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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2009년 새해가 밝아옴으로서 나도 집 나이로 드디어 60대에 들어섰다.
나이를 먹는다는 기쁨이 20대 초반까지는 느낄 수 있었지만 그 후론 절대 아니다.
-바보 같게도 나는 20대 무렵까지는 남들이 내 나이를 2-3살 어리게 봐서 모르는 사람이면 또래가 하대를 하려고 해서
기분이 안좋아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특히 30살이 되던 해와 60이 되는 올해는 기분이 영 안 좋다.
30살에 들어설 때는 이제 인생의 황금기인 젊음이 간다는 사실이 그랬고,
59살까지는 그래도 중장년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60대를 가리켜 어느 누가 중년이라고 보아줄까?
엄연히 노년이다.
자축은 무슨 얼어죽을!!! T.T;
제목에 말로는 ‘6학년 자축’이라고 썼지만 누가 진짜 ‘60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라고 해봐라 내가 가만있나?
아마 사거리권내에 있다면 한 대 얻어맞고 코피 터질것 쯤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애석하십니까?’라고 위로의 말을 해 준다면 호두과자 한 개 내지 소주한잔은 대접해줄 용의가 있다. ㅋㅋ ^^;
몇 해 전부터 체력 테스트도 할 겸 방학에 한번은 지리산을 종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방학은 연수, 중국여행, 설 명절이 들어있어서 시간 내기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장기예보를 들으니 개학 직전 날씨가 좋다고 한다.
날짜를 2월 2, 3, 4일로 정해놓은 다음 준비를 하고 출발 전날 다시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남부지방은 3일날 비가 약간 내린다는 예보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높은 산위이니 비대신 눈이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지리산 능선을 걸어가는 환상적인 모습을 그려보면서......!
## 제 1일차(2009.02.02 월)
- 08:03 천안역발 여수행 열차
13kg 정도의 내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열차에 올라서니 그동안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못 가게 되면 어쩌나하는 염려를 떨치고 ‘이제 가긴 가는 구나!’하는 안도가 밀려온다.
열차 안은 한산하니 절반 정도 밖에 손님이 없다.
옆자리 예쁜 아가씨의 기대도 헛되이 끝까지 혼자 앉아 가게 되었다. ^^;
- 11:45 구례구역 도착
성삼재든 화엄사든 택시를 합승할 요량으로 열차에서 내려 아무리 둘러보아도
종주를 목표로 하는 배낭을 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역 앞에 바로 구례터미널 행 마을버스가 있기에 올라탔다.
간단한 배낭을 멘 젊은이들이 여럿 있어서 또 한번 소리쳐보았다.
“누구 지리산 종주나 성삼재 올라갈 사람 없어요?”
딱 한사람 종주할 사람은 있는데 노고단 대피소 예약이 되어있어서 화엄사로 오르겠단다.
구례에 올적마다 한 가지 의심나는 일이 있었다.
바로 ‘구례구’역에 관한 문제다.
‘구례’역이면 ‘구례’지 ‘구례구’역은 무슨 말인가? 혹시 ‘구례신’역도 있는 것일까?
그 문제를 이번에 마을버스 기사님의 설명으로 확실하게 알았다.
‘구례구’역은 행정구역상 순천시 땅이라고 한다. 다만 역 이용객의 거의 전부가 구례 사람이므로
구례입구라는 뜻으로 ‘구례구’라고 한다는 것이다.
구례구역 앞의 택시도 순천택시라고 한다.
- 12:00 구례터미널 도착, 택시 승차
혹시나 하고 터미널 앞 택시 승차장에 가서 ‘성삼재 합승’을 얘기했더니 요즘 성삼재 가는 사람 별로 없단다.
25,000원 정상요금으로 가자고 해서 나도 화엄사로 그냥 갈까 망설이는데 혼자니 2만원에 가려면 가자고 해서 얼른 올라탔다.
중간에 천은사를 지나는데 관람료 1,600원을 내라고 한다.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경은커녕 택시에서 내리지도 않고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데 ‘관람료’라니.....!
식당 옆을 지나는데 음식 냄새 맡았다고 음식 값 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만약 부처님이 시찰차 인간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나라 사찰을 방문하신다면 이런 현상을 보고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중생구제가 아니라 중생착취로 불법에 역행하는 처사로 생각되는데.....!
- 12:30 성삼재 도착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몇가지 구간별 특징이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우선 구례에서 시암재까지는 길이 보송보송 말라있다.
시암재로부터 성삼재까지는 축축히 젖어있고 군데군데 얼어있는 곳이 보인다.
