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고향 방문이 어떠했을까
임금의 행차가 이러했을까. 금의환향하는 어사또 기분으로 가랑비를 헤치며 고향 문경으로 달려간다. 이 비는 엄마가 시집 간 첫째딸 친정 와서 반가움에 흘리는 눈물.
손품 팔아 만들어 온 총무님네의 담금주, 부침개, 고추가지무침, 잡채는 고향냄새를 물씬 더하고, 그래 한번 마시고 놀아보자는 각오가 신윤식 님의 표정과 몸짓에서 읽힌다.
낙동강의성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점촌함창 IC를 통해 문경 땅에 당도한 뒤, 석탄의 성지, 가은으로 달린다. 정식 명칭은 ‘문경에코월드’ - 석탄박물관, 모노레일, 영화세트장에다 어린이 물놀이장까지 합쳐 놓은 복합 유원지다. 석탄박물관은 새 단장을 위해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전달웅 고문님의 체험담을 곁들인 안내·설명을 솔깃하며 듣노라니 옛 일들이 하나하나 기억에서 나온다.
점심 해결을 위해 찾아간 맛집은 ‘민지송어장’ - 27인승 리무진 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아슬아슬 잘도 찾아 간다. 웃는 얼굴로 밝은 표정인 젊은 기사님의 인상이 좋다. 맑은 물이 솟아 나오는 이런 구석진 곳에다 송어를 살지고 맛깔나게 키울 작정을 한 주인장의 선견지명이 부럽다. 지금은 경향각지에서 찾는 문경의 맛집이 되어 문경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명소가 되었다.
‘문경의 발전을 위하여!’를 외치는 건배 소리는 식당 창문을 넘어 저 멀리 봉암사 희양산까지 달려가 메아리를 대동하고 온다. 넋을 놓고 송어 맛에, 술 맛에, 분위기 맛에 취하다 보니 벌써 일정표 시간을 30분을 넘긴다.
재촉해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달려간다. 두 가족은 혜국사를 보겠다며 1관문 주차장에서 내리고, 새재터널을 지나 수옥정 폭포골을 거쳐 충북 연풍 땅, 제3관문 주차장에 도착해 걷기를 시작한다. 예상치의 거리와 시간이 아니다. 걷고 걸어도 굽이굽이 오솔길만 나오고 3관문은 얼굴을 허락하지 않는다. 40여 분만에 경북과 충북을 가르는 경계점에 3관문이 위용을 자랑하며 턱 버티고 있다. 얼마나 반가운지, 30년만에 우연히 발견한 첫사랑 첫 연서 같다.
시간을 견주어 보니 예정 시간에는 도저히 닿기가 불가능하다. 어쩔 텐가. 있는 힘껏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부슬부슬 때로는 우산을 받칠 정도의 비가 비포장 새재길을 촉촉이 적셔준다. 우리뿐이다. 아무도 없다. 고향 땅 문경 산천을 전세 낸 기분이다.
길가 조그만 정자가 발걸음을 잠시 붙든다. 부회장의 배낭에 마실 것이 들었다. 소주 두 병. 금새 동이 나고 만다. 윤식 님의 잔도 얼른얼른 비운 탓이다.
2관문을 지날 무렵, 혜국사 구경을 마친 이들은 벌써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나 보다. 전화 소리가 다급하다. 더 다급한 건 우리, 그렇게 걸음을 재촉해 걸어도 도착하니 6시가 넘어선다. 예정보다 2시간쯤 지난 시간이다. 먼저 온 이들과 이해 상충이 일어날 순간 이를 해결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윤식 님. 쉬지 않고 정말로 열심히 걸었다는 정직성·순수성이 담긴 한 마디에 오해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만다.
약돌돼지와 고등어구이로 차려진 저녁 정식은 힘든 걸음을 한 뒤라 맛이 난다. 연분홍빛의 오미자막걸리 한 잔은 촉촉이 밴 땀을 식혀주고, 목마름을 가셔주는 청량제 역할을 충분히 한다. 각자 걸어온 새재길의 애환을 펼쳐 놓는데 끝이 없다. 이러다 밤을 새워도 다 못 듣겠다. 아쉬움을 남기는 게 좋다. 차 안에서 정담을 나누기로 하고 ‘새재왕건식당’을 나서는데 손을 흔들며 서 있는 주인장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굽이를 돌 때까지 따라온다.
8시가 다 되어 출발. 불정간이휴게소에 이성자 님을 내려주고, 리무진은 노래방으로 둔갑해 달린다. 노래에 자신 없는 이는 술기운을 빌릴 수밖에 없다. 자작을 몇 번이고 하고 나니 술기운이 분위기를 타기 시작한다. 고향 소식을 실은 리무진은 어설픈 노랫가락까지 싣고 문경인들을 경주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더라.
2023.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