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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入里入家
若見城郭인댄 當願衆生이 得堅固身하야 心無所屈하며
若見王都인댄 當願衆生이 功德共聚하야 心恒喜樂하며
見處林藪인댄 當願衆生이 應爲天人 之所歎仰하며
入里乞食에 當願衆生이 入深法界하야 心無障礙하며
到人門戶에 當願衆生이 入於一切 佛法之門하며
入其家已에 當願衆生이 得入佛乘하야 三世平等하며
見不捨人에 當願衆生이 常不捨離 勝功德法하며
見能捨人에 當願衆生이 永得捨離 三惡道苦하며
若見空鉢인댄 當願衆生이 其心淸淨하야 空無煩惱하며
若見滿鉢인댄 當願衆生이 具足成滿 一切善法하며
若得恭敬인댄 當願衆生이 恭敬修行 一切佛法하며
不得恭敬에 當願衆生이 不行一切 不善之法하며
見慚耻人에 當願衆生이 具慚耻行하야 藏護諸根하며
見無慚耻에 當願衆生이 捨離無慚하고 住大慈道하며
若得美食인댄 當願衆生이 滿足其願하야 心無羨欲하며
得不美食에 當願衆生이 莫不獲得 諸三昧味하며
得柔軟食에 當願衆生이 大悲所熏으로 心意柔軟하며
得麤澁食에 當願衆生이 心無染着하야 絶世貪愛하며
若飯食時인댄 當願衆生이 禪悅爲食하야 法喜充滿하며
若受味時인댄 當願衆生이 得佛上味하야 甘露滿足하며
飯食已訖에 當願衆生이 所作皆辦하야 具諸佛法하며
若說法時인댄 當願衆生이 得無盡辯하야 廣宣法要니라
만약 성곽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견고한 몸을 얻어서
마음에 굽히는 것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왕의 도성(都城)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공덕을 함께 모아서
마음에 항상 기뻐하고 즐기기를 원할지어다
숲 속에 있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응당히 하늘이나 사람이
우러러 찬탄하는 바가 되기를 원할지어다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깊은 법계에 들어가서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남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불법의 문에
들어가기를 원할지어다
그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마땅히 중생이 불승(佛乘)에 들어가서
삼세가 평등하기를 원할지어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항상 훌륭한 공덕의
법을 버리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능히 버리는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삼악도의 고통을
길이 버리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빈 바루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청정하여
텅 비어서 번뇌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가득 찬 바루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온갖 선법을 구족하여
가득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공경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불법을
공경히 수행하기를 원할지어다
공경을 받지 못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끄러워하는 행을 갖추어서
모든 근(根)을 감추고 보호하기를 원할지어다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끄러워함이 없음을 떠나고
큰 자비의 길에 머물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좋은 음식을 얻거든
마땅히 중생이 그 원(願)을 만족해서
마음에 하고자 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좋지 못한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삼매(三昧)의 맛을
다 얻기를 원할지어다
부드러운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큰 자비로써 훈습하여
마음이 유연하기를 원할지어다
거친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마음에 물들고 집착함이 없어서
세속의 탐애 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밥을 먹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열(禪悅)로써 밥을 삼아서
법희(法喜)가 충만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맛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의 성품을 맛을 얻어서
감로(甘露)가 만족하기를 원할지어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마땅히 중생이 하는 일을 다 마치고
모든 불법 구족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법을 설(說)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다함이 없는 변재를 얻어서
법요를 널리 베풀기를 원할지어다
*
입리입가(入里入家): 마을에 이르러 걸식을 할 때에 마음 쓰는 법
*
마을에 들어가거나 집에 들어가는 경우 중생을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가를 이야기 한다.
*102
약견성곽(若見城郭)인댄 :성곽을 보면, 성곽은 그 마을을 지키는 성이다. 이런 성곽을 보면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득견고신(得堅固身)하야: 견고한 몸을 얻어서
심무소굴(心無所屈)하며: 마음에 굴하는 바가 없기를 원하라.
