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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의 숲 카페》
## 제57화 ― 「받을 사람이 아직 이사를 안 왔거든요」
할머니는 매주 목요일에 왔다.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간.
언제나 작은 천가방을 들고 있었다.
꽃무늬가 희미하게 남은 오래된 가방이었다.
“어서 오세요.”
소진이 인사하면 할머니도 늘 같은 말로 대답했다.
“오늘도 왔어요.”
“그러게요. 오늘도 오셨네요.”
할머니는 웃었다.
그리고 창가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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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대추차를 마셨다.
두 번째 주에는 모과차.
세 번째 주에는 국화차.
그 뒤로는 국화차로 정착했다.
“국화차가 제일 좋으세요?”
소진이 물었다.
할머니가 찻잔 속에 떠 있는 노란 꽃잎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뻐서.”
“맛이 아니라요?”
“맛도 좋지만 보는 게 더 좋아.”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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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차가 나오면 천가방에서 작은 필통을 꺼냈다.
그리고 엽서 한 장을 꺼냈다.
엽서는 매번 달랐다.
바다가 그려진 엽서.
꽃밭이 그려진 엽서.
눈 덮인 산.
오래된 기차역.
골목길.
해 질 무렵의 들판.
할머니는 그날 마음에 드는 엽서 한 장을 골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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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소진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할머니는 엽서를 다 쓰고 나면 주소를 적었다.
우표도 붙였다.
그런데 보내지는 않았다.
다시 천가방 안에 넣었다.
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썼다.
주소를 적었다.
우표를 붙였다.
그리고 가방에 넣었다.
한 달.
두 달.
매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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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영이 그 모습을 보았다.
마침 그날은 지영이 밥을 파는 날이었다.
주방에서 나물을 무치던 지영이 소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할머니 뭐 하세요?”
“엽서 쓰셔.”
“누구한테?”
“몰라.”
“매번 쓰는 것 같은데?”
“응.”
“우표도 붙였잖아요.”
“응.”
“그럼 보내야죠.”
“그러게.”
지영은 잠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혹시 우체통이 어딘지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소진이 말했다.
“설마.”
“연세 드시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네가 알려드려.”
“제가요?”
“네가 궁금해하잖아.”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남의 편지에 관심 없습니다.”
소진이 웃었다.
“방금까지 누구한테 보내는지 물었잖아.”
“그건 그냥 궁금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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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나 손님들이 빠졌다.
할머니는 여전히 엽서를 쓰고 있었다.
소진이 따뜻한 물을 조금 더 가져다주었다.
“차 한 번 더 우려드릴게요.”
“고마워요.”
소진은 찻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노란 국화꽃이 다시 천천히 떠올랐다.
할머니가 엽서를 뒤집었다.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우표를 붙였다.
소진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소가 완전하지 않았다.
**강원도 ○○군 ○○면…**
그 뒤가 비어 있었다.
집 번호도 없었다.
받는 사람 이름도 없었다.
---
할머니는 엽서를 가방에 넣었다.
소진이 결국 물었다.
“할머니.”
“네?”
“하나 여쭤봐도 돼요?”
“뭔데요?”
“매주 엽서 쓰시잖아요.”
할머니가 웃었다.
“봤어요?”
“보려고 본 건 아니고요.”
“괜찮아요.”
“그런데 왜 안 보내세요?”
할머니는 가방을 닫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소진을 바라보았다.
장난기 섞인 얼굴이었다.
“보낼 수가 없어요.”
“왜요?”
“주소가 없으니까.”
“주소를 모르세요?”
할머니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받을 사람이 아직 이사를 안 왔거든요.”**
---
소진은 잠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사를 안 왔다고요?”
“네.”
“어디로요?”
할머니가 창밖을 가리켰다.
“산골로.”
“받으실 분이 산골로 이사 오기로 했어요?”
“그렇지.”
“언제요?”
할머니는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도 몰라요.”
소진은 더 궁금해졌다.
“그럼 이 엽서들은 누구한테 보내시는 건데요?”
할머니가 말했다.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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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한테 보내는 거예요.”
소진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웃고 있었다.
“할머니가 할머니한테요?”
“그래요.”
“그런데 이사를 아직 안 왔다면서요.”
“그러니까 못 보내지.”
할머니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할머니의 이름은 최정임이었다.
