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목적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으며 누구와 함께해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이정표나 차가 없어도 갈 수 있는 외줄기길,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산과 계곡뿐인 승부역 산골기행.
중앙선과 영동선을 이은 강릉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승부역을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역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한번쯤은 여유를 가지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영천역에서 11시 43분 출발해 승부역에 오후 2시 51분 도착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열차는 오후 6시 15분에 승부역에서 출발해 북영천역에 9시 33분 도착하기 때문에 3시간 24분 동안의 체류시간을 이용해 사랑과 역사, 그리고 낭만의 흔적을 밟아보기로 했다.
기차가 도착하자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산1-4번지 승부역에 달랑 3명이 하차했다. 그나마 동네주민은 없고 나처럼 여행 차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기에 볼거리들을 하나하나 체크한 후 움직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적힌 표지석이다.
1962년 이 역에 부임해 19년 동안 역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찬빈씨가 마을에 전해오는 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1965년 글귀를 지었다고 하며 김씨가 역사 옆 화단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써놓았는데 승부역의 상징이 되었다.
저 멀리 달이 사라지지 않은 새벽 두 어깨를 감싸 안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봉화군 맨 북쪽 끝에 위치한 석포역에서 다시 승부역으로 향하는 기차 안은 지난 삶의 애환이 흐르는 것 같다 푸른 산을 타던 햇살은 빗장처럼 창문에 내려앉고 강은 빙그레 소리 없이 웃으며 동무가 되어준다
손가락 사이로 휘어지는 바람을 따라 삶의 한 장을 조심스레 넘기듯 표지석을 읽어 내려간다 우리나라 최고 오지에 있는 승부역을 의미심장하게 새긴 글귀를 통해 53년 전 험난했던 이곳을 관통하며, 태백지역의 광물을 수송했던 그때 그 시절의 온기가 온몸에 전율이 되어 퍼져나갔다 험준한 오지였기 때문에 세 평의 하늘과 꽃밭, 두 줄기의 철길이 지금의 승부역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역 경내에는 한번 잠그면 영원히 풀리지 않도록 소중한 맹세를 담아두는 사랑의 자물쇠와 승부역에서 띄우는 편지를 써서 붙이는 빨간 우체통, 인력 궤도재료 및 보선작업용 공ㆍ기구를 운반하기 위해 사용된 장비로 개통초기부터 열차운행이 적은 선로에 사용됐으며 현재 운행하지 않고 유일하게 영동선 승부역에 보존하고 있는 핸드카(Hand Car) 등도 만날 수 있다.
승부역 주변은 아기자기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낙동강변의 기암괴석과 태백준령의 험한 산간 험곡, 가을이면 주위 산이 불타는 듯한 단풍, 겨울이면 환상적인 눈꽃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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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카 |
승부역 앞쪽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70m의 출렁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걸으면 민속전시관, 먹거리 장터, 팔각정과 얼음썰매장이 있는 잠수교가 있다. 또 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용관바위 등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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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관바위 |
승부역 뒤쪽 산길 초입에는 영암선 개통 기념비가 서있다. 영암선(지금은 영동선으로 통합)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태백광산 지역의 지하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순수 우리 기술진에 의해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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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재 |
1949년 4월 8일 착공했으나 6ㆍ25전쟁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가 1955년 12월 30일 완공됐으며 험준한 척량산맥을 뚫은 교량 56개소, 터널 33개소가 설치돼 전체 구간의 30%를 교량 및 터널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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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통소 |
영암선 개통 기념비는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설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이곳 승부역에 세우게 됐다.
영암선 개통 기념비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투구봉 산책길이 나온다. 3㎞, 1시간 거리로 오르는 길 좌우에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멋지다. 9부 능선쯤 오르면 승부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파노라마 전경이 펼쳐진다. 이후 내리막길은 투구봉 약수터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위장병에 걸려 고생하다 이곳 약수를 먹고 씻은 듯이 나아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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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선개통기념비 |
전주이씨 7대조인 절충장군이 조선 때 간신들의 모함으로 산세가 험한 이곳 승부로 귀향을 오게 돼 재를 넘으려고 할 때 천둥과 번개가 심하게 쳐서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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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역 뒤 민가 |
꿈에 용이 나타나 “나는 이곳 굴통소(窟筒沼)에 살고 있는 용이니라. 이 재는 나의 등이고 재너머 바위는 나의 갓이니 감히 이 재를 넘어 바위를 만지고 지나가는 자는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재를 넘지 말고 낙동강으로 돌아서 가라”고 해 그대로 행해 무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어려움이 있을 때 용관(龍冠)바위를 향해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 뒤쪽으로 비룡산, 비룡계곡 등의 비경과 영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설경이 좋다.
춘양관리역에서 내일로 티켓을 일정요건 이상 발권 받으면 남자는 승부관, 여자는 별빛관에서 무료 숙박을 하며 오지마을의 한적함을 즐길 수 이벤트도 열린다.
역 건너편 잠수교를 건너면 옛 향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민속전시관이 나온다. 아궁이, 방아 등 옛집구조와 생활용품들을 볼 수 있으며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승부역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승부역의 상징적 존재인 승부현수교를 건너 마을로 향했다. 승부리는 결둔과 마무이, 승부, 암기동, 학교마을로 이뤄져있다.
학교마을로 향했다.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은 “석포초등학교 승부분교가 있어서 학교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1993년 3월 1일자로 폐교돼 지금은 건물이 멸실되었고 그 터에 대추나무가 심겨졌다.”며 현재 15가구가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마을에서 돌아 나와 본마을과 아랫불로 향했다. 주로 고랭지채소와 양봉으로 생활하며 넓은 땅에 비해 가구수는 적은 편이었다. 승부리 경로당 겸 마을회관에서 놀던 어르신들이 저녁시간이 다되어서인지 귀가를 재촉하고 모습을 보면서 되돌아가야 될 시간이 다되었음을 알았다.
사랑과 낭만이 물들고 사색이 꽃피는 승부역, 옛날 전쟁 때 승부가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이곳에서 인생의 승부를 다짐하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사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무인간이역인 북영천역을 언급하고 있었다. 북영천역 주변에는 기차여행객들이 볼만한 좋은 구경거리가 없을까? 낭만여행 뒤에 또 다른 숙제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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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현수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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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덜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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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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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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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62년도 까지는 울진군 1963.1.1부로 봉화군으로 편입 이때에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