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악보가 없다. 그래서 판소리의 모든 공연은 늘 초연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명창의 소리(창)와 아니리(말)에 강약과 장단을 맞추고 쉴 곳과 달릴 곳을 조절하는 고수의 북소리와 추임새는 심청이 빠진 인당수, 춘향모 월매가 차린 진수성찬, 토끼가 도착한 용궁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인천시 무형문화재 23호로 지정될 만큼 절창의 북소리로 무대를 쥐락펴락하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조경곤 고수는 앞을 보지 못한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최연소, 최초 시각장애인’이란 말은 그에게 의미 없는 수식어일 뿐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가슴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의미 없다” 말하는 판소리 고법 무형문화재 조경곤 고수를 만났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현준·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편집부가 독자에게 ...
한석봉 어머니가 남긴 교훈 명필 한석봉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도 가지런히 떡을 썰어 스스로 아들에게 배움과 노력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테마 인터뷰에서 만난 ‘판소리·고법’ 인간무형문화제 조경곤 고수는 한석봉의 어머니로부터 노력 앞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음을 배웠다고 합니다. 조 고수는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끼며, 절창의 북소리를 냅니다. 그가 들려주는 ‘피나는 노력’으로 얻는 삶의 열매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지요. _ 김지민 리포터 |
어린 시절, 위인전에 쓰인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는 말이 미덥지 않았다. ‘위인들이 모두 칼을 휘두르는 장수도 아닌데 왜 모두 피를 흘렸지?’ 피나는 노력이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부모님의 말씀도 진부한 잔소리로만 여겼다. ‘공부하는데 왜 피를 보라는 건지, 연필로 허벅지라도 찔러야 하나?’
‘피나는 노력’의 사전적 의미를 몰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피나는 노력은 진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노력을 이르는 말이다.
시력을 잃다 조경곤 고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가 최연소 판소리 고법 보유자로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김제에서 태어난 조 고수는 판소리를 몹시 좋아하던 큰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소리 명창들의 판소리 가락을 들으며 자랐다.
“큰아버지가 사랑채에 명창을 초대하면 어른들 곁자리에 앉아 소리를 듣곤 했어요. 명창의 소리에 담긴 희로애락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그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소리를 배우고 싶었지만 퉁소 10년 불어야 찬밥 한술 먹는다는 큰아버지의 말에 꿈을 접었다. 시간이 흘러 사춘기의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무술 영화배우. 타고난 체격과 체력이 좋았고 커다란 짐자전거 석 대를 나란히 늘어놓고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순발력도 좋았다.
“합기도를 열심히 했어요. 유단자였고. 지역에서 ‘힘 좀 쓰며’ 살았죠.” 고등학교 때 합기도 겨루기를 하다가 망막이 박리되는 사고를 겪었다. 여러 번 수술을 했지만 눈은 좋아지지 않았다.
“한참 어린 나이에 무술 영화배우의 꿈, 으스대며 살았던 일상을 빼앗기고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죠.”
북을 만나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은 라디오에서 들려온 전통 가락이었다. 마음을 울리는 북소리에 어린 시절의 꿈이 되 살아났다. 자신의 길은 찾았지만 역시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앞을 못 봐도 기본적인 생활에는 익숙해져요.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더 심했고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지금은 큰 교회가 들어선 번화가지만 예전 서초역 인근은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판자촌이었어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며 하루 10시간씩 북을 쳤습니다.”
조 고수는 허공에 사다리를 놓고 별을 따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전한다. 어떤 보장도 희망도 없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재활이라 믿었다.
“북이 굴러가지 않게 앉은 자세에서 오른발로 막고 왼손으로 북의 모서리를 잡아요. 오래도록 북을 치면 채를 잡은 손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북 모서리를 잡은 손도 가죽에 쓸려 찢기고 피가 나요. 양반다리로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오니 관절도 다 상하지요.”
치열한 연습에 손이 쓰리고 몸이 아파도 눈이 보이지 않으니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북을 쳤단다.
타고난 고수는 없다 당시 서울에 누나와 작은아버지가 살았지만 도움을 받으면 약해질까 두려워 어떤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온 것은 아닐까?
“가르칠 수 없다고 거절한 스승님도 계세요. 음감도 없고 혼자서 연습하며 몸에 밴 나쁜 버릇도 있어 안 된다고 하셨죠.” 북이 아닌 다른 것에 도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 꼭 북이었을까?
“대금산조를 3년 동안 했지만 안 보여도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보고 싶었어요.” 대금처럼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 악기보다 악보가 없기에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쏟아야 하는 악기에 도전하고 싶어 북을 선택했다.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고수는 없다’는 말이 있어요. ‘1고수 2명창’이라는 말도 있지요. 그만큼 고수가 되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지만, 이 말들은 ‘천부적인 고수는 없다, 인내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다 뜻이기도 합니다.”
판소리는 우주를 만드는 과정 명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고수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일 터, 지금의 자리에 오른 비결이 궁금했다. “온전히 감각에 의존하지요. 판소리는 명창과 고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우주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고요.”
그는 자신이 원하는 능력에 겨우 3% 정도 도달했다고 말한다.
“1천살까지 살면 모를까 예술에 완성은 없습니다. 예술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하하.”
조 고수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희망과 자극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피나는 노력’은 여전히 삶을 변화·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 믿는다. “많은 학생을 만나지만 기본적인 성품과 인내심을 가장 먼저 봅니다. 자신의 수양이 없는 기술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거든요.”
그는 장애 예술가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당당히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여자 고수 문화재를 키워내고 싶은 꿈도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환경과 시대를 원망하기 전에 스스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봤는지 묻고 싶습니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기 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