성삼재로부터 노고단까지는 대부분 쌓였던 눈이 녹아 얼어붙어있는 얼음길이 대부분이다.
노고단부터 종주로 대부분은 눈이 푹 덮여있다. 이 눈길은 법계사 부근부터는 아래쪽으로는 다시 사라진다.
이렇게 구간마다 확실한 구분이 있다.
<노고단 정상 풍경>
- 13:20 노고단대피소 도착
겨울 가뭄이 심하여 종주로 상에 노고단, 연하천, 치밭목을 빼고는 대부분의 대피소 및 샘들이 물이 안 나온다고 한다.
가지고 간 작은 생수병 2개에 물을 채우고 노고단에 올랐다 잠시 쉬면서 사진 몇장 찍고 출발을 하였다.
노고단에서는 오후 3시 이후에는 문을 닫고 종주로 산행을 금지 시킨다고 한다.
- 13:40 출발
노고단에서 돌탑에 기대어 노고단할미께 무사 종주를 기원한 다음 힘차게 문을 통과하여 내려섰다.
신기하게 여기서 부터는 등산로에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길은 다져져 있어 스패츠를 착용할 정도는 아니어서
아이젠이나 착용할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갔는데 머지않아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발랑 자빠지고 부터는 아이젠을 착용했다.
<지리산 종주 출발점인 노고단 문-오후 3시에는 닫고 통행제한>
- 14:30 임걸령 도착, 점심
임걸령에 도착하니 의정부서 왔다는 4명의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먼저 가서 연하천대피소에 방 잡아 놓으라고 농담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미리 준비한 설기떡 1개와 초코칩 2개.
지리산 종주시 좋은 점은 식사 준비 없이도 종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대피소에서 햇반을 데워서 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연하천, 치밭목에서는 부족한 전기 용량으로 햇반을 데워주지 않으며
(데우지 않은 햇반은 먹기가 매우 곤란하다)
특히 새벽에 노고단에서 출발할 경우 매점 문을 7시나 되어야 열기 때문에 벽소령 도착할 때까지
6-7시간의 긴 시간 동안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때에 따라서는 각 매점에 식수나 햇반 등 물품이 품절될 수도 있다.
취사도구 및 식재료 없이도 종주는 가능하나 반드시 반찬과 비상식 및 간식을 넉넉히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임걸령, 내가 나온 유일한 사진>
- 15:00 출발
날씨가 너무 덥다. 그래도 평균 1500m급 고지여서 추울 줄 알고 대비를 단단히 했는데 땀이 많이 난다.
고어텍스 자켓은 처음부터 배낭에 걸치고 왔고 겉에 있던 윈드스토퍼도 벗어 배낭에 걸치고
겨울용 플리스 티 하나만 입고 걸었다. 그래도 땀난다.
반팔 티라도 하나 가져올 걸 잘못했다.(진짜 추운 날이 아니면 겨울 등산에도 반팔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몇해 전 종주 때는 날씨가 이번보다도 훨씬 따뜻하여 많은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첫째날 비를 맞으며 걷는데 길은 질어서 푹푹 빠지고 우비를 입었어도 땀에 비에 젖어들고
등산화 속에 까지 물이 들어와 발은 무겁고......!
대피소에서 자는데 몸은 축축하여 잠은 안오지, 다음 날도 등산화는 마르지 않아 새 양말을 신었어도
바로 젖어버리고 젖은 양말로 발은 물집이 잡히고 정말 대단한 고생을 했다.
그 대신 종주를 마치고 백무동 방향으로 하산을 하여 하동바위를 지날 때는 기분이 날아갈 것 만 같이 좋았다.
그 심한 고생에서 탈출한 기쁨이 또한 대단했기 때문이다.
- 15:30 노루목 도착
항상 이곳에만 오면 갈등이 생긴다.
반야봉을 오를 것이냐, 말 것이냐?
완전히 햄릿의 '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이나 다름없다.
반야봉을 오르면 한시간 정도가 더 소요될 뿐이지만 연하천 대피소 도착이 8시경이나 될 것 같아서
과감히 포기하고 삼도봉으로 향했다.
4명의 남자 팀을 만났다. 초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 둘을 데리고 있다.
<지리산 이정표-종주를 하려고 하는 분은 이사진을 가져다가 일정에 참고 하시길>
- 15:45 삼도봉 도착
이곳에서 앞서 가던 4인조 여성팀을 또 만났다.
먼저 가서 방 잡아 놓으랬더니.....!
내가 먼저 가서 방을 잡아놓겠다고 하고 먼저 떠났다.