*103
약견왕도(若見王都)인댄: 왕이 있는 도시를 보게 되거든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공덕공취(功德共聚)하야: 공덕이 함께 모여서
심항희락(心恒喜樂)하며: 마음이 항상 희락하기를 원하라.
*104
견처림수(見處林藪)인댄: 숲속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되거든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응위천인(應爲天人):모든 천신과 사람들이
지소탄앙(之所歎仰)하며: 찬탄하고 온당히 우러러 보는 바가 되기를 원하라.
*105
입리걸식(入里乞食)에: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을 할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또한 마땅히 중생들이
입심법계(入深法界)하야: 깊은 법계에 들어가서
심무장애(心無障礙)하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하라
*106
도인문호(到人門戶)에 : 사람들의 집 문앞에 이르렀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입어일체(入於一切)
불법지문(佛法之門)하며:일체 불법지문에 들어가기를 원하라.
남의 집 문 앞에 갔을 때는 ‘일체 중생이 불법의 문에 들어가야 할텐데’ 하는 원을 세우라는 것이다.
107
입기가이(入其家已)에: 그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또한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득입불승(得入佛乘)하야 :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서
삼세평등(三世平等)하며: 삼세가 평등하기를 원하라.
*108
견불사인(見不捨人)에: 버리지 않는 사람을 볼 때는, 사(捨)라고 하는 것은 버리는 사람, 보시하는 사람이다. 보시를 버리듯이 하라고 한다. 기쁘게 버린다고 해서 희사(喜捨)라는 말도 쓴다. 그런데 불사인이라고 했으니까 주지 않는 사람, 버리지 아니하는 사람을 볼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 마땅히 중생이
상불사리(常不捨離)
승공덕법(勝功德法)하며: 수승한 공덕법을 잘 지켜서 버리지 않기를 원하라. 비록 그동안 배운 불법이 적어도 그것을 버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109
견능사인(見能捨人)에: 능히 버리는 사람을 볼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영득사리(永得捨離)
삼악도고(三惡道苦)하며: 삼악도의 고통을 영원히 사리하기를 원하라.
*110
약견공발(若見空鉢)인댄: 빈 발우대를 보면.
밥을 돌리기 전에 발우대가 비어있다. 이 비어 있는 발우를 보거든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기심청정(其心淸淨)하야: 그 마음이 청정해서
공무번뇌(空無煩惱)하며: 텅 비어서 번뇌가 없기를 원하라.
이런 데도 보면 ‘청정’이 ‘텅 비다, 공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발우대가 비어있듯이 그 마음이 청정하기를 원하라.
*111
약견만발(若見滿鉢)인댄: 만약에 밥을 받아서 만발 공양이 된 것을 볼진댄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구족성만(具足成滿)
일체선법(一切善法)하며:일체 선한 법이 구족하게 가득차기를 원할지어다.
*112
약득공경(若得恭敬)인댄: 만약 공경을 받게 되거든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공경수행(恭敬修行)
일체불법(一切佛法)하며: 일체불법 공경히 수행하기를 원하라.
*113
부득공경(不得恭敬)에: 공경을 얻지 못할 때는. 무시하고 본 척 만 척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때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불행일체(不行一切)
불선지법(不善之法)하며: 일체 불손한 법을 행하지 않기를 원하라. 인사도 안하고 지나가거든 ‘모든 중생이 불선한 법은 저렇게 인사도 안하고 그냥 지나가야지, 불선한 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114
견참치인(見慚耻人)에 :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보거든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구참치행(具慚耻行)하야: 두려워 하고 부끄러워 하는 행을 갖추어서
장호제근(藏護諸根)하며:모든 근을 감추어서 보호하기를 원하라.
중요한 말이다. 어떤 행위든지 그 행위에 오류가 있고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육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고 지킬 것을 지키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
오늘은 며칠전 조선일보에 났던 기사를 같이 보자는 뜻에서 복사해서 돌렸다. 세상 사람을 전부 꾸짖을 듯이 인상을 쓰는 사진이 실렸다.
기자가 작년 3월경부터 우리 불교계에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 것에 대한 대담을 요청했기에 나는 우리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불교를 일별해 볼 때 대만불교가 제일 이상적인 불교라고 말했다.
