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세상 보기, 뒤집어 세상보기
아방가르드 예술가 손일광 아티스트의 노랑다리미술관 2021.5.29
예술이란 무엇일까? 특히 현대예술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시를 쓰고 사진공부도 하면서 늘 남과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뭔가를 꺼내보고자 하는 접근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 또,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볼려고 애써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시를 쓸 때도 단지 감각적, 서정적 표현에 치중하기보다는 역설이나 은유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표현해보려고 노력해왔으며, 사진을 찍을 때도 사진은 반드시 선명해야 하고 구도가 중요하다는 다큐적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의도적으로 흐리게 찍거나 거꾸로 찍어보기도 하고, 역(逆)의 구도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보는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뭔가 창조적인(Creative) 발상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방식은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필요하지만 과학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예술과 과학은 서로 반대로 가는 듯 하면서도 창조적 발상이라는 접근방식 면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노랑다리미술관'이라는 곳에 가면 이와같은 '발상의 전환'에 큰 공감을 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무려 3천평의 넓은 산비탈 공간에는 고정관념을 깬 소위 아방가르드적, 전위예술적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대형 건물이나 구축물 등 설치미술적 작품들이 많지만, 조각,그림들에서도 기발한 창조적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을 만들고 그려낸 작가는 손일광(82) 씨. 그는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선구적인 패션 디자이너이면서 전위예술가, 그리고 설치미술가이기도 하다.
이곳은 2년 전에도 다녀왔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전시룸 및 야외전시장도 넓혔고, 작품들도 새로운 것들이 일부 늘어나고 재배치됐다.
그는 국제복장학원에서 최경자 선생을 사사한 이래 천재 디자이너라 불리며 당대의 앙드레 김과 함께 그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세운 바 있는 분이다. 세기의 결혼이라 불리웠던 가수 패티김과 길옥윤 작곡가의 웨딩 의상을 디자인했고, 88올림픽에서 초대디자이너로 파격적인 로봇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1970년대 군사정권의 단속 하에서도 전위예술가들의 모임인 '제4집단'의 리더로서 시대를 앞선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방가르드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1970년 국내 최초로 '길거리패션쇼'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노랑다리미술관'에는 손일광 작가의 이와같은 평생 역작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감명을 준다.
노랑다리미술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거대한 '노랑다리'이다. 이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작품 <앙글루아 다리>를 그대로 본 떠 만든 구조물이다. 그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의 업적과 삶에서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넓은 전시공간 한 구석에 조그만 액자 두개가 걸려 있다.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지나가던 중 필자의 시선이 갑자기 멈춰섰다. 액자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에 작품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늘 그림이나 사진 등의 전시물을 액자 앞면으로 만 봐왔던 필자로선 고정관념을 깬 이 작품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작품 제목은 '창어4호'와 '오작교'. 이게 무슨 의미일까? 2019년 1월, 중국은 인류최초로 달 뒷면에 '창어4호'라는 무인우주선을 착륙시켜 '오작교'라는 중계위성을 통해 달 뒷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 때문에 우리는 달을 언제나 한 면 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올해 초 무인우주선을 띄워 그 달 뒷면을 보여줬고, 손일광 작가는 이에 착안하여 액자 뒷면에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의 아방가르드적 작품들은 거의 모두 이런 식이다.
전시룸 거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작 '수저작품'도 마찬가지. 그냥 보면 수백개의 똑같은 수저를 물방울처럼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수저 앞면과 뒷면을 계속 교차해서 모아 걸은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수저의 앞 면과 뒷면에의 차이에서 우리는 손일광 작품의 혁신성과 창조성을 읽을 수 있다. 수저의 볼록면에 비친 우리 모습은 정상으로 보이는 반면 오목면에는 사람이 거꾸로 보인다. 결국 인간관계든 예술이든 어느 한 쪽 면 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매우 일상적인, 우리 곁에서 늘 볼 수 있는 소재들로 만들어져 있다. 위에 언급한 수저는 물론, 변기뚜껑, 컴퓨터 키보드, 라이터, 휴대폰,삽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꽃처럼 아름다운 칼러로 활짝 핀 방사형 작품의 구성소재를 자세히 보니 색연필들의 집합이다.
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0)'라는 작품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원리를 응용하여 빈맥주깡통 및 계란판을 모아 작품화시키기도 했다.
오래 된 구식휴대폰을 모아 벽면 전체를 거대한 화폭으로 만들기도 하고,
컴퓨터 키보드로 벽을 도배하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의 상징인 'WWW'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보인다. 거미 한 마리가 만들어놓은 무수한 선들이 종횡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첫번째 전시룸를 지나다 보면 벽 상단 전면을 파노라마로 붉은 색과 파란색을 대비시키면서 중간에 철조망을 배치시킨 작품이 눈에 띈다. 이건 또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가? 철조망에서 필자는 곧 그 의미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바로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작가는 파괴돼가고 있는 지구의 자연생태계도 작품을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작품 '참치의 눈물'이나 전시장 바닥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도롱뇽' 등이 대표적이다. "Escape earth if go on 이대로 계속되면 지구를 탈출해야 산다"고 쓴 짧은 메모 역시 충격적이다.
얼마나 기발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발상들인가? 손일광 관장은 앞으로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인간들과 그 후손을 위해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창조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미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남겨보고싶다고 말한다.(글,사진/임윤식)
*입장료 8천원이지만 아늑한 카페형 실내에서 무료로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시간이 될 경우 손일광 관장이 직접 작품 설명도 해준다. 미술관 주소-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양진리 42-12(전화 031-585-8887). 바로 700m 옆에 '쁘띠 프랑스'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