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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공짜여행
- 은유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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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모처럼 공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전력 부산지사에서 5월을 맞아 지역고객 사은행사의 일환으로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에 위치한 ‘삼랑진양수발전소’ 견학과 이어 오후엔 경남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한 ‘은하사’란 유서 깊은 사찰을 구경시켜 주더라고요.
어제 40명, 그리고 이틀 후인 5월20일에 또 40명 이렇게 모두 2차례에 걸쳐 80명을 초대한 거랍니다. 그리고 가을에도 이런 행사를 또 할 거랍니다. 그래서 어젠 잠까지 설쳐가며 새벽 일찍 일어났지요. 원래 아침잠이 많은지라 보통 눈뜨는 시간이 9시쯤인데 새벽 6시20분 쯤 길게 이어지는 자명종 소리에 억지로 그야말로 억지로 일어났습니다.
‘에이 귀찮아. 가지 말고 그냥 누비잘까?’
몇 번이나 악마 같은 유혹에 망설였는데, 그 이유는 곤한 잠을 떨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던 게지요. 그러나 연 이틀 담당자로부터 출석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오기에 ‘걱정마라, 틀림없이 참석할 끼다’라고 당당히 약속한 바가 있어 아무리 졸음오고 피곤해도 아니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삼랑진양수발전소와 은하사를 취재해놓으면 혹 내가 발행하는 잡지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더란 말이지요.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여행준비를 했습니다. 눈곱을 뜯어내며 커피부터 한 잔 끓여 마시고 물도 한 주전자 덥혀 머리도 감았습니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비듬으로 버글거리는 머리통을 그대로 갖고 갈 수는 없잖습니까? 산행을 하게 될 것이라 하여 등산복차림에 등산화를 신고 사진을 잔뜩 찍어 오리라 벼루면서 큼직한 디지털카메라를 을러 매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는 토성동 한국전력 부산전력관리처 건물 앞으로 나갔지요.
출발 시간이 9시인데 10분전쯤 미리 도착했습니다. 버스는 늦게 도착한 사람도 있고 하여 그로부터 30분여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습니다. 일행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보였고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더군요. 남들 시선으로 보기엔 마치 ‘묻지마 관광’처럼 초면의 남녀들이 모였던 겁니다.
2
출발하기 직전, 버스에 오른 일행 앞에서 행사주최 측 ‘고동한’ 영업부장의 지점장을 대신한 인사말이 있었고, 인솔자로 30대 후반의 단단해 뵈는 체격에 멀끔한 인상의 ‘박수원’ 영업과장과 다소 마른체격의 신경질적으로 뵈는 ‘배진철’ 주임의 소개가 있었으며,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후 그들은 오렌지 비스킷 사탕 등이 담긴 간식보따리를 하나씩 돌렸습니다.
내 옆 좌석엔 50대 후반의 뚱하니 볼품없는 아줌마가 앉게 되었는데, 감천 동네세탁소에 앉아 있다가 조 모란 아줌마가 함께 가자하여 따라나섰다는 겁니다. 돌아올 때까지 겪어보니 여간 재미있는 아줌마가 아니더군요.
버스는 진영, 장유를 거쳐 김해로 해서 밀양으로 한 시간여 씽씽 달리더니 마침내 삼랑진읍으로 들어섰고, 잠시 산길로 오르는 듯하더니 안태리란 곳의 삼랑진양수발전소 전시관입구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30여 분 동안 홍보영화와 전시관을 관람하고, 다시 발전소 안내자의 인솔로 천태산 지하 200m 지점에 암벽을 파내고 조성한 발전시설을 둘러보았지요.
발전소로 드나드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곧게 뚫린 2차선 터널을 이용해야했으니, 1킬로미터에 가까운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은 마치 산의 중심부로 향하는 갱도와 같았습니다. 지하발전소의 시설높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다했으며, 수많은 대형탱크와 파이프라인, 배전반 등이 얽혀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우주선내부를 보는 듯 그야말로 장관이었지요.
능청스럽고 딴엔 엄숙한 안내자는 카메라를 을러 맨 내게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며, ‘부산 사협(寫協)에서 나왔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부산사협에 아는 이라도 있느냐?’고 되물었더니 ‘전에 직원 가운데 하나가 부산사협에서 활동했었노라’고 하더군요.