마침 오늘대만에 유학하는 스님이 불광사 불광대학에 유학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대만불교는 신도들이 그야말로 호법선신이 되어 승가를 외호한다.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신도의 소임은 밖에서 승단과 불법을 보호하는 것이다. 밖에서 스님을 보호하고 부처님을 보호하고 불법을 보호하고 승단을 보호한다. 신도는 외호대중이다. 그 호(護)자가 보통 호자가 아니다.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사정없이 채찍질을 할 수도 있고, 꾸중을 할 수도 있다.
만약에 한국스님들이 대만에 가면 멋도 모르고 한국처럼 아무 식당에나 갈 수가 있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식당주인이
“여기는 스님들이 오시는 식당이 아닙니다. 스님들이 가실 수 있는 식당이 저기 있으니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안내를 해준다는 것이다.
“이 식당에서는 스님들이 음식을 자셔도 됩니다.”
하는 말을 한다면 한국에서라도 스님들이 안갈 데를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스님들이다. 종업원이라든지 주인이라든지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아니 스님 왜 왔습니까? 여기는 스님 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라고 한다면 가시방석에 앉아서 어떻게 차 한잔이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이 외호대중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중들이 즈그가 못하니까 신도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신도들이 외호대중이다, 신도들의 책임과 의무가 바로 승가를 외호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된다면 스님들이 잘 살 것이다. 백양사 같은 일도 그렇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잠자리가 절에 없으면 스님들이 호텔에 가서 잘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분위기가, 종업원이나 주인이 스님들을 외호하는 분위기라면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 것도 우리가 한 번 꿈꿔 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을 하는 사람을 봤을 때 우리들의 모든 근을 잘 갈무리하고 보호하기를 원한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이야기 했다.
*115
견무참치(見無慚耻)에 : 부끄러움 없는 사람을 볼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사리무참(捨離無慚)하고: 부끄럼 없음을 멀리 떠나버려서
주대자도(住大慈道)하며:큰 자비의 길에 머물기를 원한다.
*116
약득미식(若得美食)인댄: 만약에 좋은 음식을 얻었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만족기원(滿足其願)하야: 그 원을 만족케 해서
심무선욕(心無羨欲)하며: 부러워하거나 선망하거나 바라는 바가 마음에 없기를 원하라. 아주 좋은 음식을 많이 받았다면 더 이상 음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117
득불미식(得不美食)에: 마음에 안드는 음식을 만났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막불획득(莫不獲得)
제삼매미(諸三昧味)하며 : 모든 삼매의 맛을 얻지 아니함이 없기를 원하라.
*118
득유연식(得柔軟食)에: 부드러운 음식을 얻었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모든 중생들이
대비소훈(大悲所熏)으로: 대비를 훈습한 바로써
심의유연(心意柔軟)하며: 마음과 뜻이 유연하고 부드러워 지기를 원하라.
*119
득추삽식(得麤澁食)에: 아주 거칠고 깔깔한 음식을 얻었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심무염착(心無染着)하야:마음에 염착이 없어서
절세탐애(絶世貪愛)하며:세상의 탐애 끊기를 원하라.
봐도 먹고 싶지도 않고 영 입에 넣기도 거북스러운 음식을 만났다면 집착이 없고 먹고 싶은 생각이 안날 것이다.
그를 통해 역시 마음에 아무 물듦이 없고 세상에 탐애가 싹 끊어지기를 원하라는 것이다.
모두 이런 식이다.
*120
약반사시(若飯食時)인댄: 밥을 먹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선열위식(禪悅爲食)하야: 선의 열락으로써 음식을 삼아서
법희충만(法喜充滿)하며: 법희가 충만하기를 원하라.
*121
약수미시(若受味時)인댄: 만약 맛을 받을 때, 맛을 본다는 말이다.그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득불상미(得佛上味)하야 : 불법의 상미를 얻어서
감로만족(甘露滿足)하며:감로가 만족하기를 원하라.
