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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사이펀토크 부산의 시인을 만나다
김 참 시인 『이상한 그림책 나라』
한보경 시인 『자몽주스를 좋아하지 자몽을 좋아하지 않아』
정훈 날씨가 안 좋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날씨가 개었습니다다. 두 분 시인께 질문을 준비했는데, 등단 연도로 보나 가나다 순으로 보나 김참 시인께 먼저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토론 시간이 1시간 20분인데요. 공통 질문을 먼저 드리고 개별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대개 이런 행사를 하게 되면 시간이 모자라서 막판에 부랴부랴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있는데요. 두 분께는 그런 걱정은 안 합니다. 오랜만에 두 분을 함께 뵙게 되어 반갑구요. 참석한 분들이 두 분의 근황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김참 시인부터 말씀해주시죠.
김참 평소엔 학교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말엔 어머니 댁이 있는 고향 삼천포에 가서 하루나 이틀 쉬고 옵니다.
한보경 여전히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는 김참 산생님께서 특별한 근황이라 할 게 없다 말씀하셨는데요. 저 또한 무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드니 한창 바쁘고 복잡하던 일상이 단순해짐을 느낍니다. 집 가까이 얻은 작은 터에 다니느라 하루가 더 간단해진 듯합니다. 눈뜨면 운동하고 바로 그곳으로 출근하듯 달려갑니다. 거기에서 작은 위안을 얻고 어느 정도 건강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늘 시간이 아쉽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 특별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훈 네. 두 분의 근황 잘 들었습니다. ‘김참 시인’ 하면 저는 우선 ‘환상’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첫 시집 이후 지금까지 일관된, 혹은 꾸준한 시적 지향이랄까 방향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흔히 ‘환상시’라는 개념으로 시인의 작품 세계를 규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시인께서는 자신의 시와 ‘환상’의 결합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참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읽었던 시들은 대부분 사실주의 성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시를 읽고 별다른 재미를 못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다르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사실주의 성향의 환상적인 시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습작할 때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밤사이 꾼 꿈을 시로 썼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가 현실감이 좀 떨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제 시의 특징은 환상성에 있습니다. 저는 꿈이나 환상도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낮 동안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밤에는 자면서 꿈을 꿉니다. 밤에 꿈을 꾸면서 대면하는 세계는 낮 동안 우리가 지나온 현실의 세계처럼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현실과 꿈, 그 두 개의 축이 우리 삶을 온전하게 지탱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꿈꾸는 나도 현실의 나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시에는 환상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죠.
정훈 네.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보경 시인께 질문을 드릴게요. 시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시집을 펼쳐들고 표제 시를 읽으니 제목만큼이나 어리둥절하면서 어딘가 알쏭달쏭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언제부터인가 ‘비시(非詩)’적인 형식의 시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현대 시의 ‘애매모호성(ambiguity)’은 시인들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의미를 숨기거나, 아니면 뚜렷한 메시지 없이 감각의 꼬리로 언어를 산출해 내는 창작 방식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시‘의 특징-짧고 간결한 언어로 세계의 진실을 전달하는-과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보십니까?
한보경 선생님께서 주신 질문이 어려웠을 거라고 먼저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요. 제기 답하기에 사실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 덕분에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진지하게 나의 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물음에 적합한 답이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중입니다.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말씀하신 중에 ‘비시적인 형식의 시’는 어떤 시를 의미하는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가늠해보건대 ‘비시적인 시’란, 교과서에 실린 여러 시인의 시들처럼, 우리가 보통 생각히는, 짧고 간결한, ‘시’의 특징을 지닌 시들과 대척점에 있는 시라 유추해봅니다.