- 18:00 연하천대피소 도착
어둑어둑해 질 무렵 연하천에 도착하였다.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대피소 직원이
“어서 오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친절하게 맞아준다.
“뒤에 오는 다른 분 없습니까?”
“30분쯤 거리에 2팀 남녀 각각 4명씩 8명 보았습니다.”
자리를 배정 받고 침낭, 매트를 대여 받고 숙소로 들어갔다.
사람은 별로 없어 배정해준 자리보다 2자리 정도를 더 차지하고 자리를 잡았다.
새로 지은 건물치고는 실내도 컴컴하고 2층도 낮아서 1층에서는 일어설 수 없고
기어 다니거나 허리를 바싹 구부리고 다녀야 한다.
저녁을 햇반을 사서 먹으려고 했는데 전력이 부족하여 데워주진 않는다고 한다.
준비해간 사리곰탕면 하나를 삶아 먹고 차 한잔을 끓여 마시고 저녁식사를 끝냈다.
7시가 좀 넘어 어두워 졌는데 대피소 직원들 말을 들으니 내가 얘기한 두 팀 중 남자 팀 4명은 들어왔는데
여자 팀 4명이 아직 도착을 안했다고 걱정을 하더니 마중을 가야겠다고 한다.
대피소 직원들이 이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참 대단한 친절이다.
나갔다가 30분 쯤 후에 여자들과 같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대피소에서는 저녁 8시에 소등을 하는데 완전 깜깜 절벽이다.
나는 밤에 화장실을 2번 정도 가야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가 내 자리 바로 앞에 스팀기가 있는데 죽은 놈 콧김만도 못한지 옷을 다 입고 침낭속에서도 발이 약간 시리다.
할 수 없이 등산양말을 찾아 신고 누웠다.
나에게는 여행시 결정적인 결점이 몇 가지 있다. 앞에 말한 화장실 문제도 그렇고,
집에서도 잠을 잘 못 자지만 나가면 도대체 잠이 안오는 것이 문제다.
저녁 8시 소등한 이후 밤 2시까지는 완전히 또렷한 정신으로, 2시부터 4시경 까지는 반 수면 상태로
그 이후는 잠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누가 코를 골거나 밖에 나가는 기척이면 또 깬다.
이는 어려서 부터의 예민한 체질로서 어릴 때 남자친구들끼리 잠을 자게 되면 ‘깝데기 벗기기’라고 하여
먼저 잠든 친구 팬티를 벗기고 아랫도리에다 숯 검뎅이 같은 걸로 그림이나 낙서하기 등을 하면서 낄낄대면서
장난을 많이 하는데 나에게는 어림도 없다.
손끝만 내 몸 근처에 얼씬거려도 금방 잠을 깨는데 무슨 재주로?
한편 아무데서나 머리만 기대면 코를 골거나,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자고 나면 피로가 말끔히 풀릴 것이 아닌가!
나는 정작 일어나야 할 아침시간에는 늦잠이 들었으므로 일어나면 기진맥진 맥을 못 쓴다.
## 제 2일차(2009.02.03 화)
- 07:00 기상
역시나 5시 쯤 기상하려고 생각을 했는데 일어나 보니 7시다.
다른 때는 더 누워있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4~5시 경이면 일찍 서둘러 소란을 피워 저절로 잠이 깨었는데 이번 사람들은 아무도 일찍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피소 성격상 연하천은 시간이 급하지 않은 여유로운 산행을 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일출을 볼 장소도 마땅치 않고 오늘 장터목이나 노고단 산장까지만 가면 되는데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노고단, 장터목, 세석 산장에선 일출을 보던지 먼길을 가던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할 사람들이므로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07:20 연하천 출발
대피소 중 물이 가장 흔한 곳이 연하천이다. 흔히 사람들이 ‘물쿠덩이’라고 부른다.
주변이 습지 비슷한 곳이다. 그런데도 올해는 손가락만한 물구멍으로 물줄기가 졸졸 흐른다.
여기서 눈치껏 세수를 하던 머리를 감던 했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늦었다 생각하고 이도 못 닦고 서둘러 출발을 했다.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 역시 날씨가 좋아 겉옷을 벗고 걸었다. 장갑은 얇은 것으로 끼었다.
일기예보상 비가 온다는 날씨인데 잔뜩 흐리기만 할 뿐 하늘에선 아직 아무 것도 내려 보내지 않는다.
- 08:55 벽소령대피소 도착
햇반을 사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매점을 들여다보니 창문에 ‘식수품절’이라고 써 붙여놓고 직원이 없다. 몇 번 문을 두드리며 찾았으나 안 나온다.
