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밤이 더는 없을 것이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이 그들 위에 빛을 비추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원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중에서)
And there shall be no night there; and they need no candle, neither light of the sun; for the Lord God giveth them light: and they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KJV)
There will be no more night. They will not need the light of a lamp or the light of the sun, for the Lord God will give them light. And they will reign for ever and ever.(NIV)
그곳에는 더이상 밤이 없을 것입니다. 등불도 햇빛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비추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맥상 좀 뜬금없는 표현 같습니다. 왜 갑자기 밤이 없다는 표현을 하였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성을 가로질러 흐릅니다. 그 강 양 쪽에 생명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에서는 열두 가지 열매가 달마다 맺힙니다. 생명나무 잎은 만국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제 다시는 저주가 없고,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계시며, 그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던 사도 요한이 '그곳에는 더이상 밤이 없습니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요한복음에서 '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아주 의미심장한 상황을 묘사할 때였습니다.
요한복음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한복음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한복음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사도 요한에게 '밤'이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마음의 상태 등을 표현하기 위한 아주 극적 표현이었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그의 마음 역시 어두움이었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해 나간 유다, 그의 마음 역시 어두움이었습니다.
밤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밤에 다니면 사람은 넘어집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그곳에는 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능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웃으면서 그분을 섬길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기쁨이, 감사가, 행복이 있습니다. 더이상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절망이 없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그들이 주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날마다 주님께 예배하고, 감사드리고, 찬양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그곳에서는 더이상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찬양도, 감사도 없을 것입니다. 매 주 모여서 떡과 잔을 나누는 모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이상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한 행위들은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들이 진짜 해야할 일, 바로 '왕 노릇', 즉 다스리는 일만 하면 됩니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성취된 모습입니다.
다스림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출발점은 창 10:10이었습니다.
창세기 10:8~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지만, 니므롯 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창 10:10에서 '그의 나라'는 '그의 왕국'입니다. 즉, 니므롯이 이 땅에서 최초의 왕이 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왜나하면 왕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일을 할 터인데,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일 것입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반역해 뱀이 말을 하는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시나 엉겅퀴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켰듯,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가꿀 것입니다.
진정한 노동의 즐거움을 맛볼 것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싸우지도 않고, 일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그곳에선 승진도 필요 없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도 필요 없습니다. 돈을 쌓기 위해 일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다스리는 즐거움, 기쁨만 만끽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맛보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도 없으니, 이제 더이상은 뱀의 유혹 같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