제 시가 비시적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껏 저는 시를 쓰면서 어떤 시류에 맞추어 시를 쓴 적이 없다는 겁니다. 시단의 흐름을 좇아가거나 (사실 그럴 능력이 부족합니다) 작정하고 시를 다듬고 꾸며 나만의 차별화된 결과를 얻고자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문득 시상이 떠올랐을 때–주로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휘뚜루 마뚜로 써 내려간 시가 많습니다. 물론 퇴고는 지나치게 오래 하는 편입니다. 토씨 하나의 힘을 맹신하듯 퇴고에 매달리기는 합니다. 교착어인 우리말에서 는/가/, 도/이/가/는 같은 토씨는 문장 전체, 나아가 시 정체를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걸 절감합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큰 틀을 보는 것보다 미세한 틈새에 빠지지 않으려고 까탈스럽게 시를 쓰다 보니 ‘자몽주스’와 ‘자몽‘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런 예민한 습성(?) 탓에 독자에게는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고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여깁니다. 선생님깨서는 제목이 독특하고 표제시 또한 어리둥절하고 알쏭달쏭하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시집은 저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시집을 엮고 처음 든 생각이 이전의 시집에 비해 ‘너무 말이 많아졌다’였습니다. 길고 긴 수다집 같았어요. 거기서 거기인 한결같은 시들이 좀 답답했습니다. 제 딴에는 시니까 추리고 추렸겠지만 말씀하신 ‘보통의 시’들이 가진 ‘간결과 압축’에서 멀리 온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길고 빽빽한 시가 주는 답답함을 벗어나려고 작정하고 경쾌한 제목을 궁리했습니다. 그래도 지인들은 “나도 자몽주스는 좋은데 자몽은 싫어”라고 표제작과 표제에 공감을 표하기는 했습니다.
정훈 말씀을 들어보니 시집 제목이 오히려 사실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네요. 김참 시인의 이번 시집은 지금까지 펴낸 시집보다는 조금 ‘편하고 쉽게’ 읽힙니다. 왠지 ‘힘’을 뺀 느낌이랄까, 편안하게 작품을 써 내려간 느낌이 강합니다. 이번 시집을 보면 대체로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첫 번째 시편인 「시, 담배, 술」에서 그런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일기나 단상을 자연스럽게 쓰듯 떠오르는 생각을 줄글로 이어 나간 듯 보입니다. 실제 시인의 삶이나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평소 시를 쓸 때 실제의 현실과 일상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기회에 시작(詩作) 메모를 말씀으로 듣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참 힘을 뺀 느낌의 시라는 정훈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물리적으로도 나이가 들면 사실 힘이 빠지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첫 번째 시 「시, 담배, 술」은 일기처럼 편하게 써 내려간 시가 맞습니다. 그런 시가 잘 읽히죠. 이번 시집에서 예전보다 제 생활이나 일상을 더 많이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시들이 대부분 반사실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도 같은 장르만 계속 들으면 질리지 않습니까? 시도 마찬가지겠죠. 특히 시를 쓰는 저로서는 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중 한 분이 제 시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십니다. 시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데 똑같은 스타일만 보여주니 재미가 없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시는 제가 쓰지만 읽는 사람은 독자인데, 저는 그동안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제 시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가족들인데, 그들은 전문적인 독자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독자입니다. 그런 그들의 불만은 제 시가 어렵고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오는 동안 저는 그동안 독자와의 소통 문제를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편하고 쉽게 읽히는 시, 제 일상을 담은 쉬운 시가 전보다 많이 수록된 것 같습니다.