할 수 없이 준비해간 간식 도넛 3개와 초코칩 2개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벽소령대피소 전경>
- 09:30 출발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입자가 작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고어텍스 자켓을 입고 윈드스토퍼는 젖지않게 배낭속에 넣었다.
여기 까지는 나무에 설화나 상고대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는데 벽소령 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 가끔씩 상고대가 눈에 띈다.
어느 지형에 상고대가 맺히는가 가면서 계속 관찰을 했더니 결론이 나왔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온도가 낮은 곳이다.
선듯 생각하면 바람이 불면 붙었던 상고대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아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입자가 가는 얼음조각이 바람을 타고 오다가 나뭇가지에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고대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맺힌다. 바람을 피해서 바람방향 뒤쪽에 맺힐 것 같은 우리 생각과는 반대다.
<지리산 상고대>
<등산로 보호 울타리-바람직한 환경친화적 시설>
- 12:20 세석대피소 도착
지리산대피소 중 규모가 가장 큰 대피소로 건물 아래 마련된 식탁에 식사 중인 사람들이 제법 있다.
햇반을 사려고 매점에 갔더니 여기 역시 직원이 어디로 갔는지 자리에 없다.
들어가 찾아보려고 했더니 ‘등산화를 벗고 들어오시오’라고 써 있어서 번거로워 포기하고
그냥 내려왔다.
<세석 대피소 전경>
- 12:40 출발
여기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2시간 거리가 채 못된다.
거기 가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물과 간식을 조금 먹고 바로 출발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기나긴 지리산 종주에서 조망이 좋고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구간은 세석대피소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구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고단 정상과 반야봉 정상을 제외하면, 총구간 34.2km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노고단에서 세석까지의 기나긴 24km 구간은 능선길이긴 하지만 좁다란 숲속길이 대부분으로 전망도 되지 않는 동네 뒷산과 다름없는 답답한 구간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그렇지 날씨만 좋으면 세석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 10여km의 구간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서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주위 사방이 시원스럽고 좋다.
- 14:15 장터목대피소 도착
지리종주를 하다보면 기쁨 중 하나가 지친 몸을 이끌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대부분의 대피소가 예고 없이 눈앞에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대피소를 향하여 가고 또 간다면 얼마나 더 지치고 도착하여서도 얼마나 지겹게 생각이 될 것인가?
일부러 그런 장소에 대피소를 세웠다고 생각이 들진 않지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오늘은 특히 시계 100m에 불과한 흐린 날씨여서 갑자기 나타난 장터목 대피소가 더욱 반가웠다.
<장터목 대피소 전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체통>
장터목은 명칭서부터 사람들이 많아 번잡스럽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반드시 이용해야할 1번지 대피소가 아닌가!
날씨가 좋지않은 오늘도 역시나 사람들로 활기에 넘치고 매점에도 직원들이 둘씩이나 물건을 많이 쌓아놓고 팔고 있다.
당연히 햇반을 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박한 나의 식사>
- 14:55 출발
오랜 아이젠 착용으로 발등이 아프다. 벗을까 하다가 또 넘어져 꼬리뼈를 다칠세라 고무줄만 약간 느슨히 하고 출발을 했다.
드디어 눈은 그쳤으나 하늘은 좀체로 열릴 기미가 없다.
1900m에 가까이 이르니 여기저기 풍성한 상고대가 보기 좋다.
이따금씩 구름이 걷히고 푸른하늘이 언듯언듯 스쳐 지나간다.
제발 천왕봉에 도착하는 순간만이라도 하늘이 열려 푸르기를!
- 16:10 천왕봉 도착
종주 내내 주로 홀로 산행이었지만 천왕봉에 도착을 해서도 하늘아래 제일 높은 곳에 유일무이하게 나 혼자다.
마치 천왕봉 표지석이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하여 오랜 시간 참고 기다려 준 듯하다.
그 누구도 이런 나의 심사를 무슨 소리냐고 비판하지 말라, 예부터 착각은 자유라 전해오지 않던가! ^^;
표지석을 붙안고 우리가족의 안녕과 오디산우회의 발전, 우리나라의 경제회복 또 나아가서는 세계인류 평화 등 내가 빌 수 있는 것은 모두 빌었다.
하늘의 구름은 더 짙어져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고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니 사진 한장 찍어줄 사람 없어서 나를 여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한 스틱만 표지석에 기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스틱에 대하여
나는 7만원짜리 leki 스틱을 하나 가지고 있다. 장거리 산행에선 2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싸긴 하지만 하나를 더 사서 짝을 채우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디송년회에선가 히말라야님이 블랙야크 스틱 2개를 사가지고 와서는 2만원에 샀다고 하여 거짓인 줄 알았다.
