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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1. 터미널 / 밤
버스 출발하는데, 만수 휴대폰 귀에 댄 채 뛰어내린다.
만수 E) 잠깐 스톱, 잠깐만요! (버스 안에 대고) 기사님, 죄송
(버스 빠지면 전화기 들고) 고객님, 정말 괜찮은 거죠.
네~네~ 이야~ 진작 말씀하시지, 여튼 잘 알겠습니다.
(작업점퍼, 모자 벗고 뛰어간다)
연수야, 오빠 간~다!
2. 터미널 앞 택시정류장 / 밤
구석에 세워진 봉고안. 뿌연 담배연기속
사람들, 각자 손에 든 카드 노려보고 있다.
기사A (결심한 듯) 50 받고 100 더.
기사B 콜
기사A !
3. 터미널 대합실 / 밤
만수, 전력질주
옆을 스치는 초미니스커트 아가씨를 따라 시선이 돌아가고
그만, 앞에 오던 생수맨과 부딛혀 빈 프라스틱 물통이 사방에 튄다.
택시기사A(E) 야, 이 새끼들아! 니들 속여 먹는거, 내가 모를줄 아니?
4. 터미널 앞 택시정류장 / 밤
택시기사A가 택시기사B의 멱살을 잡는다.
주위2~3인 왠지 실실 웃고 있고
어이, 진정해, 하다가 기사B, A를 낚아챈다.
기사A, 봉고 밖으로 나뒹굴고
기사B, 꺼져, 새끼야, 문을 닫으며 썩소를 날린다.
기사A, 터진입술 쓱 훔치고 차로 돌아와 담배 꺼내 문다.
5. 터미널 앞길 / 같은 시각
만수 뛰어가고
기사A의 택시가 반대편에서 달려온다.
기사A, 라이터가 안 켜져 자꾸만 고개를 돌리는 사이,
만수와 택시 점점 가까워진다.
만수, 손목에 찬 전자시계 보며 뛰어오고 있다.
지금 시각, 9시 17분 25초, 26초, 27초
순간, 만수의 놀라는 눈동자,
기사A 경악하고
퉁~ 튕겨나오는 만수, 슬로우 슬로우,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깨진 만수의 시계는 7시 17분 30초를 가리키며 멈춰있다.
만수의 시야에 택시, 저 멀리로 사라지고,
반대편에서 1톤 트럭 지나간다.
만수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꺼내들어 단축번호 0번 누른다.
핸드폰 창에 “내귀에 캔디~^^” 뜨고,
만수 숨이 가빠오고 몸에 경련이 인다.
만수 눈이 스르륵 감기고 핸드폰은 계속 응답이 없다.
주위는 점점 조용해지는데 만수, 갑자기 눈을 번쩍 뜬다.
괴수의 눈이다.
타이틀 터미널
6. 터미널 외경/ 낮
자막 : D-7
터미널 여기저기 SK.
검표원, 차장들의 익숙하고 부지런한 손놀림, 수신호,
TV, 신문자판의 일상들. 대합실 시계, 버스 운행시간표,
보며 확인하는 승객들
7. 터미널 매표소+승차장 / 낮
붐비는 손님들, 매표직원들의 부지런한 손놀림, 맞춰
컴퓨터 화면에 표시되는 행선지, 인원수, 가지런히 인쇄되는 승차권.
받아 쥐고 손님 나오면, 만수 따라붙는다.
만수 아저씨! 원주는요, 그래, 이 쪽 맞아요. 아니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라고요! 아주머니, 춘천은 반대쪽이에요.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요. 아이씨! 늦었어, 뛰어! 뛰어야 돼! 아유, 큰일났네! 저러다 버스 놓치는데!
하는데 저 편에서 손살같이 뛰어오는 남자, 손에 핸드백 쥐고있다.
‘저 놈 잡아라’ 소리에 비호같이 따라 뛰는 만수
아슬 아슬 따라붙는데
소매치기, 간발의 차로 터미널 밖으로 나가고
툭 뭔가에 걸리는 만수
8. 연수 옷가게 / 밤
재래시장 한 켠에 자리한 조그마한 옷가게
연수 정리하다 시계 보면 6시 조금 전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바빠지는 손놀림,
연수 (정리 마무리하며) 언니, 저 이제 가요.
진숙 어.
연수 (웃으며) 낼 뵈요. (나가고)
진숙 (심통) 누굴 베려 그러나?! 무섭다 칼퇴근!
9. 재래시장 / 밤
연수 장보고 있는 Cut/cut
웃고 있지만 왠지 쓸쓸해 보이는 fs에서
E) 쿵~
10. 터미널 앞 / 밤
만수, 터미널을 나오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결계를 뚫을 수 없다.
부딛힐때마다 쿵~ 강하게 뒤로 튕겨져 나오고 그때마다 강한 바람이 분다.
사람들 무심히 옷깃을 부여잡고 종종걸음 친다.
만수, 온 몸에 땀범벅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시도한다. 필사적이다.
만수 연수야, 오빠가, 헉헉, 간다. (울부짖으며) 오빠가, 간다고.
계속해서 결계에 부딪히던 만수,
마침내 헐떡이며 늘어져버린다.
생선E) 생선이 스태미너에 얼마나 좋은데!
11. 재래시장 생선가게 / 밤
생선 (포장하며) 여름에 더위 먹어 기운없을땐 등푸른 생선을 먹어야 하는거야. 그래야 부부간 금슬도 좋아져.
연수 (웃으며) 많이 파세요.
연수, 걸어 나오는데
핸드폰 알람소리. 화면엔 <당신을 기억할 시간> 떠있다.
연수 전화 걸고 “에헤라디여~” 수신멜로디.