정훈 네, 김참 시인이 첫 질문에 사실적인 시에 반발을 느껴 반사실적인 시를 썼다고 하셨는데요. 음악 얘기도 하셨구요. 이런 점에서 안주하지 않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한보경 시인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준비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한데요. 생뚱맞게 제가 ‘낯설게하기’란 용어를 썼습니다. 공부를 해서 시를 쓰는 시인이 있습니다. 최근 시인들은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시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난해한 시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보경 시인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구요. ‘낯설게하기’로써 시의 형식과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과 평소 관념적인 사유를 비틀거나 교란하는 느낌을 주는 시편이 여럿 있습니다. 사고의 전환이나 역전(逆轉)의 방식이 전달 효과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은 널리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시편을 아우르는 착시적 인식, 혹은 정상으로 보이는 세계를 비틀고 들어가 착란의 풍경으로 만드는 수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시 언어로 옮기기 전의 현실 인식과 가치판단은 시인에게 주로 어떤 포즈로 놓여 있는지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한보경 선생님께서 난해시를 거론하신 것은 나의 시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난해시는 어렵기만 한 시이거나 또는 어렵지만 좋은 시가 아닐까 합니다. 제 시가 후자라면 감사할 일이라서 다행이고, 전자의 경우라면 읽는 이의 생각을 바탕으로 제 시를 돌아볼 일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감칠맛 나는 간결한 표현에 서툴다 보니 대상의 시적 형상화까지 복잡하게 에둘러 갈 때가 많아요. 그 길이 길다 보니 배배 꼬일 때가 있습니다. 대상은 눈앞에 있는데 그 대상이 시라는 프리즘을 여럿 통과하는 동안 심하게 구부러지고 비틀릴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 답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의도적으로 낯설게 하거나 왜곡하거나 역전의 수법(저는 단어 선택에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법‘이라는 낱말의 관용적 쓰임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아 꺼리는 편입니다. 그냥 법, 방법, 묘책.. 이런 말들이 편합니다)을 꾀한 적은 없습니다. 일단 시작 과정은 저부터 어렵기 때문에 읽는 이도 어려우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제 시가 지닌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남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생각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낯익은 대상들이 낯설어질 때 시가 온다는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가끔 흔한 일상 속 익숙한 대상들이 아득하고 낯설게 다가올 때 시작 메모를 해 둡니다, 심지어 매일 먹는 밥 한 숟가락에 얹힌 햇살이, 뜨거운 국그릇애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조차 문득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경한 느낌을 적은 메모가 시가 되기도 합니다. 자몽과 자몽주스처럼 변하는 것과 변한 척하는 것의 실상을 알아차리는 순간도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불교적 사유가 어디든 스며 있다 여깁니다. 모든 대상을 해체해서 보면 공空이 된다는 이치를 늘 생각합니다. 시적 대상도 그런 관점으로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 시를 불교적인 시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에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저도 그렇고 사람들 대부분 부처님의 정법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등단 과정이나 시에 쓰인 불교적 용어만 보고 시가 불교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승 경전인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대단한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세상을 보는 주된 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짓는 무수한 경계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생각하면 편합니다, 정작 저는 시에서 경계에 대한 이미지를 자주 씁니다. 경계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나누고 또 나누지만 그리 경계를 나누고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경계는 보이지 않는 미시적 존재가 되어 마침내 ‘경계 없음’이 된다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제 시에서 역전과 비틀기 문제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정훈 네,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쓰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청중들의 질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청중 질문-
김참 시인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환상적인 시를 쓰시는데요. 퇴고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김혜영 시인)
김참 퇴고를 너무 많이 합니다. 어떤 시는 30년 넘은 시를 퇴고해서 발표하기도 하지요, 어떤 시는 일주일 정도 퇴고를 하는데요. 전반적으로 보통 20~30회 정도 합니다. 읽을 때마다 거슬리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퇴고를 거듭하다 탈고도 못 하고 계속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시가 안 나올 때는 어떻게 하는가요?(김여여 시인)
김참 잘 써질 때도 있고 안 써질 때도 있습니다. 오래전 어느 유명한 선배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가 안 될 때는 시와 관계없는 다른 방식으로 선회하라구요. 시가 안 될 때는 손 놓고 있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시가 안 써질 땐 불안합니다. 그래서 꿈에도 계속 붙잡고 있는 느낌이 많습니다.(김여여 시인)
