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할머니’의 각별한 태극기 사랑
애국지사 시아버지로부터 영향 받아
태극기는 어디서 구입해야 하나? 아주 쉬운 질문 같지만 의외로 이 문제의 답을 선뜻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7,80년대 태극기는 가정에 꼭 필요한 필수품과도 같았지만, 이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 돼버린 것이다. 지역에 태극기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는 한 할머니를 찾게 됐다. 국기사랑모임 정애영 여사(72)는 “이 모든 것이 얼굴도 뵙지 못한 시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15년째 태극기 보급
‘국사모’는 안양시광복회원들과 함께 삼일절이나 광복절을 앞두고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임이다. 정식으로 회칙을 정하고 모금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지만 태극기 보급운동은 15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라 한다.
“안양시 광복회와 함께 차에 태극기 달아주기부터 그 당시 구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쌌던 태극기를 구입해 나누어주는 일을 시작했던 것이 이 모임까지 만들게 됐죠.” 그 뜻을 함께하는 이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게 월1천원의 회비를 받고 있다. 이들은 2월23일에도 2001아울렛 사거리에서 국기세트 120개와 승용차용 소형태극기 100개를 시민들에게 나누어줬다. “태극기를 걸더라도 관리가 안돼서 새까맣게 때가 탄 태극기를 보면 일부러 찾아가 바꾸어주기도 하죠.”
시집살이로 나눔 배워
정애영 여사의 시아버지는 애국지사 안용갑 선생이기도 하다. 선생은 기미년 독립운동 당시 벌교와 낙안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애국지사의 유족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7년에는 안양으로 이사와 1947년 타계했다. “시어머니로부터 이미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애국’에 대해 깊이 생각 하게 됐죠.” 2002년 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남편 안홍순씨와 결혼하게 된 것은 친아버지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사람 건실하고 늘 공부하는 젊은이’라는 동네사람들의 평판이 주된 이유였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정애영 여사는 안용갑 선생의 애국활동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자신 또한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었지만 애국지사들의 유족들이 어려움에 처했다하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분이었다고 해요.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그렇게 도와주다보니 가세는 쉽게 기울어졌고 나중에는 황소까지 팔아 유족들을 도왔다고 하더군요.” 안양으로 안용갑 선생이 이사를 오게 됐을 때는 초가집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찼다고 한다. 그나마 있던 집마저 불에 타고 시어머니는 직접 나무를 해와 내다팔기도 했다 한다. “결혼할 때도 시댁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동네에서는 ‘뭐든지 나누어 주는 집’이라고 할 만큼 사람들에게 베풀기에 인색하지 않았어요.”
우리 것 지키는 일 소중
정애영 여사는 이후 시아버지의 애국지사 등록이나 남편의 광복회 활동을 도우면서 ‘우리 것’을 찾기 위한 활동을 함께 벌이게 됐다. 전통예절이나 천연염색 부터 다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만의 것’을 지키고 알리는 데 열정을 바치게 된 것이다. 현재도 안양문화원의 자문위원으로 전통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내 신분증 사진 모두는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예요. 우리나라에서나 외국에 나가서나 진짜 ‘나’를 알리는 일이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이죠.”
손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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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기사랑모임회(국`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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