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보는 눈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가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의사에게서 이런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되살리려면 당신의 시력이 손상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선택은 당신이 하십시오. 기억을 되찾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두 눈이 멀쩡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심사숙고한 후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억을 되살리기보다는 제 시력을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느냐를 보기보다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문은 이미 닫혀 있지만 미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나 성공에 계속 얽매여 있다면 앞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과거에 지배받지 않으면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몇 번 노력하다 실패한 후에는 다시 시도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이 멀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조차도 기꺼이 좋은 결과를 낳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 성공하는 그리스도인 / 어윈 루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미국의 어린 소년 하나가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선고받은 그날부터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의 내용을 어린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구절을 영어로 읽으면 꼭 다섯 글자입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꼽으면서 이 말씀을 가슴에 심었습니다. 특별히 네 번째 손가락을 꼽을 때는 아들의 손에 힘을 주어 쥐면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너의 목자가 되신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거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너의 목자로 신뢰하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두 시간 후, 이 어린 소년은 눈을 감았습니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영원한 집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받을 수 있는 주의 도움이 있습니다. 부르짖어 구하기만 하면 주께서 달려오십니다. 그의 지팡이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새벽 사슴의 노래 / 이동원
**양을 아는 목자
한 남자는 어떤 양치기가 모든 양들을 각각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사실인지 직접 가서 물었습니다. 양치기는 한 양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른 양들은 풀을 뜯으며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있는데 한 마리 양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같은 방식으로 목자는 자기 주위로 12마리를 불러냈습니다. 이를 본 방문자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양들을 분간할 수 있지요? 양들 모두가 다 똑같아 보이는 데요.” 목자는 자기 양들 중에서 흠 없는 양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각각의 결점으로 자기의 모든 양을 구분했습니다. 목자는 그 남자에게 어떤 낯선 사람도 양을 속일 순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목자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고서 양떼에게 갔습니다. 그는 가장해서 목자의 목소리와 아주 비슷하게 말해 보았으나 양떼 중 어느 한 마리도 그를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목자는 만약 양의 건강이 좋지 않게 되면, 따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믿음에서 병들고 약해지면, 그들을 찾아오는 아무 선생이나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어려운 일들을 겪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드러운 목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 / 디 엘 무디>
**비난으로부터의 휴가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슈퍼에 들렀던 마크는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동생 제프가 ‘대폭 할인 판매’라고 쓰여진 과자봉지를 집어들자 형 캐빈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속지 마. 그거 다 가짜야. 어른들이 그렇게 써놓기만 하는 거야.” 상점에서 세일을 하면 원래 가격보다 좀더 높게 가격을 붙여놓았다가 더 많이 깎아서 파는 것처럼 속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간 캐빈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마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캐빈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물었다. “누가 그러던?” 캐빈의 대답은 너무도 당당했다.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른들도 다 그렇게 말하던 걸요.” 그 날부터 마크와 그의 가족들은 한 가지 약속을 정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그 날만큼은 부정적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 즉 ‘No negative day’로 정했다. 그러다 혹시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을 지적당한 사람은 부정적인 언어를 보상할 수 있을 때까지 세 가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만 설거지 벌칙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것이 마크 랩스배리의 가정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지켜지고 있는 ‘비난으로부터의 휴가’다. <인생을 살맛나게 하는 99가지 희망 공식 / 이진호>
**그리스도인이 슬픔에 빠질 때
그리스도인이 슬픔에 빠질 때, 그는 병들어 있습니다. 다른 신자들을 일으켜주거나 격려하지 못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좋은 감화를 주지 못합니다. 영적 능력과 영향력은 격감됩니다. 조지 뮐러는 자주 이렇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나의 첫 과제는 내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복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 나는 오늘 두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쟁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은 입대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이것은 체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므로 우리는 이 일에도 실제로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사랑하는 남편이 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은 어떤 부인이 보낸 것입니다. 그 부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일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이 일을 함께 나누며 그분이 가장 최선의 일을 하셨다고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빌은 마지막으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그것이 합당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요!’ ” 이제 당신의 엉킨 상태도 개의치 말고 의도적으로 당신의 시선을 온통 주님께 돌리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면, 이것이 위대한 찬송입니다. <이런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 앤 오틀런드>