김참 그런 상태는 제가 볼 때는 시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시마詩魔라고 하지요. 시가 안 될 때는 괴롭긴 하지만, 잘 극복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시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한보경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깁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가 안 써질 때 시와 직접 관계없는 것이라도 내 속에 생각거리들을 쟁여 넣다 보면 적당한 지점에서 시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쟁일 재료는 많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게 책이라 생각하는데요. 많이 읽고 생각하기 좋은 책의 힘을 믿고 있어요. 또 다양한 신문 읽기도 그렇습니다. 신문에는 많은 것들이 모여 경험의 폭을 넓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영화와 연극, 음악회와 전시회에서 받은 깊은 감동과 영감들이 적절한 시기에 시로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쟁여두지만 말고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도 추천합니다, 같은 텍스트를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감상을 말하고 듣는 동안 다양한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거라 여깁니다. 저도 그런 경험들이 시작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훈 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김참 시인께 또 질문을 드려볼게요. 현실과 환상, 실재와 비실재 등처럼 구분을 지어서 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는 상상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입니다. 여기에 초현실이나 환상으로 넘어가면 시에서는 삶과 유리된 ‘난해함’이나 ‘형이상학’ 혹은 ‘비현실’의 지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무의식의 문제 또한 현대 시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시’에 관한 정의나 감각은 시인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획일적이거나 단정적인 질문을 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시인이 보시기에 현실과 초현실, 의식과 무의식, 실재와 비실재의 등의 구분으로 시를 해석하는 시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와 연관해서 자신의 시적 요소와 특징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참 제 시에 관해서 실재/비실재, 현실/환상 같은 이분법적 개념으로 분석하는 글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저도 그 분석에 대해 상당 부분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조금 보충하고 싶은 내용도 있습니다. 대학원 박사과정 지도 교수였던 엄국현 선생님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책을 수업 교재로 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프랑스 철학자 프랑시스 줄리앙의 『운행과 창조』 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그 책은 중국의 신유학자 왕부지의 사상을 담은 책인데 그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 제가 그동안 써 온 시와 통하는 점이 많아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비가시非可視를 ‘잠재’로, 가시를 ‘현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와 연결 지으면 죽음은 비가시적인 상태고, 삶은 가시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실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 둘이 끝없이 순환하면서 때로는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 우주의 운행이고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시는 주로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다루는데 그 세계는 혼동의 세계고 잠재적 세계입니다. 우리가 밤에 꿈을 꾸면서 여행하는 세계는 우리가 비실재, 혹은 반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잠재적 세계죠. 그런데 그 세계는 부재의 세계가 아니라 현동을 준비하는 잠재적 세계죠. 그 세계가 없으면 현실 세계도 있을 수 없겠죠. 카오스에서 코스모스가 탄생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실재와 부재, 현실과 환상, 그런 걸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훈 그렇군요. 다음으로 한보경 시인께 여쭙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낱말이나 구절이 없는데도 제가 힘들게 읽은 것 같습니다. 이는 작품에 관한 비판이 절대 아닙니다. 개성적인 시 쓰기 형식으로 보입니다.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듯, 시에서 제시하는 세계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합니다. 저는 「거울 앞에서」란 시가 각별하게 다가왔는데요, 거울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세계의 연상 및 유추가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경계’ 안팎이 만드는 생경한 의식의 발로입니다. 여기에는 시적 형상화 과정에서 누락된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시의 ‘안’과 ‘밖’은 시편에 끼어 있는 ‘무의식’과 형상화로 드러난 ‘형식’입니다. 이는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과,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형식의 문제인데요. 평소 시인께서는 대상과 사물의 어떤 측면을 유심히 살피고, 이를 시로 형상화하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보경 제가 시를 좋아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지만 시작詩作의 시작은 늦은 편입니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문청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저는 책을 읽고 좋은 시를 외우며 시인과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글쓰기는 학업에 필요한 과제나 일기와 편지 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직접 시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인데요. 내 삶보다 시가 늘 늦게 온다는 걸 느낍니다. 늦게 다가온 시가 무관심으로 그냥 보내버린 삶에서 늦은 깨달음을 꺼내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삶과 시의 시차가 너무 벌어질 때가 많아 부조리하고 엉뚱한 시가 나오기도 하는지 몰라요. 누구의 시든지 독자가 헤아리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 여깁니다.
