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군 노인봉(老人峰,1338.1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7월28일, 하늘은 잔뜩 찌푸려서 간간이 보슬비를 살짝 살짝 뿌려 주신다. 하산주(下山酒) 그릇들을 챙겨서 낑낑대며 출발지에 도착하니 아직은 일러다.
걱정스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오늘만 이라도 일기예보가 빗나갔으면 하고 염원 해 봅니다. 뒤이어서 최연식(전 산대장)님, 서부장님, 홍현문님, 김도연님, 금부총님과 그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여서 정시(6:40)에 출발하여 서남시장, 한국광유를 거쳐 칠곡 IC에서 최종 출발하니, 오늘따라 만원사례(滿員謝禮)다.
넉넉한 맘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달리는데, 차창 밖에는 가늘게 뿌리는 단비에 윈도 부러쉬(Window_brush)가 왔~다~ 갔~다~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차는 신나게 달리는데 다가오는 머~언 山川의 풍광(風光)들은 검푸른 녹색으로 수(繡) 놓아져서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슴니다.
군위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줄곧 내달아 치악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는 원주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를 따라드니, 약간의 정체(停滯)현상이 나타난다. 아마도 서울 방면에서 여름휴가를 떠난 차량 행렬의 영향인 듯... 소사(所思)휴게소 옆을 지날때는 대형버스는 보이지 않고 승용차들로 빼곡 빼곡하다.
우리들의 간절한 바램이 통했슴인가? 둔내(屯內) 터널을 지나니 날씨는 말끔히 개이고, 구름덮인 하늘이 되려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진부(珍富) IC에서 내려 다시 59번 국도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진고개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11시를 조금 지나있다.
지레 모든 산객들이 겁을 먹었는지? 오늘따라 진고개 산장 주위가 조용하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오늘은 준비운동 없이 출발하니, 선두는 최연식(전 산대장)님 외 5~6명이 오르고, 중간에는 필자가, 후미에는 벽송(최영수) 산대장님이 진행을 도우시니, 행군이 순조롭다.
구름덮인 하늘에 어찌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지, 되려 한기(寒氣)가 다 느껴집니다. 모두들 시원타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합창 하시니, 불과 몇시간 전의 대구 날씨와는 너무나 달라서 초가을 날씨를 방불(彷佛)케 하며, 등산로도 잘 정비(整備)되어서 발걸음도 사뿐 사뿐 합니다.
10여 분을 올랐을까? 고랭지(高冷地) 채소밭이 광활하게 펼쳐지니, 일시에 마음이 확트이고 먼~ 산중허리로 빠르게 지나가는 흰구름은 가히 한폭의 산수화(山水畵)로다! 모두들 이~야! 이~야! 하면서 감탄을 하시는데... 대구와는 별유천지(別有天地)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저~ 멀리 선두와 손짓으로 교감(交感)하니, 기쁨과 평화로움이 온 몸에 전율(戰慄)되어 온다. 3,40분을 걸었을까 경사가 심한 언덕길에는 나무계단을 수백층계로 설치해 놓았으며, 또 바닥에는 폐타이어를 잘게 썰어서 어찌나 정교하게 깔아 놓았는지 우천시(雨天時)나 빙설기(氷雪期)에도 안전하게 등산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당국의 배려(配慮)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한계단 한계단 오르니 그 다음부터는 등산로가 어찌나 평평 한지 평지나 다름 없다.
등산로는 깊은 山中이라 한적하고도 고요하여서, 우거진 숲속에는 매미소리와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고, 주위로는 이름모를 풀꽃들과 산나리꽃이 방긋 방긋 미소(微笑)로 반겨 주시며, 또 그 풀섶 아랫 땅에는 산돼지가 먹이를 찾아 여러곳을 헤집고 다닌 흔적이 완연(宛然)하다.
연하여 띄엄 띄엄 나무에 이름표도 달아 놓아서 수종(樹種)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였으니,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피나무, 개벚나무, 잣나무, 당단풍나무, 피나무,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황벽나무, 갈참나무, 쪽동백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노린재나무 등 끝없이 이어진다.