12. 터미널 앞 / 밤
만수, 어떤 느낌에 시계를 본다. 7시 17분 25초, 26, 27, 28, 29
순간, 몸이 쫙 끌려간다. 비명 지르는 만수
13. 터미널 대합실 / 밤
만수 프롤로그와 같은 상황으로 뛰고 있다.
앞에서 미니스커트 아가씨 오고, 만수 눈길도 주지않고 계속 달린다.
뒤이어오는 생수통 아저씨를 유려하게 피한다.
만수E)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내가 이 곳을 탈출 수 있는 단 한 번의 찬스!
14. 터미널 앞 / 밤
터미널 결계 지점, 거침없이 통과하면 결계 슥 사라진다.
6주전 사고를 당했던 도로 앞이다.
만수 멈춰 서서 잠시 기다리고, 사고 택시 휙 지나쳐간다.
만수E) 오늘은 기필코, 기필코... 이 지긋지긋한 터미널을 벗어나고 말리라.
만수 회심의 미소지으며 천천히 길 건너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1톤 트럭이 만수를 덮친다.
만수 터미널 안으로 튕겨지고 거리엔 세찬 바람이 분다.
만수, 터미널 <도착지점>에 쿵하고 떨어진다.
15. 재래시장 / 밤
연수 전화 끊고 걸어간다.
16. 터미널 도착지점 / 밤
만수,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데 저 멀리 청소차 달려온다.
전방에 눈부신 라이트를 달고 아주 매끈한 청소차라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차 멈추고 조수석에서 턱시도 입은 백발노인이 내린다.
만수를 보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클리너 아니 왠일, 왠일이니. 이건 뭐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 (보다가 큰 한숨) 요즘 먹고 사는게 좀 힘들다고 사념의 찌꺼기가 이렇게 넘쳐흐르니...쯧쯧 나약한 인간들같으니!
클리너 익숙한 동작으로 대용량 쓰레기 봉투 펼쳐놓고
만수를 둘둘 말기 시작하는데 순간, 만수 꿈틀 거린다.
클리너 으악! 이게 뭐야! 아직 生고구마잖아!
*자막 - 생고구마 : 사후 49일이전의 영혼을 가리키는 영계의 속어.
만수 부스스 일어나고 클리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클리너 흠... 건너온진 벌써 꽤 된 것 같은데...
만수 (비몽사몽) 저, 아저씬, 누구세요?
클리너 너, 죽은 지 얼마나 됐어?
만수 저기, (손가락 셈) 이제 43일짼데요.
클리너 난리났네! 너, 49일까지도 이러고 있음 원귀 되는거야.
만수 네!?
클리너 손 꺼내봐!
만수 네?!
클리너 (손 잡아채며) 이 손끝을 봐. 벌써 두 마디째 까매졌지? 담주되면 손전체로 번질게다.
만수 !
클리너 그러니까 네 영혼은 사라지고 에너지만 남아 통로를 오염시킨다고. 이계와 영계의 경계에 끼는 불순물, 난 그걸 치우는 클리너야.
만수 (경악)! 아니, 저, 전 제가 좋아서 여기 있는게 아니고
클리너 결계에 갇혔지? 당근 그렇겠지. 원귀가 바로 그런거야.
만수 (바로 엎드리며) 영감님! 저 좀 살려주세요!
클리너 (고개 저으며) 자네가 터미널에 갇혀 있는 건, 누군가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어쩌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벌떡 일어선다) 그럼, 이만 실례~
만수 어!? 영감님, 그냥 가심 어떡해요! (따라가면서) 저는요, 저는 어떡하라구요.
클리너 (차에 탄다) 어쩌겠나, 6일 뒤에 봄세. 아~그땐 못 알아보려나, 쯧쯧...
만수 영감님!
만수 차문을 두드리는데 시커먼 얼굴에 빨강눈을 한 괴수기사, 으르렁 거린다.
만수, 깜짝 놀라 넘어지고, 클리너 안뇽!, 하고 청소차 출발한다.
순간 거리에 강풍이 분다. 만수 망연자실이다. f.o
17. 터미널 대합실/ 낮
자막 : D-6
대합실 한 켠에 신자, 전단지, 사탕 등 전도용품 챙기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헤드라인 아래 신자와 담임목사 사진,
잠시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옥자 형님~
신자 (깜짝) 아이쿠!
옥자 아이, 형님~
신자 그 형님 소리 좀 안할 수 없어?
옥자 그럼, 싸부님이라고 할까요? 싸부님~ 신신자 싸부님~
신자 (전도용품 챙겨 일어난다) 비법같은 건 없데두 그러네.
옥자 (따라붙으며 버럭)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목사님 사랑을 독차지 할꺼유?
신자 (주위 살피며) 아니, 이 사람, 내가 언제?
옥자 내숭 좀 작작 떨어요! 한 달 실적이 스무명도 넘으면서! 내가 목사님이래두 형님 좋아 미칠거유. 그러니 허구 한 날 신신자 자매님, 신신자 자매님, 아~ 나도 그런 사랑 한 번 받아보고 시퍼라!
신자 (당황) 목소리 낮춰, 사람들 쳐다보잖아.
옥자 분명, 형님한텐 뭔가가 있어. (다가서며) 내 눈은 못 속여.
신자 (더 당황)
옥자 (뚫어져라)
신자 (큰 한 숨) 아이구, 알았어. 내 얘기함세, 해. (낮은 목소리) 옥자 자매만 듣고 입 다물어.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옥자 (꿀꺽)
신자 사람들 가만 살펴봐. 뭐 하고들 있나?
옥자 (멀뚱 멀뚱) 글쎄요.. 뭐 자기 버스...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닌가?
신자 그러니까, 뭐 하면서 기다리냐고
옥자 (보다가) TV보고, 신문보고, 옆사람이랑 이야기도 하고 또...
신자 시계 보면서 차 시간도 확인하고 그러지?
옥자 그렇죠.
