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NGO는 지난 20년 동안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사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회서비스 NGO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대신 ‘대변형(advocacy)’ 활동을 하는 NGO가 많다. 여기서 대변형 NGO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권리 옹호 운동이나 사회적 캠페인을 주로 하는 단체를 말한다. 세계 NGO들은 국가를 대체하는 서비스 공급 유통로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나· 짐바브웨· 케냐에서는 보건과 교육 서비스의 40퍼센트를 NGO가 제공한다. 이들은 흔히 선진국의 개발 NGO들과 연관돼 있는데, 유럽 NGO의 50퍼센트 이상이 개발 NGO(제3세계를 지원하는)이다. -> 다만 한국의 경우도 IMF 이후 사회서비스 NGO가 빠르게 성장해 온 추세여서 앞으로는 이러한 특징이 흐려질 것으로 보인다.
* 한국 시민운동의 등장 배경
“한국의 시민운동은 1980년대에 유력했던 체제 변혁 지향적 운동이 비현실적이 됐다는 생각을 반영해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부상한 운동이다.”(19)
· 1990년대 초에 시민운동이 부상하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① 1987년 대중투쟁의 결과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불안하게나마 전환이 시작된 것, ② 옛소련 블록(동구권)의 붕괴이다. -> 활동가들이 대안 사회로 여기던 동구권이 붕괴하자 1990년대 초반 내내 ‘민주화’ 조건을 활용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겠느냐는 등의 낙담과 대안 부재와 혼란이 활동가들 사이에 깊게 퍼져 갔다. NGO 활동가 1세대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운동·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다. - 1980년대 중후반을 휩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변혁 운동론에 대한 근본적 의문과 비판이 1990년대 초에 제기됐다. - 또한 “조직 문화를 둘러싸고 그동안 유보한 회의와 성찰”도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당시에 팽배했던 스탈린주의적 조직 문화는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를 조직 노선에 대한 맹목적 복종으로 이해했고, 상명하달식 노선에 투사 개인의 인격을 완전히 종속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몰락 이후 활동가들은 이념성 대신 구체적 삶에 관심을 가졌고, 그리하여 생활세계를 새로이 발견했다(“별다른 실천을 못 하는 커다란 운동이 아니라 작은 거라도 바꿀 수 있는 실용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 시민운동은 동구권 붕괴에 따른 환멸감, 국내 상황 변화에 따른 변혁 전망의 상실이 결합된 배경 속에서 등장했다. 활동가들은 소련식 ‘마르크스주의’ 또는 주체사상이라는 “유일한 척도”를 내려놓고, 하나의 대안으로 ‘시민사회’에 주목했다. ‘시민사회론’은 시민운동으로 옮겨 가는 사람들의 이론적 근거였다.(25)
제2장 시민사회 개념의 재등장
<시민, 시민사회, 마르크스>
-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20세기 내내 별로 주목받는 사상이 못 됐다. 19세기 말부터 적어도 1970년대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유력한 사상일 때 키워드는 ‘시민’이 아니라 ‘계급’이었다. - 원래 시민사회는 대략 18세기 후반부터 중세 봉건사회를 대체해 등장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조희연 - “봉건적 질곡에서 해방되어 평등한 인격적 주체로 상정된 새로운 인간, 이것이 시민이며, 이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곧 시민사회” - 계몽주의자들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동일한 범주로 이해했다. 그들은 정부가 사회계약에 의해 수립된 것으로 믿었고, 정부를 수립한 이 계약에 의해 시민사회도 수립된다고 여겼다. - 헤겔은 최초로 시민사회와 국가를 뚜렷하게 대비시켜 이해한 사상가였다. 그는 시민 개념이 근대 시민사회의 내적 이질성을 은폐한다고 봤다. 헤겔은 시민사회를 근대 세계의 산물로 보았고, 시민사회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지, 사람들이 모여 정부를 형성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의 시민사회는 애덤 스미스의 상업사회였다. 고전경제학자들과 달리 헤겔은 규제되지 않는 시민사회는 이렇게 저렇게 체제에 기능 장애를 불러온다고 봤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갈등을 억제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한 국가의 필요성이 나온다. 헤겔은 국가를 “지상 위에 구현된 관념”의 최고 형태로,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모순이 해결된다고 봤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이기적 개인들이 사회제도를 통해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통합한다. - 마르크스는 헤겔처럼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별했지만, 헤겔과 달리, 국가를 특정 계급의 지배 유지 수단으로 봤다. 시민사회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국가도 통제한다. “정치권력은, 정확히 말하면 단지 한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조직화된 폭력일 뿐이다.” 