그럭 저럭 정상 부근에 이르니, 이방인들도 더러 보입니다. 간단한 수인사(修人事)로 화답하며 정상에 오르니, 선착하신 분들이 상당하시다. 대구산악회의 산애님 일행과 홍현문님, 능선님, 벽송대장님, 금부총무님, 오정순님, 김도연님, 행복님과 그 일행 분들에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정상봉 주위에서 모두들 점심을 드심니다.
점심후 주위를 살피니 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쫒으며, 두려움도 없이 사람 주위를 맴돌고 있어 디카에 담으려니 그 움직임이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후미에 오른 님들을 위하여 다시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천하를 조망(眺望)합니다.
이곳 노인봉(老人峰,1338.1m)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하여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지나는 기점에 있으며, 정상 바위봉은 백발노인의 머리 같아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하는 녹색으로 덮여서 북으로는 두로봉 일대의 산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동으로는 백마봉 일대의 산 능선들이 중중첩첩(重重疊疊)으로 펼쳐지고, 남으로는 백두대간의 소황병산, 선자령 일대와 대관령 근처라는 짐작이 갈뿐 운무에 휩싸여 더는 분간키 어렵슴니다.
그 속에 노인봉만이 바위봉으로 단단히 뭉쳐서 찬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합니다 그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발아래로 보이는데
부귀공명도 더는 부럽지 않구나!
욕망도, 시비도, 분별심도 다 놓아 뿌리고
그 대를 벗하며 한생 살고 싶어라!
갈길이 멀어서 서둘러 하산길로 접어드니 노인봉 대피소는 문이 굳게 잠겨있어 상황을 알 수가 없으며, 등산로는 경사도 가파르고 험로(險路)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도다. 황재덕 고문님과 서부장님, 최연식님 등이 함께 나려 오면서 2005년 6월에 “노인봉”에 산행 왔던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그날의 고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 납니다.
당시 정상을 하고 난뒤 소황병산을 경유하여 백두대간의 “학소대”와 “망군대”로 가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서 70여분을 헤매다가, “소금강계곡”의 “백운대”와 “만물상”으로 가는 길을 겨우 찾아 후미에 초보자 두분과 함께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어둔밤에 구조를 요청했던 옛 얘기를 하며 한바탕 웃고 내려 갑니다.
얼마를 내려 왔을까? “낙영폭포”에 도착하니 2단 폭포다. 경사도 가파르고 수량(水量)도 풍부하며, ‘소금강계곡’에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소금강(小金剛)”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겠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다시 만물상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자료에 이 곳 “청학동(靑鶴洞)소금강(小金剛)”계곡은 율곡(栗谷)선생이 청학동을 탐방하고 “청학산기”를 쓴 것에 유래되어 “소금강”이라 하였다 하며, 또 금강산의 경치와 너무나 흡사하고 아름다워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小金剛”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고 하며, 그는 어머니 사임당 신씨와 아버지 이원수 사이에서 1536년 강릉 “오죽헌(烏竹軒)” 외가에서 출생했다. 3살에 마당의 붉은 석류알을 보고 “석류가 부서진 빨간 구슬을 껍질이 싸고 있다.(石榴皮裏碎紅珠.석류피리쇄홍주)”라며 옛 시에 나오는 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또 13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진사(進士)에 뽑혔으며, 16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금강산에 잠시 입산하여 불교적인 수행을 거쳐 20세에 다시 환속하여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그 뜻을 성인(聖人)에 두어 매진하였다.
21세에 서울에 올라와서 다시금 과거에 급제한 이후 평생 아홉 번의 장원을 하였고, 그 이듬해 성주목사의 딸 노경린과 결혼하여 강릉 외가로 가는 길에 퇴계 선생을 만나 당시 58세였던 선생과 35세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학문을 논했었다고 하며, 26세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주로 사간원(司諫院)에서 많은 일을 하였다. 저서로는 군왕의 도를 상술한 “성학집요(聖學輯要)”와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해 “격몽요결(擊蒙要訣)”이 대표적이고, 또 “천도책(天道策)”이 있다.