일흔한 살.
정임은 평생 도시에서 살았다.
결혼하고는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과 두 아이를 키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모두 결혼해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생활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정임에게는 오래된 꿈이 하나 있었다.
“산골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왜요?”
소진이 물었다.
“그냥.”
정임은 웃었다.
“젊을 때부터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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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이 어릴 때 외할머니는 산골마을에 살았다.
여름방학이면 정임은 그곳에 갔다.
아침에는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마당에는 봉숭아가 피었다.
장독대 뒤에는 호박이 열렸다.
저녁이면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밤에는 별이 많았다.
정임은 그곳이 좋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마다 울었어요.”
“그렇게 좋았어요?”
“어린애니까.”
정임은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가 재미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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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넘어서도 가끔 생각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조용한 데 가서 살아야지.**
결혼하고도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늙으면 시골 가서 살자.”
남편은 웃었다.
“당신 사흘이면 도시로 도망올걸.”
“안 와.”
“병원은?”
“차 타고 가면 되지.”
“마트는?”
“장날 가면 되지.”
“겨울에는?”
“아궁이 때면 되지.”
남편은 웃었다.
“아궁이 한 번도 안 때본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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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은 가끔 시골집 이야기를 했다.
마당에는 감나무를 심고.
작은 텃밭도 만들고.
남편은 상추를 키우겠다고 했다.
정임은 꽃을 심겠다고 했다.
“무슨 꽃?”
남편이 물으면 정임은 말했다.
“계절마다 다른 거.”
봄에는 수선화.
여름에는 봉숭아.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눈 보면 되지.”
둘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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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갔다.
돈이 필요했다.
남편은 일을 계속했다.
정임도 식당 일을 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갔다.
결혼했다.
그 사이 부모님을 돌봐야 했다.
생활은 계속됐다.
시골집 이야기는 점점 줄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려고 했어요.”
정임이 말했다.
“남편분하고요?”
“그랬지.”
“그런데요?”
정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먼저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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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난 뒤 정임은 시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혼자 가서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아파트에서 그대로 살았다.
아침이면 산책을 했다.
장을 봤다.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오면 밥을 해줬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정임은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종이를 발견했다.
남편의 글씨였다.
**감나무 하나.
상추 조금.
당신 꽃밭.
내 평상.**
정임은 한참 웃었다.
그러다가 조금 울었다.
“그때 생각했어요.”
“뭘요?”
“왜 나는 그 사람이 없다고 내가 하고 싶던 것까지 없어진 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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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정임은 다시 시골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큰 집은 필요 없었다.
작은 집.
마당이 있는 집.
버스를 탈 수 있는 곳.
병원에 너무 멀지 않은 곳.
겨울에도 사람이 사는 마을.
그런 집을 천천히 찾았다.
“찾으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정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음에 드는 데가 없어요?”
“몇 군데는 있어요.”
“그럼 왜 안 가세요?”
정임이 웃었다.
“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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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시골에 사는 것.
말처럼 쉽지 않았다.
겨울은 춥다.
눈도 치워야 한다.
집도 관리해야 한다.
아프면 걱정이다.
아이들은 반대했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그냥 지금 집에서 편하게 살아.”
딸도 말했다.
“시골생활 생각보다 힘들어.”
정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집을 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계약하려다가 그만뒀다.
“그러다 생각했어요.”
정임이 말했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건 맞나?”
---
정임은 어느 날 엽서를 한 장 샀다.
강원도 산골마을 사진이었다.
눈 덮인 작은 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정임은 그 엽서를 보다가 장난처럼 자기에게 편지를 썼다.
**정임아.
거기 살 만하니?
밤에는 정말 별이 많이 보이니?**
그리고 주소를 적으려고 했다.
그런데 주소가 없었다.
아직 살 집이 없으니까.
그래서 대충 적었다.
**강원도 ○○군 ○○면
최정임에게.**
“그게 첫 번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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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정임은 매주 엽서를 썼다.
아직 그곳에 살지 않는 미래의 자신에게.
**오늘은 국화차를 마셨다.
네 마당에도 국화가 피었니?**
또 어느 날은—
**오늘 아들이 다녀갔다.
여전히 시골 가지 말라고 한다.
너는 결국 갔구나.