맑스에게서 시민사회는 선이 아니라 변혁해야 할 대상이었다. 즉 새로운 사회는 시민사회를 규제하거나 개혁해서 이루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자체를 지양해서 이룰 것이다. - 토크빌은 조건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라는 두 가지 주요한 근대적 가치 간에는 특유이 갈등이 존재한다고 봤다. 토크빌은 미국 여행동안 민주주의가 다수의 ㅗ?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중요한 기반을 발견했는데, “자유 제도(free institution)”라고 부르는 시민적·정치적 결사체였다.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결사체가 조건의 평등이 일소시켜 온 강력한 사적 개인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이 정치적 삶 속에서 적극적 구실을 하는 것, 즉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직접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근대적 삶이 경제 체계로 결속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약점>
<시민사회 개념의 재등장과 그 함의> - ‘시민’이 ‘계급’을 대처하는 지위로까지 ‘복권’되는 추진력을 제공한 것은 옛 동구권의 붕괴였다. - 시민사회론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보다는 사회가 우선적인 가치를 지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는 될 수 있으면 작은 국가, 시민사회에 개입하지 않고 그 외곽에서 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국가는 이 시민사회에 군림하면서 시민들을 통치하는 별도의 주체가 아니라, 이 시민들이 행사하는 정치적 권리(참정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사회 내에서 다수의 공공적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지지를 이꿀어 낼 수 있는 세력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운영되는 것이다” “더 이상 국가는 국민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아니며, 그 통치자는 오로지 한시적인 권력 위임을 받은 존재에 불과” - 조희연 “20세기 접어들면서 서구에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이후, 특히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다시한동안 시민사회보다는 국가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 계기는 두가지 였는데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 체제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 역전현상을 다시 뒤집은 결정적 사건이 바로 동구권 몰락이었다. 여러 동구권 나라들에서 국가권력에 저항하여 다양한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시민 동원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이끈 주체즐이 사회주의 정권 목락 이후 선거를 통해 집권하여 전과 다른 모습의 다원주의적 사회체제를 이끌어 나갔다. (벨벳 혁명, 넬슨 만델라) - 저자는 조희연 교수에 반박 “동구권 붕괴 이후에 시민사회론이 부상한 것은 동구권 붕괴를 사회주의 실패로 여긴 당시의 대다수 좌파들이 이제 사회주의 사회라는 대안은 한낱 이상향일 뿐이므로 자본주의 내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해 진보를 추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론의 영향을 받은 서방 좌파들은 동구권의 위기가 마르크스주의 ‘경제 환원론’의 문제점을 입증한 것으로 여겼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해,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도 버리듯이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도 내팽개친 우를 범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안 사회로 독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제 동유럽 반체제 지식인들처럼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시민사회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민주주의 문제> - 민주주의가 특정한 제도적 형태인 근대 자유민주주의와 등치된다는 것이 문제다 - 자유민주주의 : 시민사회의 승리는 시장의 승리다. - 시민사회론의 좌파적 버전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는 듯하지만, 정당과 의회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견제·견인해야 하며, 민주주의를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하야 한다면 자본의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한다. -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한 맑스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중립적인 제도적 틀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가계급 지배의 특정 형태라고 역설한다. (저자) 시민운동가들은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참여민주주의로는 거대한 경제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이 부재라는 자유민주주의 구조적 결함을 해소할 수 없다. 