시인에게 시를 쓰게 된 저마다의 동인이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 시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을 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바꾼 것은 수시로 저를 찾아오던 ’우울‘이었습니다. 내게 ’우울‘은 병리적 현상보다 이미 태생적으로 잠재된 기질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울은 가치의 혼란과 그로 인한 너무 잦은 감정 변화를 일으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우울은 저를 고립으로 몰아갔지만, 고립은 세상의 바깥에서 제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세상을 보게도 했어요. 저를 고립으로 몰아간 우울이 제가 먼저 우울을 고립시켜 보라고 다그칩니다. 그러니 제 시작은 우울을 고립시키는 노력일 수 있어요. 시는 저의 우울을 바로 보게 했고, 벗어나게 했고, 언젠가 또 다른 우울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일깨울 거라 믿고 싶어요.
제게는 아직도 여전히 늦게 깨닫는 것들이 너무 너무 많아요. 말씀드렸듯이 나의 현실적인 삶과 시와의 간극이 너무 멀어질 때 시는 엉뚱하게 빗나갈 수 있을 거여요. 그래서 늘 신중하고 진지하게 시를 위한 자세를 가다듬고는 있어요. 죽기 전에 오래 마주한 우울의 덩어리를 잘 삭혀 간결한 시 한 편을 건지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훈 말씀을 들으니 데이비드 호킨스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이 떠오릅니다. 감정을 내려놓고 지켜보면서 우울에서 빠져나왔고, 그런 마음에서 시를 쓰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김참 시인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동화 같은 현실’이나 ‘소설 같은 현실’이란 말을 씁니다만, 시인의 작품은 현실과 일상을 소재로 삼는 경우라도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다가옵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 강도나 질감이 예전보다 덜하다고 보는데요. 분명 시인께서도 현실 감각이랄까, 사회나 체제에서 비롯하는 여러 문제와 현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계실 겁니다. 똑같은 현실의 단면을 보더라도 시인마다 형상화의 무늬와 결이 다릅니다. 「화요일」이나 「초현실 대통령」은 지난 계엄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요. 쉽고 간명한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시인이 보기에 그 사건 또한 비현실이나 초현실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는 사실 어떤 면에서 현실과 무관한 각도에서 세계와 언어와 시인의 감성이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시인께서는 현실과 시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김참 제 시에서는 꿈이나 환상뿐만 아니라 현실도 중요한 모티프가 됩니다. 제가 주로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주로 쓰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제 시에는 사실 일상적인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 시는 양적으로는 좀 적은 편인데 고향을 소재로 한 시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서정적인 시들입니다. 외할머니의 죽음을 다룬 시가 떠오르네요. 말씀하신 「화요일」이나 「초현실 대통령」도 그런 계열에 속합니다. 그런데 제 시에는 일상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의 경우 환상적인 내용만 읽어내고 일상적인 내용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제 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시가 되는 셈이죠.
정훈 저는 김참 시인의 예전 시들은 비유하자면 재즈바나 재즈 카페에서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와 닮았다면, 이번 시집은 선술집에서 두부김치나 찌개를 시켜서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는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한보경 시인께 질문드려 보겠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여러 전문 용어나 문화 코드 및 제목이 등장합니다. 달리 말하면 시작詩作의 동인이 비단 일상과 사념뿐만 아니라 독서와 같은 여가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간접 경험’으로서 문화적 체험은 정보 못지않게 상상의 영역을 기름지게 한다고 봅니다. 시인께 꾸준히 영향을 주고 문제의식을 일으키게 하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 자리를 빌려 들어보고 싶습니다.