신자 현재 시간도 버스 운행표도 확인 안 하는 사람, TV도 신문도 보지 않고 혼자 멍 때리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아.
옥자 네?
신자 그런 사람이 지금 하나님 필요한 사람이야.
옥자 !
신자 그리고 정말 간절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신자 시선 따라가면 대기의자 마지막 줄 체크무늬 아가씨 들어온다.
아가씨 머리 뒤편으로 불빛이 살그머니 점멸한다. 흡사 SOS 신호같다.
신자 오케발이! (성큼성큼 걸어간다)
옥자 (허겁지겁 뒤따르며) 형님!
18. 터미널 대합실 일각 / 낮
체크무늬 아가씨, 의아한듯 쳐다본다.
신자 (활짝 웃으며) 아유~ 정말 인상이 고우셔. (옆자리 가리키며) 내 잠시 여기 앉아도 될까?
체크무늬 아니, 저-
신자 (냉큼 앉으며) 그러니까 세상이란게 있잖우, 정말 알 수 없단 말야.
체크무늬 네? 무슨 말씀이시죠?
신자 왜 하필 당신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체크무늬 (정색하며)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일어서며) 이상한 아주머니네!
신자 (덜컥 손을 잡는다) 이제 걱정 마슈. 이게 다 이유가 있어. 그래야 하니까 그런거라구.
체크무늬 이거 놔요, 놔! 이 아주머니가 대체 왜 이래?!
옥자 (달려들어 말린다) 아유, 이거 죄송합니다. 저희 언니가 잠시 착각했나봐요. 형님, 이거 놓으세요, 제발.
신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 사랑하니까 이러신 거라구
체크무늬 이거 놔요, 놓으라고!
옥자 형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신자 당신을 부르고 계신거야,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나를 보라고, 그렇게 부르고 계신거야.
옥자 형님!
체크무늬 (갑자기 눈물 뚝뚝) 도대체 왜, 왜 그러신 거예요.
신자 (꼭 안으며)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쁜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야.
체크무늬 아무리 그래도, 똘이를, 우리 똘이를 그렇게 보내고 살 순 없어요.
신자 (옳거니) 더 좋은 곳으로 간 거야. 걱정할 것 하나 없어. 괜찮아. 괜찮다니까.
체크무늬 (흐느끼며) 전 어떡하면 좋죠?
신자 (슬쩍 옥자를 보며 윙크)
19. 터미널 대합실 입구 / 오후
체크무늬 전단지 소중히 받아들고 가고,
일요일에 봐, 신자 손 흔들어준다. 옆에서 옥자 삐죽댄다.
옥자 아니, 키우던 개 한 마리 죽었다고 뭔 난리람.
신자 그래도 죽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잖아. 우리가 한 생명 건진 거야.
옥자 근데, 형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수?
신자 뭐?
옥자 똘이 말유. 똘이 죽은 거.
신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옥자 네?!
신자 이제 저쪽 가서 혼자 연습해봐. 난 내 일 계속 할 테니까.
신자, 어리둥절해 하는 옥자를 남겨두고 횡 하니 자리를 뜬다.
20. 터미널 대합실 / 오후
신자 멀찍이 떨어져 돌아보면, 옥자 눈 부릅뜨고 탐색중이다.
신자 아이고, 백날 해봐라, 되나. 다 타고 나는 건데, (콧노래 흥얼거리며 쭉 돌아본다) 보자, 어디 또 없나~
신자 이리저리 고개 돌리는데 시야에 왠 남자가 들어온다.
그 모습이 순간순간 약간 흐릿해졌다 말았다하는데,
머리뒤로 불빛이 점멸한다. 체크무늬보다 더 크고 강한 불빛! 만수다!
신자와 눈이 마주치자 만수 깜짝 놀란다.
짐짓 못 본채 신자 고개를 돌리는데 만수 뛰어 온다.
만수 아주머니, 지금 저 보신거예요?
신자 (마음의 소리) ‘에구머니나! 지발로 왔네!’ (계속 딴 짓)
만수 지금 저 보셨죠?
신자 (마음의 소리) ‘그래, 봤지, 봤어 큭큭큭’ (싹 웃으며 작업멘트) 아유~ 어쩜 이렇게 인상이 (아래위 훑어보곤, 남루하다) 인상이 이렇게 편안하실까?
만수 야~ 맞구나, 정말 날 봤네. 날 봤어!
신자 얼마나 됐어?
만수 네?
신자 얼마나 됐냐고?
만수 오, 오늘로 42일째.
신자 벌써? 그럼 그때부터 쭉 여기 있은 거야?
만수 와~ 정말 다 아시네. 저, 갇혔어요, 이 터미널에.
신자 세상일 다 맘먹기 나름인거야. (손 덥썩) 내가 꺼내줄게, 여기서.
만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말요?!
신자 (손잡고 걷는다) 이제 자네 걱정 다 끝났네.
만수 (감격해서) 아주머니!
신자 실직하고 노숙하는 이가 세상에 어디 한 둘인줄 알아? 이제 하나님만 당신 편 만들어봐. 세상 무서운 거 하나도 없어.
만수 (의아한) 실직...노숙이라고요?
신자 그래, 그런 거 하.나.도. 부끄러워할 거 없어.
하는데 순간 만수 결계에 걸린다.
신자 (만수 보지 않고 앞을 보며) 왜? 여전히 부끄러운거야? 무서워?
만수 아주머니, 저 그런게 아니고
신자 (다시 확 잡아당긴다) 여기 나가자. 우리 다 하나님 백성인거야.
만수 아니, 저, 정말 그런게 아니라
신자 (끙끙 더 세게) 아니긴 뭐가 아냐! 하나님이, 얼마나, 힘이 세신지, 그거, 알아야 돼. 그거 알고 나면, 세상에 무서운거 하나 없어. 내가 거짓말 하는 거 같아? 거짓말 같냐고.
