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대가
전편에서 이어짐......
카드모스가 테바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샘을 지키는 용을 죽임으로써 아레스의 노여움을 사 그에 대한 죄 값으로 8년 간 아레스가 부과한 노역에 종사해야만 하였다.
아테나는 노역이 끝난 카드모스를 테바이의 왕으로 세우는 한편, 제우스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를 아내로 주면서 그들을 축복하였다. 결혼식 날에 신들이 그들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올림포스를 떠나 결혼식에 참석하였는데, 특히 헤파이스토스는 자기가 만든 아름다운 목걸이와 신부의상을 하르모니아에게 선물하였고, 헤르메스는 카드모스에게 리라를 선물하고 데메테르는 곡물을 주었다.
하지만 선물들 가운데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목걸이(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신부의상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에게 액운을 가져다 주었는데, 카드모스 일가도 그 액운을 피할 수 없었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테바이를 덕으로 통치하면서 보이오티아 사람들에게 페니키아 문자(알파벳)를 가르치는 등 문화교육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카드모스는 자신이 죽인 용의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어야 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은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다간 폴리도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예를 들어 그들의 딸 세멜레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였으나 제우스를 의심하여 벼락에 맞아 죽고 말았고 아우토노에는 아리스타이오스와 결혼하여 악타이온을 낳았으나 아르테미스의 나체를 훔쳐보았다는 죄목으로 사슴으로 변하여 자신의 사냥개에 물려 죽고 말았다(그림: 제우스를 의심한 세멜레가 재앙을 당하는 장면).
또한 디오니소스 신앙에 반대한 테바이 왕 펜테우스는 아가우에가 뿌려진 용의 이빨에서 나온 남자 가운데 한사람인 에키온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었으나 디오니소스 축제를 엿보러 갔다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시녀인 마이나데스(아가우에 자신도 이 중 하나였다)에게 발각되어 갈기갈기 찢어죽임을 당했다. 왜냐하면 아가우에를 비롯한 마이나스들(복수형은 마이나데스)이 축제의 클라이막스에서 펜테우스를 야수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카드모스의 또 하나의 딸 이노와 그 남편 아타마스는 어린 디오니소스를 길러주었다는 죄목으로 헤라 여신의 분노를 사서 미치고 말았는데, 정신착란 증상을 일으킨 아타마스가 세 아들 가운데 두 명을 죽이고 이노는 셋째 아들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동반자살하고 말았다.
뱀으로 변한 카드모스 부부
"정말 싫다, 싫어!"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테바이가 싫어져 엔켈리아로 이주하였다. 앞에서 이야기한 불행의 연속으로 이 세상이 싫어져서 펜테우스에게 양위하고 물러나 있었는데, 펜테우스 역시 디오니소스 신앙을 박해하다가 끔찍하게 살해되자 카드모스가 다시 테바이 왕으로 복위하였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의욕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드모스 하르모니아 부부가 엔켈리아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디오니소스가 그에게,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비로소 슬픔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데, 그곳 주민들 역시 카드모스를 그들의 왕으로 받들었다.
삶 그 자체가 싫어진 지쳐버린 카드모스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신이시여! 저는 신탁에 따라 아버지의 나라 페니키아를 떠났고 테바이를 건설했나이다. 저는 나라를 덕으로 평화롭게 다스렸으며 신들을 공경하였나이다. 하지만 저는 테바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레스께 바쳐진 성스러운 샘을 범했고 더욱이 그곳을 지키던 용까지 죽였나이다. 그에 대한 대가라면 달게 받겠나이다. 저를 이제 이승에서 거두어주소서!"
지상에서 절규하는 카드모스를 바라보던 아레스도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를 거대하고 온순한 뱀으로 변신시켰는데 하르모니아도 남편이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도 남편처럼 뱀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아버지인 아레스에게 애원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뱀이 되어 숲 속에 살면서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 인들은 거대한 뱀을 영웅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동물로 믿고 있었다(그림: 뱀으로 변해가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