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낮출 줄 아는 이에게
모든 복덩이는 절로 굴러오네."
찻집의 추억
계단을 올라 이층 찻집에 들어선다. 한번 들은 기억이 있는 음악이 잔잔히 깔린 내부는 전통차를 즐기는 손님들로 붐빈다. 모처럼 중학교 동기 셋이 만나 서면 번영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소주 3병을 비운 후 자리를 옮겨 찻집에 왔다. 마침 창가 자리가 비어 앉았다. 자리가 비좁고 의자가 작아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분위기는 좋아 보인다.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주인장이 그림에서 본 옛 조선 여인의 미소를 흘리며 온다. 걸음걸이도 마치 나비가 나는 듯 사뿐사뿐 모양새가 특별하다. 작지도 않은 키, 곱게 빗어 뒤로 묶은 머리, 새치인 듯한 흰 머리카락의 조화가 주인장의 품격인 양 눈에 착 안긴다. 이쁜 척 하는 것은 아니다.
푹 고운 대추차, 대여섯 알의 잣이 아담한 토기 찻잔에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덤으로 팔손이 나뭇잎에 각설탕 크기 만큼한 양갱을 여섯 조각 내놓는다. 그리 달지도 않은 맛, 단백한 부드러움에 주인장의 손맛을 짐작하게 한다. 손님이 많음은 당연지사다. 또 있다. 해바라기 씨앗을 작은 종지에 가득 담아 보탠다. 대추차에 넣어 마시란다. 씹히는 고소함이 더해지니 대추차의 맛이 황홀하다. 향기에 취해 맛에 취해 주인장의 마음에 취해 잠시 깊은 상념에 빠진다. 단골로 정하고 한 번씩 들러야겠다. 친한 친구 불러 소개도 하고 맛 자랑도 해야겠다. 상념을 깨운 건, 주인장의 ‘보이차’ 대접이다. 작은 유리 주전자, 유리잔 데울 수 있는 유리 난로. 소문난 차라 입안의 향을 굴려 본다. 그리 고급 차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덤으로 주니 마냥 고맙다.
가끔 한 번씩 서면 재래시장 ‘파란집’ 손칼 국숫집을 간다. 상고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부터 즐겨 먹었던 칼국수다. 그때 그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며느님이 물러 받아 장사를 하고 있는 단골집이다. 맛의 내림은 고스란히 간직되어 옛 맛과 진배없다. 빈틈없고 푸짐하고 친절한 내력은 오래된 전통 재래시장의 역사만큼이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친구와 둘이서 곱빼기 칼국수를 먹은 후 근처 커피숍에 갔다. 도심의 주요 위치, 번듯한 시설 어려운 커피 이름, 비싼 가격, 구매자가 배달, 설거지를 해야 하는 불쾌한 행포. 그래서 가기 싫은 곳이다. 칼국수 곱빼기 두 그릇에 칠천 원인 반면 커피 두 잔은 만 원이 넘는다. 조금 발품을 팔아 우리 전통찻집으로 가자. 몸에 좋고 건강음료인 다양한 차가 있다. 배 불리 마셔도 한잔에 오천 원 정도다. 물론 찾기가 쉽지 않은 점은 수요 공급의 법칙이 작용한 탓이지 않는가.
1982년경, 모라동에서 공장을 할 때, 한 50m 근처에 ‘태일찻집’이 있었다. 근처에 묵은 다방이 있어도 거래처 손님이 오면 찻집의 ‘인삼즙’을 배달 시킨다. 우유, 수삼 한뿌리를 믹서기에 갈아 큰 유리 잔으로 마신다. 보약 수준의 차 문화였다. 접대의 효율적인 가치 상승임은 나 만의 고집이었다. 찻집의 주인장은 얼굴에 점이 많은 순한 여자였다. 단골이며 고액 손님이니 격 없이 지냈다. 가끔씩 점심을 준비해서 찻집 골방에서 같이 먹기도 많이 했다. 점심 후 마신 그 ‘쌍화차’, 계란 노른자가, 대추 고명이, 잣이, 볶은 참깨가 어울려 피로를 지우고 감사의 기쁨으로 채웠다. 찻집에 가니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한 20년 지난 어느 날, 은행에 일이 있어 갔다 그곳에서 아기 업은 그 찻집 주인장을 만났다. 반가워 인사하고 남편도 소개받았다.
전통차에 대해 간단하게 쉽게 설명해 본다. 내가 지금도 마시고 있는 품목을 위주로 알아본다. 직접 만들기도 하고 구매해서 마시기도 한다. 가장 쉬운 것이 ‘대추차’다. 시골집 대추나무에서 수확한 것으로 상급의 대추는 아니라도 푹 고와 차로 마시기에는 딱이다. 생강을 꿀에 재여 숙성 시킨 후 섞어 마시기도 한다. 감기 초기, 예방에 좋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생강 특유의 맵고 알싸한 맛이 참 좋다. 우엉차를 구포 시장에서 구입해서 물 대신 마신다. 한 달가량 마시고 나니 그 구수한 맛에 정이 간다. 뭐 뚜렷한 효과는 설명할 수 없지만 좋긴 좋다. 머리가 맑아지고 소변이 시원하고 입안이 개운하다. 국화차는 특별하다. 우리나라 산천에서 나는 감국이 훌륭한 재료다. 산을 타면서 곧잘 만나지만 자연을 훼손시키는 행위라 채집을 할 수 없다. 내가 채집하면 보는 사람 모두가 자연을 훼손시키는 앞잡이가 된다. 해서는 결코 아니 됨을 안다. 완제품을 선물 받거나, 구매해서 마신다. 국화 특유의 향과 조금 가미되었지만 단맛도 은은하다. 팩으로 되어 있어 취급이 용이함은 덤이다. 정관장에서 나온 ‘홍삼차’도 명차다. 피로 회복에, 강장 증진에, 기력 회복 등 입에 착 붙는 건강식품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마실 수는 없지만 선물 받은 홍삼차, 아껴 가며 즐기고 있다. 모두가 우리 주위에 흔하게 구입할 수 있고 차로 만들어 먹기 쉽다. 우리의 전통차와 커피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없다. 개인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전통차가 있지만 자신의 입맛, 체질에 맞는 차가 몸에 이로운 것이라 판단한다. 차 문화와 커피 문화의 일면을 정보 매체를 통해 알아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적과 동적, 과거형과 현재형. 조용함과 소란함. 객과 손님. 향의 차이. 동양과 서양. 조용한 실내 음악과 시끄러운 실내 음악. 구분이 가능한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좋다는‘ 신토불이’ 노랫말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전통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건강을 챙기시길 바란다. 활짝 핀 천리향을 코로 맛보며 국화차 한 잔을 음미한다. 나른한 초봄의 한낮을 즐긴다.
첫댓글 갑자기 손칼국수가 생각나네요!
명동에서 남산 올라가는 골목길 허름한 주막같은 작은 식당에서
할머니가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 밀어대는 모습 바라보며
칼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