하고 돌아보면 결계 너머 만수 보이지 않고, 만수 손만 댕강이다.
신자 비명지르며 나자빠진다.
주위에 사람들 빙 둘러서서 신자 쳐다보고 있다.
사람들 수근거린다. 일부는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돌리고 있다.
“미쳤나 봐”, “혼자서 소리치고...” “어머나, 저를 어째...”
옥자 뛰어온다.
옥자 형님, 왜 그래? 무슨 일이에요?
신자 (겁에 질린) 저, 저, 저기에...
옥자 저기 뭐 있어요? (주위 돌아보다가) 아니, 무슨 구경났어요. 어서 갈 길들 가세요! 형님 괜찮아요?
신자 ...
21. 시내버스안 / 밤
한적한 버스안, 신자 생각에 잠겼다.
F/B
만수 오늘로 42일째. 저, 갇혔어요, 이 터미널에.
손만 댕강 보이고
신자 (진저리) 뭐, 뭐지 대체?
22. 거리 / 밤
연수, 멍하니 걷고 있다.
신자가 탄 버스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연수 무심히 횡단보도로 들어섰는데 빨강불이다.
놀라는 기사, 신자, 무심한 연수 cut/cut/cut
끼-익 타이어 바퀴 TS
23. 거리 / 밤
버스 앞에서 기사와 연수 시비가 붙었다.
유심히 보는 신자.
기사 야!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누구 신세 조지려고 차도에 뛰어들어?
연수 아저씨, 빨강불이긴 하지만 여긴 횡단보도거든요.
기사 그래서, 니가 잘 했다는 거야!
연수 신호에 상관없이 횡단보도에선 보행자 우선인거 모르세요?
기사 뭐, 뭐야!
연수 그리고 당신, 나 언제 봤다고 반말인데? 나이 많으면 첨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 막말하고 그래도 돼? 너처럼 나이 막 드신 분들, 그래 너같은 놈이, (눈물 맺힌다) 너같은 놈이, 언젠가 사람 죽인다구! (돌아간다)
기사 (질린 듯) 뭐 저런 정신나간 년이 다있어?
기사 보다가 버스 출발한다.
신자 멀어지는 연수 보는데 연수 머리 뒤가 점멸한다.
신자 아저씨, 잠깐만요!
24. 포장마차 / 밤
부딪히는 잔
신자, 사이다 앞에 높고 연수와 대작한다. 연수 이미 상당히 취했다.
신자 호호호.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 아가씨 이름이 뭐야?
연수 지연수
신자 난, 신자야, 신신자.
연수 ...
신자 안 그래도, 운전기사가 운전을 좀 막하네 그러던 참이었어.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곱고 얌전하게 생겼는데 어쩜!
연수 아주머니, 저, 교회 안 나가요.
신자 으, 응?
연수 다 알고 있어요. 지금 불우한 이웃을 교회에 넘기시려는 거잖아요.
신자 (당황) 아, 아니 어떻게
연수 아냐고요? (신자 가방 가리킨다) 저기, 저거요
신자 보면 가방귀퉁이에 전단지 보인다.
신자 아니, 난, 그냥 아가씨 인상이 하두 좋아서
연수 (술잔 탕) 저 아가씨 아니라 결혼한 유부녀고요, 교회 갈 생각 요만큼도 없는데요, 그냥, 술 한 잔 먹고 싶어 여기 온 거에요.
신자 !
연수 (묵묵히 술 한 잔 따라 원샷)
신자 보면 연수 등 뒤로 여전히 불빛이 점멸하고 있다
신자 (마음의 소리) ‘엄청 큰 일 겪고 있는게 분명한데...뭐지?'
연수 (또 한잔)
신자 (마음의 소리) ‘결혼을 했다? 혹시 남편이 바람폈나?’
연수 (또 한잔)
신자 (마음의 소리) ‘그래, 바람이다. 틀림없이 바람이야’ 저, 자기 남편 말야
연수 (고개 든다)
신자 (작업용 미소)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다 잘 될거야. 우리 하나님이
연수 (갑자기 소리친다) 나쁜놈!
신자 (당황) 어! 누, 누구? 하, 하나님?
연수 (벌떡) 봉만수 이 나쁜놈!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안 들어 오고
신자 ?!
연수 들어오기만 해봐, 들어오기만 하면, 들어오면은, (털썩) 정말 잘 해 줄텐데... 정말 정말 잘 해 줄텐데...
신자 (눈치 살피다가) 남편이 집에 안들어와?
연수 전화를 못 받았거든요. 아, 그 전화 꼭 받았어야 했는데. 전화 한 번 못 받았다고 삐졌는지, 그 때부턴 아무리 전화해도 받질 않아요.
신자 저런~
연수 지가 어딜가서 나같이 어리고 이쁜 여잘 만나? 그죠, 아주머니?
신자 나이차가 많이 나?
연수 (손가락으로 12 만들며) 토끼띠 띠동갑이요.
신자 저런, 완전 도둑놈이네.
연수 맞아요, 도둑놈. (일어난다) 완전 도둑놈, 도둑놈 잡으러 가야지. 우리 도둑놈, 봉만수! 잡을거야. 꼭~ 잡고 말거야.
연수 픽 쓰러지고, 신자 당황한다. f.o
자막 : D-5
25. 신자집 방안 / 아침
연수 눈뜨면 낯선방이다.
벽에 십자가, 성화, 전도왕 표창장, 감사패
그 끝에 신자와 담임목사 함께 찍은 사진 걸려있다.
이불 걷고 일어나려는데 신자 들어온다.
신자 아유~ 좀 더 자지않고! 하긴 이제 깨우려던 참이긴 했어. 해장하라고. (다정히 어깨 두드리며) 어서 씻고 나와.