비싼 걸 사가지고 와서 티낸다는 소리 듣기 싫어 그런 것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하자가 없고 손잡이도 콜크인데다 4단이어서 길이가 짧은 것이 좋아보여서 진실여부를 다짐받은 연후에 나도 블랙야크 매장에 사러 갔더니 아무리 살펴도 한쌍에 2만원은커녕 한 개에 2만원짜리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또 히말라야님에게 당했다 생각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밑져야 본전, 점원에게 2만원짜리 얘기를 꺼내봤더니 ‘아, 그거요?’하더니 숨겨둔 듯 매대 밑에서 꺼내어 주었다.
얼른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데, 7만원짜리 leki 스틱에 견주어 부족한 점을 모르겠다.
문제가 있다면 강도의 차이와 핵심 부품인 끝부분 침이 바위나 얼음에서 미끄러지는 것일텐데 아직 그런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한쌍 더 사둘 걸!-
<나를 이곳까지 인도해온 스틱에 감사하며>
더 있어봐야 짙은 구름으로 볼래야 볼수도 없는 경치이므로 배낭 깊숙이 정상주로 쓰려고 가지고 온 참이슬도 꺼낼 생각 없이 천왕봉에 작별을 고했다.
법계사 길!
급경사 길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다.
아이젠에 스틱을 짚었건만 저 아래 까마득한 급경사가 매우 불안하다.
눈이 계단을 뒤덮어서 밋밋해진 곳이 많아서 한번 미끌어지면 100m이상은 굴러야 될 것 같다.
발발 떨면서 한발 한발을 불안하게 내 디디며 내려오는데 부부 등산객을 세 팀 만났다.
처음 부부는 전형적인 등산 부부로 남편이 아내를 잘 유도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잘도 올라오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부부는 똑 닮은꼴이다.
여자가 땀 하나 흘리지 않고 앞장서며 남편을 달래며 올라오고 있다.
남편 들은 대추알만한 땀방울을 얼굴에 주렁주렁 달고 맥을 못 쓰고 있다.
얼굴에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따라 오는 중이라고 크게 써 있다. ^^;
- 17:30 로타리대피소 도착
법계사 근처에서 그 징그러운 아이젠을 벗고 대피소에 도착하니 몇 사람 안 보인다.
접수창구에 사람이 안보여 사람을 찾으니 고등학생정도 되는 젊은이가 나와서 숙박을 하려한다 했더니 웃을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
잠시 후 소장인 듯 보이는 사람이 나온다.
“예약 하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안 되는데요.”
“예? 아니 오늘 평일인데 자리가 꽉 찼습니까?”
“아니요, 자리는 많지만 예약을 안 하고 오시면 자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나, 지리산에서 열밤도 더 자봤고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치밭목 등 여러 군데 대피소서 예약없이 가봤지만 이런 소리 처음 듣는다.
십년전부터 비싼 돈 들여 개발한 예약 시스템이 어떻고 선진국의 예약문화가 어떻고 등등 한참동안 설교를 들은 끝에 다음부터는 꼭 예약을 하고 올테니 오늘 하루만 자리를 달라고 사정을 하니, 4시 이후에는 그냥 내려 보낼 수도 없다고 하면서 다음부턴 꼭 예약을 하고 오시라면서 영수증을 끊어 주었다.
<로타리대피소 전경>
여기는 침낭이 아니고 모포를 한 장에 천원씩 대여를 해 주었다.
햇반을 데워달라고 해서 취사장에 가서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깔끔하며 책꽂이에 책도 몇권 꽂혀있고 1층과 2층사이가 높아서 1층에서도 서서 걸어 다니는데 지장이 없고 밝아서 책 읽는 데도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하룻밤을 지내고 보니 내가 이용해본 지리산대피소 중에서는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온도도 쾌적하여 옷을 벗고 모포 한 장만 덮고도 전혀 춥지 않았다.
8시 소등을 하고 나서도 붉은 소등불을 켜주는데 물건을 찾거나 활동하는데 별 지장이 없고 더욱 좋은 것은 밖에 불을 밝혀 따로 랜턴을 준비하지 않아도 깊은 밤에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는 것이다.
연하천대피소가 여인숙급이라면 로타리대피소는 호텔급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만있자! 연하천은 시설이 불편한 대신 직원들이 친절하고, 여기는 시설이 좋은 대신 직원이 깐깐한 건가?-
책을 읽다가 소등을 하여 누웠는데 어제 밤 잠을 못 잤지, 오늘 10시간 넘게 걸었지, 피곤할 만도 하건만 아니 몸은 피곤하건만 어제처럼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지리산대피소 중에서는 인간세상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핸드폰을 켜봤더니 안테나가 꽉차게 뜬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찌감치 하산할 생각으로 오전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는 건성으로 눈만 감고 있었다.
