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쓴이의 요청에 따라 두음법칙과 줄임말은 고치지 않았음 ※ )
거기서 하루 밤 묵고 서울에 올라온 뒤, 「인광대사가언록」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책을 들고 광주로 내려가 누나집서 하루 묵고 목욕재계한 다음, 6월 11일 맨 먼저 무안 혜운사로 청화 스님을 찾아뵙고 3권을 법공양 올렸다. 내가 정토염불법문의 홍포를 위해 청화 스님과 관정 스님이 상견해 법담을 나누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맘에 품었더니, 청화 스님이 내 마음을 아시고 관정 스님의 스승이신 허운 화상 법문 말씀을 해주시면서, 「가언록」 제목이 화두선을 배격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아쉬움을 지적하셨다. 큰스님의 기력 소모를 념려한 주지 스님의 당부로 시간이 촉박하고 기회를 놓쳐, 두 스님의 회동 념원은 끝내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혜운사에서 예정에 없이 하루 묵고 이튿날 청화 스님을 따라 완도 범혜사를 방문한 뒤, 무안 약사사 돌부처님을 뵙고 관정 스님을 뵙기 위해 바로 상경했다.
다시 이튿날(13일) 분당 약사암에서 열린 관정 법사 법회에는 불광출판부에서 「가언록」을 직접 갖고 나와 불자들에게 보급하였는데, 나는 자친을 모시고 참석하여 관정 스님께 마정수기도 받고 늦은 해거름에 책을 법공양 올렸다. 14일에도 약사암에 가서 법사님을 뵙고 기념촬영도 했다.
법사님이 「화두 놓고 염불하세」가 무슨 뜻인지 물으시길래, 내가 “放下話頭而念佛”이라고 말씀드리자. 즉각 ‘화두선을 배격하는 게 아니냐?“고 강렬히 반문하셨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두 분께서 하루걸러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같이 책 제목이 마치 화두선을 부정하고 공격하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볼 사람(참선 수행자)도 제목 때문에 거부감이 일어 아예 표지조차 열지도 않을 수 있겠다고 념려하신 것이다. 말하자면 간곡한 노파심으로 미욱한 중생심을 일깨워주셨다. 특히 청화 스님은 념불선을 주창하셔서 여태껏 화두선 일변도의 조계종에서 이단처럼 따돌림 당하신 피해자(?)인데도, 보문 회통의 정신을 올곧이 지켜 솔선수범하신 것이다. 아 아니 감동이랴?!
6월 15일 안동 봉정사 법회는 못 가고, 16일 상주 석문사(속리산 동쪽)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홀로 청주를 거쳐 옥양동 골짜기 까지 찾아갔다. 여전히 환희 맑고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시는 관정 스님을 뵙고, 그날 밤 대주 스님이 자리 반쪽을 특별히 내주어 스님 틈에 끼어 자는 영광(?)을 누렸다. 비록 부처님이 가섭한테 반자리 나눠주시고 법화경에서 다보탑이 출현해 다보여래께서 석가여래한테 빈자리 내주어 함께 앉은 반좌나 분좌 같은 동등 병좌의 의미는 아니었지만, 승속의 차별상이 삼엄한 작금에 우리 불교 현실에서 이만큼 특별히 수승한 인연은 관정 스님 덕택에 비좁은 절간 형편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참으로 길이 찬탄하고 감사할 일이다! 이튿날 석문사서 천도법회를 여시고, 관정 스님이 그 다음날 출국하신 걸로 적혀 있으니, 나는 또 홀로 귀경했을 것이다. 사실 좀 더 따라다니고 싶어도, 시자 스님과 통역 일행이 한 차로 스님을 모시고 다니기 때문에, 나는 따로 혼자 대중교통으로 쫓아다녀야 하는데, 차도 없고 수입도 없고 체력까지 따라주지 않는 박복한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게다가 청화 스님을 따르던 법연과 량립 병행하기 어려운 미묘한 부조화가 느껴지면서 심리상 부담도 제법 컸던 듯하다.
「가언록」이 나온 뒤 한동안 여기저기 지인과 인연 도량에 책을 드리거나 보내느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느라 7월 2일 첫째 일욜(음력 6월 초하루) 성륜사 정기법회도 못나갔다.. 1일 새벽꿈에 청화 스님과 시자 스님 대여섯 분 뒤에 내가 따라가는 꿈을 꿨다. 내가 의례 법회참석하리라 기대하신 스님의 부촉으로도 느껴졌지만, 책 내고 법공양 올린 인사를 받기가 겸연쩍고 쑥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여러 분이 고맙다고 격려의 전화나 엽서를 보내오셨다. 근데 3일 월욜 아침 청화 스님 시자인 정륜 스님이 전화를 걸어와, 전날 법회 때 큰스님께서 가언록 번역을 칭찬하며 나를 찾으셨는데, 다만 제목이 좀 마음에 걸리신다는 전갈이었다. 화두선 일변도인 우리 불교계에서, 고려 말 이래 교류가 거의 끊기다시피 한 우리나라에, 명청 시대 흥성한 정토념불법문을 처음으로 본격 번역 소개한 「가언록」에, 권두법문으로 념불선 주창하시는 청화 스님 법문을 버젓이 실었으니, 비판과 성토의 화살이 청화 스님께 빗발칠까 저어하는 제자 스님들의 우려가 다분히 느껴졌다. (나중에 10월 중순 금타 화상 탑비 제막식 때도, 태호 스님은 나를 보자 대뜸“「화두 놓고 염불하세」 책 제목을 바꾸라”고 직설로 분부하기도 했다.)
