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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적십자사경기지사협의회 원문보기 글쓴이: 조남홍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인터뷰
한국이 나은 세계적인 외교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정자(이하 총장으로 부른다). 반 총장의 배출로 국제외교가에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고 한국 브랜드의 신뢰성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반총장은 일찌감치 전 세계 외교의 수반을 맡을 만큼 능력이 탁월했다. 그래서 외교가에 나돈 반총장의 평은 ‘Ultimate diplomat' 즉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최고의 외교관‘이었다. 조화를 중시하는 외교관의 덕목은 이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고 반총장은 이런 능력이 탁월하였다고 한다.
반총장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외교관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화를 좀처럼 내지 않으며 맡은 일은 꼭 하고 마는 외유내강형이었다. 반총장은 충주고에 다닐 때 충주여고에 다니던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RCY 활동을 하였다. 유엔 사무총장 인수위 가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정자를 찾아 뵙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대담은 11월 11일 외교통상부장관 공관에서 이루어졌다. (대담 : 하춘도, 사진 : 성준호)
하 : 대한적십자사에서 왔습니다. 유엔사무총장 당선을 축하드리면서 총장님의 얘기를 듣고 싶어 왔습니다.
- 반총장 : 반갑습니다. 저도 청소년적십자출신입니다. 요즘에는 RCY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JRC라 불렸죠. 저는 학창시절 적십자 활동했던 것을 마음에 잊지않고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 : 적십자와 유엔은 조직이 달라도 공통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 반총장 : 예. 명칭이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다르지만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정신은 같습니다. 유엔과 적십자는 지구적 조직으로 거의 모든 나라가 가입돼 있는 것이 공통점으로 꼽힐 것 같군요. 국제연합헌장 제1조는 국제연합의 목적으로서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할 것, 여러 국가 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킬 것,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도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국제협력을 달성할 것 등을 들고 있습니다. 적십자 이념도 그렇지요. 적십자기본원칙 중 ‘인도’는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며 인간존중을 보장하는데 있다고 하지요. 적십자는 모든 국민간의 상호이해, 우의, 협력 및 항구적 평화를 증진시키려고 합니다. 유엔과 적십자는 평화와 인도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 : 우리나라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배출되어 청소년들이 유엔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얘기를 좀 해주시죠.
- 반총장 :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랐습니다. 학교 가고 놀고 그렇게 했죠. 뭐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정연진 선생님께서 삶의 자세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죠. 3학년 우리반에서 파키스탄 초대 평화유지군 사령관이었던 안충준 장군과 제가 배출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교육 방법이 남달랐다고 봐야죠.
하 : 정연진 선생님을 만나 뵈니 총장님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시더군요. 선생님께 얼마 전에도 연락을 드렸다고 하던데 계속 연락을 하셨는지요?
-반총장 : 아니 선생님께서 제가 4학년을 마쳤을 때 교직을 그만 두고 청주로 시집가셨어요. 그중학교 무렵에 연락이 돼 초등학교 동창들과 선생님 댁에 가서 놀고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어요. 그 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하 : 그런데 어떻게 연락이 되었죠?
- 반총장 : 정연진 선생님 친정 조카가 외무고시를 패스하였어요. 우연히 얘기를 하다가 정연진 선생님조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이후 쭉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하 : 총장님은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아주 좋으시다면서요? 적십자 주최 영어대회에서 상을 받고 미국에 머무를 때 하숙했던 하숙집 아주머니를 장관 시절 초청한 것이 화제가 되었던데요.
- 반총장 :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40여 년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계속 편지를 보냈죠. 좋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 : 정연진 선생님 얘기를 계속 해주시죠.
- 반총장 :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연락을 하였어요.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카메라로 정연진 선생님 댁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하 : 어머님에 대한 효심이 대단하시다고 하던데요. (반총장 부친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 반총장 : 효심이라기보다 어머님을 항상 생각하며 살려고 하는 거죠. 어머니는 새벽 3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자식 잘 되기를 빌어주셨어요. 제가 조금 나태해 지려해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오늘 제가 이룩한 모든 것은 어머니의 정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하 : 중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 반총장 : 처음 영어를 배우잖아요. 외국 사람들과 영어로 말이 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죠. 그때는 회화가 아니고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거였어요. 충주비료 공장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가 영어를 배우려고 했어요.
