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마흔세 살의 나이에 불후의 명저를 썼다. 제목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인데, 각 문화권에서 공통되는 이야기를 채집한 내용이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초보와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삶의 고수와 어른이 되는가의 이야기를 한다.
공주가 연못에서 놀다가 황금공을 그곳에 빠트린다. 울고 있는 공주에게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서, 공을 찾아주면 자신을 성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공주의 영웅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사춘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나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여동생과 함께 잘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불쑥 아버지와 함께 같이 살자고 올라왔다. 이때 난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 긴장 상태였다. 그렇게 나의 영웅 이야기도 펼쳐진다.
나의 경우에는 사회화가 되지 않은 모습이 부각되었다. 당시 여자친구도 너무 힘들게 했고, 선배가 너무 힘겨웠다. 지금은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때 너무 남과 사회 탓을 하는 바람에 내 삶이 무너졌다. 1년을 한숨으로 아침을 열었다.
이렇게 영웅 체험에 뛰어든 사람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등장한다. 보통은 노인이나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게는 정신과 선생님이 그런 인물이 되어 주었다. 조언이나 호부를 주는데, 나의 경우에는 망상을 선생님이 조절해 주었다. 이것이 정신과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훌륭한 정신의학자 스캇 펙은 말하고 있다. 정신치료는 진실 게임이라고 했다. 환자들은 자신이나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거짓과 대결하는데, 이 과정을 정신과 의사가 도와준다. 나도 끊임없이 현실의 나와 비현실 속의 나와 견주는 시절을 오래 겪어야 했다.
이것은 1970년대 선풍을 떨친 어떤 선사가 말한 것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필름을 돌리며 산다.” 이것이 곧 망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이다. 사람들은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거짓된 정신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 이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아무튼, 나의 영웅 이야기는 편안한 지점에서 매몰되는 듯했다. 옛말에도 영웅이 도달한 땅은 너무 영광스러운 땅이다. 그는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다. 그곳은 그토록 달콤하고, 그토록 은혜롭다 했다. 그런데 영웅에 값하는 사람은 이 세계로 돌아온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는 자가 되지 않으려, 귀환의 시절을 지금 겪고 있다. 이 사회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자가 되고 싶다. 꼭 내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세계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충동질을 한다.
황금양털이나 지혜의 시문 혹은 불멸의 영약을 갖고 영웅은 지하 세계에서, 지상으로 되돌아온다. 이때 익살스러운 추격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가 이와 같을 수 있다. 주인의 허락을 맡지 않았거나 보물의 값어치가 클수록 이런 모험이 펼쳐진다.
난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즉 나의 귀환은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 정신이 돌아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나의 내면의 흐름을 내가 짐작할 뿐이다. 영웅에 값하는 사람은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처럼 키스를 받아, 멋진 왕자로 변신한다.
이때 마녀가 걸어놓은 마법의 주술은 풀어진다. 다시 주방에서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기 시작한다. 요리사는 설거지를 끝낸 아이 귀에다 소리를 시끄럽게 지르고, 하녀는 닭털을 다 뽑은 참이었다. 즉 생명의 흐름이 다시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내 삶이 다시 생기있게 되살아난다는 것을 말한다. 넓은 벌판으로 나와 사회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자기 안의 용을 제압하고 나면, 신경증이 사라진다고 했다. 나의 경우에도 더욱 대범한 성격으로 변용된다.
김신웅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