**나는 영원히 살테야
월남 이상재 선생은 YMCA 운동의 선구자였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테야 !”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에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살려주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셨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심령은 살아난다. 생명을 얻은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죽어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프로포즈 / 박상훈>
**나를 믿으라
나는 스스로 신실하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도 신실하다. 내 아들의 피에 대해서도 신실하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스러운 자녀인 너에게도 신실할 것이다. 네 믿음을 나에게 두면 둘수록 너는 나의 신실함을 더 많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네가 기뻐하리라. 내 말을 더 많이 믿으면 믿을수록 너는 네 삶 속에서 내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사역에 네 믿음을 더 많이 두면 둘수록 너는 죄와 수치와 슬픔과 병약함과 두려움과 실패로부터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네 안에 있는 영혼의 존재는 내가 약속했던 모든 것을 너에게 줄 거라는 나의 보증이다. 너에 대한 영혼의 인침은 내가 너를 이미 값을 주고 샀다는 의미이며, 네가 나에게 속했음을 보증하는 것이다. 너를 위한 나의 사랑을 더 많이 믿으면 믿을수록 너는 삶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주어진 상황을 이겨내고 승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네 안에 내가 시작했던 선한 사역들을 마칠 것을 나는 약속했다. 대충 그만하면 만족스럽다는 생각으로 너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 그리고 네 안에서 모든 것을 했기 때문에 너는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기뻐하라. <하나님의 마음 / 콜린 어퀴하트>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믿느냐, 어떠한 신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가장 잘 말해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조, 우리의 신앙은 나의 행동을 결정하기에, 나의 신조는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정확하게 평가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소련 공산치하에서 각급 학교의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화답함으로써 학교수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련 공산주의의 스탈린 시대에는 하루에 4만 명의 사람들이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이나 숙청당하고, 아니면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으로 끌려간 끔찍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입으로는 믿으나 행동으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 되며,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과 이웃에 유익이 되는 삶이 아니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 / 계지영>
**내게 있는 향유 옥합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제자들이 그녀를 그렇게 혹독하게 비난했을 때 마리아의 마음은 많이 다쳤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향유를 팔아 현금으로 바꿔서 그것으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하거나, 그것을 저축해서 노년을 대비한다거나,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자신을 가꾸는 일에 쓸 수 있었으며, 너무 오래 두어서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선택권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처럼 그렇게 경제적이고 실리적이지 않다. 그분의 창조물에서 보면 얼마나 낭비이고 대범한가? 그러나 현금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것들이 있다. OMF의 선교사 중 하나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암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외동딸이 선교사로 막 파송될 때였다. 당연히 그 딸은 어머니 곁에서 간병을 하기 원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향유 옥합”을 간직해둘 수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방향이 자기 하나 때문에 못쓰게 될 수 있었다. 딸이 출발을 연기하지 않도록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자신의 치장에 쓰는가 아니면 그분의 발에 붓는가? <주님의 제자 학교 / J. 오스왈드 샌더스>
**하나님께 맡기는 삶
빌 브라이트는 자신의 삶을 예로 들여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내게는 두 아들이 있다. 막내는 여섯 살이고 큰 애는 열 살이다. 나는 일이 끝나고 집에 가서 레슬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지만 일로 인해서 멀리 여행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이 밖으로 뛰어나와 ‘아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라고 한다.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하면서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을 내 손아귀에 넣고 흔들으면서 ‘좋아, 네가 오늘 한 이 결심을 평생 동안 후회하게 해주지! 너에게서 모든 즐거움을 빼앗아가겠다’라고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선교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는다. 사탄이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이런 생각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헌신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확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진정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시다. 우리는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예정된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은 자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 안에 우리 삶을 맡겨야 한다.”