살아보니 어떠니?**
또 다른 엽서에는—
**비가 많이 왔다.
네 집 지붕은 괜찮니?
비 새는 데는 없니?**
정임은 웃었다.
“별것도 아닌 걸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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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이 물었다.
“그럼 우표는 왜 붙이세요?”
“진짜 보내려고.”
“언젠가요?”
“응.”
“이사하면?”
“그래.”
정임은 가방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정말 그 집으로 이사 가면 지금까지 쓴 엽서를 전부 부칠 거예요.”
소진이 웃었다.
“한꺼번에요?”
“한꺼번에.”
“우체부 아저씨 놀라겠네요.”
“그러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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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영이 나왔다.
“그럼 미래의 할머니한테 과거의 할머니가 편지 보내는 거네요?”
정임이 웃었다.
“그렇지.”
“재미있다.”
“재미있지?”
“근데 이사 안 가시면요?”
정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엽서 못 보내잖아요.”
정임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그것도 할 수 없지.”
지영이 말했다.
“아까운데.”
“뭐가?”
“그동안 쓴 엽서가요.”
정임은 고개를 저었다.
“안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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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이걸 쓰는 동안 내가 계속 생각하잖아.”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떤 집을 원하는지.
무엇을 심고 싶은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그것만으로도 좋아.”
정임이 말했다.
“꼭 다 이루어야 꿈인 건 아니잖아.”
소진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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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정임이 올 때마다 소진은 엽서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용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어떤 그림의 엽서를 골랐는지만 보았다.
벚꽃길.
푸른 바다.
들판.
고양이가 담 위에 앉아 있는 그림.
어느 날은 작은 우체통이 그려진 엽서였다.
“오늘은 예쁘네요.”
소진이 말했다.
“그렇지?”
정임이 웃었다.
“미래의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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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정임은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소진 씨.”
“네.”
“나 집 보고 왔어요.”
“시골집이요?”
“응.”
정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어땠어요?”
“작아.”
“얼마나요?”
“방 두 개.”
“마당은요?”
“있어.”
“감나무는?”
“그건 없어.”
정임이 웃었다.
“심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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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오래됐다.
벽지도 바꿔야 했다.
화장실도 손봐야 했다.
마당에는 잡초가 많았다.
하지만 집 뒤로 낮은 산이 보였다.
마을 입구까지 버스가 왔다.
차로 이십 분 정도 가면 병원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루가 있어.”
정임이 말했다.
“마루요?”
“응.”
“좋으세요?”
“아주 좋아.”
정임은 마루에 앉아 한참 산을 바라보고 왔다고 했다.
“계약하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정임은 잠시 망설였다.
“아직.”
“왜요?”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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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정임은 딸과 다시 집을 보러 갔다.
딸은 걱정했다.
“엄마, 겨울에 힘들어.”
“알아.”
“병원도 멀고.”
“알아.”
“집 관리도 해야 돼.”
“알아.”
딸은 한참 말하다가 물었다.
“그래도 살고 싶어?”
정임은 마당을 바라보았다.
잡초가 가득했다.
낡은 장독대도 있었다.
담 한쪽에는 이름 모를 꽃이 조금 피어 있었다.
“응.”
정임이 말했다.
“한번 살아보고 싶어.”
딸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럼 너무 무리하지 마.”
“그래.”
“힘들면 다시 올라와.”
“그래.”
“집 팔지는 말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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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은 계약했다.
소진의 숲 카페에 와서 가장 먼저 말했다.
“나 이사 가요.”
소진이 웃었다.
“정말요?”
“응.”
“언제요?”
“다음 달.”
정임은 천가방을 열었다.
그동안 써온 엽서들을 꺼냈다.
고무줄로 묶인 엽서가 제법 많았다.
“이게 다예요?”
“응.”
“몇 장인데요?”
“스물여덟 장.”
지영이 말했다.
“우표값도 많이 들었겠네요.”
정임이 웃었다.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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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은 그날 스물아홉 번째 엽서를 썼다.
소진이 물었다.
“오늘은 뭐라고 쓰세요?”
정임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읽어줄까?”
“괜찮으시면요.”
정임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정임아.
결국 가는구나.
무섭지?
나도 지금 무섭다.
그래도 네가 그 집 마루에 앉아 이 엽서를 읽고 있다면
우리가 생각보다 잘한 것 같구나.**
정임은 엽서를 내려놓았다.