*122
반사이흘(飯食已訖)에: 밥을 먹고 다 마침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소작개판(所作皆辦)하야 : 하는 바를 다 마련해서, 다 성공한다 마친다는 뜻이다.하는 일을 다 마쳐서
구제불법(具諸佛法)하며:모든 불법 갖추기를 원하라.
*123
약설법시(若說法時)인댄: 만약 설법할 때는, 나만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모든 중생이
득무진변(得無盡辯)하야: 다함이 없는 변재를 얻어서
광선법요(廣宣法要)니라:법의 요긴함을 널리 펴기를 원하라.
이것은 평소에도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스님들은 배운만치 전하고 가진 만치 나눠야 한다. 요즘엔 나눔운동을 많이 하는데 더 활발하게 나눔운동을 펼쳐야 한다. 또 우리가 배운만치 불법을 나누는 일을 어떤 물질을 나누는 일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물질과 아울러 불법을 열심히 펼치는 운동이 필요하다.
(10) 洗浴
從舍出時에 當願衆生이 深入佛智하야 永出三界하며
若入水時인댄 當願衆生이 入一切智하야 知三世等하며
洗浴身體에 當願衆生이 身心無垢하야 內外光潔하며
盛暑炎毒에 當願衆生이 捨離衆惱하야 一切皆盡하며
暑退凉初에 當願衆生이 證無上法하야 究竟淸凉이니라
집에서 나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삼계를 길이 벗어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물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온갖 지혜에 들어가서
삼세가 평등함을 알기를 원할지어다
몸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몸과 마음이 때가 없어서
안팎이 빛나고 깨끗하기를 원할지어다
무더운 여름 지극히 더울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온갖 번뇌를 떠나서
모두 다 다하기를 원할지어다
더움이 물러가고 서늘함이 올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위없는 법을 증득해서
구경(究竟)에 청량하기를 원할지어다
*
세욕(洗浴) :돌아와서 씻고 목욕할 때의 마음 쓰는 법
*124
종사출시(從舍出時)에 :집으로부터 나올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마땅히 중생이
심입불지(深入佛智)하야: 깊이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서
영출삼계(永出三界)하며:삼계에서 널리 벗어나기를 원하라. 집에서 나올 때 그런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125
약입수시(若入水時)인댄: 만약에 물에 들어갈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마땅히 중생이
입일체지(入一切智)하야: 일체지에 들어가서
지삼세등(知三世等)하며:삼세에 평등함을 알기를 원하라.
*126
세욕신체(洗浴身體)에:신체를 씻을 때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신심무구(身心無垢)하야 :신심이 때가 없어서
내외광결(內外光潔)하며 :안과 밖이 빛나고 깨끗하기를 원하라.
*127
성서염독(盛暑炎毒)에 : 아주 찌는 듯한 무더위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사리중뇌(捨離衆惱)하야: 온갖 괴로움을 전부 사리해서
일체개진(一切皆盡)하며: 일체가 다 없어지기를 원하라.
아주 무더운 여름에는 ‘이 더위가 얼른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추위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더운 지방에서 만들어진 경전임에 틀림없다.
*128
서퇴양초(暑退凉初)에 :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하게 될 무렵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 마땅히 중생이
증무상법(證無上法)하야: 무상법을 증득해서
구경청량(究竟淸凉)이니라:구경에 청량하기를 원하라.
우리 나라의 요즘 겨울 같은 입장이면 반드시 여기에 ‘만약에 심하게 추울 때에는’ 하는 표현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한 번 생각해서 ‘몹시 추울 때는 중생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식으로 만들어 보기 바란다.
아까 내가 어떤 스님보고 ‘딸기를 볼 때는 중생들에게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는가’ 하고 숙제를 내줬다.