신자 나가고 연수 당황스럽다.
26. 신자집 마당 / 아침
작은 마당이 있는 소박한 단층주택이다.
연수, 마당으로 나오는데 신자 따라나선다.
신자 밥 먹고 가래두
연수 괜찮아요. 저 빨리 가봐야 되요.
신자 저기, 남편 실종 신고는 했어?
연수 ...
신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실종신고부터 해. 그럼 누구랑 통화했는지, 어딨는지 다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그런 건 전문가야. 죽은 우리 영감이 술고래라 툭하면 외박에 며칠씩 연락 끊기기 예사였거든.
연수 (옅은 미소) 그런 거 아니에요.
신자 남자들이란게 그래. 조그만 일에 잘 삐지고 사고는 크게 치고. 그럴 때 실종신고 딱 해놓으면 이게 아주 뭐 큰 일 난 것 같거든. 신혼 초장에 버릇 잘 들여야 돼.
연수 우리 오빠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지난달에
신자 !
연수 괜찮아요. 오빠는 죽었어도 내 맘 속에 살아있으니까.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죽어도 죽은 게 아니래요.
신자 그, 그래?
연수 저 사실 오빠 죽었다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어디 멀리 출장 가있다, 그렇게 생각해요. 같이 살 때도 얼굴 보는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요. 워낙 바빠서.
신자 내가 괜한 얘길 했네.
연수 아니에요. 여튼,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저 진짜 빨리 가야돼요. 안 그럼 우리 사장 언니한테 (목 긋는 흉내)
신자 어, 어여 빨리 가.
연수 (웃으며) 안녕히 계세요.
연수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측은하게 바라보는 신자.
27. 터미널 하차장 / 낮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큰 자유>, 큼직하게 써진 여행사 광고판 아래
만수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FB #31
클리너 자네가 터미널에 갇혀있는 건, 누군가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이야.
만수 (한숨) 연수야, 너니? 혹시 니가 날 가두고 있는 거니? (생각)
앞으로 버스 지나간다.
28. 다세대 주택가 (회상) / 낮
용달차 지나가면 큰 짐덩어리, 연수 인사하고 있고
만수는 전봇대에서 인터넷 망설치중이다.
만수, 탁탁 털고 짐더미 옆 연수에게 다가선다.
만수 고객님, 설치는 다 끝났습니다.
연수 아, 네, 수고하셨어요.
만수 저, 컴퓨터는 어디 있죠?
연수 (난처한) 여기 어디쯤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어딨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가세요. 제가 나중에 알아서 할게요.
만수 그래도...
연수 괜찮아요.
만수 (망설이다가 명함 건네며) 혹시 문제있으면 연락주십시오.
만수 가다 멈춰서 돌아보면 조그만 연수 옆에 짐더미가 거대해 보인다.
만수 돌아와 짐더미 하나 번쩍 들어 나른다.
연수 (깜짝 놀라 잡으며)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만수 아닙니다. 마침 바쁘지도 않고 하여간 컴퓨터에 연결하는데까지가 제 일이니까요.
연수 그래도, 이러심 제가 불편해요.
만수 컴퓨터 나올때까지만, 그 때까지만입니다. (올라가 버린다)
연수 !
만수, 짐나르고 연수 함께 거든다.
하나 둘 사라지는 짐덩이들,
어느새 연수 이 쪽 저 쪽 짐방향 잡아주고
만수가 계속 나르는 동안 박스풀어 짐정리한다.
만수E) 박스가 하나하나 풀어질때 마다, 그냥 막 가슴이 조마조마한거예요. 혹시 그 놈의 컴퓨터 나올까봐. (웃음) 웃기죠? 참 이상했어요.
29. 터미널 대합실 / 낮
만수 맞은편에 할머니 한 분, 빙긋이 웃으며 앉아있다.
만수 그 날 따라 디게 바쁜 날이었는데, 오늘처럼 날씨도 푹푹 찌고, 땀은 비오듯 하는데, 그냥 좋은 거예요, 그 아가씨 돕는다 하니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거든요.
할머니 (계속 웃고 있다)
30. 연수집 / 낮
대강 짐 다 옮겨진 거실, 연수 마지막 박스 열면 컴퓨터 보인다.
만수 비오듯 땀 흘리고, 웃도린 흥건히 젖어 엉망이다.
만수E) 다행이도, 참 다행이도 컴퓨터는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었어요.
연수 어쩜 좋아. 제일 마지막 박스에 있었네.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많이 힘드셨죠?
만수 아닙니다. 이제 컴퓨터 연결하겠습니다.
연수 잠깐만요. 옷이 다 젖으셨잖아요. (여기 저기 뒤져 우주인 면티 한 장 꺼낸다) 저기 화장실가서 씼으시고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만수 !
연수 괜찮아요. 제가 옷장사하거든요. 이런 거 많이 있으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요.
만수 (티 받아들고) ...
만수E) 난생 처음이었어요. 여자한테서 뭔가 받아보기는...
31. 만수방 / 낮
만수, 벽에 우주인 면티 붙여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천천히 손 들어보는
만수E) 저, 아버지 돌아가시곤 쭉 혼자서만 살았거든요. 혼자서 먹고,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잠자고... 그러다 첨으로 누군가가 생긴거예요.
32. 연수집근처 / 낮
혼자서 걸어가는 만수. 그 발걸음 따라가면 어느새
우주인 발로 바뀌어있다.
천천히 걸어가 연수집 앞 전봇대에 멈춰서는 우주인.
천천히 손을 들어 흔든다.
만수E) 그 뒤로도 가끔 그 동네를 가보곤 했어요. 그럴때면 말예요, 가슴이 막 두근거리는게, 낯선 혹성을 탐험하는 우주인이 된 것 같았어요. 왠지 무섭고, 왠지 고독하고, 왠지 설레이고... 이 티에 있는 우주인처럼 말예요, 그 집을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면 언제라도 그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았어요.