3
삼랑진양수발전소는 청평양수발전소에 이어 한국에서 2번째로 건설된 국내 최대의 순 양수식지하발전소(Underground Pumped Storage Power Plant)이며, 1979년10월에 착공하여 1985년에 준공되었다 합니다. 30만KW급 수차발전기 두 대가 가동되니 발전용량은 총 60만KW인 셈이지요.
발전소의 위쪽에 위치한 상부저수지(천태호)는 표고 404.6m, 길이 269m, 댐 높이는 88m, 아래쪽에 위치한 하부저수지(안태호)는 표고 71.2m, 길이 529m, 댐 높이 78m의 사력댐으로 축조되었으며, 두 저수지의 담수량은 646만여 m³에 이른다합니다.
양수발전소는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기를 얻는 일종의 수력발전으로, 전력수요가 적은 심야시간 대에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잉여전력 중 72만KW를 끌어다가 위치가 낮은 하부저수지의 물을 위치가 높은 상부저수지로 끌어올리고, 전력수요가 많은 낮 시간대 피크타임에는 반대로 상부저수지의 물을 하부저수지로 낙하시켜 그 에너지로 지하발전소의 터빈을 돌리는데 60만KW의 전력을 생산해내는 거지요. 즉 위치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발전방식으로 발전효율은 위에서 보듯 75%에 지나지 않는 손해 보는 발전방식이지만, 예비전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건설의 타당성이 있다고 봐야할 거랍니다.
양수발전소로는 현재 삼랑진을 비롯해 청평, 무주에도 운전 중에 있으며, 산청, 양양, 청송에도 건설 중에 있다고 합니다. 막대한 건설비용과 자연환경파괴 등 사회적 비용이 엄청난 것에 비해, 연 평균 14.8%에서 11.5%에 불과한 낮은 가동률과 높은 발전단가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아 양수발전소 건설에 회의적인 시각도 보인다는군요.
어쨌든 내가 둘러본 삼랑진양수발전소의 상부 및 하부저수지는 아름다운 호수로서 그 맑은 수질로 인해 푸름을 더하고 있었으며, 주변일대가 온통 녹음이 짙은 숲으로 둘러싸여있어 그야말로 뛰어난 풍광을 지녔습니다. 안내서에 의하면 특히 봄철에 벚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게 되면 양산시 원동면과의 경계에 솟은 천태산에서 삼랑진 안태공원을 잇는 등산길은 부산, 울산, 마산 등지에서 찾아오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린 답니다. 삼랑진양수발전소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20만 명에 달한다하니 인기 좋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듯하더군요.
4
전기(電氣)
- 은유시인 -
태초에
산천을 요동치랴 크게 꾸짖듯 포효하는 목소리로
번뜩이는 칼을 휘둘러 하늘 장막을 갈가리 찢는 위용을 자랑하였으니
아~ 뇌성벽력!
삼라만상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노라
서로 부둥켜안고 심히 떨었다
천지만물
그 끝닿는 데 없는 우주조차도
양(陽)과 음(陰)의 조화일진대
양과 음이 영겁을 윤회하며 그 기를 발산하는구나
오로지 위대한 권능 앞에
모든 것이 스스로 초라해지고
모든 것이 스스로 겸손해지니
짐짓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도다
어둠으로부터 밝음을 주시어 무지함을 지혜롭게 하시고
멈춰있는 것을 나아가게 하시어 억압됨을 자유롭게 하시며
닫혀있는 세계를 열어 주시어 그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주셨다
뉘라서 가공할 이 위대한 권능에
감히 어리석도록 자만한 인간만이 도전하였구나
이제
산천을 후려치는 소리와
하늘을 난도하는 칼을 움켜쥔 인간이
스스로 삼라만상을 뒤흔들려 하는도다
태산을 움직이고 강줄기를 바꾸며
육지와 대양을 가름하길
영겁의 윤회마저 무색케 하는도다
태초에 존재하였으되
영영세세 또한 존재할 것이니
순간 머물다갈 인간이 제 아무리 자만한들
부디 그 큰 권능으로 허물치 마옵소서.