9시쯤 되었나? 핸드폰 켠지 불과 얼마 안되어 벨이 울린다.
남들도 나처럼 잠을 자나 안자나는 모르겠지만 열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그만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산자락입니다. 어째 대학로 오신다고 글을 올려놓고 소식이 없습니까?”
“아, 난 마누라랑 둘이 소문 없이 조용히 다녀오려고 정보를 구한 건데 관심들이 많아서 부담이 됩니다.”
“어디 아프세요? 목소리가.....!”
“아, 저 지금 지리산 들어와 대피소에서 자고 있는 중인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요.”
“그러세요? 그럼 산행 잘하시고 올라오시면 연락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회에 대학로 및 하늘공원, 북악스카이웨이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대학로는 마누라가 연극구경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번 봤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평생 잘한 것 없는 내가 마누라께 효도 한번 하려고 했던 건데 이리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가질 줄이야!
대학로 번개를 한번 하려면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마누라를 먼저 설득해야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하여튼 집에 돌아가면 얘기나 해 봐야겠다.
## 제 3일차(2009.02.04 수)
- 06:20 기상
여기 대피소 역시 시간이 급하지 않은 여유로운 사람들뿐인지 내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다.
혼자 살살 일어나서 사리곰탕면을 찾아 끓여 먹으려고 다 준비해서 나갔더니 이런, 라이터를 안 가지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서 라이터를 가지고 나와 다 끓여놓고 나니 이번엔 반찬을 안 가지고 나왔다.
이런식으로 서너번 들락거리는 동안에도 아무도 안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잠자는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달콤한 새벽잠에 빠져 있을 텐데 서너번을 들락거리며 부시럭 거렸으니 얼마나 짜증들이 났을까?
보나마나 속으로는 욕들을 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저녁에 자기 전에 아침에 쓸 것을 한곳에 꺼내어 모아놓고 자서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대피소에선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둠을 뚫고 중산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벌써 올라오고 있다.
아침을 먹고 복숭아홍차도 한잔 끓여 마시고 식수를 뜨러-대피소엔 물이 없고 바로 위 법계사 식수를 이용한다. 요즘은 법계사 식수도 풍족한 편이 아니다.-
법계사에 올라갔더니 마침 해가 떠 오르는 중이었다.
어제와 달리 하늘은 맑은데 아래쪽에는 구름이 깔려있어 구름위로 해가 떠오른다.
천왕봉 일출이 아니면 어떠냐? 법계사 일출도 괜찮다. 마침 식수장 옆 바위 위에 3층 석탑이 있으므로
배경을 잡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법계사 석탑 일출>
- 08:15 출발
사진을 찍다보니 늦었다.
이제 최후의 산행이므로 짐을 모두 꼼꼼히 완전무결(?)하게 꾸리고 출발을 하였다.
로타리대피소에서 하산하는 길은 두갈래가 있다.
화장실 뒤로하여 능선을 타고 바로 앞의 봉우리 위로해서 중산리로 직행하는 길과 화장실 앞으로 하여 내려가서
순두류를 거쳐 중산리로 돌아가는 길인데 이길로 가면 한시간 이상이 더 걸린다.
지난해에는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므로 무심코 뒤따라 내려갔다가 헛고생을 한시간 이상 한 적이 있다.
하기사 등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말은 맞지않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새로운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평소 안다니던 길을 가봐야 새로운 풍경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에 다니는 사람이 한두 시간 더 걸었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피소 앞 봉우리에 오르니 천왕봉 봉우리도 선명히 보이고, 저 아래쪽에는 운해도 부분적으로 보인다.
또 쓸 일이 없으리라 깊숙이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 몇장 찍고 한참을 내려갔는데 주머니에 넣어둔 간식이 생각나서
옷을 찾으니 옷이 없다.
이런, 나 죽는다!
고어텍스 자켓을 대피소 벽에 걸어둔채 나머지 짐만 완벽(?)하게 꾸리고 만 것이다.
한 20분 힘들게 내려온 급경사 이길을 또 올라가?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고어텍스!!!
다리 아파 죽겠는데 그냥 내려가서 전화하여 택배로 부쳐달라고 해?
한참을 서서 우물쭈물 생각을 거듭하다가 별 수없이 터덜터덜 대피소를 향하여 다시 올라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좀 전에 말한 ‘산에 다니는 사람이 한두 시간 더 걸었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란 말은 당장 취소다.