<제자훈련 셀프 스터디 / 로버트 쿨만 편집>
**부서지고 깨어지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부서지고 깨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통과 죽음의 삶을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는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사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부서지고 깨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어진 육체를 가지고, 부서지고 깨어진 가슴을 가지고, 부서지고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또는 부서지고 깨어진 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깨어진 인간 관계로 인하여 고통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서진 삶을 우리의 죄 많음을 상기시켜주는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여 이것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여 우리의 순수함과 죄의 정화를 위한 하나님의 복에 예속시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영원으로부터 선택받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부서지고 깨어지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의 생명이 번식하여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위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되고 축복받은 자녀로서의 삶을 살 때, 우리의 작은 생명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위하여 부서지고 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위해 부서지고 깨어진 삶을 살 때, 우리 생명은 자자손손 계속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영혼의 양식 / 헨리 나우웬>
**나의 아들을 사랑하면
아들을 몹시 사랑한 부유한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내는 아들을 남편의 손에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아들을 키우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들을 돌보아줄 보모를 구했다. 보모는 아이를 마치 자신의 아들인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 그들에게로 왔다. 그런데 그 아들은 병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얼마 후 깊은 슬픔에 빠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유언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재산은 가장 비싸게 사가는 사람에게 넘겨지도록 경매에 붙혀졌다. 보모는 그 집의 비싼 가구나 골동품을 살 수는 없었지만 경매에 참석했다. 거실에 걸려 있던 소년의 사진을 원했기 때문이다. 경매에 올라온 그 사진은 단지 몇 센트에 불과했다. 그 사진을 집으로 가져간 여인은 사진 뒷면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소년의 아버지가 손으로 쓴 유언장과 증명서였다. 거기에는 “누구든지 이 사진을 살 만큼 나의 아들을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의 모든 재산을 유산으로 남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아들을 사랑할 경우 우리를 축복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또한 신실한 자들을 위해 준비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상급 또한 기다리고 있다. <영원한 상급 / 어윈 W. 루처>
**겸손하라
명예욕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랍비에게 찾아와 말했다. “글쎄,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저에게 ‘너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랍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한후 그를 돌려보냈다. 얼마 후에 그 사람은 다시 찾아왔다. “매일 밤 같은 꿈을 꿉니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제가 큰 지도자가 될 운명이라고 하셨어요.” 랍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겠네. 혹시 자네 부친이 꿈에 한 번 더 나타나시면 자네가 지도자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말씀 드리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네가 아니라 자네가 지도할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서 그렇게 말씀해달라고 부탁하게.” 상부의 언질이나 일방적인 결정, 혹은 갑작스런 성공이 진정한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과시하고 충성을 강요해서는 결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진지한 결단과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고 겸손한 태도를 통해 진정한 리더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당신이 지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뿐 아니라 충성의 서약까지 받을 정도로 칭송받을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진정한 리더의 힘은 상사인 당신의 권위나 자만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용납, 따뜻한 배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즈니스 바이블 / 웨인 도식>
**한 영혼을 변화시킨 양고기
랙스 박사는 런던의 동부 지역에서 38년간 목회하던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노인이 몹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애쓰던 랙스 목사님은 냉랭한 난로와 바닥나기 시작한 식량을 알아챘습니다. 그 집을 나선 목사님은 두 덩어리의 양고기를 그 집에 배달해주도록 주문하였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은 또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전보다는 약간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목사님은 또다시 양고기를 주문하였습니다. 세 번째 심방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노인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결과 랙스 목사님은 노인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랙스 목사님은 설교 부탁을 받아 며칠 동안 런던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목사님은 그 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랙스 목사님에게 전해주십시오. 이제 나는 곧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이처럼 나를 변화시킨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 주셨던 양고기였다는 사실입니다! ” <신발 속의 모래 / 배굉호>
