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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宗敎로서의 儒學와 仁
論語 1장은 왜 學而편일까?
민족문화연구소 엄진성
儒家는 爲人之學인가 爲己 之學인가?
君子 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 군자는 평생을 통한 걱정은 있어도 하루아침 뜻밖에
일어나는 근심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憂患(우환)이란 무엇일까? 왜 우환을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恐怖(공포)가 아닌 '不安'으로 부터 생겨나는 憂患意識
憂患意識은 나로 부터 생겨나는 것이지 결코 외부로 부터 발생 된 것이 아니다.
왜 사람은 불안한 마음을 가질까?
재아가 물었다. 삼년상은 한 해로도 충분히 길다고 봅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禮)를 집행하
지 않으면 그 예는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악(樂)을펴지 않으면 그 악은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또 일 년이면) 묵은 곡식은 이미 떨어지고 햇곡식이 상에 오르고, 불쏘시개(鑽
燧)도 새로 장만합니다. (그러니 상喪도) 한 해로 충분할 것입니다.(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
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
矣.”)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 기간에 쌀밥 먹고 비단옷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
냐?”(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재아가 대답하였다: "편안하옵니다."( 曰, “安”)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해라. (그러나) 군자란 상(喪)을 치를 적엔 맛난 것을 먹어도 달
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집에 있어도 편안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너는 편안하다니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
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則爲之!)
재아가 나갔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재아의 불인(不仁)이라니! 자식은 난 지 3년이 지나고
서야 부모의 품을 벗어날 수 있는 것. (그러므로) 대저 삼년상이란 하늘 아래 '공통된 상례
(通喪)'인 것을. 저 녀석도 부모로부터 3년간의 보살핌(愛)을 받았더란 말인가!宰我出. 子
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
其父母乎.)
공자가 혹은 유가가 말하는 우환은 결코 쓸데 없는 기인우천(杞仁憂天)과 같은 것이 아니며, 환득환실(患得患失)과 같은 평범하여 보잘것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들은 단지 소인만이 항상 근심하고 두려워 할 뿐이고 군자는 영원히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군자가 근심하는 일은 재화나 권세가 충분하지 못함이 아니라 德이 아직 닦이지 않음과 학문을 아직 이야기하지 못함이다.
유리에 문왕이 억류되었지만 『역』을 서술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매우 우환이 많았고, 우환 할 수 있었던 성왕인 까닭이다.
『역전』 속에도 우환의식을 엿 볼 수 있는데 「계사전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경』이 만들어진 때는 아마도 中古시기가 아니었겠는가? 『역경』을 만든 사람은 대게 근심(憂患)과 어려움에 처하여 이를 지은 것이다.(易之與也, 其於中古乎? 作易者, 其有憂患乎?)
우환을 통해 지어진 『역경』 속에는 仁이 자리하고 있음을 「계사전하」는 말한다.
仁에서 드러나며 用에서 감추어져 있고, 만물을 부추기지만 성인과 함께 근심하지 않는다.( 顯著仁, 藏著用, 鼓萬物 與 聖人同憂)
聖人이 天보다 위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늘은 무심하나 성인은 항상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걱정은 만물을 낳아서 기를 수 없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만물의 생육이 그 마땅한 바를 얻지 못할까이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安)하기를 희망한다.
安은 불안이 해소된 단계이며 이는 곧 憂患이 없어진 경계이다. 불안을 대하는 태
도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 그 원인을 찾
은 것이며 두 번째는 나의 외부 즉, 타자로 부터 원인을 찾는 것이다.
유가는 불안의 원인을 첫 번째의 것으로 둔다. 이 때문에 사람이 불안한 까닭은 내
적인 자기반성에서 비롯 된 것이다. 자기의 내적반성에 대한 표현으로 反求諸己를
들 수 있다.
反求諸己 는 『맹자』「이루상」의 "행하여도 얻지 못하거든 자기 자신에게서 잘
못을 구할것이니(行有不得者皆反求諸己), 자신의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올 것이다
"표현과 『논어』「위령공」의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는 구절이 있다. 에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배움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 학문의 길은 다른데 있지 않고 방심(放心)을 구제하는데 있
을 뿐이다 학문의 길이란 다름이 아니라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 - 『맹
자』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 오면 또
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
겠는가?"
배우는 까닭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잡는 법을 통해 자신의 不安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이다 . 이것은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접근이 아닌 인간의 원초적 심리에서 비롯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종교라 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문종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人文宗敎란?
인문종교는 神이 없는 종교이다.
공자는 怪力亂神을 경계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자로가 귀신 섬기는 법을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산 사람도 제대로 섬기기
어렵거늘 어떻게 귀신을 능히 섬기랴.
공자는 철저히 현세 중심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합리주의자 였다. 이 때
문에 神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나 숭배는 지양의 대상이 었다. 이 때문에 유학
에서 기타 종교와 같은 신앙의 대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초월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유교의 도덕 속에는 이미 종교적 신앙이 내재되
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자신 속에 있는 불안의 해소에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극도의 긍정으로 부터 비롯된다.
이때 仁이란 인문종교의 핵심이며 자기반성의 핵심으로서 공자에게 철학의 근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