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네 집
윤판자
새벽길을 나섰다. 작은 도로 쪽으로 들어서니 청량한 소리가 들려 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도
듣지 못했던 소리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무아래 가만히
서서 소리가 나는 버짐나무 쪽을 올려다 본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포르르포르르 움직임들이 소리를 따라 흐르고
있다. 무리를 이룬 참새떼다. 반가움에 온 몸의 감각이 나무속으로 모여든다. 녀석들을 만나보고 싶다. 새 중에서도
가장 흔했던 참새조차 못보고 시끄러운 소음에만 길들여져
살아온 지가 얼마인가? 오던 걸음을 몇 발자국 뒤로 물려
멈추어 선다. 잠시 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한 마리가
나무 아래로 내려 앉는다 그러자 연이어 사뿐사뿐, 함박눈송이가 내려 앉듯 나무 둘레로 내려 앉는다. 스무남은 마리나 될까? 풀짝폴짝 몇걸음을 가볍게 뛰어보다가 일제히 나무 속으로 되올라 간다, 내가 지켜보는 낌새라도 알아챈 것일까
"짹재글짹재글",
맑은 새벽 공기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이 자연의 소리! 이
소리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연다.
어릴적 우리집 처마속의 참새집은 얼마나 아늑했던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처마밑 서까래에 손을 넣어 보면 햇솜보다 더 보드라운 포근함이 전해져 왔다. 살며시 손을 눌러
보면 만져지는 그 짜릿함, 딱딱하게 만져지면 알이고 몰캉하면 새끼다.
"자라면 넌 내 밥이다."
한껏 엄포를 놓아도 얼마 후면 새끼들은 무사히 어른이 되어 이사를 갔다.
가는 길이 바빠 곧 자리를 뜨면서 녀석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떨어진 낱알 하나 없는 이 시멘트 바닥에서 무얼 먹고
살까? 저 버짐나무가 저희들 집일까? 버짐나무라야 가지에 나뭇잎을 달고 있을 뿐인데, 까치처럼 나뭇가지를 물어다 얼기설기 집을 짓지도 못하지 않는가? 저희도 잘 때는
풀어진 몸을 담을 만한 공간이 필요할테고 동그란 알은 굴러 내리지 않게 담을 곳이 있어야할텐데. 그렇다면 이 여린것들의 집은 어디일까? 복잡한 도회지에 이들이 살만한 공간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집이 있다면 이 새벽에 여기까지 날아와 앉을 무슨 까닭이라도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집을 잃은 것일게다. 집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이 나무까지 쫓겨 나앉은 것일게다. 부모들이 어디 방앗간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부근에도 얼마전까지 떡방앗간이 있었으니. 참새방앗간이라지 않는가? 그 방앗간을 터잡아 살다가 방앗간이
없어지자 이 나무위로 옮겨 앉은 것일게다. 먹이도 집도 마땅하지 않은 이것들이 얼마나 여기에 머무를 수 있으며 그
다음은 또 어디로 가야할까?
ㅁ이 떠오른다.
그가 수화기 너머에서 힘없이 말했다.
"나. 집 잃었어."
뜬금없는 그의 말이 무슨 장난인 줄 알았다.
"그래, 그거 재미있는데."
나는 사뭇 농담으로 받다가 계속 되는 통화에서 심각함을
알아차렸다.
집을 내 주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실패를 거듭하며 얼마나
힘들여 장만한 집인데, 무슨 한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린가? 갑자기 주위가 안개 속으로 빠져들며 잠시 휘청였다.
자주 통화하며 서로 들고나기도하는 형제같이 지내오는 사이라 각자의 형편을 환히 꿰고 있던 터였는데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운 후에야 사실을 알릴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니 갑작스런 일에 얼마나 허물어졌을까? 그의 고통이 내게 전해지며 전신이 조여들었다.
그의 가족은 지금 달세를 내는 여인숙으로 옮겨와 지내고
있다. 방 두 칸을 빌어 한 칸에 짐을 들이고 한 칸에는 몸을
누인다. 우리 집에 아이 아버지가 없을 때는 가끔 내게로
와서 자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꿈을 말한다. 그저
옮겨 다니지 않을 집 한 칸만 가지면 되겠다고. 나는 대답한다. 버짐나무속에 멋진 참새네 집이 있더라고. 무슨 선문답같은 말을 하는 내게 그는 더 이상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촐한 꿈을 말하는 자신에게 그림같이 멋진, 참새네 집 같은 전원주택을 가지게 되기를 희망하는 간절한 소망을 실어 보내주고 있다고. 그러나 나의 뜻은 그렇지 않다. 그가
참새네 같이 살았으면 한다. 잃었으나 없어진 것에 연연하여 비굴하지 않으며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 알뜰히 가꾸었으면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명랑하여 주위에 밝음을
주고 몸짓이 사뿐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냈으면 한다.
내 친구네 참새네집, 그 집 앞을 지나다 머물러 바라보고 싶은 집.
2002년 10월 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