아울러 죽기 1년 전에는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 하였으며, “시무육조(時務六條)”를 임금께 올려 국력을 키울 것을 건의 하기도 했다. 이조판서(吏曹判書)의 관직에 있던 中 1584년 49세를 일기로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신 뒤에는 변변한 집 한칸이 없어 친구들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곤경을 면하게 해 주었다 하시니... 만세(萬歲)에 사표(師表)요!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하늘은 구름이 덮여서 시원하여 걷는 재미가 쏠쏠하며, 여름산행 치고 오늘만큼 시원한 날도 없었던기라! ‘살아서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山河)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면서 얼마를 더 나려가니 상팔담(上八潭), 오작담(烏鵲潭)을 지날때는 더욱 경치가 수려(秀麗)하여 보는 눈이 다 시리며, 모두들 사진촬영을 하느라 진행이 더디다.
내려갈수록 소(沼)와 담(潭)이 줄을 잇고, 계곡은 깊고 웅장하여 태고의 신비를 잘 간직하고 있도다! “대자연(大自然)!” ‘크게 스스로 그러함’이 만든 작품은 향기롭고도 아름다우며, 시기(猜忌)와 질투(嫉妬)가 없고, 시비(是非)와 분별(分別)이 없어 오고 가는 모든 만물에게 고루 고루 혜택을 주심니다.
노자(老子)에 이르기를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는데(天法道),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道法自然).”라고 했으니... 어찌 사람이 대자연을 본받지 않으리오!
흐르는 물소리에 귀가 먹고
아름다운 경치에 눈이 멈니다.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저~대자연의 모습을 닮고 싶어라!
그럭 저럭 ‘만물상(萬物相)’ 부근에 도착해서는 모두들 감탄을 연발하면서... 입이 딱 벌어진다! 어떤분들은 “금강산보다 더 낫다!”고도 하고, 필자는 오래전에 고생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그저 멍멍할 뿐입니다!
여러 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 ‘구룡폭포(九龍瀑布)’에 이르기 까지 상당한 시간을 지체하며, 주변 경관을 디카에 담으면서 침묵으로 지나갑니다. 말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내 둔한 필력으로는 다 표현(表現)치 못 하리라!
구룡폭포를 지나 넓은 암반(巖盤)에는 오래전에 야유회(野遊會)를 다녀가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옛 풍류객들의 발자취도 더듬어볼 수 있슴니다.
산수경계(山水境界)에 도취되어 얼마를 걸어 내려 왔는지 짐작도 가지 않으며, 이제는 다리도 많이 피곤하여서 모두들 적당 적당하게 지나 갑니다. 이밖에도 광폭포, 삼폭포, 선녀탕, 세심폭포, 대왕폭포, 삼선암, 식당암, 연화담, 십자소 등 끝없이 이어져서 다 기록할 수 없으니, 그저 필력이 둔한 자신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금강사(金剛寺)에 도착하니 김해진님과 최나겸님 일행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경내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 종무소(宗務所), 요사채 등 전각이 단촐하며, 근래에 지은 건물이라 고색어린 멋은 없슴니다.
대웅전(大雄殿)에 들어 간단한 참배를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법당(法堂)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주산은 웅장하고 수려하며, 청룡(靑龍)은 그만 그만하고, 백호(白虎)는 안산(案山)의 역할은 물론이고 끝없이 이어져서 달리니 비교적 지낼만 합니다.
건물은 지은지가 10여년은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좌향(坐向)이 건좌(乾坐)다. 현공(玄空)으로 7운기(1984~2003)에 해당되어 상산하수(上山下水)이니, 그리 좋은 좌향이 되지 못한다.
어째 썰렁하다 했드니... 그 영향이 클 것이야! 일주문 계단을 내려와서 감로수(甘露水)한바가지를 마시고는 혼자 웃슴니다. 불법(佛法)에는 동서남북도 선악도 시비도 일체가 다 끊어진 것일진데, 다시 또 무엇을 논(論)하는가!
솔밭을 걸어 나오니 쭉쭉 뻗은 금강송(金剛松)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있어, 큰산 깊은 계곡의 운치를 한껏 뽐내고 있슴니다. 솔밭에는 삼림욕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돈되어 있으며, 벤취(긴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또 노인봉 일대에서 나는 식물이며, 조류(鳥類), 소금강천(小金剛川)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류와 야생동물들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아서 자연학습(自然學習)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배려 하였다.