하 : 영어 숙제를 열심히 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던데요.
- 반총장 : 선생님이 영어 문장을 써 오라고 하면 문장을 쓰면서 통째로 외워 버렸어요. 그러니 성적이 안 좋을 리가 있나요?
사람은 인생의 고비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정연진 선생님이 삶의 지표를 잡아 주었다면 고등학교 때 은사 김성태 선생님은 세계를 향한 시야를 넓게 해주었다.
하 : 충주고등학교로 진학하셨죠.
- 반총장 : 당시는 5.16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죠. 충주농고에 계시던 김성태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치려고 부임하셨지요. 김성태 선생님은 영어를 아주 잘 가르쳐 주셨어요.
하 : 고등학교 때 RCY 활동을 하셨더군요.
- 반총장 : RCY활동으로 내 삶의 좌표가 결정되었고 RCY로 인해 외교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RCY를 아주 사랑합니다. RCY는 내 인생입니다.
하 : RCY와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시죠.
- 반총장 : 다른 매스컴에서는 안 다루었던데 제 아내(유순택 여사)도 충주여고 RCY 출신입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고 학생회 간부가 되면 RCY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여러 학교가 모여 연합으로 RCY활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귀국하여 찍은 기념사진을 보면 충주사범에 다니던 이경상(현재 캐다다 거주)군도 있어요. 이경상군도 RCY활동을 하였던 거죠. 1학년 때부터 RCY 활동을 했는데 김성태 선생님이 열의가 있어 활발히 진행되었죠. 당시에는 주로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나갔고 애육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지금도 RCY정신을 가지고 있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RCY활동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RCY활동은 리더쉽, 봉사정신, 조직적응력을 기르는데 아주 좋습니다.
하 : 반총장께서 영어를 잘했다고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께서도 말씀을 하시던데요.
- 반총장 : 서총재께서 한국일보(2004년 4월 13일자)에 회고록을 게재하셨는데 그때 제가 농부의 아들이고 영어를 아주 잘 했다고 하셨대요.
하 :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 RCY활동 덕분이라고 하던데요.
- 반총장 : 적십자활동을 하다 미국으로 가는 적십자영어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1차를 충북에서 치고 2차는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치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영어 시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김성태 선생님께서 아주 좋아하시더군요.
하 : 적십자사에서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반총장 : 당시는 모두가 어렵게 살 때 아닙니까? 교장선생님께서 저의 미국 연수를 협의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 본사로 출장을 가려고 하는데 여비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에서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에 갈 때도 충북지사에서 예산을 지원해 줘 당시 충주여고 3학년이던 유순택 학생이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었지요. 지금의 아내입니다. 하하
하 :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셨다고 했지요?
- 반총장 : 학교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양복을 맞춰 주셨어요.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의 이도영 선생님도 끊임없이 격려를 해주시고 도움을 주셨어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목이 멥니다. 어머니는 용돈으로 60불을 마련해 주셨어요. 집안에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아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고마움을 다시 느낍니다.
하 : 시험을 치고 미국으로 가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지요?
- 반총장 : 그 당시에 찍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미국으로 간다고 머리를 길렀어요. 그리고 영어 공부에 더욱 치중하였습니다. 정말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하 : 미국으로 간 것이 도약의 발판이 되었군요.
- 반총장 :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던 곽영훈군(환경그룹 회장), 경기여고 정영애, 경남여고 신은주양과 함께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 가서 여러 가지로 많이 놀랐습니다. 미국에 머무르면서 경험했던 것을 대한적십자사 사사에 적어 놓았던 글이 있지요. 당시 미국은 풍요로웠고 미국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고 살고 있더군요. 세계는 넓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저의 시야가 확 넓어졌습니다.
하 : 외교관의 꿈이 미국에서 자랐는지요?
- 반총장 : 한국에서 꿈꾸었지요. 제가 자라는 시기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철없을 때 6.25를 겪었던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꿈 많던 청소년 시기에 4.19와 5.16을 겪었습니다. 혼란은 왜 생기고 평화는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지요.
하 : 사춘기의 갈등이 있었군요.
