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책에서 몇 번 이중섭의 소 그림을 보았다. 그때마다 '이중섭은 소 그림 밖에 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의 해답은 국어 책에서 찾아버렸다. 그런데 왠지 이중섭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중섭은 소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다. 소 그림을 그린 이유는 죽도록 일만 하는 소가 다른 나라 사람한테 압제를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서 소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중섭 하면 떠오르는 게 소 그림인가 보다. 이중섭의 그림 소재는 소 그림을 비롯해서 태양과 바다, 모래와 게, 아이들 등이 있다.
이중섭은 다섯 살 때부터 그림에 흥미를 보였다. 보통학교. 그러니깐 지금으로 생각하면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곳에서 이중섭은 그림 하면 이중섭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고, 그 다음이 같은 반의 김병기였다고 한다. 김병기의 아버지가 화가여서 보고 듣는 것이 많았던 김병기에 비하면 이중섭의 재능은 아주 뛰어났다. 그러던 날 김병기의 집에 가서 놀라운 체험을 한 이중섭은 김병기의 아버지에게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열네 살이 된 이중섭은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임용련이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미술 활동은 활기를 띠었다. 그 이후로 소 그림을 그리고, 한글로도 그림을 구성하였다. 한글로 그림을 그린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책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한번도 보지 못해서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중섭의 나이가 스물 세 살이 되었을 때는 공모전 지유텐에 출품하여 입선하고 협회상에 뽑혔다. 평론가, 화가들한테 극찬을 받는데 이 후에도 몇 번 출품하여 극찬을 받았다. 결국 지유텐의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 살 때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서른 한 살 때 첫 아들이 태어났는데 곧 죽어버렸다. 그 후 태현이와 대성이를 낳았다. 서른 다섯 살이 된 이중섭은 연말에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과 바뀐 전황에 희한 피해를 염려해서 이중섭과 가족들은 원산을 떠나서 부산으로 갔다가 당국의 권유에 따라 제주도 서귀포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날 아내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그래서 이중섭은 혼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중섭이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호평을 했는데 평론가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여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나라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렸던 모든 그림들이 좋은 평을 받았는데, 갑자기 냉담한 반응을 보이니까 나라도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대구에서 개인전을 다시 열었는데, 실패로 끝났다. 또한 이중섭을 정신병자로 규정되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얼마나 답답할까? 자신은 멀쩡한데 정신병자가 되다니.. 그러다 병이 더 악화되어 결국 마흔 한 살 때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억울함을 알았던 것일까? 1978년 이중섭에게 문화훈장이 주어진다. 죽고 나서 이중섭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폭발적 이였다고 한다.
이중섭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중섭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중섭은 예술에 대해 열정과 집념을 가진 위대한 화가인데, 다른 사람이 몰라주어서 너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나중에서라도 위대한 화가라고 인정하고 좋은 평가를 해주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중섭처럼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적극적으로, 책임감 있게 하는 그런 점을 본받고 싶다.
첫댓글 으아,,,,,,,ㅡ,.ㅡ대빵길다.,,,,,,내꺼랑은 비교가 안돼,,,,,
"인생은 슬프고도 아름다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