**심은 대로 거둡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제과업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 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을 하던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그 제과업자가 파는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 1파운드짜리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선한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세미꼴 이야기 / 정명식>
**감정의 기복 속에서
한 공수부대 요원이 처음으로 공중 낙하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교관이 그에게 말했다. “제로니모라고 외치면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그런 다음 줄을 잡아당겨. 그러면 낙하산이 펴질 것이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경우, 남아 있는 나머지 줄을 잡아당기라. 그러면 보조 낙하산이 펴질 것이다. 땅에 내리면 너를 부대로 데려다줄 트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군인은 “제로니모”라고 외치면서 뛰어 내리며 낙하산 줄을 잡아당긴 후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낙하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보조 낙하산 줄을 잡아 당 겼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펴지지 않았다. 그는 소름이 끼쳐 아래 땅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교관이 말한 대로 낙하산이 안 펴진 걸 보면, 장담하건대 저기엔 트럭도 없을 거야! ” 이 이야기에서 두 개의 낙하산이 모두 펴지지 않은 것과 트럭의 존재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일어난 것은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적 반응이었다. 이러한 순간에 스스로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느낌을 잃어버리게 만들거나 그 느낌을 저하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사실들, 특히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관계 된 사실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 밀라드 J. 에릭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말하고 일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복된 특권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표시이며, 하나님 자녀의 유일한 능력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완전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새 그리스도인들이 가슴 속 깊이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생생한 느낌을 충만하게 갖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려면 당신 자신이 성령의 전이라는 확신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선언들을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필요한 것은 당신 자신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당신은 성령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속삭이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고요하게 자신을 가라앉히는 사람만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가르치고자 하는 연약하고 단순한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 순종하십시오. 내면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매일 당신의 가슴을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성령께서 당신에게 말씀의 내용을 계시하실 때, 그것을 당신 자신이 행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또 다른 더욱 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로 알아야 올바로 자랍니다 / 앤드류 머레이>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낙심이요, 가장 권고할 만한 것이 자신감이다. 옛날에 아주 현명한 어떤 사람이 말하길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앙이 가장 중요한데 첫째도 자신감이요, 둘째도 자신감이요, 셋째도 자신감이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우리는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사탄이 자기 부하들을 전부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는데 그 날의 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악령이 벌떡 일어나 “저는 그에게 죄를 짓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려주고 죄를 지으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하나의 악령이 일어나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선행의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말해주고 또한 아무런 소득과 재미도 없음을 잘 설명해 주겠습니다.” 마침내 또 다른 악령이 “그의 영혼을 낙심과 절망에 빠뜨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짤막한 응답을 듣고 나서 사탄은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옛날에 한 작가가 말하기를 “모든 절망은 악마로부터 온다”라고 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교훈 삼아 깊이 마음에 새겨두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처럼 낙심에서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 / 한나 W. 스미스>
**여호와는 나의 반석
미국 애리조나 주 코화 산맥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2500피트의 계곡에는 자생 종려나무들이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수년 간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열대 식물인 이 나무들이 어둡고 가파르고 경사진 좁은 협곡 뒤편에서 그것도 하루에 2시간 동안만 햇볕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학자들은 계곡의 암벽이 충분한 햇빛을 반사해주고 또한 암벽이 하루 동안의 따뜻한 열을 충분히 저장해주고 있음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무들이 자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종려나무처럼 하나님과 가깝게 친교하면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은 어두움의 압박과 열악한 환경을 잘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사람들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은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충만함을 발견하고 풍성한 간증의 잎들과 지극한 찬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번영이라는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고통이라는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름다운 ‘의의 나무들’이 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초를 둘 때, 우리는 코화 산맥의 종려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매일 묵상하는 하나님의 약속 365가지 / 기독신문사 출판 기획부 엮음 >
**참 영성의 표시
신약성경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참 영성의 표시는 사랑이다. 요한 안트는 “위대한 지식은 이방인들에게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고, 위대한 일들도 신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오직 사랑만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시험이며 참 그리스도인들과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값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유무가 우리 자신의 영성과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사랑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랑에 대한 의미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님이나 성경의 저자들이 의미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성경의 저자들에게 있어서 또한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느낌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그 근본에 있어서 사랑은 느낌을 초월하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것을 하겠다는 헌신이다. 테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들을 행할 때 그 일들은 위대한 일들이 되는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 만큼의 일을 하느냐보다는 얼마 만큼의 사랑을 쏟느냐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신다.” <주만 바라볼지라/ 제라드 R.맥더못 >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시련