- 반총장 : 평화는 총칼로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등을 할 수 없는 무력대신에 외교력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하나마 전쟁없이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외교력에 대한 염원이 싹텄습니다.
하 : 미국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는지요?
- 반총장 :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전 세계에서 모인 학생들과 생활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학업, 이성, 평화, 전쟁, 미래 등 온갖 주제에 대해 논의를 했지요. 민간외교사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학생들과 함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듬직하게 잘 생겼더군요. 케네디 대통령을 보고 외교관의 꿈이 굳어졌습니다.
하 : 외교관의 자질은 무엇인지요?
- 반총장 : 특별한 자질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직업에 맞는 성격은 있겠지요. 외교관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 그 나라의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공부를 해야합니다. 어학은 말할 것도 없고요. 또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항상 부드럽게 웃고 남들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죠. 웃는 낯에 나쁜 말이 안 옵니다. 또, 국가관이 투철해야 합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소속감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 : 노신영 전 총리로부터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하시던데요.
- 반총장 : 그 분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선후배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고 연락이 오면 반드시 답장을 해주는 것은 그 분에게 배운 것입니다. 또 노총리께서는 바쁜 와중에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반기문의 이름이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다음에 자세히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분입니다.
정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반총장 : 학창 시절 RCY활동을 하면서 배웠던 봉사정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곧 유엔으로 떠납니다. 유엔에서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봉사를 잘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한완상 총재님과 RCY 단원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기 : 반총장은 총장 경선 시에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이 과연 카리스마가 필요한 시대인가?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 박사는 21세기는 스피치와 리더쉽의 시대라고 했다.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는 CEO, 안철수씨는 리더십의 핵심은 원칙과 일관성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문유엔사무총장은 총장업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성실한 자세는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몇 십 년 동안 사람과 잊지 않고 만남을 유지하는 것은 일관성있는 태도가 없으면 결코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정연진 선생님(초등학교 담임선생님) 말씀
정연진 선생은 충주사범학교 여자 졸업생 중 1등을 하여 충주교현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반총장을 만나게 되었다. 젊고 열의가 있어 학업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을 밤늦도록 공부시켜 반총장 학급이 항상 1등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청주에 살고 계시는데 반총장으로부터 가끔 안부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반총장은 유엔사무총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밤늦게 정연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그 사실을 미리 알려드렸다. 정연진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자.
“반총장은 다른 학생과 조금 달랐어요. 어린 나이에도 남을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대단했지요. 그리고 항상 조용했어요. 어린 학생인데 안 놀 수 있나요?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애를 많이 썼고 성적도 항상 최고였죠.” 정연진 선생님은 유엔의 문무관을 배출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얘기를 이어간다. “하루는 다른 아이가 반총장 도시락을 먹었어요. 반총장더러 ‘너 어떡할래?’ 하니 ‘선생님. 저 배 안고파요.’하며 미소를 짓더군요. 반총장의 지금 모습이 어릴 적 모습과 똑같아요. 항상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었죠. 외유내강이에요.”
김성태 선생님(고등학교 영어선생님) 말씀
김성태 선생님은 반총장의 영어 실력이 놀라웠다고 한다. 김성태 선생님의 회고다. “당시 영어 점수가 70점 이상이면 연.고대를 갈 실력이 됐어요. 반총장은 시험을 치면 한 번은 백점 한 번은 한 두개 틀리더군요. 그래서 언젠가 반총장의 영어 실력을 써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김성태 선생님이 RCY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RCY 학생들은 대부분이 학생회 간부출신이었고 공부도 잘 했어요. “
당시에 사회가 혼란스러웠는데 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수선했다. 마침 대한적십자사에서 영어 경시대회를 해 성적우수자를 미국으로 연수 보낸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김성태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과 상의를 하여 학생들을 대한적십자사 영어경시대회에 꼭 참가시키자고 했다. 첫째 반기문 학생처럼 영어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있어 경시대회에 우승할 자신이 있었고 둘째로 여기에 성공하면 학교가 면학분위기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치르는 시험이 없어 이 영어시험으로 전국적인 실력을 평가해 보고 싶었다. 나중에 알아 본 바로는 반총장이 영어 시험을 가장 잘 치러서 김성태 선생님이 아주 흐뭇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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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적십자사경기지사협의회 원문보기 글쓴이: 조남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