“어때?”
소진이 말했다.
“좋아요.”
지영이 말했다.
“조금 울 것 같아요.”
정임이 웃었다.
“울긴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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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이 가까워졌다.
정임은 카페에 자주 왔다.
이삿짐 이야기.
보일러 이야기.
마당 이야기.
아이들이 사준 냉장고 이야기.
딸이 가져다준 이불 이야기.
아들이 설치해준 안전 손잡이 이야기.
걱정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정임은 즐거워 보였다.
“요즘 바쁘시겠어요.”
소진이 말했다.
“정신없어요.”
“후회 안 하세요?”
정임은 생각했다.
“아직은.”
“나중에는?”
“후회할 수도 있지.”
정임은 웃었다.
“그러면 다시 오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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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요일.
정임은 평소처럼 국화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마지막 엽서를 꺼냈다.
서른 번째 엽서였다.
그림은 빈 의자 하나가 놓인 마루였다.
정임은 한참 글을 썼다.
주소도 적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정확한 주소였다.
도로명.
집 번호.
그리고—
**받는 사람: 최정임.**
소진이 그것을 보고 웃었다.
“드디어 주소가 생겼네요.”
정임도 웃었다.
“그러게.”
“이제 받을 사람이 이사 왔네요.”
정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아니지.”
“다음 주면요?”
“그때는 와 있겠지.”
---
정임은 서른 장의 엽서를 모두 가방에 넣었다.
“이걸 정말 다 보내실 거예요?”
“그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직접 들고 가면 더 빠르잖아요.”
지영이 말했다.
정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재미없지.”
“왜요?”
“편지는 기다렸다 받아야 편지니까.”
---
이사한 뒤 첫 번째 목요일.
정임은 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진은 창가 세 번째 자리를 바라보았다.
늘 국화차가 놓이던 자리였다.
지영이 말했다.
“허전하네요.”
“응.”
“잘 지내실까요?”
“잘 지내시겠지.”
“엽서는 보냈을까요?”
소진이 웃었다.
“그건 모르지.”
---
그 시각.
정임은 작은 시골집 마루에 앉아 있었다.
이삿짐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방에는 상자가 몇 개 남아 있었다.
마당의 잡초도 그대로였다.
감나무도 아직 없었다.
국화도 없었다.
하지만 햇빛이 좋았다.
정임은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때 대문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우편물이요!”
정임이 천천히 일어났다.
대문을 열었다.
우편함에는 엽서가 가득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
그리고 또 한 장.
모두 자신 앞으로 온 것이었다.
---
정임은 엽서를 들고 마루로 돌아왔다.
가장 오래된 엽서부터 펼쳤다.
강원도 산골마을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 뒤에는 과거의 자신이 쓴 글이 있었다.
**정임아.
거기 살 만하니?
밤에는 정말 별이 많이 보이니?**
정임은 한참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당 너머 산을 보았다.
“아직 모르겠다.”
혼잣말을 했다.
“어제 왔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
정임은 웃었다.
---
두 번째 엽서를 펼쳤다.
**네 마당에도 국화가 피었니?**
정임은 빈 마당을 바라보았다.
“아직.”
세 번째.
**비가 오면 지붕은 괜찮니?**
“그건 나도 궁금하다.”
네 번째.
**혼자라서 외롭지는 않니?**
정임은 그 문장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조금.”
하지만 곧 웃었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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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은 그날 서른 장을 모두 읽지 않았다.
하루에 한 장씩 읽기로 했다.
그래야 한 달 동안 편지가 생기니까.
저녁이 되었다.
산 너머로 해가 졌다.
정임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조금 쌀쌀했다.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정임은 첫 번째 엽서를 다시 펼쳤다.
**밤에는 정말 별이 많이 보이니?**
정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응.”
이번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많다.”
---
한 달 뒤.
소진의 숲 카페 문이 열렸다.
딸랑.
“어서 오세요.”
소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어머.”
정임이었다.
“잘 지냈어요?”
“네.”
“시골생활은요?”
정임은 자리에 앉았다.
“힘들어.”
소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요?”
“잡초가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모르겠어.”
“또요?”
“밤에는 너무 조용해.”
“또요?”
“벌레도 많고.”
“후회하세요?”
정임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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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침이 좋아.”
