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테헤란로를 자주 다닙니다
대치동에 아이 학원 라이딩이 주된 일이죠
이 길과 관련하여 안과 주치의 시절을 비롯해서 여러 추억도 있고
아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도 해보면서 써본 글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테헤란로의 눈물
정 찬경
길고도 먼 저 대로 위에 언덕이 아스라하다. 길 가운데에는 빌딩들이 만들어 놓은 커다란 사각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다. 가로수들은 거대하게 우뚝 솟은 빌딩들의 숲에 비해 장난감처럼 초라하다.
멀리서 바라본 이 큰 길은 제법 운치와 낭만이 있는 풍경을 제공하는데 반해 강남역을 넘어 대로에
들어서면 빽빽이 들어선 차들과 바쁜 행인들로 정신이 현란해진다. 게다가 광고판들과 간판들이 풍기는
상업적인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내 자동차와 나 그리고 내 아들, 이 세 존재는
오늘도 이 테헤란로 위에 놓여있다. 그리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차들의 물결 속을 요리조리
흔들리며 흘러가고 있다.
어쩌다 이 커다란 도심의 대로가 내게는 집 앞 골목처럼 전혀 서먹하지 않은 익숙한 길이 되었을까.
그건 순전히 내 아들 녀석 때문이다. 강남, 역삼, 선릉역을 지나 포스코빌딩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대치동에 이르게 된다. 잘 알다시피 학원이 많이 있는 교육의 작은 왕국(?)이다. 이곳에 있어보면
사교육을 축소하고 공교육 위주로 정책을 펴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이루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 학원들 중 몇 곳을 난 수년 동안 들락거리며 아들을 실어 나르고 데려오곤 했다.
주로 테헤란로를 이용해 왕래하므로 이 길이 이토록 내게 친숙해진 것이다. 물론 다른 일들로도
많이 오가긴 하지만….
‘테헤란로’라는 이름은 1977년 서울특별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붙인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강남대로에서 선정릉 공원을 거쳐 송파구 잠실동의 삼성교에 이르는 거리로
폭 50m, 길이 4km의 10차선 이상 도로라 하니 가히 ‘태(太)헤란로’라고 불리어도 좋을 듯하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먼저 화려한 도심의 현란한 광휘에 매혹된다.
큰 회사 빌딩이나 금융가, 멋진 호텔, 백화점을 보며 세상 한번 멋지고 화려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속물 같은 욕심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선릉역을 지날 때면 그 옆의 샹제리제 빌딩의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던 친구가 막 상경한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추억도 떠오른다. 레지던트(전공의) 시절
삼성동 C호텔의 뷔페식당에서 안과 선배님들과 맛있게 식사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연세가 지긋하시고
농담도 재미있게 잘하시던 선생님들 중 몇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역삼동의 R호텔 앞을 지날 때면
친지들과 함께 큰 아들 돌잔치를 하던 그 날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전공의 1년차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난 병원에 갇혀 낮엔 일하고 밤엔 병동 환자와 응급환자를
돌보느라(당직근무) 병원과 병원 근처를 떠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일 배우랴 공부하랴’ 부족한
경험에 ‘진료하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밤마다 응급실과 병동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자다 깨다’ 하며 잠을 설치고 몽롱한 상태에서 또 빡빡한
하루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도 내가 되고 싶어 했던 안과 전공의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듯, 세상이 다 내것같던 그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하루하루가 처절하고 괴롭게
느껴졌다.
그러기를 몇 달 쯤 지났을까? 어느 날 한 선배가 “정선생! 오늘 입국식인 거 알지?” 하자
“네.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오늘이 바로 정선생이 우리 안과 식구가 된 걸 확인하는
날이야 알겠어? 하하하” 하며 호쾌히 웃는 선배에게 “네” 하고 대답하고 나자 나 역시 왠지 입국식이
기대되며 마음이 들떴다. 아직도 어렵기만 한 선배 전공의들과 하늘같은 전문의 선생님들을 모시고
함께 병원을 나섰다. 몇 달 만에 병원주위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승용차 뒷자리 한편에 앉아서
두 손발을 모으고 조심스레 눈치를 보고 있는데, 차가 강남으로 가는 것 같아 보였다. 차 안에서 즐거운
농담과 대화들이 오가던 기억이 난다.
난 긴장을 풀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다가 때론 졸기도 하며 무심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저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들을 하기에 저리도 바쁘게 오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할 무렵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큰 길에 우리 차가 들어섰다. 바로 이 테헤란로였다. ‘역시 서울에서도
강남의 한복판 길이라 길이 크기도 하고 건물들도 엄청나구나. 이에 비하면 광주의 충장로나 금남로는
참으로 별거 아니구나…….’ 혼자 상념에 젖어있는데 차안의 라디오에서 당시엔 꽤나 들려지던
트로트 가수의 이별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나 곡조가 꽤 구슬프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다가 고향생각과 부모님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니 나도 모르게 설움 같은 것이 복받쳐 올랐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러 한참을 소리도
내지 못하며 울고 말았다. 옆에 있던 선생님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차창을 보며 눈이 가려운 척,
뭐가 들어가서 비비는 양을 했다.
돌이켜보니 고달팠던 전공의 초년시절에 객지생활의 외로움과 설움이 그 구슬픈 노랫가락과 공명이
되어 그리도 커다랗게 내 가슴을 울려버렸나 보다. 이제와 가끔 그 일이 떠오르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흘렸던 눈물이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그 때의 내가 가슴시리도록 그립기조차 하다. 어찌 보면 내가 살아오며 흘렸던 눈물들 중 정말 잊기
어려운 순도 100%의 뜨거운 눈물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난 그날의 눈물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힘이 솟아남을 느낀다.
난 오늘도 테헤란로를 달리고 있다. 때론 내게는 그 어떤 아름다운 숲속길보다도 더 좋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나의 이 빌딩 숲길을 음미하며 달린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푸르던 청춘의
날들의 꿈과 설움과 즐거움, 눈물과 희망, 차선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서정과 느낌들이 새겨져 있는
길이다. 내 삶의 여정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색색의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 길을 가며 빙그레
웃을 수 있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얼마 안 있으면 제가 원하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꿈에 부풀어 있는 아들 녀석을 태우고
다니다 보니 더욱 그 시절이 생각나고 이 길과 나눈 사연들을 곰곰이 떠올리며 또 한 번 미소
짓는다. 먼 훗날 이 테헤란로를 지나게 될 때엔 더 옛날 일이 되어있을 추억과 아들 녀석을 태우고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면 난 어떤 기분이 될까.
첫댓글 주치의 때 밖에 나오는 게 광명을 얻은거 같죠. 나도 주치의 때 올 당직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지요.
지금은 당직의사만 남아 있던데... 테헤란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다양해요. 그것을 아주 정감있게 잘 표현했네요.
아들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니, 축하해요. 글을 보면 우리 정원장 마음이 따뜻할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잘 감상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