(11) 看經禮佛
諷誦經時에 當願衆生이 順佛所說하야 總持不忘하며
若得見佛인댄 當願衆生이 得無礙眼하야 見一切佛하며
諦觀佛時에 當願衆生이 皆如普賢의 端正嚴好하며
見佛塔時에 當願衆生이 尊重如塔하야 受天人供하며
敬心觀塔에 當願衆生이 諸天及人의 所共瞻仰하며
頂禮於塔에 當願衆生이 一切天人이 無能見頂하며
右遶於塔에 當願衆生이 所行無逆하야 成一切智하며
遶塔三帀에 當願衆生이 勤求佛道하야 心無懈歇하며
讚佛功德에 當願衆生이 衆德悉具하야 稱歎無盡하며
讚佛相好에 當願衆生이 成就佛身하야 證無相法이니라
경을 읽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따라서
모두 가져 잊어버리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부처님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걸림이 없는 눈을 얻어서
모든 부처님 보기를 원할지어다
부처님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두 보현보살과 같이
단정하고 엄숙하기를 원할지어다
부처님의 탑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탑과 같이 존중해서
하늘과 사람의 공양 받기를 원할지어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탑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의
함께 우러러보는 바가 되기를 원할지어다
탑에 정례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이마를 볼 수 없기를 원할지어다
탑을 오른쪽으로 돌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행동이 거슬림이 없어서
온갖 지혜 이루기를 원할지어다
탑을 세 바퀴 돌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의 도(道)를 부지런히 구해서
마음에 게으르고 쉼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부처님 공덕을 찬탄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온갖 덕을 갖추어서
끝없이 찬탄하기를 원할지어다
부처님 상호를 찬탄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의 몸을 성취해서
형상 없는 법 증득하기를 원할지어다
*
간경예불(看經禮佛) :경을 읽고 부처님께 예배할 때에 마음 쓰는 법
*129
풍송경시(諷誦經時)에:경을 풍송할 때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순불소설(順佛所說)하야: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순종해서
총지불망(總持不忘)하며 :모두 다 가져서 잊어버리지 않기를 원하라. 총지불망이 참 필요한 말이다.
다른 중생은 고사하고 내 중생부터라도 한 번 본 경은 다 외웠으면 좋겠고, 얼른 기억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130
약득견불(若得見佛)인댄: 만약 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면
당원중생(當願衆生)이: 그때는 마땅히 중생들이
득무애안(得無礙眼)하야: 걸림없는 눈을 얻어서
견일체불(見一切佛)하며:일체 부처님 친견하기를 원하라.
*131
체관불시(諦觀佛時)에: 부처님을 면밀히 살필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개여보현(皆如普賢)의: 다 보현의
단정엄호(端正嚴好)하며 :단정하고 엄호한 것과 같이 되기를 원하라. 체관은 자세히 보는 것이다. 부처님을 자세히 관찰할 때 모든 중생들이 마치 보현보살과 같이 단정하고 장엄되고 아름답기를 원하라.
*132
견불탑시(見佛塔時)에: 불탑을 볼 때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존중여탑(尊重如塔)하야: 존중하기를 탑과 같이 해서
수천인공(受天人供)하며: 천신이나 사람들의 공양받기를 원하라.
*133
경심관탑(敬心觀塔)에 : 공경하는 마음으로 탑을 관찰할 때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제천급인(諸天及人)의: 모든 천신과 그리고 사람들의
소공첨앙(所共瞻仰)하며: 함께 첨앙하기를 원하라.
*134
정례어탑(頂禮於塔)에: 탑을 정례할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일체천인(一切天人)이:일체천인이
무능견정(無能見頂)하며 :능히 이마 보지 못함을 원하라. 이 말은 부처님 되기를 원하라는 말이다.
부처님이 탄생했을때 어머니가 부처님의 이마를 보려고 하니그 이마가 높이 솟아올라서 33천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아무리 따라올라갔어도 부처님의 이마를 보지 못했다는 설화다.
그것이 무능견정이다. 이마는 사람의 제일 높은 곳이기 때문에 중생은 부처의 경지를 못본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의 제일 높은 경지는 아무리 불모라 하더라도 일반중생이 볼 수 없다.
탑에 정례할 때는 모든 중생이 다 부처가 되어서 일체 천인들이 능히 그 이마를 볼 수 없게 되기를 원하라고 하였다.