대중적 노동계급 투쟁으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전하는 평의회 민주주의만이 그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시민운동은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직장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들만이 누리는 참여기회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생각의 위험은 노동자 대중운동이 분출할 때 이 운동이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무시한다며 운동의 반대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노동계급 투쟁의 급진화로 맹아적 형태의 소비에트 권력이 출현할 때, 자유민주주의 의회 제도는 반혁명 세력의 구심점이 돼 그들이 혁명을 탄압하는 것을 민주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가와 시장 문제> - 시민사회론은 국가가 시민사회보다 우위에서 시민사회에 개입하는 것을 현대 사회 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옛 소련식 사회는 물론 복지국가도 지지하지 않는다. - 맑스주의가 국가를 계급적대의 산물로 보고 궁극적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시민사회론은 국가가 시민에게서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박은 것으로 가정하며(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다), 시민사회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국가를 원한다. - (저자) 시민사회론의 이와 같은 국가관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뒷문을 열어 놓는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의 역할 축소와 시민사회부문에로의 권력이양이 ‘민영화’ 논리와 맞아떨어진다. 즉, 그들이 시장을 인류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틀로 수용한다는 점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시장은 정의·평등·민주주의 같은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 - 스탈린 체제(소련, 동유럽, 북한 등)에서 나타난 국가 강화는맑스주의와도, 진정한 사회주의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개인을 국가로 해소하고자 하는 전체주의적 의도를 맑스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왜곡과 스탈린이 행한 맑스주의의 끔찍한 변조의 결과일 뿐이다. 맑스는 국가의 사멸을 이야기 했다.
제3장 한국 NGO의 사상과 그 문제들
1.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경실련
- 김성국 : 오늘날 시민사회의 갈등과 투쟁은 국가주의적 억압과 통제에 대항하여 보다 질적으로 고양된 시민사회를 구축하려는 과정.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시민은 국가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특권층과 대립적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및 시민사회의 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계급주의 세력과도 대립적 관계에 있다. → 계급운동의 시민운동에로의 수렴이 세계사적 운동법칙이며 시민권 투쟁을 비롯한 제도적 개혁운동과 지역운동 강조
2. 진보 진영의 시민사회론 수용
- 민중운동은 시민사회 내의 국민적 동의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중운동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한편, 대국민 동의 형성을 위한 이데올로기 전략과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저자: 국민들이 동의할수 있는 방식, 합리적 비판과 정책 대안 제시 → 실천적 결론이 경실련의 것과 비슷> - 진보적 시민운동 (조희연) : 전투적 민중운동이 시민사회의 자율적 공간 확장에 결정적 기여해놓고,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있지 못한 결과 온건한 시민운동 부상/ 민중운동은 ‘다계급적 문제 영역과 소비, 생활상의 문제 영역’에 효과적으로 개입해 진보적 정책 대안 제시, 즉 계급적 대중운동의 형식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모순의 중층 영역인 시민운동 영역에 역량을 분산 배치해야/ 진보적 시민운동은 체제변혁적 민중운동과 연대해야→참여연대
3. 시민사회론의 그람시 해석 - 마르크스주의의 자유주의적 수정
- 그람시는 기존의 토대-상부구조 모델에 내장된 환원주의 경향을 극복하고 정치, 문화적 삶의 다원성을 포착하기 위해 시민사회 개념을 재구성 <저자:맑스주의는 경제결정론 아님> - 조희연 : 그람시가 맑스의 토대-상부구조론의 문제틀을 확장하여 시민사회를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으로 설정하고 그것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파악 - 저자 : 그람시의 시민사회 개념은 자본주의를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전복하기 위해 전략문제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반면, 시민사회론자들은 직접적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과 정책 대안 제시 같은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정당화하는 데 그람시를 활용하고자 했다. 