매우 억울하다. T.T; ㅋㅋ ^^;
한편 한시간 쯤 더 내려가거나 진주 쯤 도착해서 생각났으면 어쩔 뻔 했을까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로타리 대피소 앞 봉우리에서 본 운해>
- 08:50 재출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에게 말도 못하고 숙소에 들어가니 자켓은 무사히 벽에 걸린 채 건망증 심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
땀 냄새 나면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갈아입은 얇은 바람막이 티가 도로 흠뻑 젖었다.
겉옷을 다시 모두 벗고 얇은 티 하나만 입고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계곡에서 세수하고 머리나 감고 가야겠다.
하산길은 돌너덜길이 대부분인데 급경사에 눈은 하나도 없지만 언 땅이 살짝 녹아서 돌에 물기가 촉촉이 묻어있는 것이 많다.
어찌나 미끄러운지 자칫 잘못 미끄러지면 발목 부러지기 쉽겠다.
어제 천왕봉에서 법계사까지 오는 길 못지않은 공포심이 생긴다.
그럭저럭 조심조심 오다보니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쳐지는 곳에 출렁다리가 놓여있고 이곳에서 부터는
계곡 물소리가 가까이 들리며 길이 비교적 평탄한 곳이 많다.
기웃기웃 머리 감을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며 내려내려 오다보니 어럽쇼? 등산로가 끝났네!!!
중간에 망바위도 보려고 했는데, 어느 것이 망바위였는지?
- 10:20 중산리 탐방안내소 도착
머리도 못 감고 하산을 마치고 포장도로를 5분정도 더 내려가니 바로 중산리 탐방안내소의 거창한 건물이 보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이런 길을 걷기가 정말 싫다.
주차장까지는 한참을 더 내려가야한다.
등산로도 아니고 찻길이면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한참을 걸어가야 하다니......!
계속 주차장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이제 다 마쳤다는 안도와 함께 뭔지 모를 서러움이 몰려온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 논산훈련소에서 누덕누덕 기운 거지같은 훈련복을 입은 채 6주간의 힘든 훈련을 모두 마치고
산뜻한 군복으로 갈아입고는 배출대를 향하여 행진을 한다.
다른 놈들은 개운하다 다시는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웃고 떠들며 신나는데
못난 나는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걸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 10:35 중산리 버스정류장 도착
이제 걷는 것은 완전히 모두 끝났다.
진주행 버스는 평균 한시간에 한 대 꼴인데 11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우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고 화장실에 가서 2박 3일간 한번도 하지 않은 세수를 했다.
기분 좋다!
- 11:00 진주행 버스 출발
버스가 출발하고 몇차례 정류장에 가다서고를 반복하는 동안에 남녀 시골 촌로들이 타고내리는 동안 질펀한
남도 사투리를 쏟아놓는다.
내가 들어 해독 가능한 부분이 2/3 정도를 넘지 못하지만 매우 정겹게 들린다.
- 12:10 진주 도착
터미널에 들어서 버스시간표를 보니 대전행이 평일에는 한시간 간격, 주말에는 30분 간격이라는데
오늘은 평일이어서 한시간 간격으로 13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잘 되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생긴 것이다.
길건너 식당이 여럿 눈에 띄는데 원조 할머니집에 ‘돼지국밥’이 눈길을 끈다.
전에부터 경상도 지방에 오면 ‘돼지국밥’이라는 걸 많이 봐왔지만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다.
일단 들어가서 시켜놓고 메뉴판을 살펴보니 가격이 4,500원으로 그 식당에서 파는 음식 중 가장 싼 음식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생전 처음 먹어보는 먹어보고 싶던 음식이 제일 싸다니!
음식이 나와서 살펴보니 설렁탕국물처럼 뿌연 국물에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넣은 것으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할머니로부터 간은 새우젓으로 하고 부추를 식성대로 넣고, 된장 고추장은 고추나 마늘 같은 것을 찍어먹으라고 교육도 받고......! ^^;
- 13:00 대전행 버스 출발
배불리 밥먹고 버스를 타니 서서히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빌어먹을! 자야할 밤 시간엔 잠이 안오고 왜 대낮엔 이렇게 졸린것이랴?
평일인 탓인지 소요 예정시간 2시간 20분 보다 20분 빨리 3시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가서 천안행을 외쳤더니 버스 바로 출발한다고 빨리 나가라고 한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여러분들도 나처럼 착하게 살면 이렇게 복 받습니다. - ㅋㅋ ^^;
- 15:05 천안행 버스 출발
- 16:00 도착
잠시 후면 자유여행이 모두 끝나고 다시 마누라 밑으로 통제 받으러 들어 갑니다.