그때, 연수집 창문 갑자기 열린다. 연수다.
깜짝 놀라 전봇대 뒤로 숨는 우주인, 다시 만수가 된다.
33. 터미널 대합실 / 낮
만수 그러던 어느날, 연수가 해지신청을 한 거예요. 그냥 맘이 텅~ 빈 것 같은 게, 연수와 날 이어주던 가느다란 실끈이 똑 끊긴 것 같아서, 아~ 그 아가씨 이름이 연수예요. 지연수. 이름도 이쁘죠?
저편에서 중년부부가 두리번거리다 할머니 발견하고 뛰어온다.
어머! 어머니, 여기 계심 어떡해요?, 어머니, 저희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하면서 할머니 일으킨다. 여전히 웃고 있는 할머니 얼굴.
만수 아이, 한창 재미나게 얘기하고 있는데 씨이~
무표정한 만수 얼굴 너머로 부부가 다투는 소리,
그러니까 내가 자리 비우지 말라고 했잖아, 치매걸린 양반 두고 그냥가면 어떡해,
만수 쓱보면, 할머니 돌아보며 다시 웃어준다.
아니 그럼 저 땜에 어머니가 없어졌단 말예요?
만수 한숨 쉬다가 순간 표정.
34. 터미널 대합실 / 낮
신자, 대합실로 들어오다 만수 보자 순간 굳어진다.
만수 (쪼르르 다가오며) 이야~ 아주머니, 오셨어요?
신자 ...
만수 어제는 제가요, 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신자 ...
만수 저, 그러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요. 아시죠, 왜 그 창자가 막 꼬이는 것 같은 격렬한 고통. 그래서 아주머니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신자 너 정체가 뭐야?
만수 에이~ 딱딱하게 왜 이러세요? 제 정체라뇨, 저, 실직한 노숙자 맞습니다.
신자 적당히 업어넘길 생각마. 너... 귀신이야?
만수 (순간 대답 못한다)
둘 사이 정적이 흐른다. 침묵/침묵/침묵
옥자, 한 구석에서 이 광경 보고 있다. 의아한 표정
옥자 도대체 뭘하고 있는거지?
신자 (만수 보다가, 마음의 소리) ‘맞구나!’ (돌아서며 겁에 질리는) ‘당황하면 안돼. 당황하면 안돼.’ 믿음으로, 믿음으로...
만수 어! (따라오며) 아주머니 왜 그래요?
신자 (계속 걷는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만수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나 우리 집사람 만나야 돼요. 제발. 안 그럼 저 정말 죽는단 말예요.
신자 (귀막으며 소리친다) 죽은 놈이 왜 또 죽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슬슬 뛰기 시작)
만수 나 하나님 믿을게요, 교회도 나가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신자 귀신아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 (흘끔 돌아보면 만수 바로 뒤에 있다) 아~악!
신자 비명 지르며 내빼고,
옥자, 다시 한 번 휘둥그레진다.
35. 대흥교회 외경
자막 : D-2 (D-4에서 2로 체인지)
신자E) 저, 그래서요, 전도구역을 좀 바꿨음 하는데요.
36. 대흥교회 담임목사집무실
담임목사 ...
신자 그 녀석, 아무래도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거든요.
담임목사 ...
신자 지난주 새로 생긴 지하상가 쪽을 제가 맡아보면...
담임목사 싸워서 이기세요.
신자 !
담임목사 자매님같은 분도 그렇게 힘드신데 다른 누가 버틸 수 있겠습니까?
신자 아니, 저한테만 그런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상관 없어요.
담임목사 (강한눈빛) 전도는 영적전쟁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마귀와 세상나라에 속한 자를 하나님 나라로 옮겨 놓는 ‘나라와 나라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이상한 자가 훼방을 놓아도 싸워 이기셔야 합니다.
신자 (울것같은)...
담임목사 신자 자매님~
신자 ?
담임목사 (환한 웃음) 파이팅!
37. 대흥교회 일각 / 낮
신자 한숨 쉬고 걸어가는데, 뒤에 옥자와 신도들 쑤근대고 있다.
신자1 옥자자매, 정말이야?
옥자 아, 정말이라니까요. 혼자서 막 소리지르고, 솔직히 좀 무서웠어요.
신자2 아이구, 그래서 누가 누굴 전도해?
신자1 요새 전도실적도 거의 없는 것 같던데...
신자3 그러게 지나치게 잘한다 했어. 뭐든 과하면 마가 끼는거야.
신자 (시선 의식하며) 그래,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순 없어, 내가 누군데, 전도왕 신신자야! 신신자라고!
38. 연수집 외경
39. 연수집 부엌 / 밤
거실 한켠에 만수 영정사진 걸려있고
신혼부부용 커플컵, 결혼사진, 등 집안 곳곳은 여전히 신혼분위기다.
연수 저녁상앞에 앉았다. 맞은편엔 토끼인형, 사람처럼 앉아있다.
연수, 물끄러미 토끼를 바라본다.
연수E) 해지선물이라고요?
40. 결혼전 연수집 거실 (회상) / 낮
만수 그저, 그동안 사용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다가.. 감사합니다. (인형배꼽인사)
연수 (빤히 본다)...
만수 저, 이렇게 팔짱도 끼고, 이렇게 인공호흡 시킬수도 있구요...저, 애기도 같이 놓으면...야, 정말 단란한 가족이네. 좋다, 좋아! (흐뭇한)
연수 (황당한, 빤히보는)...
만수 (황급히 주제 바꾸는) 아, 참! 새로 바꾼 인터넷은 잘 되나요. 제가 함 봐드릴게요.
연수 (이 사람 혹 정신 나갔나?) 아니,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만수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고 연수 황당한 표정.
