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승철의 시조를 만난다. 이번에 만난 신작 3편은 4 · 3과 연관돼 있다. 물론, 이번 신작 외에도 4 · 3을 다룬 그의 빼어난 시편들은 존재한다. 오승철은 현대시조의 양식으로 4 · 3의 안팎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런데 이번 신작 3편은 4 · 3 70주년의 역사적 시간에 공명하면서 4 · 3에 대한 한층 깊은 성찰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어차피 못 가져갈
벚꽃은 그냥 두고
목청이 푸른 장끼
푸르게 그냥 두고
4 ‧ 3땅
백비와 같이
건너가는
봄
한 철
― 「어느 봄」 전문
4 · 3의 역사적 상처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백비(白碑)’다.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4 · 3평화공원 내부 전시 공간의 첫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백비’는 방문자들의 모든 감각을 순간 얼어붙도록 한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새하얀 비가 하늘이 뚫려 있는 원형 천장을 향해 눕혀 있다. 무엇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양 새하얀 비는 서 있지 않은 채 누워 있다. 4 · 3의 실재를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는 ‘백비’는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채 누워 있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4 · 3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4 · 3평화공원을 방문하여 4 · 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분단 체제를 녹이는 봄이 온다는 것을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4 · 3은 사실상 분단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이에 맞서 저항하는 가운데 해방 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상상력을 모색한 것인 만큼 4 · 3에 대한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냉전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과도 분리할 수 없는 세계사적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오승철 시인은 4·3에 대한 이러한 노력을 결코 폄하하지 않되 그렇다고 낙관적 기대를 쉽게 품지 않는다. “4 · 3땅/백비와 같이/건너가는/봄/한 철”을 맞이하면서 시인은 ‘백비’를 에워싸고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시 특유의 시적 인식으로 포착한다. 이것은 1948년 4 · 3 당시 매우 중요한 국면을 다룬 다음과 같은 시적 인식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깃발 따라 짚차 한 대 쏙 들어간 구억국민학교*
뒷산 조무래기들 꼼짝꼼짝 고사리 꼼짝
첫날밤 신방 엿보듯 훔쳐보고 있었다
3
조국이란 이름으로 공쟁이 걸지 말자
저 하늘을 담보한 김익렬 9연대장과 김달삼 인민유격대 사령관
산촌의 운동회같이 박수갈채 터졌다지
4
불을 끈 지 사흘 만에 다시 번진 산불처럼
다시 번진 산불처럼, 그렇게 꿩은 울어, 전투중지 무장해제 숨바꼭질 꿩꿩, 오라리 연미마을 보리밭에 꿩꿩, 너븐숭이 섯알오름 <4 ‧ 3 평화공원> 양지꽃 흔들며 꿩꿩, 그 소리 무명천 할머니 턱 밑에 와 꿔- 엉 꿩
칠십 년 입술에 묻은 이름 털듯 꿩이 운다
― 「3일 평화」 부분
역사에 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냉엄하다. 만일 김익렬 9연대장과 김달삼 인민유격대 사령관이 1948년 4월 28일에 만나 담대하게 이끌어낸 평화협상이 순조롭게 수행됐다면 이후 전대미문의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4 · 28 평화협상이 극적으로 이뤄진 데 무엇이 긴요하게 작동된 것일까. “조국이란 이름으로 공쟁이 걸지 말자”란 시구가 함의하듯, 4 · 28 평화협상의 핵심은 해방된 조국을 두고 시쳇말로 어느 편이 어느 편을 배타적으로 내쫓고 특정한 세력이 조국을 일방적으로 그들이 기획하는 나라로 건설하려는 무모한 싸움을 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4 · 28 평화협상은 그래서 “산촌의 운동회같이 박수갈채 터”진 것이다. 운동회를 즐기는 모든 이들이 이날만큼은 온갖 걱정거리를 내려놓은 채 비록 편은 구분되지만 공정한 규칙 아래 서로의 화합을 위한 축제의 한바탕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운동회의 형식을 빈 민주주의 정치적 상상력의 실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현실은 배반의 정치 속에서 4 · 28 평화협상의 효력은 3일 만에 종식된다. “불을 끈 지 사흘 만에 다시 번진 산불처럼” 제주는 온통 화마에 휩싸인다. 이것에 대해서는 사회과학 쪽에서 배반의 정치를 낳은 원인을 다각도로 규명한 바, 그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치세력은 4 · 28 평화협상으로 인해 제주도뿐만 아니라 38도선 이남 미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협상을 인정할 수 없고, 무장대를 완전 소탕해야 했던 것이다. “오라리 연미마을 보리밭에 꿩꿩”이란 시구에는 당시 무장대가 오라리 연미마을에 방화를 저질렀는데 그것은 미군정이 기획한 것으로, 4 · 28 평화협상을 깨기 위한 음험한 의도가 실제 개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꿩의 울음으로 들려준다.