한보경 언제부턴가 바깥을 향하던 관심의 촉수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거의 소멸 상태가 되어갑니다. 신기하게도 관심 분야가 많고 여러 분야의 일들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더는 부럽지 않거든요. 절정을 지난 모든 것이 허허롭지는 않다 생각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내려오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스스로 얽어맨 동아줄에서 놓여나고 있구나. 끌려다니던 끈끈한 끈이 느슨해지고 드디어 편해지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아주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훈 네. 말씀은 쉬워 보이지만 그 속에 엄청난 수련과 경험이 농축된 말씀 같습니다. 그럼 마지막 청중의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청중질문-
한보경 시인께 질문드리겠습니다. 현대시는 더 이상 이야기가 아닌 감각, 사유, 언어를 다루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전보다 난해하고 비서정적인 내용이다보니 많은 분들이 어렵거나 혼란스럽게 느낍니다. 어떤 경우는 아무리 봐도 이 시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집 속 ‘시인의 말’이 “커다란 착각 앞에 마주 선다/ 다행이다”입니다. ‘다행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착각은 불행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말씀에 담긴 뜻이 궁금합니다.(배태건 시인)
한보경 착각이 작은 착각일 때는 그게 착각인 줄 잘 모를 수 있죠. 착각들이 모여 거대한 착각을 이루었을 때 드디어 착각이 보이게 되는 거지요. 저는 이번 시집에 ‘시인의 말’을 쓰면서 속이 시원했어요. 똑같은 생각과 느낌을 이것과 저것이라고 나누고 변주를 거듭한 똑같은 시들이 보였습니다. 한자리에 모아놓으니 편편이 다르다 생각한 시들이 하나의 클리세로 묶인 걸 느꼈거든요. 우울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최선을 얻으려 심혈을 기울이고 가슴앓이를 하고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고민하고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믿으려 했을 뿐이었지요. 착각을 알아차린 순간, 착각은 더는 착각이 아닐 수 있어요. 착각을 마주한 순간은 그래서 다행한 것이죠. 착각에서 벗어나니 정말 후련한 심정이었어요.
착각 또한 우울처럼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착각은 모든 것이 공空임을 알아차리는 순간이기도 해요. 공空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없던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치달려 온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공空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세 번 쩨 시집에서라도 이렇게 후련한 ‘시인의 말’을 쓰게 되는구나 했어요. 앞으로는 착각을 어떻게 다르게 굴릴 수 있을까 열심히 생각하려 합니다. 어렵습니다.
정훈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참 시인이 보시기에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성향과 의식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시적 변화가 생긴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 개별 질의니만큼 지역 시단의 문제랄까 평소 지역 시단의 흐름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참 이번 시집에서 제 성향과 의식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시는 「담배는 몸에 해롭다」라는 작품입니다. 제 아들과 아버지가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저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충고하는 내용을 담은 시입니다. 모두 제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죠. 제가 그 시를 썼을 때 때 아들은 10살이었습니다. 그간 제 아들은 저에게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시에 담다 보니 그 시는 제 일상을 담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 느낀 현기증도 담았고 제가 열 살 무렵 아버지랑 바둑 둘 때 줄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도 담았습니다. 제가 열 살 때는 내 앞에서 줄담배를 피웠으면서 지금은 왜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하시냐는 일종의 항의죠.