잠시 보다 핸드폰 든다.
만수 바닥에 납작 붙어 인터넷 연결선과 공유기를 확인하는데
연수 낮은 목소리로 통화중이다
연수 그렇죠? 해지선물같은 건 없는거죠?
상담원E) 네, 그럼요, 고객님. 그런데 고객님, 계약해지를 원하실 경우 계약시 받은 사은품과 지원금 포함해 위약금 물으셔야 하는 건 아시죠?
연수 네?!
상담원E) 죄송합니다만 계약규정이 그래서요. 어? 고객님! 사은품 반납 포함해 해지절차 모두 다 끝나셨네요!
연수 네?!
연수 멍하니 섰다 방안을 보면,
만수 컴퓨터에 광택약 뿌리고 입으로 호호불며 싹싹 닦다가 머리 찧는다.
연수 순간 미소.
41. 연수집 / 저녁
연수 미소 띤 채 토끼들 바라본다.
<당신을 기억할 시간> 알람소리 울리고 핸드폰 누르는
42. 터미널 대합실 / 밤
만수 같은 상황으로 뛰고 있다.
앞에서 미니스커트 아가씨 오고, 만수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달린다.
뒤 이어오는 생수통 아저씨 유려하게 피한다.
43. 터미널 앞 도로 / 밤
만수 나와 멈춰서고 잠시 기다리면
문제의 사고 택시 앞으로 휙 지나쳐간다.
만수 천천히 길 건너면서 반대편 트럭도 잘 피한다.
만수 회심의 미소,
사고 택시 저편에서 끽~ 멈춰선다.
기사1 이러구 그냥 갈 순 없지. (조수석 수납함에서 몽키스패너 꺼내든다) 이 새끼 대갈통을 깨버릴꺼야. (유턴하는)
만수 길 건너는데 택시 덮친다.
다시 터미널 안으로 튕겨진 만수, <도착지점>에 쓰러진다.
잠시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클리너차 지나간다.
클리너 이놈 만수야! 이제 48시간 남았어! 48시간 뒤 작업예약이야~하하하
만수 절망감.
44. 연수집 부엌 / 밤
핸드폰에선 계속 반복되는 안내멘트.
연수, 천천히 핸드폰 내려놓고 맨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순간 눈물이 주룩 흐른다.
f.o
45. 터미널 옥상위 물탱크 탑 / 낮
자막 : D-1
만수 앉아있다.
만수 (한숨) 이 놈의 아줌마는 사흘이 되도록 코빼도 안 비치네. 빠져가지고, (버럭) 이래도 되는거야? 이래도 되는거냐고? 근무태만이야, 근무태만! (다시 한숨, 순간표정)
46. 터미널 입구 / 낮
신자 입구 앞에 섰다. 결연한 표정.
전단지 꺼내 담임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보다 터미널로 들어선다.
만수 반색하며 따라붙는다.
47. 터미널 여자 화장실 / 낮
만수 약간 당황,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데 데려오심 어떻해요’ 하는데
신자 준비해간 십자가와 성경책을 만수쪽을 향해 꺼내든다.
흡사 창으로 겨누고 방패로 막는 포즈같다.
만수 어,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신자 주께서 가로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만수 (다소 겁먹은 얼굴, 조금씩 물러난다) 저, 이러지 마세요.
신자 (구석으로 몰며) 흙으로 돌아가리라, 흙으로 돌아가리라.
만수 (씩 웃으며) 그럼, 내가 없어질 것 같아요?
신자 (당황, 조금 큰소리) 흙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만수 (붙으며) 아주머니, 사실 하나님 그렇게 많이 안 믿죠?
신자 (깜짝, 황급히 떨어지면서 메모지 꺼낸다) 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만수 옥자씨가 그러더만, 성경 한 번 제대로 안 읽으셨다고.
신자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으리라.
만수 사실은 잘생긴 목사님한테 잘 보일려구 열심히 하는거 다 알아요.
신자 (버럭) 아니야! 누가 그래?
만수 터미널 오가는 교회분들이 다들 그러던데요?
신자 나쁜 놈들! 지들이 뭐 안다고. 아니야. 절대 아니라구!
만수 에이, 그런거 같은데?
신자 신도가 어떤 상황에 처하건 나 몰라라하는 그런 목사 따위, 꼴도 보기 싫어. 정말 싫어! 정말 싫다구!
담임목사E) 신신자 자매님!
깜짝 놀라 돌아보면 화장실 입구에 담임목사와 옥자 등이 보고 섰다.
신자 모, 목사님
담임목사 신자 자매님!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신자 그, 그러니까요 그냥 혼자서 성대훈련하는거예요. 낭랑한 목소리가 재산이니까, (주춤주춤 물러나며) 왜, 연극배우들 그런거 하잖아요, 아,에,이,오,우 간장공장공장장은 간공장장이고 중앙청창살 철창살
담임목사 (다가서며) 신자 자매님, 그러지 마시고 저하고 얘기 좀 하세요.
신자 아, 아니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신자 뛰어 도망치는데 눈에 눈물이 맺혔다.
48. 터미널 다방 / 낮
손님 없이 한적하다.
신자 구석에서 울고 있는데 만수 다가 온다.
만수 아주머니, 죄송해요. 저두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는데...
신자 (버럭) 그래, 나 성경 한 번 제대로 읽지 않은 무식한 년이고 잘난 목사 얼굴 보는 재미로 교회 나가는 못난 년이다.
만수 아주머니~
신자 근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힘들어하는 사람 교회로 안내하고, 잘난 목사님한테 좋은 얘기 듣고,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냐고? 엉엉엉. 영감 죽고 자식새끼들 지 살길 찾아 다 떠나고, 혼자서 적적하고 외롭던 차에 간만에 재미내서 살고 있는데, 꼭 그걸 그렇게 망가뜨려야겠냐고?
