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07>觚不觚면 觚哉 觚哉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 장은 매우 짧은 데다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뜻이 심오하다.
고(고)는 두 되들이 술잔이다. 본래 뿔로 만들었지만 뒤에는 금속으로 만들었다. 각진 모양이라서 네 개의 稜(릉·모)이 나 있고 중간 부분이 또 사각으로 두드러져 있다. 모두 여덟 모인 셈이다. 不고(불고)는 고답지 않다는 말이다. 哉(재)는 문장 끝에서 반문과 감탄의 뜻을 나타낸다. 고哉(고재)를 두 번 반복해서 고라 할 수 없음을 강하게 말했다.
주자(주희)는 공자가 有名無實(유명무실)의 현실을 두고 탄식했다고 보았다. 공자의 때에 이르러 여덟 모가 아닌 술잔을 두고도 고라 불렀다. 기물의 본질이 바뀌었는데도 예전 이름을 사용한다면 옳지 않다. 그래서 ‘고가 고답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단, 술잔의 모가 없는 사실만 두고 탄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갖가지 제도의 名과 實이 어긋나 있음을 한탄하면서 술잔을 예로 들어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해석은 공자가 고를 깎을 때 딴생각을 하느라 고의 모양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탄식했다고 풀이했다. 이에 따르면 “고는 하찮은 그릇인데도 마음이 전일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늘 큰일을 함에 있어서랴!”라고 자책한 뜻이 된다. 또 어떤 해석은 공자가 술주정을 경계했다고 풀이했다. 옛날에는 술을 마실 때 세 되를 적당하다고 했고 고는 두 되의 양을 담는 술그릇이거늘, 요즘은 고로 마신다면서 실제로는 아주 많은 양을 마셔댔으므로 탄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주자의 설을 따랐다. 앞서 程이(정이)도 世道가 頹廢(퇴폐)하여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현실을 탄식한 내용으로 보았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고 나라가 나라의 꼴을 이루지 못하면 정당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08>君子가 博學於文하고 約之以禮면…
君子가 博學於文하고 約之以禮면 亦可以弗畔矣夫니라
博文約禮(박문약례)의 출전으로 ‘논어’ 옹야(雍也)편에 공자의 말로 나온다. 博文은 지식을 널리 탐구하는 일, 約禮는 예법을 지켜 자기를 단속하는 일이다. 둘이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君子(군자)는 자기를 완성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博(박)은 본래 苗木(묘목)을 심으며 干(간)으로 치는 일을 뜻했으나 넓힌다의 뜻도 함께 지녔다. 여기서는 부사라서 ‘넓게’로 풀었다. 於(어)는 ∼에서, ∼에 대해의 뜻이다. 文(문)은 六經(육경)이나 六藝(육예)를 가리켰는데 현대의 개념으로는 문화 일반을 뜻한다. 約(약)은 (멱,사)(사·실)가 뜻을, 勺(작·구기)이 음을 나타낸다. 자루 굽은 구기에 술(가닥 실)을 묶는 일을 가리킨 데서 묶는다, 맺는다의 뜻을 나타냈고 뒤에 約束(약속)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之는 앞서의 ‘널리 배운 바’를 가리킨다.
禮(예)는 醴酒(예주)로 거행하는 儀禮(의례)를 뜻했다가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할 道理(도리)나 공동체에 요구되는 秩序(질서)를 뜻하게 되었다. 亦(역)은 또한이라고 풀되 달리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지 않고 역시, 아무래도라는 어조를 나타낸다. 可以(가이)는 ∼할 수 있다, ∼일 수 있다는 뜻이다. 弗(불)은 不(불)과 마찬가지로 부정사다. 畔(반)은 본래 두 밭 사이의 경계를 뜻했으나 叛(배반할 반)과 통용한다. 여기서는 道에서 어긋난다는 말이다. 矣(의)는 판단과 단정의 뜻을 나타내고 夫(부)는 감탄과 추정의 뜻을 나타낸다.
널리 교양을 쌓되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지 않는 일은 바로 현대에 요구되는 학문 방법이다. 다만 학문을 기존 규범에 속박시킨다면 進就性(진취성)이 없다. 사회의 발전 방향을 염두에 둔 博約(박약)이 필요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