5
삼랑진양수발전소 견학이 끝나고 주최 측이 준비한 점심을 들게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간단한 도시락이나 5,000원짜리 국밥 정도려니 했었는데, 발전소 위쪽에 자리 잡은 천태산장에서 오리고기구이를 대접하는 겁니다. 그것도 양껏 먹으라고 후한 인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평소 노린내 때문에 오리고기를 잘 먹지는 않았지만, 이날 나온 오리고기는 노린내가 나기는커녕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술과 음료도 준비되어 있어 권하는 한잔 술에 얼굴이 불콰해졌지요. 낮술에 벌개 진 내 얼굴은 거울에 비춰보기조차 민망스러울 정도였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동안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날씨가 어찌나 화창하던지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답니다. 시야에 펼쳐진 농촌풍경이 더욱 정겹게 여겨졌는데 계단식으로 일궈진 논들이며 동네의 아름드리나무와 농가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고, 푸릇푸릇 돋아난 이름 모를 풀들이며 꽃들이 마냥 싱그러웠습니다.
일행 중엔 시골동네로 치면 부녀회 회장으로 걸맞을 조 여사라 불리는 활달한 아줌마가 있어 그 아줌마가 인근 딸기농장 사람과 잘 아는지라 마침 딸기철이고 하니 저렴하게 딸기를 살 수 있게 해 주겠다하여 4킬로에 만원인가 하는 딸기가 스무 박스 넘게 팔렸다지요.
일행을 실은 버스가 김해 은하사를 향해 출발할 때부터 내 옆 좌석에 앉은 아줌마는 바로 앞좌석에 앉은 박 과장 뒤통수에다 대고
“아까 식당에서 박 과장님이 계산하는 것을 얼핏 보니 칠십팔 만원인가 팔십 몇 만원인가 하는 금액이 나왔든데요. 간식거리며, 버스 대절료며 등등 하면 300만원은 넘게 썼을 거구먼요. 한국전력이 고객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네요. 박 과장님 고맙씸다.”
인사치레를 듬뿍 하고는 ‘이대로 가면 넘 섭하다’며 이때부터 보기와는 달리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서 마이크를 거머쥐고는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는 겁니다.
5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운전기사양반이 마지못해 틀어준 뽕짝 메들리송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나서서 버스바닥이 무너질 정도로 춤을 춰보자고 권해 봐도 결국 옆자리 아줌마랑 조 여사 단 둘만의 춤으로 끝나는지라, 이윽고 돌려가며 한 곡씩 뽑으라는 성화로 이어진 겁니다.
박 과장, 배 주임의 노래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쿵짜락~ 쿵짝!’ 4분지1박자인지는 몰라도 단조로운 리듬 속에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뽑았지요. 노래방에선 제법 그럴싸하게 부른다는 평을 받는 18번 노래였답니다.
“김용입니다.”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루루루루~ 루루루루~ 루~ 루~ 루~ 루~ 루~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에 마지막 밤을~”
아뿔싸~!
차라리 부르지 않은 만 못했습니다. 뽕짝 박자의 반주에 맞춰 부르기 시작한 첫 소절부터 목이 잠기는 겁니다. 그렇다고 중단할 수도 없어 어거지로 불러댔는데 그렇다고 가사까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은 또 뭡니까? 그래서 얼버무리길 두어 차례……. 시쳇말로 완전히 조졌답니다.
‘아~ 이 정도까지의 음치는 아니었는데…….’
6
김해 은하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반쯤 지나서였습니다. 여느 사찰과는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데 이 은하사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사찰이라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사찰 터로써 가장 오래된 것이지 지금 세워진 사찰건물로써 젤 오래된 것은 아니었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은하사는 며칠 후에 맞게 될 불교 축제일인 ‘초파일’을 위해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들어갔더군요. 대웅전도 문짝이며 내부를 모두 뜯어놓아 뼈대만 남아있고, 절터 여기저기도 공사한다고 온갖 자재며 쓰레기들이 널브러져있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르던 것이 그만 허사가 되었지 뭡니까?
은하사를 30여분 둘러보고 부랴부랴 귀성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름은커녕 얼굴도 미처 익히기 전에 급조된 여행팀들은 구덕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 역시 보수동에서 내렸습니다. 박 과장과 배 주임, 그리고 옆 짝꿍 아줌마한테만 석별의 정을 나누고 말입니다.