*135
우요어탑(右遶於塔)에:탑을 오른 쪽으로 돌매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소행무역(所行無逆)하야: 행하는 바가 거슬림이 없어서
성일체지(成一切智)하며 : 일체지 이루기를 원하라.
전부 오른 쪽으로 돌면 서로 받칠 일도 없고 마주칠 일도 없다. 그것이 소행무역이다.
*136
요탑삼잡(遶塔三帀)에: 탑을 세 바퀴 돌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근구불도(勤求佛道)하야: 부지런히 불도를 구해서
심무해헐(心無懈歇)하며 :마음에 해태하고 쉼이 없기를 원하라. 탑을 세바퀴만 돌아도 그런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137
찬불공덕(讚佛功德)에: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중덕실구(衆德悉具)하야: 온갖 덕을 모두 다 갖춰서
칭탄무진(稱歎無盡)하며: 끊임없이 찬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라.
부처님의 공덕이 위대한 것을 우리가 찬탄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리의 모델이지 우리는 아니다. 부처님이 잘난 것과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만일 상관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모델인 부처님이 잘난 것을 보고 모든 중생이 다 저렇게 잘나기를 원하고 저렇게 위대하기를 원하고 저렇게 복덕과 지혜가 갖춰지기를 원하는 것에 있다.
우리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을 알고 공경하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부처님을 볼 때마다 ‘부처님은 위대한데, 나와 그리고 모든 중생이 저 부처님처럼 되어야지, 모든 중생이 다 저렇게 되기를 원해야지’ 하고 발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을 보는 의미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의미다.
*138
찬불상호(讚佛相好)에 : 부처님의 상호를 찬탄할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모든 중생이
성취불신(成就佛身)하야: 모든 부처님의 몸을 성취해서
증무상법(證無相法)이니라: 형상 없는 법 성취하기를 원할지니라.
(12) 寢息
若洗足時인댄 當願衆生이 具足神力하야 所行無礙하며
以時寢息에 當願衆生이 身得安隱하고 心無動亂하며
睡眠始寤에 當願衆生이 一切智覺하야 周顧十方이니라
만약 발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신통한 힘을 구족해서
행에 걸림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잠자고 쉴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몸이 편안함을 얻어서
마음에 움직이고 어지러움 없기를 원할지어다
잠자다가 막 깨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지혜를 깨달아서
시방을 두루 살피기를 원할지어다
*
침식(寢息) : 누워 자고 쉴 때에 마음 쓰는 법
*
지금까지 여러 가지 하루 일과가 모두 소개되었다.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발원을 한다.
*139
약세족시(若洗足時)인댄 : 잠자리에 들어갈테니까 발을 씻을 때에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구족신력(具足神力)하야 :신통력을 구족해서
소행무애(所行無礙)하며: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기를 원하라.
*140
이시침식(以時寢息)에:때가 되어서 취침에 들어갈 때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마땅히 모든 중생이
신득안은(身得安隱)하고: 다 몸이 편안해서
심무동란(心無動亂)하며 : 마음에 아무 동요가 없기를 원하라.
하루종일 정진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노동일을 하거나 했을 때, 그 하루가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그럴 때 자기 몸 편안한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편안하듯이 모든 중생이 다 몸이 편안해서 마음에 동요없기를 바란다.
*141
수면시오(睡眠始寤)에 :잠을 다 자고 나서 비로소 깰 때
당원중생(當願衆生)이 : 마땅히 중생들이
일체지각(一切智覺)하야: 일체 지혜로 깨닫고 느껴서
주고시방(周顧十方)이니라: 일체 시방을 두루두루 다 살필 수 있기를 원할지니라.
그야말로 오로지 보살은 자나깨나 중생생각, 가나오나 중생생각, 앉으나서나 중생생각이다. 보현행자는 중생을 위하고 중생을 염려하고 중생을 위해서 발원하는 그 마음 하나다.