대중투쟁과 거리를 두는 학자들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곡해 - 김호기 :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이 갖는 의의는 부르주아 국가의 지배가 억압적 장치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내 다양한 동의의 기제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는데 있다. 시민사회를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에 위치하는 하나의 독자적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시미낫회가 갖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 시민사회가 강한 서구에서는 헤게모니 획득하기 위한 진지전 주요
<그람시에 대한 곡해 바로잡기> ① 그람시는 헤게모니 투쟁을 단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만 보지 않았다. “대규모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은 항상 대규모 경제 현상에 뒤처진다” ② 그람시는 피억압 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으 ldldlr을 위한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지 않았다. ③ ‘진지전’의 중요성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옥중수고에서 그람시는 분명히 ‘진지전’을 ‘공동전선의 공식’과 같은 것으로 봤다 ④ 그람시는 헤게모니 투쟁 자체로 국가권력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진지전이 유력한 시기에조차 기동전의 전술적 기능에 대해 얘기했고, 여전히 무장봉기를 투쟁의 결정적 계기로 여겼다. - 그람시의 계급적 사고는 그람시를 주목한 진보 학자들의 애초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그람시의 계급 중심성을 이어받기보다 변형을 택했다. 정태석 “이런 현실의 변화는 ‘계급 중심성’에 기반을 둔 그람시적 시민사회 개념으로는 포괄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는 다양한 적대들으 l등가적 접합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고, 비판이론적,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도 수용해야 한다
4. 하버마스와 소통
- 19세기 중반 이래 국가 개입의 증대하면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붕괴위기. 국가개입의 증대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허무는데 20세기 들어서 더욱 가속화/ 국가는 경제뿐 아니라 교육,문화,주거,의료 등 사적영역에까지 개입 → 경제와 사생활 영역이 관료제에 내재한 조직, 효율성, 목적 합리성의 논리에 지배되는 것 (생활세계의 식민화) - 국가 개입의 증대 과정은 공론장의 ‘탈정치화’뿐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도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 민주주의는 실질적 의미를 상실 - 현대 서구사회의 위기를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결과로 분석 - 의사소통적 합리성(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사회는 해방될 수 있다.
<코헨, 아라토와 ‘영향의 정치’> - 복지제도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우려 - 국가-경제(시장)-시민사회의 3영역 모델 제시 - 시민사회를 사회변혁을 위한 시민 행동의 정의로운 공간으로 개념화 - 사회운동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증대와 국가가 법적, 제도적 개혁을 하도록 영향을 행사하는 것의 두가지 목표를 가져야 한다. - 시민사회가 국가와 시장 영역의 자율성과 고유한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자기제한적 급진주의’라고도 한다.→ 권력감시운동
5. 신사회운동론과 그것의 한국적 적용
- 하버마스 : 복지국가의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는 신패러다임의 중심을 이루는 저항 형태 :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대체 혹은 보완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 전략 → 갈등이 생활 형태의 문법에 대한 질문에서 점화 - 신사회운동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이론인 조절이론은 포드주의의 위기를 신사회운동의 배경으로 설명 → 노자간 타협으로 계급 갈등이 제도화 되어 노동운동은 종언을 고하고, 사회 갈등과 저항의 거점은 생산영역에서 사회,문화적 재생산 영역으로 이동 - 하버마스와 조절이론의 신사회운동론은 사회운동의 주체로 신중간계급 강조 (교육수준, 직업적 숙련, 지적 노동, 시간적 금전적 여유 덕분에 정치활동 용이) - 새로운 주체는 기존 노동운동에서 배제된 ‘삶의 정치’, ‘생활정치’의 다양한 이슈 다룸 - 라클라우와 무프는 주체의 다원화 강조 (노동계급을 핵심적 행위 주체로 보지 않음) : 맑스주의가 계급투쟁과 노동계급을 특권화하는 환원주의 오류 범함. → (저자) 착취에 바탕을 두는 생산관계가 사회의 중심적인 적대를 결정하는게 아니라고 보는 데서 비롯 → 급진민주주의 제시 : 사회주의는 계급 해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여겨짐, 연대 중요(중심이 없는 연대)
<한국 신사회운동의 증장과 여전히 강력한 ‘구’사회운동> - 한국 시민단체들은 노동운동이 여전히 강력한 조건 속에서 노동운동과 공존. 이것은 시민단체의 성장에 어느 정도 제약을 주는 조건이자 한국 시민운동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