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수승대 - 비가 올 가능성이 100%인 하늘을 보며 이 곳은 그렇지만 거창은 무사한 하루를 기원하며 버스를 타고 산행지로 향했다. 출발하고 얼마가지않아 차창밖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거창까지의 거리가 있으니 여기와 같은 하늘은 아닐거라 애써 생각을 바꾸려 노력한다.
아침은 금산에서 먹고 남으로 남으로 계속 내려가는 동안 하늘은 맑게 갰고 햇살이 날카롭게 피부를 쏘아댔다.
수승대에 도착했는데 내리기가 겁날 정도다. "하필 모자도 안 가지고 왔는데....." 속에말처럼 툭 뱉은 말인데 선뜻 모자를 내주시는 분이 계셨다. 반납만 제대로 하라신다. 초면인데 같은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온 인연 하나로 본인도 필요한 것을 거리낌없이 내어주시는게 산꾼들의 심성이다.
정오의 해가 수직으로 강렬하게 이글거리니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수승대'는 멋진 경치를 찾는다란 뜻일텐데 옛 이름이 더 임팩트가 있다. 수송대라고 근심을 흘려보내는 곳이라니 말이다. 퇴계가 바꾼 이름일지라도 원래 이름을 찾아주고 싶은 곳이다. 덕유의 젖줄이 치마자락을 타고 이 곳까지 흘러 명승을 만들어 여름철에 많은 사람이 첫 손으로 찾는데가 되었다.
원래는 산이 목적이나 요산자가 요수자는 되지 못하란 법은 없다. 산과 계곡은 불가분의 관계이니 산이 좋으면 바위도 좋고 나무도 좋고 꽃도 좋고 절도 좋고 계곡도 물도 하늘도 새도 다람쥐도 다 좋은 법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산을 좋아한다는 것은 온통 모든 것을 좋아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리라. 여기서도 산은 낮고 산정에서의 경치는 졸렬하나 물이 좋았고 함께한 사람들의 인간 냄새와 거기서 함께한 음식이 최고였으며 따라주는 한 잔 술이 기막혔으니 부러울게 뭐가 있으며 근심거리가 뭔말인 것이며 무서울게 누구며 두려운게 어디더란 말인가.
수승대에 가려진 성령산이 았었음을 잊지 않고자 기명하는 센스는 필요할 것 같아 사진에다 글까지 덧붙인다. 비록 낮지만 당당한 오늘의 목적지였으니 수고한만큼의 희열이 있었고 흘린 땀만큼의 승경(멋진 풍경)을 보여줬고 헉헉거리며 올라서 쩝쩝하며 맛을 음미하게 한 함께먹은 점심의 달콤함도 느꼈으니 더 바라지 않는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기상예보였다. 세시경에 비가 올거라더니 밥을 다 먹은 1시경에 여우비가 내렸다. 세시까지 오려나 보다라는 남익님의 농담에 웃었는데 하산하여 계곡탐방(동천탐방이 맞을듯)도중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는 도중 느닷없이 세찬 비가 억수같이 들이붓듯 쏟아져 물에 젖은 생쥐가 돼버렸다. 우산도 별무소용으로 장대같은 굵은 빗방울이 금새 하천폭을 잡아먹을 듯 넓혀 119요원들이 출입을 통제했다. 거의 정확히 세 시까지 비가 왔으니 우리나라 기상대 칭천 한 마디 해야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안 찍어 먹어도 될 만큼 날씨예보 잘 맞습니다. 수고많으십니다"
오늘도 정말 즐겁게 다녀왔다. 기분 좋은 하루였고 재미난 구경이었고 맛있는 성찬 누렸으며 열창에 귀호강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