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더욱이 가을의 정취에 젖어들면 뭔가 허전함에 마음은 쓸쓸하고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서글픔에 가슴을 적시며 센티멘털해지기도 한다.
햇살이 가득한 어느 늦은 오후,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서 대둔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도로에 낙엽이 흩날리는 시내를 빠져나가 뿌리공원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새로 뚫린 터널을 빠져나가면 왕복 4차선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쭉 뻗은 아스팔트를 쾌속으로 달리니 마음이 한결 상쾌해진다.
마을 가까이 커브 길에 이르기 직전 후미진 저쪽에서 여인이 신호를 보낸다.
지금 그녀와 대둔산을 향하고 있다.
60대 남자가 애인이 있다면 여자로부터 표창을 받을 할아버지며
그 세대의 여자가 애인이 있다면 신의 은총을 받을 할머니라 했다.
나이차는 나와 서너 살로 같은 고민을 갖고 살았을 그 여인.
오늘 대둔산을 동행키로 미리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녀를 만난 건 몇 달 전이었다.
어느 날
터널 입구에서 나이 든 할머니와 오십대 후반의 그 여인이 손을 드는 것이다.
시골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대전 도마동 재래시장에서 팔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쉬엄쉬엄 걸어서 집으로 향하며 에멜무지로 손을 들어봤다는
그들은 운 좋게 내 차가 걸렸다는 것이라 했다.
농담도 못하는 내가 그날은 왠지 자꾸 말을 걸었고
나를 그녀들의 관심권에 두려고 했었다.
회갑이 가깝다는 그녀와 내가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그 후로 할머니는 제쳐두고 그녀와 몇 차례 만났다.
농산물을 처분한 뒤 가끔 식사를 했고
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그녀의 집 근처까지 태워 주기도 했다.
늘그막에 나는 그걸 가슴 뛰는 로맨스라 여기며 황홀해했건만
남들은 불륜이라 할 것이며 간통이란 죄명으로 다스릴 것이 아닌가.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나에게
그녀 역시 매일 겪는 농촌생활에 신물이 났을지 모른다.
남녀 간의 만남이 꼭 사랑 때문은 아니다.
비뚤어진 만남은 부부생활에 지극히 만족하거나
지극히 불만인 사람이 저지른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와 가까이 하고픈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영혼의 사랑이 아닌 잠시 소유의 사랑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죄책감과 짜릿함이 뒤엉켜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도 했다.
뭔가를 몰래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건 색다른 쾌감이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인 것이다.
거기에 빠지면 나쁜 면은 자꾸 빼고 숨기면서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흘러나오는 트롯의 노래가 가슴을 서늘케 하고 괜히 서글퍼지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도 행복을 느끼며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건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녀를 서너 발 멀찍이 뒤에 두고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서 표를 사려는 중에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순간 가슴이 뛴다.
이곳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못 들은 척 표 파는 곳을 주시하건만 어깨를 움켜쥐는 손이 우악스럽다.
“여보, 왜 그래요?”
오수에 빠져 잠꼬대를 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사람은 아내인 것이다.
순간 뿔이 돋는다.
가을타는 남자의 애틋한 꿈을 지운 아내가 밉다.
달콤한 낮잠을 깨운 죄를 어떻게 묻는다?
케이블카에 올라 발아래 펼쳐지는 단풍을 즐긴 후에나 깨울 것이지.
꿈에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꿈이어!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오소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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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이좋아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