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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의 '탈바꿈(탈핵으로 바꾸는 꿈) 프로젝트' 일환으로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인포그래픽 작업한 이미지. (인포그래픽: 장병인) |
지금까지 인류는 대형 원전사고의 다양한 경우의 수 가운데 단지 세 가지만 목격했을 뿐, 앞으로 남은 경우의 수가 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100만분의 1, 혹은 그보다 더 적은 통계적 확률을 들이대며 원전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배웠을 뿐이다. 원전폭발사고 경험을 토대로 그 확률을 계산하면 가동 중인 세계의 핵발전소 440여 개 중 6개(스리마일 1기, 체르노빌 1기, 후쿠시마 4기)가 터졌으니 440분의 6, 다시 말해 1.25%라는 사고확률이 나온다. 여기에 크고 작은 기계 고장 기록2)까지 포함시키면 확률은 더 높아진다.
굳이 사고확률을 다시 계산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가동 중인 전 세계 핵발전소는 440여 개로 늘어나는 와중에 노후 원전 수도 함께 증가했고, 원전 밀집도도 높아졌다. 수명이 다했는데 재운전중인 원전들도 있다.(한국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여기 해당한다) 사고 가능성과 규모도 그만큼 커진다. 죽음의 재라 불리는 핵폐기물 처리와 그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언급하기도 전부터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함께 신음하는 ‘생명’들
거의 반세기 동안 방사능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채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 있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그 파괴성을 소상히 고발한다.
온 몸에 구멍이라곤 눈뿐인 딸 라리사 Z의 엄마는 말한다. “나는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다. 용기가 없다. 산부인과에서 돌아온 후로 남편이 내게 키스하면 나는 벌벌 떤다.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이건 죄야. 두려워. 의사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애는 셔츠를 입고 태어난 게 아니라 갑옷을 입고 태어났어. 텔레비전으로 방송만 하면 아무도 아기를 안 낳으려 할 걸?’ 우리 딸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도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가?”
원전폭발사고 이전에는 만지고 껴안고 키스하는 것이 사랑이었고, 그 결실인 생명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엔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나는 증명해야 한다. 딸이…. 나는 증명 서류를 받고 싶었다. 딸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도록. 바로 나와 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의 신음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지구의 일원인 다른 생명체들은?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오오타 야스스케가 기록한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어떤 비현실적이고 슬픈 영화보다도 더 영화스럽다. 묶인 채 죽은 개, 전자상가 주차장에 서성이는 소들, 슬프도록 마른 고양이, 물을 마시려던 소들이 용수로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 털과 뼛조각만 남은 축사 등…. 개도 말도 소도 모두 운다. 동물들의 눈빛과 행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고발하고 있었고, 사진기록자의 카메라도 눈물로 젖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급히 나온 사람들은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때마다 정부는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정확한 정보를 차단했다. 진실을 모르는 불안보다 더 큰 혼란이 있을까.
곧 돌아올 사람들이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를 비롯한 가축들은 집에 남겨졌다. 처분되고 아사하고, 일부는 구출되어 새로운 주인들을 만났다. “개도, 고양이도, 가축도, 땅도, 집도 벚나무도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동물들이 죽음의 땅에서 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듯, 후쿠시마 원전 난민 15만 명도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과 동물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그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원전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라는 편집후기가 우리 시대의 식민지상을 정확히 그리고 있다. 우리도 고리, 영광, 월성, 영덕, 울진, 삼척, 그리고 밀양까지도 도심의 전기 식민지로 부리고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어디 전기뿐이겠으며, 당대에서만 끝나는 일이기나 할까. 피폭 2,3,4세들은? 천년만년 가는 핵폐기물은?
사양산업에 매달리는 대한민국
핵발전은 분명 사양산업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의 《한국탈핵》에 그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다. 지난 25년간 전 세계 가동 원전 개수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의 경험이 원전 건설 제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가까이서 체르노빌을 겪은 후 재생에너지 산업에 꾸준히 투자를 해오던 유럽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탈핵의 길로 가고 있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가 탈핵선언을 했고, 영국과 대만은 신규원전 중단을 선언해 사실상 탈핵 국가에 들어섰다. 러시아, 중국도 후쿠시마 사태 초기에는 나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국제본부 기후에너지국장에 따르면 34개 OECD 국가 중 16개국이 현재 원전 없이 전력을 충당하고 있으며, 원전 보유국들도 비중을 2011년 기준으로 9.2%나 줄였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은 정부 주도로 원전 사업을 더욱 늘리려 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의 경우에는 전체 전력 사용양의 30~40% 이상을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세계의 전기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인데 비해 한국은 2%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린피스가 발표한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비용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주도하는 20조 예산 규모의 4대강 사업으로 시끄러웠던 2011년도에 중국이 510억 달러, 미국이 480억 달러, 독일이 310억 달러, 이탈리아가 290억 달러, 인도가 120억 달러를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한 데 비해 한국은 2억 6천 달러에 그쳤다. 한국은 사양산업인 핵발전에서 벗어나고 있는 세계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문제는 에너지의 부족보다는 기형적 에너지 수요 관리에 있다. 주로 1980년대 건설된 핵발전소로 전기 공급량이 많아지자 정부는 9차례에 걸친 전기 요금 인하정책을 폈고, 이후 전기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민 1인당 연평균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가깝고, 특히 발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산업용 전기 요금 부문은 독일의 3분의 1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17%가량 저렴하다. 에너지 수요 관리만으로도 원전의존율은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우리 삶의 방식과 이어지는 비극이, 인류에게 심판의 날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심판에 무심했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대홍수를,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베드로후서 3장에는 재림 때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진다고 했다. 인간의 핵산업에 대한 욕망을 이와 관련 지어 생각해본다면, 무리한 상상일까? 국경을 넘나드는 방사능의 악몽이 인류에 대한 두 번째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다음 재앙은 혹시 지진 발생이 점점 빈번해지는 한반도 아닐까. 인류에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여름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핵산업계의 삼각구도, ‘핵마피아’로 불리는 정부-산업계-학계의 돈과 권력의 카르텔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올 예정이다. 내년 개봉을 계획으로 김환태 감독과 함께 원전 관련 전문가, 배우, 주부, 학생, 뮤지션, 작가 활동가 등 9인의 시민 탐정단이 함께 만드는 〈핵마피아〉다. 마침내 핵산업계의 숨겨진 거짓과 위선이 낱낱이 드러나는 내년이, 한국도 탈핵으로 성큼 나아가는 전환의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참고자료
·《야누스의 과학》(김명진 지음/사계절)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새잎)
·《한국탈핵》(김익중 지음/한티재)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최열 외/철수와 영희)
·〈환경미디어〉 2013년 11월 27일 “전 국토 태양광 설비 가능… 대규모 태양광 풍력 기대”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4일 “'후쿠시마 다음은 한국'… 18인의 예언”
·〈오마이뉴스〉 2014년 3월 19일 “'수습하는 데 100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버렸다”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각주)-----------------
1) 당시 해일 높이가 최고 40m라는 의견도 있다.
2)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23개 원전으로 원전 수 세계 5위이자 원전밀집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은 2013년까지 집계된 원전 사고·고장 건수만 672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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