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하장으로 가는 버스에 할머니 한 분이 다라이 가득 골파를 이고 탑니다 차안은 찡그린 눈들로 가득합니다 땀을 닦는 할머니의 모습이 물에 씻은 파뿌리 같습니다 덜덜거리는 차 속에서 그 푸른 길을 따라 갑니다 나는 국 민학교 이학년이었고 가을 운동회가 열려도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 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층계다리밭에 서면 푸릇푸릇 골파들이 푸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어린골파들을 뽑 아 낭떠러지에 버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지 요 나는 절벽 끝에 부는 바람만 좋아했습니다 어머니는 끝내 어린 골파가 자라 종자가 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무렵 몇 자루나 되는 골파를 다듬던 할머니 이 지독한 슬픔의 냄새를 언제쯤이면 맡지 않아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할머니 손은 마른 흙을 닮아 갔습니다 푸른 골파밭 고랑이에 어둠도 저린 다리로 서던 저녁, 어둠이 나를 다독여주었 고 그 어둠으로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덕하장에서 내리는 할머니의 뒷모습 에서 그리운 고향밭 냄새가 전해져 옵니다 채소로 가득했던 다라이에 손녀 에게 줄 꽃고무신이 들어 있겠지요 남새밭에 앉아 손녀를 기다리던 당신, 죽기 참 좋은 날씨구나! 끝내 내 몸의 일부처럼 흐르던 당신이 혈관을 타고 자박자박 젖어 듭니다 아직도 나는 흙이 잔뜩 묻은 어린 골파 같다는 생각 을 합니다 언제쯤 튼실하게 뿌리 내릴 수 있을까요?
첫댓글슬픈동화를 읽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어린 아이가 슬픔을 이겨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어린 골파'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니 소설로 말하자면 통과제의적인 내용으로 봐야겠습니다. '덕하장'의 전반적인 풍광을 통해 묘사되는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가 섬세하다는 것, 시에서 큰 무기가 될 수 있겠군요.
첫댓글 슬픈동화를 읽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어린 아이가 슬픔을 이겨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어린 골파'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니 소설로 말하자면 통과제의적인 내용으로 봐야겠습니다. '덕하장'의 전반적인 풍광을 통해 묘사되는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가 섬세하다는 것, 시에서 큰 무기가 될 수 있겠군요.
소름이 돗는 시 입니다. 좋네요.^^
저 또한 흙이 잔뜩 묻은 어린 골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쯤 튼실하게 뿌리 내릴 수 있을까요?......
^^
안녕하세요, 김혜경님? 제가 알고 있는, 오래전 어느 사이트에서 얘기 나눴던 그 분이 맞죠? ^^
요즈음 나이가 들어 기억이...혹 시안 창작교실 사이트 맞나요?
아니아니요. ㅁㅂㅎ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