앞으로의 시적 변화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쉬운 시를 써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도, 또 한편으로는 좀 더 실험적이고 과격한 시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 시단의 문제나 흐름에 관한 제 생각을 물어보셨는데요. 한국 시단은 예전부터 서울이 중심이었고 지역 시단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조명을 받지 못한 측면이 많았죠. 그런데 최근에는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지역 시단의 노령화입니다. 부산 시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시단도 한국 인구의 역피라미드 구조처럼 노령화된 게 현실입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 부산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젊은 시인들이 많이 나와서 지역 문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훈 네. 한보경 시인께 여쭙니다. 요즘엔 ‘모더니즘’이니 하는 말이 어딘가 낡고 허름한 용어가 된 느낌입니다. 시인께서 그런 방식을 지향한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언어’ 자체로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고 제시하는 창작 방법으로서 모더니즘은 기술 만능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비인간적인’ 문화의 새로운 극점을 지나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시의 위기’를 몸소 겪고 있는 시인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한보경 시의 시류와 시인들에게 드리는 어떤 말씀이든, 아직은 참 어렵네요. 몇 해 전 문예지에 실린 이경수 님의 ‘당신은 어떤 독자입니까?’라는 글을 읽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시인입니까’라는 물음보다 세게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인들에게 에둘러 꺼낸 제안이지만 아주 직설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시를 읽는 독자는 잠재적 시인이며 시인 또한 시의 독자이니 결국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필자는 갈수록 높아지는 독자의 수준에 맞게 시를 쓰려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라고 제안합니다. 대개 시는 자기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그것만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독자의 눈높이를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단언이라 생각했어요. 그는 앞으로 시인은 시의 영역을 개인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답을 생각하라 주문합니다. 그때는 공감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권과 동물 되기, 외계의 존재들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시류가 막막하게 다가왔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2020년에 발간한 마거릿 에트우드의 시집 『돌은 위로가 되지』를 읽으며 이경수 님의 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거릿 에트우드는 캐나다 태생 미래소설 작가로 알려졌지만, 시인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무려 15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돌은 위로가 되지』는 총 5부로 된 시집인데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다양한 영역을 시도한 시를 만날 수 있어요. 이경수 님의 제안처럼 시인괴 독자 모두에게 시적 대상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집이라 생각합니다. 늙음과 죽음. 기억함과 기억하지 못함, 여성의 여성성을 신랄하게 들여다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듦, 버섯, 드론, 세이렌, 외계인, 좀비 같은 반인간적 존재, 환경론자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개인적 상실과 소실, 홀로 남음에 대한 정제된 성찰까지 많은 것을 아우르는 대단한 시집입니다. 마지막 시 「블루베리」의 마지막 행 “가장 좋은 것들은 그늘에서 자라난단다”를 읽는 순간 울컥해집니다. 마지막 시어 ’그늘’의 의미가 깊고 따뜻해서 저도 ‘그늘에서 잘 자란 시 한 편’을 쓰고 싶었습니다.
위기의 시인들에게 드릴 말씀을 대신해 에트우드를 추천합니다. 오늘 모임에 선뜻 마음 내주신 문우들께 그리고 미래의 시인이신 독자들께 이경수 님의 신랄한 물음을 상기시키는 에트우드의 시집을 꼭 일독하시라 권합니다
정훈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서 그런데, 남은 두 가지 공통 질문을 묶어서 여쭙겠습니다. 이번에 시집을 출간하시면서 각별하게 느낀 생각이나 마음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앞으로 계획을 포함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김참 우리는 시에 메시지나 철학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내용보다 시 쓰는 사람의 모습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집을 묶으면서 생각해 보니 다른 시인들이 사소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제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인의 모습을 담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술이나 담배 아닙니까? 저는 커피나 술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지만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웁니다, 특히 글 쓸 때는 조금 더 많이 피웁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 제 생활을 시에 담아낸 것입니다. 이번 시집에는 담배를 피우는 제 모습뿐만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이자 일상인이기도 한 제 모습이 꽤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셨는데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그동안 시를 써왔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쓸 생각입니다. 주위에서 이번 시집의 표지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시집을 예쁘게 만들어 주신 원양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보경 자몽이라고 하니까 자몽 색깔을 시집 표지로 생각했습니다. 표지도 예쁘게 나와서 다행입니다. 저도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정훈: 오늘 긴 시간 두 분의 시인을 모시고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두 분께서 시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두 분을 모신 사이펀 문학톡톡 행사를 위해 먼 걸음 마다않고 찾아주신 분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김참 시인과 한보경 시인, 이 두 분의 시인께 다시 한번 큰 박수로 시인의 앞길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드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