4) 「정토선 정의」 번역과 현몽 감응
한편, 6월 28일부터 「정토선 정의」를 한글로 옮기기 시작해서 7월 20일 초고를 마쳤는데, 7월 5일 천관산 탑산암 박 주지님이 래전하여 나랑 같이 지리산 가고 싶다고 권청하기에, 내가 지금 관정 법사님 글을 번역하고 있어서 당장은 운신하기가 좀 어렵겠다고 답했다. 근데 바로 그날 밤(6일 새벽) 꿈에는 내가, 관세음보살 성지인 보타산이 있는 절강인지, 아니면 관정 법사님 고향인 복건인지, 동남 해안에 바짝 맞닿은 도량에 가서 엄청 큰 법당 안에 엄청 큰 와불과 함께 관정 법사님을 뵈었다. 처음엔 부처님인 줄도 모르게, 내 키만큼 높은 발바닥만 눈에 보이더니, 바로 관정 스님이 나타나 나와 함께 한참 법담을 나누는 모습을 몽견했다. 참고로 당시 일기를 다듬어 옮겨 적는다.
“7월 6일, 목. 오늘 새벽꿈엔, 내가 대륙 복건인지 절강인지 동남쪽 해안 바닷물이 제방에 직접 맞닿는 어떤 사원(도량)에 가서 아주 엄청나고 크고 텅 비어 마치 무슨 동굴처럼 느껴지는 큰 법당 문안에 들어서니, 바닥에 아주 엄청나게 큰 부처님이 누워계시는데, 문 쪽에 큰 발을 뻗고 있어 내가 눈으로 뵌 모습은 발뿐이었다. 그 발바닥 너비가 사람 키만한 정도였다. (옆으로 오른쪽 갈비 옆구리를 대고 머리는 북동쪽으로 향하셨나?) 그렇게 거대한 와불을 꿈속에서 부처님 열반상으로 인식한 것 같은데, 깨어 생각하니 아미따불 법계장신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1990년대 초반 천인대동서당서 고전 강의할 때 「유교경」을 「42장경」과 함께 한역본으로 강의한 적이 있는데, 2009년 번역본을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란 제목으로 하늘북에서 펴냈다.]
그런데 그 법당 안에서 관정 대법사님을 정말 뜻밖에 만났다. 그 절은 관정 법사님이 주석하는 절은 아닌데, 무슨 일로 특별히 들리신 것 같았다. 내가 꿈속에서 관정 법사님께 중국어로 반가운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나누는데, 꿈속에서도 관정 법사님 말씀은 사투리가 심해 현실에서처럼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꿈속에서 신통자재력이 발동했는지 말뜻 내용은 즉시 알아차리는 게 참으로 신기하고 묘했다. 도량 분위기가 너무 좋아 좀 와서 머물면 좋겠다는 상념이 일어 그렇게 말씀을 여쭙고, 절 주인이 누군지도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나중에 좀 와 있고 싶으면 관정 법사님께서 추천서를 써달라고 요청하자, 스님께서는 아마 내가 신청서를 써오면 당신이 좀 손질해주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듯하다.
그리고 나서 거기보다 조금 북쪽에 있는 당신 절로 가시려고 법당 밖으로 나오는데, 바로 곁에 넘실거리는 푸른 바닷물이 너무 인상 깊었고, 또 남쪽 바다 쪽으로 조그만 산이 있어 보였다. 꿈속에 그 산이 보타산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러면 와불은 관세음보살이실까? 그런데 사원에 정원(뜨락)이 전혀 없는 게 이상했다. 혹시 그러면 극락정토 련지해회는 아닐까? 관정 법사님이 거기 계셨는데, 자기 절이 아니고 들르러 왔다고 하셨고, 극락유람기에서 처음에 부처님 발밖에 못 뵈어, 부처님인 줄 모르고 무슨 기둥인 줄 알았다는 내용도 그렇고....
어쨌든 꿈속에서나마 열반상이든 와불이든 부처님 발바닥이라도, 그것도 관정 법사님과 함께 친견했으니, 이 어찌 환희 찬탄할 수승한 법연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관정 법사님이 밖에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한테 온 한국인 남자여자 각 한 분이 제대로 잘하지 않는다는 투로 걱정을 하셔서, 내가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응대했다. 그러면서 꿈은 끝난 듯.“
사흘 뒤 9일에는 다시 극락왕생을 상징하는 듯한 꿈을 꾸기도 했다. 이 모두 관정 법사님 인연으로, 특히 「정토선 정의」를 한글로 새로 번역하는 법연으로 나타난 불보살님의 자비 가피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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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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