소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소금강(小金剛)”이라고 새겨진 비석(碑石)이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율곡선생의 필적을 집자(集字)한 것이 아닐까 짐작됨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하산주로 뜨끈 뜨끈한 닭죽 한그릇을 회원님들과 함께 드시니... 삼복(三伏)中의 더위가 말끔하게 가심니다.
금일 하산주(下山酒) 준비와 음식을 요리하신 박총무님과 금부총무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 등산 진행에 수고하신 벽송 산대장님과 구윤서 부대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아울러 찬조를 해주신 백문주 부회장님과 최영수 산대장님께도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표하며, 그 밖에도 많은 수고를 하신 모든분들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림니다.
단기 4346년(서기2013년) 7월28일
강원도 오대산 노인봉(老人峰.1338.1m)을 가다.
|
첫댓글 당일 "노인봉" 산행에 동참하셨던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며, 또 진행에 수고 하셨던 벽송 산대장님,
구윤서 부산대장님께도 감사를 드림니다. 아울러 더운 날씨에 하산주 준비와 음식을 조리 하시느라 수고하신
박총무님과 금부총무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또 황고문님과 김해진님의 사진자료를 활용했슴에
감사를 드림니다.더운날씨에 내내 건강하시고 모든님들의 가내 행복을 빔니다.
그저 힘든산행이라 눈요기만 잠깐잠깐 했는데 이리 깊은 얘기가 숨어 있을지
참 신기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회장님
^^
산애님이 일찍도 다녀 가셨군요!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접근하시면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 가져보시면
선인들의 발자취를 이해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사료 됨니다.
여러가지로 감사하오며, 앞으로 산행에 적극 동참해 주시길 희망하오며,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 감사합니다.
당일 진행에 많은수고하셨고 심신도 피곤하실텐대.
긴 장문쓰시느라 많은 수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소금강계곡의물줄기하며 천혜의 기암괴석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고회장님의 덕분으로 역사공부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졸문의 글을 보시느라
수고 많았슴니다. "소금강계곡"에 대한 추억은 특별하여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당일 진행에 수고 많으셨으며, 내내 건강하시고 가내 행운을 빌겠슴니다.
산행후기란이 돋보이는 것은 힘든 산행을
거움으로 바꾸어 주고


역사 문화에 얽힌 사연을 알수가 있어서 더 값진 산행이 되고
항상 수고하시는 회장님에게 감사함을 전 합니다.
등산을 멋있게 만들어 주고 또한 추억을 한아름씩 담아 올수가 있으니 ....
잘보고 갑니다.
황고문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언제나 후미에서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고, 좋은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를 드리며, 평소에도 남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
노인봉 산행 이야기 꺼리가 많기도 하지만 회장님의 산행후기는 늘 새로운 면이 있읍니다.
아름다운 추억거리는 새로이 옛 추억이 되갯지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김선생님! 더운 날씨에 잘 계시는지요? 보잘것 없는 장문의 글을 늘 읽어 주시고,
또 격려까지 해 주셔서 감사 드림니다. 노인봉 산행은 아름답고도 힘든 추억이
남아있어 언제나 짠~ 하게 다가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람니다.
2005년의 노인봉...
차~암 세월도 빠르게지나갑니다
회장님..고생도 많이 하시고....
조여사님은 다~시는 노인봉 안가신다던데요? ㅎㅎㅎ
여전히 산행후기 좋은글 많이쓰시네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회장님~^^♥
구슬님은 언제 한번 뵐수 있을런지요!
조여사님을 통해서 가끔씩 슬님의 안부는 듣슴니다만,
그래도 뵙는것만 하겠슴니까? 가내 두루 편안하시죠?
늦게나마 '귀 영애'의 결혼을 추카합니다. 대소사에 연락해 주시기로
했었는데... 자주들려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제가 힘이 안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다가오는 추석명절 더욱 풍성하시고,가내 행복이 충만하시길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