오승철 시인도 그렇듯이, 돌이켜보면, 4 · 3 시기 동안 3일 만에 끝나버린 4 · 28 평화협상은 매우 소중한 역사적 경험이다. “조국이란 이름으로 공쟁이 걸지 말자”처럼 담대하게 평화의 뜻을 모았고, 이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유무형의 노력을 혼신의 힘으로 쏟았어야 했건만, 양측이 지닌 정치적 이념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현실 정치의 헤게모니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의 배반의 정치 때문에 제주의 곳곳에서 언어절(言語絶)의 죽음이 난무하지 않았는가. 그때 이후 지금까지 “칠십 년 입술에 묻은 이름 털듯 꿩”의 울음은 죽은 자와 산 자를 휩싸고 돈다.
그런데 4 · 3 70주년에 우는 꿩의 울음은 예전의 그것과 다르다.
오전 10시,
4 · 3 묵념 사이렌이 울릴 때
젯상이면 다냐고
엎지르듯 꿩이 운다
나랏님
오든지 말든지
실없이 지는 벚꽃
― 「꿩, 엎지르다」 전문
2018년 4월 3일 오전 10시에 우는 꿩 울음이 “4 · 3 묵념 사이렌”과 포개진다. 예전 같으면, 묵념의 사이렌은 4 · 3 영령들의 억울한 죽음을 위무하고 그 한을 달래는 4 · 3을 추도하는 성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2018년의 4 · 3사이렌은 추도만으로 결코 자족하지 않는다. “젯상이면 다냐고/엎지르듯 꿩이 운다”에서 헤아릴 수 있듯, 시인의 4·3에 대한 정동(情動)은 더 이상 4 · 3을 국가의 추념일로만 기억하는, 그래서 4 · 3을 제도권에서 제도화하고 안착함으로써 4·3이 화석화(化石化)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로 연결된다. “나랏님/오든지 말든지/실없이 지는 벚꽃”에는 이 같은 시인의 정동이 묻어나 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자. 시인은 4 · 3에 대한 제도적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타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섬세히 음미해야 할 것은 70년 동안 제주의 꿩은 4 · 3의 살아 있는 증언자로서 매해 4 · 3을 울었고, 4 · 3에 대해 울었다. 4 · 3 당시는 물론, 4 · 3에 대한 강요된 억압과 망각의 역사, 그리고 4 · 3이 제도적으로 복권된 이후에도 제주의 꿩은 쉼없이 울었다. 이렇게 4 · 3은 제주 꿩 울음의 존재와 더불어 제주의 삶 그 자체로 숨쉬며 살아갈 것이다. 제도적 복권에 안주한 채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여 때가 되면 으레 추념식의 형식을 치른 것으로 자족하는 게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풍속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 살아가는 4·3으로 자리하리라. 가령, 오슬철의 「쇠뿔에 등을 걸고」의 시적 화자처럼 예순이 넘어 바닷일에서 손을 떼고 싶었으나 결코 바닷일을 평생 손놓고 살 수 없듯이, 제주의 험난한 삶을 사는 것으로부터 멀리할 수 없는 게 바로 4 · 3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받아라, 막걸리 잔
소랑 그가 대작했다지
오늘 문득 애월에 와
그 말에 나도 취해
등짝에 등댓불 걸쳐 난바다나 갈고 싶다
― 「쇠뿔에 등을 걸고」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