4, 功德
佛子야 若諸菩薩이 如是用心하면 則獲一切勝妙功德하야 一切世間과 諸天魔梵과 沙門婆羅門과 乾闥婆阿修羅等과 及以一切聲聞緣覺의 所不能動이니라
"불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마음을 쓰면 온갖 훌륭하고 미묘한 공덕을 얻어서 모든 세간과 모든 하늘과 마와 범천과 사문과 바라문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그리고 온갖 성문과 연각들이 능히 움직이지 못하리라.”
*
공덕(功德): 마음 쓰는 법을 인하여 이익 얻음을 찬탄하다
*
공덕으로써 결론을 짓는다.
*
불자(佛子)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여시용심(如是用心)하면: 이와같이 마음을 쓰면
즉획일체승묘공덕(則獲一切勝妙功德)하야 : 일체 수승하고 묘한 공덕을 얻는다
*
일체세간(一切世間)과: 일체 세간과
제천마범(諸天魔梵)과: 체천 마왕과 범천과
사문바라문(沙門婆羅門)과: 사문과 바라문과
건달바아수라등(乾闥婆阿修羅等)과: 건달바와 아수라등과
급이일체성문연각(及以一切聲聞緣覺)의 : 그리고 일체 성문과 연각
소불능동(所不能動)이니라 :이들이 능히 움직이지 못한다.
*
앞에 331페이지에도
‘불자(佛子)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선용기심(善用其心)하면
즉획일체승묘공덕(則獲一切勝妙功德)한다’는 구절이 나왔다.
만약 보살이 그 마음 한 번 잘 쓰면 일체 승묘공덕이 다 따라온다. 마음과 의식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마음 한 번 잘 쓰면 관계없는 것 같은 그 의식주가 저절로 따라온다. 일체 승묘공덕이 다 따라온다.
예를 들어서 여행을 갔는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제대로 잘써서 누구를 도왔다고 하자.
어떤 노쇠한 할머니를 도와서 미끄러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고 업었다. 아니면 마음속에 자비심을 담뿍 담아서 물건이라도 같이 운반해 줬다. 그 마음이 그 사람에게 전해져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집에 들어와서 차나 한 잔 자시고 가십시오’라고 해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눠보니까 사람이 더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십시오’ 하고 붙잡아서 하룻밤 자보니까 이 사람이 더 좋게 느껴져서 ‘그러지 말고 나하고 삽시다. 내 재산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많은데 이걸 가지고 당신은 나하고 같이 삽시다’라고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 마음 한 번 잘 쓰면 일체 승묘공덕이 따라온다.
오늘 내용이 참 좋다.
141개의 원은 전부 선용기심에 관한 내용이다.
그 마음을 잘 쓰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이와같이 용심할 것 같으면 일체 승묘공덕을 얻는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같은 이들은 대심범부 화엄행자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없다.
하물며 사문 바라문 건달바 아수라 일체 마범 같은 이들이야 따라 올 수가 없다.
이 부분을 나는 요즘 표현으로 ‘통큰 용심’이라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무슨 이해관계가 조금 걸렸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내가 능력만 된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주를 전부 책임지고 거둬주고, 빌딩도 좋은 빌딩도 지어주고 아파트도 전부 다 하나씩 다 줄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조금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렇게 문제 삼을 수 있겠느냐’ 하고 거짓으로라도 한 번 통큰 마음을 써보는 것이다.
망상으로라도 그렇게 마음 한 번 내보면 그것이 통큰 마음이고 통큰 용심이다.
‘세상 사람 내가 모두 먹여 살릴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는 이에게 천신이나 마구니나 범천이나 사문 바라문 성문 연각 같은 이들은 도저히 범접을 할 수 없고 가까이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속인이고 소승이기 때문이다.
성문 연각 역시 소승이다.
소승은 어떤 행위를 할 때, 숨을 쉬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할 때 그 행동만 예의주시하라고 가르친다. 요즘 그런 불교가 많이 들어왔으니까 빨리 알아들을 것이다. 그 모든 행동을 예의주시하라고 하는 반면에 화엄경은 아니다.
화엄경은 어떤 행위를 하든지 행위 그 자체에 마음쓰지 말고 중생에게 연관시켜서 생각하라고 한다.
