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散策[017]
山中問答(산중문답)
- 李白(이백)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閒(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류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어찌하여 푸른 산에서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 아니 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내려가니
또 다른 세상이라, 인간이 아니로세!
□ 以信 曰
산속에 묻혀 사는 이백에게 ‘왜 답답하게 산속에서 사느냐?’라고 물었습니다(누가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묵묵부답(黙黙不答). 이백은 싱긋이 웃기만 하고,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이백이 대답했다고 해서 물었던 이가 그의 마음을 다 헤아릴 리도 없고, 이백도 뾰족한 답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사는 사람이 어떤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산이 있어 산에 오르듯,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사는 것이니 다른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백도 빙그레 웃음으로 이 질문에 답했던 것 같습니다.
이백의 말로는 그곳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랍니다. 헐! 그럼 무릉도원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닌가 봅니다. 응답이 없는 삶도 있습니까?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고 웃기만 하는 곳에서 어떻게 삽니까?
어라!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닙니다.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걸 보니 강의 상류 어딘가에 무릉도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지요! 무릉도원이 그렇게 쉽게 우리 곁에 다가오겠습니까?
이백의 시를 읽으며 손으로 쓰고 있는데, 예전에 낙서처럼 끼적였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이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빨리/ 천 년만에 오겠습니까 // 그러나 그 꿈이 너무 아름답고 이뻐서/ 모두들 같이 꾸게 되었습니다 // 이루어질 약속의 꿈이라면/ 천 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진대도/ 무얼 그리 야박하다 하겠습니까/ 어차피 이루어질 것인데요
※ 추신: 하나님을 믿는 건 그분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간직하는 것이다(아브라함 죠수아 헤셸)
여러분의 꿈이 담긴 무릉도원이 있습니까? 그럼 이백처럼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무릉도원이라도 있어야 비인간(=신선ㆍ神仙)을 꿈꿔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꿈과 이야기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니 그게 ‘이뤄진다’, ‘안 이뤄진다’를 따지지 말고, 그냥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오래갑니다.
첫댓글 이백과 헤셀과 이신의 마음의 흐름이 좋습니다. 꿈=예수님의 꿈=천년, 굳이 펼쳐지는 세상이 모르더라도 마음에 담고 사는 무릉도원처럼 그저 웃고 사는 오늘이 되었으면 하는 귀한 생각과 꿈을 다시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