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선암사 꽃무릇
더위가 끝이 없다. 이상기후를 의심할 충분한 더위다. 사상 첫 9월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났던 올해 9월은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더운 9월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9월 기후 특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평균 기온은 24.7도로 평년 20.5도보다 4도 이상 높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9월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4.3일로 0.1일이던 평년 기록의 43배를 기록했고 9월까지의 연간 열대야 일수 역시 24.5일로 평년의 6.6일보다 4배 정도 많아 역대 최다이다. 결론은 지금까지 올해가 가장 더웠다.
꽃이 없는 축제다. 평년에 맞추어 계획한 꽃축제는 예측이 틀려버렸다. 날씨 때문이다. 꽃을 피운 꽃무릇이 일부 있어 다행스럽다. 화려한 꽃무릇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아쉬움을 표현했다. 꽃무릇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함평 용현사,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 세 곳 모두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은 명승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곡 곳곳에 뾰족하게 솟은 꽃망울이 가득하다. 그 사이 수 개의 활짝 핀 꽃무릇이 반갑다. 서정주의 선운산가비를 지나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을 지난다. 부도전에서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살펴본다. 추사체와는 많이 멀어 보이지만 날카로운 힘이 느껴진다.
꽃무릇이 아쉬우니 눈길을 돌린다. 선운사에는 보물로 만세루, 대웅전, 금동지장보살좌상, 소조비로자나불좌상,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참당암 대웅전,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이 있다. 도솔폭포와 용문굴, 진흥굴, 내원궁, 천마봉에도 오르고 싶다. 꽃무릇이 아니라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단풍으로 붉은 날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상사화의 일종으로 꽃과 잎이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꽃이다. 군락으로 떼 지어 피어 있을 때 예쁘다. 한 송이만을 근접해 찍은 사진도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꽃무릇도 측은하지만,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한 내가 더 측은하다.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선운사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수많은 꽃무릇 관광객은 모두가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대한민국은 부유한 늙은이가 많은 나라 같아 보인다. 젊은이들은 꽃무릇에 관심이 없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하긴 나도 꽃무릇을 알고 관심을 가진 게 기껏 다섯 해 정도다. 2년 전 거창 갈계숲에서 꽃무릇 군락을 처음 봤으니 하는 말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추억! 늙은이들뿐인 게 이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