기독교를 이교 및 유대교와 대조한 2세기의 문서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나라에 살지만 그냥 체류자들처럼 산다. 남들과 똑같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분담하면서도 체류자들이 겪는 상황을 고스란히 참아낸다. 육체를 입고 살지만 육체를 따라 살지 않는다. 지상에서 세월을 보내지만 천상의 시민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규정된 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법을 능가하는 생활을 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비난을 받는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산다.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케 만든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매사에 넉넉히 지낸다. 불명예를 당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칭송을 받는다. 욕을 먹어도 복을 빈다. 모욕을 당해도 정중한 태도로 갚는다. 선을 행하면서도 행악자로서 처벌을 받는다. 처벌을 받을 때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미워하는 이유를 대지 못한다.” 2세기에 활동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우리는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다. 부당하게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율례를 따라 살도록, 그래서 그들도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우리와 동일한 복된 소망을 누리는 자들이 되도록 설득한다”고 말했다. <교회사 속에 숨겨진 450가지 일화 / 버논 제이콥스 편저>
**기쁨은 현재에 있다
크리스천에게 고통스런 문제를 피해갈 다른 길은 없다. 대신 그 문제들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는 만날 수 있다. 당신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염려하느라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면 기쁨의 궁극적인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니라’라는 다음의 아름다운 시를 한번 되새겨보길 바란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그리고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제가 기다리자 그분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실수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에 매여 산다면/ 네 인생은 힘들고도 몹시 괴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과거가 아니니라/ 네가 미래에 닥칠 문제들 때문에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산다면/ 네 인생은 역시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미래가 아니니라/ 네가 현재 이 순간을 산다면/ 네 인생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하나님이 영원한 현재이듯, 기쁨도 언제나 현재시제 안에 존재한다. 기쁨은 현재의 기회이고, 현재의 선물이다. 당신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기쁨은 그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처럼 변함이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정, 성공, 리더십 / 팀 한셀>
**지금,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할 때마다 침이 마르고 긴장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과 당신 사이에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당신이 접해본 거인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인지 모른다. 당신은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몹쓸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 두려움은 결혼하지 못한다는 것, 또는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 있다. 또한 당신은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 당신을 지지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분명히 밝히라. 그 두려워하는 것이 지금 당장, 당신의 삶에 있어서 거인이 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거인이 될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한발 가까이 내딛는 것이 된다. 그런 다음 주님께 기도하라. 하나님께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간구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처지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라. 우선 필요한 것은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뛰어들고, 행동을 겁내지 않는 것이며,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깨뜨리는 것을 도우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 당신은 한층 더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되며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메뚜기 사고방식 벗어나기 / 윌리엄 미첼>
**사역자와 중보자
19세기 미국을 뒤흔든 찰스 피니 목사는 1830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그 도시 전 인구의 10퍼센트인 1천 명을 단 몇 달 만에 구원하였는데, 이 역사는 찰스 피니의 중보자 아벨 클레리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 피니 목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클레리 씨는 나의 모든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집회 장소를 떠난 후에도 남아서 기도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그는 전 삶을 다 바쳐 나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가 잘 아는 무디 목사도 마리안 아드라르드라는 중보자가 있었다. 장애로 인해 침대에 누워 살아야 했던 마리안은 시카고에서 무디 목사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그녀의 교회로 무디 목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결국 무디 목사는 1872년 영국 런던에 와서 단 10일 동안 4백 명을 회심시켰다. 그 기간 동안 런던에 사는 마리안이 뒤에서 중보기도를 드렸음은 물론이다. 캐나다 선교사 조나단 고퍼스는 1909년에 중국 만주에서 집회를 할 때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그녀에게 임했다는 기록을 한 처녀의 기도노트에서 발견하였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중보기도의 결과이다. 영적 지도자가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최전방에서 싸우는 하나님의 종에게는 반드시 이 이상 중보기도로 헌신하는 후방의 기도 동역자들이 있어야 한다. 사역자와 중보자는 하나이다.
