향
첫댓글 북한산은 거의 정북방향이네요
한양을 대륙에 놓고봐야 방향과 위도가 맞겠지요
얼핏 불암산에도 대나무가 서식한다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요
고지도에 한양이 현중국 우한에 있었읍니다 평양은 시안 동북쪽이 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