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 동동다리(6)
- 밥도둑 -
겨울은 추웠다. 동동이가 춥지 않게 겨울에는 하우스 문을 닫아두었다. 그래도 물그릇은 밤에 얼었다가 햇볕이 따뜻한 낮에는 녹기를 반복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던 것 같다.
나는 겨울에도 한 주일에 두 번씩은 모이를 주러갔다. 집에 있는 쌀 포대에서 퍼온 쌀을 먹이통에 담아 놓으면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물도 물그릇에 가득 담아 놓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이통에 먹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나 철저하게 먹어 치웠는지 그릇이 아예 깨끗했다.
“이 애가 먹는 양이 많이 늘었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양의 모이를 그릇에 가득 담아 두는 것이었다. 모이의 양이 점점 늘어 나중에는 한 번에 거의 한 되의 쌀을 담아두게까지 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닭 한 마리가 사람 두 식구가 먹는 양보다 많은 양을 먹는다는 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이제는 동동이를 키우는 게 부담이 되었다. 쌀 한 포대를 사도 한 달이 채 가지 않으니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큰 것이었다.
나는 하우스의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모이가 이렇게 많이 드는 이유를 찾기 위해……. 그러다 그 원인을 찾아내었다. 하우스 내부 벽 쪽으로 쥐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쥐구멍이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대여섯 개는 족히 되었다. 게다가 쥐까지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쥐는 보통 쥐가 아니었다. 어른 팔뚝 굵기는 족히 될 만큼 엄청 큰 놈이었다. 개구리로 치자면 보통 개구리와 황소개구리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 큰 쥐를 잡으려고 하우스 안에서 바닥을 호미로 내리치며 한바탕 활극을 벌렸으나 쥐가 서랍장 밑으로 들어가면서 소란은 끝이 났다. 그래도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쥐가 들어간 서랍장을 들어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입을 짝 벌렸다. 그 밑에는 이놈의 큰 쥐 말고도 서너 마리의 쥐가 더 숨어 있다가 존재가 발각되자 도망갔다.
나는 농약가게를 찾아 쥐약을 샀다. 어릴 때 경험으로 쥐약이란, 병에 담겨있으며 멸치나 쌀에 묻혀서 쥐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쥐약은 피로회복 비타민제처럼 환으로 되어 낱낱이 껍질에 쌓여있었다. 다시 밭으로 가서 쥐구멍마다 그 속에 한 알씩 넣고 흙으로 그 구멍을 막았다. 혹여 동동이가 먹이인 줄 알고 먹을까 염려해서였다. 동동이는 그 동안 먹이를 쥐들에게 다 빼앗기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내가 먹이를 주고 잠시 있는 그 시간만큼만 동동이가 식사를 했고, 내가 간 이후는 모든 먹이를 쥐에게 빼앗기고 늘 굶주렸다니……. 하지만 이젠 안심이다. 이제 이놈들은 이 쥐약을 먹고 자취를 감추고 말리라.
그러나 쥐들은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쥐약을 놓고 한 주일이 지난 뒤에도 쥐는 그대로였으며, 모이통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게다가 전에는 사람이 오면 숨던 쥐들이 이제는 간덩이가 커졌는지, 나를 보고도 하우스 바닥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고 있었다. 농약가게 할머니가 말한, 이 약은 비싼 만큼 효과가 좋다는 소리를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웃고 말았다. 약효가 좋다는 말에 천 원짜리를 마다하고 굳이 오천 원짜리 약까지 샀으니 말이다. 가만히 생각하자니 화가 났다. 천 원짜리를 사려는데 굳이 오천 원짜리 쥐약을 권한 건 그 농약방 할머니의 상술이었을까?
나는 그날 다시 농약방을 찾았다. 이번에는 전에 쥐약을 샀던 무거동에 있는 가게가 아니라 아예 언양에 있는 농약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도 오천 원짜리 쥐약을 추천했다. 일주일 전에 그 쥐약을 사용했지만 쥐가 죽기는 고사하고 더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무거동에 있는 가게로 가지 않고 이십 분 이상 더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노라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쥐약은 일주일이 지나야 약효가 나요.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부터는 여기저기 쥐들이 나자빠질 거요. 약은 더 살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아니, 약효가 일주일이 지나야 생기는 것은 또 뭐야. 요즘 쥐약은 또 유별나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급하게 무거동 농약방의 할머니를 욕한 것이 속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또 성급한 언양행을 단행한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혹시 몰라서 천 원짜리 쥐약 한 봉지를 사고는 가게를 나왔다.
사흘 뒤 해가 질 무렵 모이를 주러 밭으로 갔다. 겨울이라 사위에 어둠이 내리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을 후레쉬앱으로 밝히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다섯 마리의 쥐가 죽어 있었다. 아니 어떤 놈은 사지를 쭉 뻗은 채로 마지막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참으로 아수라장이 아닐 수 없었다. 동동이는 이 끔찍한 상황이 힘이 들었는지 횃대에서 내려와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밤인데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쥐의 사체를 처리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쥐의 꼬리 부분을 들고 나와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는 원두막 옆에 있는 왕버들나무 밑을 삽으로 팠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삽으로 판 땅속도 쥐구멍이었는지 쥐가 약에 취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후레쉬를 하우스 밖으로 비춰보았는데 밖에서도 죽은 쥐 대여섯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쥐가 도대체 몇 마리였단 말인가? 땅 속에서 죽은 것까지 친다면 대충 삼십여 마리는 된단 말인가? 이놈들이 그 동안 동동이의 밥을 몽땅 빼앗아 먹었단 말인가?
아마도 처음엔 두어 마리의 쥐가 근처에 살았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치다 동동이의 먹이통을 보고는 이 무슨 횡잰냐면서 이곳에 정착했으리라. 황량한 겨울, 들쥐의 가족들에게는 이 정기적으로 양식을 가득 채워주는 먹이통이 화수분과도 같았을 터이고……. 그들은 양식 걱정이 없는 이 지상낙원에서 종족번식에 전념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친 것은 차라리 하지 못한 것만 같은 것!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어느 들쥐 가족의 번영은 지나친 개체수의 증가로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맞고 말았다. 오호 애재(哀哉)라!
쥐는 한 동안 하우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정착한 쥐가 보이면 즉시 쥐약을 놓아 퇴치하였다. 더 이상 이 동동이의 집을 쥐들의 왕국으로 만들게 방치해 둘 수는 없기에……. 이후로 동동이의 먹이통에는, 이전의 삼분의 일 정도의 모이만 담아 놓아도 거뜬히 한 주일을 지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첫댓글 고생이 많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