새벽이면 새 소리가 들렸다.
마당에 나가면 공기가 달랐다.
집 앞을 천천히 걸었다.
동네 할머니와 인사도 나누기 시작했다.
작은 화분도 몇 개 샀다.
“국화 심으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응.”
“감나무는?”
“그건 다음 봄에.”
“평상은요?”
정임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
“그건 하나 놓으려고.”
남편이 원했던 평상.
정임은 마당 한쪽에 작은 평상을 놓을 생각이었다.
“거기 앉아서 차 마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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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국화차를 내왔다.
정임이 찻잔을 바라보았다.
“이 맛이 생각났어.”
“그래서 오셨어요?”
“그것도 있고.”
정임은 천가방에서 엽서 한 장을 꺼냈다.
“또 쓰시게요?”
“응.”
“이제 주소 있잖아요.”
“그러니까 보낼 수 있지.”
정임은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받는 사람 이름을 적었다.
**소진의 숲 카페 소진 씨에게.**
소진이 놀랐다.
“저한테요?”
“응.”
“지금 주시면 되잖아요.”
정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재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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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은 글을 다 썼다.
소진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우표를 붙였다.
그리고 가방에 넣었다.
“언제 보내실 건데요?”
“집에 가서.”
“뭐라고 썼어요?”
“편지는 받아봐야 알지.”
소진이 웃었다.
“알았어요.”
---
며칠 뒤.
카페 우편함에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마루가 그려진 엽서였다.
소진은 뒤집었다.
정임의 글씨가 있었다.
**소진 씨.
받을 사람이 드디어 이사 왔어요.
아직 서툴고, 가끔 외롭고, 잡초 때문에 허리도 아프지만
그래도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마당에 국화를 심었습니다.
꽃이 피면 또 소식할게요.**
그리고 맨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추신. 밤에는 정말 별이 많아요.**
---
소진은 한참 엽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페 벽 한쪽에 조심스럽게 붙였다.
지영이 와서 읽었다.
“잘 지내시나 봐요.”
“응.”
“진짜 이사 가셨네요.”
“그러게.”
지영은 엽서를 다시 읽었다.
“근데 멋있다.”
“뭐가?”
“자기한테 편지를 썼다는 거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 저녁.
손님들이 돌아간 뒤 소진은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적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임은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조금씩 그곳으로 걸어갔다.
집을 찾아보고.
망설이고.
다시 찾아가고.
겁을 내고.
그래도 계약했다.
엽서 한 장마다 미래로 가는 작은 발걸음이 들어 있었다.
소진은 한 줄을 더 적었다.
**가끔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기다리며 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었다.
**그 사람이 도착할 집을 마련하는 일도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계절이 조금 더 지나갔다.
어느 날 우편함에 또 엽서가 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노란 국화밭 사진이었다.
정임의 글씨는 짧았다.
**소진 씨.
국화가 피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피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내년에 놀러 와요.
국화차는 내가 대접할게요.**
소진은 웃었다.
엽서를 첫 번째 엽서 옆에 붙였다.
두 장이 나란히 걸렸다.
한 장에는 마루.
한 장에는 국화.
소진은 잠시 두 엽서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이사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이다.
하지만 정임에게 그것은 오래 기다린 자신에게 가는 일이었다.
젊은 날의 자신이 꿈꾸었던 곳으로.
남편과 함께 이야기했던 곳으로.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라도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임은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보다 한번 가보기로 했다.
힘들면 돌아오면 된다.
외로우면 사람을 만나러 오면 된다.
잡초가 많으면 조금씩 뽑으면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뒤에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도,
집도,
삶도—
살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니까.
소진은 카페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엽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받을 사람이 잘 도착했네요.”
창밖의 숲이 바람에 흔들렸다.
어딘가 작은 산골집 마당에서는 국화가 피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루에는—
오래전부터 그곳으로 이사 오기를 기다렸던 한 사람이 앉아 있을 것이다.
바로,
최정임이라는 사람이.
**― 제57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58화
지영이 밥을 파는 날, 한 여자가 어린 딸과 함께 카페를 찾는다.
아이는 밥을 먹다 말고 지영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줌마, 우리 엄마한테도 밥 한 번 해주시면 안 돼요?”**
지영이 이유를 묻자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뜻밖의 말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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