<하늘문을 여는 중보기도 전략 52가지 / 명성훈>
**중보기도가 없을 때
영적 무지가 중보기도를 제한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D. L. 무디 목사도 한때 영적으로 무지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여자 성도 두 명이 그에게 찾아왔다. “저희는 목사님께 성령님의 능력이 더 충만히 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자 성도들의 말이 끝나자, 무디 목사는 여인들에게 화를 벌컥 내면서“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도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디 목사는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 설교가 짐 베이커 목사와 지미 스웨것 목사는 한때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미 스웨것 목사에게는 버틴이라는 선교사 친구가 있었다. 스웨것 목사가 그 사건으로 비난을 받을 때 버틴 선교사는“지미 스웨것 목사가 저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다. 내가 중보해 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그 자리는 혼자 기도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닌데 내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회개했다. 그리고 스웨것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자“자네보다 더 큰 죄인은 바로 나야, 기도하지 않은 내가 죄인일세”라고 고백했다.
<중보기도 / 피터 와그너>
**믿음에 굳게 서지 않으면
우리는 배신자 가룟 유다에게서 배물주의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사람의 생명보다도 물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인간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스승보다도 물질을 소중히 여기는 반역의 인간이요, 부도덕의 인간입니다. 가룟 유다는 온 인류가 경배해야 될 구세주를 노예의 값으로 팔아넘긴 물질 숭배의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교권자들이 모의를 하고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팔아 넘겼으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들의 모의나 유다의 반역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탄은 물질에 약한 유다에게 물질을 가지고 스승을 팔게 했습니다. 사탄의 계략은 인간의 약점을 노려서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전연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무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같이 따라다니면서 그의 거룩한 인격을 접하고, 그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요, 그의 고귀한 교훈을 배운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파는 자를 멀리 불신자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 찾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안심해도 참 믿음에 굳게 서지 않으면 반역의 사람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실패와 회복 / 김기현>
**책임에 직면하라
오래 전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남자가 속임수를 써서 중국 황제의 악단에 들어갔다. 연습이나 연주가 있을 때마다 그는 피리를 입술에 대고 부는 시늉을 했다. 물론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는 준수한 국록을 받으며 편안한 삶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가 연주가마다 돌아가며 독주를 청했다. 피리 부는 남자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와서 피리를 배우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꾀병도 부려보았지만 궁궐 의사는 속지 않았다. 독주가 있던 날 이 사기꾼은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이 사람의 자살을 설명하던 말이 후에 영어에서 “그 사람은 책임 직면을 거부했다”(He refused to face the music)는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거짓의 치료책은 단순하다. 책임에 직면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진실을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며 딜레마에 빠져 있는가? 그 순간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거짓을 복주실까? 거짓을 미워하시는 그분이 거짓을 바탕으로 한 전략에 복주실까? 하나님이 속이는 자를 도와주러 오실까? 나도 그러시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의 마음을 점검하라. 냉정하게 자문해보라. 나의 관계에는 정직이 선명히 드러나는가? 당신은 진실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오늘부터 시작하라.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라. 오늘의 잔물결이 내일의 파도가 되고 내년의 홍수가 된다. 오늘 시작하라.
<예수님처럼 / 맥스 루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