자나깨나 중생생각이다. 모든 일들을 중생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라. 이 점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불교는 이렇게 나아가야 된다.이것이 신대승불교다.
그동안에도 우리는 대승불교를 말해왔지만 진정으로 새롭게 대승불교를 바라보는 불교의 행동지침, 불교가 앞으로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정리하고 찾아야 된다.
정행품을 깨끗하게 다 마칠 수 있어서 좋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부처님께 부끄럽지 않게
원래 2월은 4일이 첫 번째 월요일이다. 입춘인 그날이 마침 관음재일이어서 법회일이 5일인 화요일로 미뤄졌다. 서울에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이 10센티미터 이상이나 내렸다.
소리없이 차분차분하게 내리는 눈을 보면서 오래 전에 배웠던 시들을 떠올렸다.
어떤 시에서 눈은 사랑이고 축복이고, 어떤 시에서 눈은 장애고 금지다.
화요일 아침, 어둑한 길에서 자기 가게 앞의 얼음을 삽으로 깨는 사람을 보았다.
*
부산의 오후는 흐리기만 했는데 법회가 끝나자 비가 내렸다.
삼영음반의 학무거사님이 노포터미널까지 태워 주셨다.
본의 아니게 거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거사님이 아마 우리 나라에서 법문을 제일 많이 들으시는 분이 아닐까,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좋아하시냐고 질문한 것이 단초였다.
거사님은 원래 해인사로 출가하셔서 수계도 받으셨는데, 절을 나오시면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으나 부처님에게는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재가자로 살면서 덜 부끄럽게 사는 길을 찾았는데 마침 불교 음반 사정이 열악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하셨다고 했다. 전국의 불자들, 스님들이 삼영음반의 테이프를 듣지 않으신 분들이 없으실 것이다. 그 일이 지금도 너무 좋아서 새벽에 출근을 하시는데 일찍 하루를 시작하시는 스님들이 아침 7시쯤에 전화를 하실 때까지 늘 혼자 고요히,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음반의 편집도 한다고 하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즐겁고 밤 10시까지 하고 아침 5시 출근해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어쩐지 집에 가서 고스란히 따라해 보고 싶어졌다.
거사님에게는 아껴쓸 수 있는 것이 시간 밖에 없고, 스님들의 법문을 편집하고 기록하는 일은 얼렁뚱땅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잠을 아껴 일하신다고 했다.
건강하시라고 진심을 다해 말씀드렸더니 옛 도반 스님들도 “학무가 우리보다 월등하게 잘 산다”라고 하신다며 웃으셨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 ‘아 스님들 그런 소리 마시라’고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일을 이을 상좌를 아직 키우지 못하는 거라고 하셨다.
“스님들의 세계를 다 이해하고 행동이나 마음가짐이나 똑같아야 되거든요. 냄새나는 음식 먹지도 안하고 먹어서도 안되고”
“그 정도로 하세요?”
“스님들은 안 드시잖아요.”그럼 금세 느끼기 때문에 절에 가기전에는 그런 것들도 다 삼간다고 하셨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줄을 몰라서 놀랐다.
어떻게 항상 그렇게 인상이 좋으시냐고 비결을 물었더니 “걱정이 없거든요.” 하셨다.
부처님의 법음을 녹음하러 다니는 학무거사님의 이야기는 부러워서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상상만으로도 선재동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봄꽃을 키우는 겨울나무처럼
법비속에 화엄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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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이렇게 녹취하면서 공부하시는 혜명화님이 부럽던데요.^^ 고맙습니다. _()()()_
모든 것이 고마움입니다 _()()()_
고맙습니다_()()()_
보현행을 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따뜻한가 봅니다. 고맙습니다._()()()_
見慚耻人에 當願衆生이 具慚耻行하야 藏護諸根하라(어떤 행위든지 그 행위에 오류가 있고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육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고 지킬 것을 지키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혜명화 님의 삶도 어느 누구 못지 않답니다..모두들 부러워하지요..._()()()_
정겹고 따스합니다_()()()_
善用其心하면 則獲一切勝妙功德...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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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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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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