여행한다는 설렘 속에 모처럼 새벽 일찍부터 서둘렀기 때문인지, 아님 산길을 한참 걷고 많은 것을 보고 느꼈기에 그런 것인지 몸이 솜방망이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7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번지,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신어산(神魚山 630.4m) 중턱의 옛 서림사 터에 자리 잡은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 은하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름난 명산일지라도 한 골짜기에 두 개의 절을 짓지 않는다 했는데 아득한 옛날에 신어산에 동림사(東林寺)과 서림사(西林寺)가 함께 들어섰으니, 신어산이 과연 아름답고 산세 좋기로 금강산보다 못할 바 아니었다고 하겠습니다.
은하사의 전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간 아주 오랜 옛날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여섯 개의 알 중 가장 큰 알을 깨고 태어났다는 수로왕이 지금의 김해지역에 가락국을 세웠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수로왕이 세운 가락국은 금관가야로써 철의 제련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당시 일본(왜), 중국은 물론 먼 인도와의 교역이 활발한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서기 42년경, 김수로왕에게 머나 먼 부처님나라(佛國)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시집 온 허후(허황옥)가 있었습니다. 시집 올 때 함께 온 오빠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인도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허보옥)과 더불어 만백성과 천하태평을 기원하는 원찰을 창건했으니, 그때 신어산을 금강산이라 하고 사찰이름을 소금강사로 칭하였다고 전합니다. 이후 서역불교가 직접 전해졌으며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서림사라 불리어졌다고도 합니다.
장유화상은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위치에 모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서림사를 지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락국의 번성을 위해 동림사를 지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국사로서 국왕의 자문에 응하고 가야국과 만백성을 위해서 수행 정진하는 한편, 일곱 왕자를 출가케 하여 마침내 칠불로 탄생토록 하였고 자신도 성불을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과 석학들이 그곳에서 수행 정진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신어산 정상에 우뚝 선 바위들은 모두가 ‘나한상’이라 하여 그곳을 나한도량으로 삼아 기도하는 불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도 합니다만, 아쉽게도 그곳 사찰들은 모두 임진왜란(1592년)때 불타 없어졌답니다.
서기1644년(인조22년)에 서림사만 복원되면서 절 이름을 서림사라 하고 별칭으로 동림사라고도 하였다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은하사란 절 이름은 약 200여 년 전에 중수하면서부터 불리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8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인 은하사 경내에는 조선 중기 이후에 세워진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설선당이 있으며, 이후에 종각, 보제루(봉황루), 반야당, 정현당, 선정당, 세살당 등이 건설되었는데,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과 응진전 앞의 삼층석탑은 모두 근래에 조성된 것입니다.
1983년12월20일을 기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된 목조 건물로서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인데, 공포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이며 내부 천장은 격자천장입니다. 외부 쇠서받침의 윗몸에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내외 살미로는 용두(龍頭)와 봉두(鳳頭)를 새겨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이들 조각과 구조, 수법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쌍어문양이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1688년(숙종14년)에 쓴 십왕전상량문(十王殿上樑文), 영조43년 불상중수개금(佛像重修改金), 1791년(정조15년)에 쓴 십왕전 이건 상량문, 헌종 원년(1835년)의 대웅전 관음존상개의 후불탱화진성기 및 부사 심웅기(1837~39년)의 대웅전 중창기 취운루 등의 현판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대웅전은 중창기 현판이 남아 있어 1861년 중건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건물 내부는 불상 위에 9개의 보개(寶蓋)가 설치되었으며 단청과 벽화가 잘 남아 있습니다.
1989년3월의 신어산 큰 화재 때에는 서림사만 피해가 없어 가락불교의 성지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하더군요. 그러나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되어 있던 쌍어문양이 도난당해 불교계는 물론 불교미술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답니다.
현재 주지이신 대성 큰스님이 서림사의 본 모습을 중창하기 위해 몇 년째 땀을 쏟고 있어 머지않은 날 가락불교의 성지로서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군요. 뿐만 아니라 은하사가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야불교사를 복원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은하사를 가야불교의 중심도량으로 만들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답니다. 스님은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만 배, 이만 배, 십만 배 등 절을 많이 할 것을 권유하여 이런 연유로 은하사는 ‘만 배 도량’이라 불리기도 한다는군요.
“아……! 공짜여행 한번 잘했다아…….”
- 끝 -
(200자 원고지 52매 분량)
2004/05/19/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