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15
교단은 소용돌이 치는데도,
잔인한(?) 스승의 날은 시간의 힘을 등에 업고 이 아침 어김 없이 찾아 왔습니다.
교문 앞에 늘어선 꽃장수들은 대목 만나 신났고,
꽃을 고르는 학생들,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도 몇 명 눈에 띄고.
스피커에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가 흘러 나오고,
상대성 원리대로 우리들 교사들은 목을 움추리고 싶고.
교실 옥상에는 노란 바탕에 "사랑해요, 선생님!" 이라고 쓴 현수막이 바람에 날려 우리들의 마음처럼 펄럭 펄럭,
중앙 현관의 계단을 오르니, 붉은 카페트를 깔고 오색 풍선들로 단장하고 두 줄로 늘어선 학생 간부들이 들어서는 선생님들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하고,
마침 전산 담당 금은옥선생님과 나란히 들어서니 신랑신부 입장 같아 웃음이 나와,
그제서야 아까부터 짓눌렸던 마음이 한결 풀렸습니다.
내 개인 의사였다면, 여론조사 결과대로 "집에서 쉬면서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휴일"로 스승의 날을 넘기고 싶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이 스승에게 갖는 감사의 마음도 소중한 덕목이고, 졸업생들도 옛 은사님들 만나러 모교에 찾아오니,
어느 쪽에 더 교육의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
학생회 주관으로 먼저 선생님께 대한 "감사의 글"을 부회장이 읽었고,
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싯구를 인용하여 사제지정의 아름다운 관계를 교장의 인삿말로 대신했고,
"카네이숀 달아 드리기", "교가 제창" 순으로 스승의 날 행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교실로 들어가 "담임과 함께하는 시간"은 올해부터 안 하기로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을 위한다는 학급행사가 오히려 담임에게 노래도 시키고 심지어는 춤도 추게 하는 부담을 안긴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교하지 않고 교무실로 찾아 와 인사를 드리는 학생들이 많아 보기 좋았습니다.
모처럼 교무실에 꽃 잔치가 벌어져 나비는 없지만 꽃밭으로 바뀌었고, 졸업생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번 일식집에 30여명이 모여 멋진 점심을 대접했던 2회 졸업생들도 6명이 큰 분재 장만하여 찾아와 또한번 스승들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어떤 반에서는 선생님들에게 떡을 돌리기도 하였고, 학부모 대표들도 찾아와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을 모든 선생님께 드리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운동장을 지나 교문을 나서는데, 교문 앞에 멈춰선 택시에서 꽃다운 처녀 두 명이 내리면서,
"어머, 선생님 !!"
역시 "영원한 모교, 상일여고"를 찾아온 옛 제자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