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보수는 '민족주의자' 이다.
백범 김구가 암살된 뒤, 그의 운구는 홍익대 2기생들이 운반하였으며 백범이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는 대종교 원로인 우천 조완구 도형이 물려받아 그의 장례를 거행한다. '건실'은 백범 정신의 계승을 위해 민족주의자들인 대종교 인사들이 설립한 홍익대가 인수 개편하기로 하고 홍익대학 학장 '백수 정열모' 대형이 '건실'의 소장으로 그리고 홍익대 상무이사 '삼강 정 일' 대형이 상무이사로 운영하게 되었다. 건실의 1949년 임원 현황을 보면 명예소장으로 우남 이승만 박사가 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우남은 대종교인 민족주의자들과 그 뜻을 같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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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 당시 임시정부의 여당이었던 '한국독립당' 당원 명부에는 477명의 당원이 번호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백범 김구'가 1번으로 가장 먼저 기록됐고, 2번 '조소앙', 3번 '우남 이승만'(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4번 '우천 조완구', 5번 '조경한', 6번 '해공 신익희'(국회의장), 7번 '이청천'(지청천·무임소 장관), 8번 '엄항섭', 11번 '철기 이범석'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 순으로 적혔다. 임시정부 계열 인사가 아닌 '민세 안재홍'(19), '명제세' (21), '이승복'(22) 등의 인사들도 명부에 기재됐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인사가 대종교인이자 민족주의자들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