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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이○○ 선배는 5년인가 형을 받았지만, 다음 해 1월 석방돼. 국제인권단체의 압력에 굴복한 거지. 미국도 상당히 강한 압박을 넣었을 거야. 물론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에 맞이 죽자 국민이 보여준 애도의 물결에 감명을 받아서일 거라는 평도 있어. 당시 케이비에스에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내내 틀어주던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지금껏 내 애청곡이 되어 버릴 정도였으니 알 만하지. “소녀”는 무슨 얼어 죽을 소녀야. 이○○ 선배는 석방되고 나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용접기술을 배웠다고 해. 노동운동에 헌신하려는 깊은 뜻이 있어 기술을 배운 것 같지는 않아. 그냥 학교에서는 제적당하고 순창에 내려가서 농사짓자니 주위 눈도 있고 해서 먹고 살라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재판 기록을 봐도 그래. 어떤 조직적인 결정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이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어찌 되었든 이○○ 선배는 용접 기능 자격증을 취득해 부천에 있는 공장에 취업했어.
몇 년을 그렇게 기능공으로 지냈을 거야. 내가 교육지표사건으로 제적당하고 소위 빵잽이들과 어울릴 때 어떤 선배가 이○○라는 문리대 학생회장 출신 선배가 부천에서 공장 생활을 한다고 말해주더라고. 나에게도 은근히 기술 한 번 배우면 어떻겠냐고 떠보더라고. 나는 정중히 사양했지. 이○○ 선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79년 5월인가 6월이었어.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집에 무장강도가 들었는데, 강도 일당 세 명 중 둘은 도주하고 한 명은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거야. 소위 동아건설 최회장 무장강도사건이지. 그 한 명은 경비원을 칼로 찌르고 경찰이 오는 동안 공범들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려다 체포당했다는 거야. 놀랍게도 체포된 그 한 명의 강도가 다름 아니라 이○○ 선배였어. 도주한 두 명의 강도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어. 현장에서 잡힌 범인이 공범에 대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지. 신문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용접공이 재벌 집에 들어가 강도짓을 벌이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보도되었지. 근데 그 범인이 전남대 제적생이라고 말이지. 제적당하고 얼마나 살기가 어려웠으면 그런 몹쓸 짓까지 저질렀을까.
○○에서 여론은 좀 달랐던 거 같아. 이 선배가 아무려면 강도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겠지. 뭔가 다른 게 있다는 확신으로 그게 뭐냐를 두고 설왕설래했어. 당시 ○○동에 거주하면서 인기소설 장길산을 연재 중이던 소설가 황석영은 그 사건을 소재로 삼아 소설 전개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집어넣기도 해. 원래 산적들 이야기로 전개되던 소설에 갑자기 한양 종놈들이 주인 양반을 살해하는 살주계의 활약상을 덧붙인 거야. 그 주인공이 산지니인데, 바로 이 ○○ 선배를 모델로 한 인물이야. 이거는 내가 황석영 작가에게 직접 들은 거니 확실해. 알 만한 사람들은 모이면 쉬쉬하면서 수군거렸지. 도주한 두 명이 모두 광주 출신일 거다. 광주에 검거 선풍이 불 거다. 그래서 미리 도피한 선배도 있었어.
경찰은 혈안이 되었겠지. 전남대 문리대 학생회장까지 지낸 자가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그렇지 아무려면 강도짓을 하겠는가.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당시 경기도경에서 전남도경에 수사 협조 요청을 했다더라고. 이○○의 모든 것에 대해 샅샅이 뒤지지 않았겠어? 그래도 아무런 소득이 없자 사건은 단순 형사사건에서 보안과로 넘어갔어. 악명 높은 이근안이 조사를 담당하게 된 거야. 그로부터 보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조지고 또 조졌다고 해. ○○형 말로 손발톱 20개가 다 시커메지도록 전기 고문을 받았다는 거야.
먼저 공범이 누구냐고 묻더래. 용접 학원 다닐 때 같이 배운 동생들인데 일자리를 못 잡아 어려운 처지를 알고 범행에 가담시켰는데, 정확히 누군지는 모른다고 잡아뗐다고 해. 거짓말인 것이 분명해도 어쩔 것이여.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그렇게 말하는 데야. 왜 범행을 저질렀냐는 물음에는 용접 일 14시간을 해도 하루 세끼 먹을 것 없는데 재벌 회장 놈은 여배우 여가수 따먹으며 호의호식하는 꼴이 보기 싫어 그놈 재산 좀 빌어다가 먹고 살라고 그랬다고 악을 썼다는 거야. 보름 동안 온갖 고문을 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서 회유하고 협박해도 대답에 허점이 없자 이근안은 그만 포기하고 사건을 다시 형사과로 넘겼더래. 바빴던 거지. 당시 전국적으로 공안 사건이 좀 많았어야지. 서울 어느 아파트단지 입구에 박정희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어. 종로 네거리에 유신을 비난하는 유인물이 뿌려지기도 하고. 서울 시내 곳곳에 말이야. 전남대학교 본부 화장실 벽에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는 유인물이 붙어 있기도 했어. 광주 충장로에 박정희를 비난하는 유인물이 날리기도 했지. 그거야 내가 했지만 말이지. 어찌 되었든 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어. 전국 대학생들은 다시 연합 시위를 계획했지. 사전에 탄로가 나 국문과 이○○이 남영동에 끌려가 잣대로 국부를 얼마나 맞았는지 성불구가 되기도 했어. 좌우지간에 때는 암흑시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