#5. Epilogue
출발 전에 열차 시간을 조회해 보니 천안에서 밤 12시 경에 출발하여 구례구역에 03시 30분경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다.
전에 몇 번은 그 열차를 이용하여 택시를 타고 가서 성삼재에서 4시경에 출발하면 첫째날 세석대피소까지 가서 1박 2일 종주를 했다.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11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할만 했다.
해가 긴 여름에는 장터목대피소 까지 가는 것도 크게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성삼재에서 일출 2시간 전에는 야간산행을 통제한다는데 열차시간이 너무 이르다.
그래서 아침 첫차(08:03 발)를 타고 간 것이다. 더 이른 열차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음에는 화엄사에서 한번 출발을 해봐야겠는데 급경사길 4시간 정도를 더 걸을 것이 엄두가 안난다.
들은 얘기 한토막!
오래전에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어느 대피소로 얼굴이 보얗고 귀티 나는 젊은 남녀 한쌍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비싼 등산복으로 몸을 감싼 가벼운 차림의 이들은 땀에 절고 매우 지친 모습이었다.
대피소 직원을 찾아서 하는 말이
“욕실 딸린 침대방 있습니까?”
아마 이사람들이 물이 부족하여 목욕은 커녕 얼굴도 이도 닦을 수 없고, 밥도 직접 지어먹어야 하며 모기가 달려드는 좁아터진 숙소를 배정받고서는
기절이나 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산속의 별장’같은 느낌의 ‘산장’으로도 불리던 숙소 명칭이
긴급시 임시로 수용하는 간이건물 성격이 강한 ‘대피소’로 모두 바뀐 것이나 아닐까?
지리산 여행시 알아두면 좋을 내용
1. 식사준비가 없어도 되나 연하천, 치밭목에서는 햇반을 데워주지 않으므로 그시간(6~7시간) 동안의 산행에 해당하는
식사 두끼분의 도시락을 준비해야하고 반찬은 가져가야함.
가끔 매점에 품절이 될 수도 있으니 비상식량과 부피가 작은 버너, 연료, 코펠은 휴대하는 것이 나을 듯.
2. 가뭄이 심할 경우 연하천, 치밭목을 제외하면 물이 없기 때문에 식수를 넉넉히 준비하여 가지고 다녀야하며,
비가 적당히 왔을 경우는 곳곳에 물을 구할 수 있으므로 간단히 1리터 정도의 마실 물만 가지고 다니면 됨.
3. 가장 불편한 것이 설거지, 세수, 이닦기를 할 수 없다는 것. 목욕은 말할 것도 없음.
그러나 물이 풍부할 때도 씻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남의 눈을 피하여 물수건을 이용하여 필요한 곳은 씻을 수 있음.
4. 두 번째 싫은 것이 출발서부터 하산이 완료될 때까지의 모든 쓰레기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
매점에서 사서 먹은 쓰레기조차 가지고 다녀야됨.
5. 요즘은 주말에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장터목대피소 조차 숙소에 여유가 있으나 예약을 하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음.
6. 물티슈를 반드시 가지고 다니자.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세수, 설거지, 간이 목욕, 화장실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나도 이번에 많이 흘린 땀으로 젖꼭지가 스쳐 가렵고 쓰라린 것을 물티슈로 씻으므로 완화시킬 수 있었다.
남자에겐 있으나마나하고 팥알 반 정도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것이 왜 그리 거추장스러운 건지?
7. 대피소마다 시설에 차이가 많음. 벽소령, 세석, 장터목은 난방상태가 매우 양호함.
<사용 총경비 내역>
천안역-구례구역 간 열차 16,200원
구례구역-구례터미널 마을버스 1,000원
구례터미널-성삼재 택시 20,000원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1,600원
중산리-진주터미널 버스 4,100원
진주-대전 간 버스 10,200원
대전-천안 간 버스 4,100원
대피소 숙박 7,000원×2회= 14,000원
침낭대여 2,000원 매트대여 1,000원 모포대여 1,000원×2장=2,000원
햇반 3,000원×2개=6,000원 돼지국밥 4,500원 음료수, 아이스크림 2,000원
사전 준비비 15,000원 총계 ₩103,700.-
<완존히 끝>
첫댓글 나도 같이 가고 싶었었지만 토요일날에 통영에 있는 벽방산행도 잡혀 있고 여러가지로 실행을 못했다우
대단하십니다.나이육십에 지리산종주를......담엔꼭같이갈수있도록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