만수 아주머니, 저도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제 얘길 도통 들어주시지 않으니까... 여튼 죄송해요. 안녕히 계세요. (돌아서 간다)
신자 뭘하면 돼?
만수 (멈춰선다) 네?
신자 뭐하면 되냐고?
49. 터미널 외진 일각 / 낮
신자 이름이 연수? 지연수라고?
만수 네.
신자 네 이름은 봉만수고?
만수 그렇다니까요
신자 (잠시 포즈) 나 네 마누라 아는 것 같은데!
만수 (바짝 다가서며) 우리 연수를 아세요? 어떻게 아세요?
신자 (생각)
FB #37
연수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한, 죽어도 죽은게 아니래요.
오빠 죽었다고 생각 안해요. 그냥 어디 멀리 가있다고 생각해요.
신자 과연, 그래서인가?
만수 무슨 얘길하시는거예요?
신자 이봐, 만수. 부인은 자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만수 네?
신자 여튼 그래. 그러니까 말야, 자네 부인이 자네 죽음을 받아들여야 자네가 이 터미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만수 !
터미널이 웅~웅~댄다.
50. 연수집앞 / 낮
신자와 옥자, 소형차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연수 나온다.
신자 어머! 연수 자매! 호호~ 여기야!
연수 안녕하세요? 근데 저희 집 주손 어떻게 아셨어요?
신자 응, 그런 건 차근차근 얘기하기로 하고
옥자 저기, 차에 뭘 좀 실어야 되는데 조금만 도와줄래요?
연수 지금 저녁 준비하다왔는데...
신자 잠시면 돼. 아이, 조금만 도와줘.
신자와 옥자 서로 눈으로 신호 맞추고
연수를 거의 차로 끌고 가다시피 데려간다.
연수 저기, 실을 물건은 어딨나요?
옥자 (운전석에 시동걸면서) 그건 말예요,
신자 (뒷 문 열면서) 저기 이 차 안에 보면은, (연수를 차로 확 밀어넣는다) 자, 출발! 어서 출발해!
연수 당황해, 이거 왜 이러세요, 저 교회 안간다니까요, 하는데
옥자 악셀 확 밟고 급히 출발한다.
51. 터미널 앞 / 낮
옥자차 멈춰서고, 신자 연수 데리고 내린다.
연수 하얗게 질려있다.
옥자 형님, 말씀하신 건 여기까지 맞죠? 저 가요?
신자 (가라고 손짓) 가, 어서 가.
연수 (벌벌 떤다) 여기, 왜 온 거죠?
신자 연수자매가 꼭 만나봤음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연수 저 갈래요. (돌아선다)
신자 (손목 잡아채며) 꼭 만나야 할 사람이야.
연수 제발, 저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신자 만나보면 알아.
연수 (무시무시한 힘으로 뿌리친다) 여기서 만날 사람같은 거 없어!
신자 넘어지고 연수 황급히 돌아가는데
신자 네 남편이야!
연수 (멈춰 선다)
신자 여기서 네가 만날 사람!
연수 ...
신자 네 남편, 봉만수! 당신하고 얘기하고 싶어해.
연수 !
52. 터미널 버스 정비소 / 밤
연수 연신 두리번거리며 애가 단 모습이다.
연수 오빠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예요?
신자 잠시만 기다려 봐. 옳거니, 응, 여기 왔네.
연수 어디요?
신자 여기, 네 바로 옆에 와 있어.
연수 (위치를 찾는다) 여기? 아니 이쯤인가?
신자 그래, 그쯤이야.
연수 (주저 앉는다) 도저히, 도저히, 못 믿겠어요. 왜 제 눈엔 안보이는 오빠가 아주머니에게는 보인다는 거죠?
신자 (한숨) 그러게 말일세. 이보게 만수, 뭐라 해봐. 어떻게 하면 당신 마누라가 이걸 믿을까? (한참 듣다가) 응? 응응, 알았어. 당신 생일은 12월 10일, 부인 생일은, 잠깐 뭐라고 했지? 맞어, 1월 16일, 12살차이 띠동갑, 올 3월 28일 결혼. 또 뭐? (짜증) 아, 주소는 됐어. 본적?
연수 (가만 생각해보다) 제가 한 가지 물을게요.
신자 ?
연수 작년도 신나라통신 해지고객 선물이 뭐죠?
신자 뭐? 해지고객 선물이란게 있어?
연수 ...
신자 응? 뭐라고? (잠시 듣다가) 토돌이 토끼인형세트?
연수 ...
신자 맞아?
연수 (눈물이 죽 흐른다) 오빠.
연수 일어나 서자, 어느 순간 만수가 슥~ 나타난다.
(연수에겐 보이지 않고)
연수 우리 오빠... 맞네. (손들어 올리면서) 정말 여기 있는 거구나.
만수 ...연수야... 그래 나 여기 있어...
연수 나, 오빠가 해지선물 들고 왔을 때, 거짓말인거 알고 있었어.
만수 !
연수 근데 그 순간 따져묻고 싶지 않더라. 나, 별별 거 다 가리고 이게 맞고 저게 맞고 하는 사람인데, 그 순간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 오빠하고 있음 그런 거, 따지는 거, 가리는 거 내려놓고 늘 편안했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오빠,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지?
만수 연수야, 나도 니가 있어 늘 고맙고 행복했어.
두사람 얘기하는 사이 공간이 따뜻하게 밝아지고, (연수는 만수얘기 듣지 못한다)
신자 지켜보며 눈물.
연수 오빠, 미안해. 흑흑, 정말 미안해. (무릅 꿇는다)
만수 ?
연수 그때 오빠 전화 받았어야 하는 건데...
만수 (당황) !
연수 얼마나 아팠을까?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만수 (고개 가로젖는다) 아냐, 그런거 신경쓰지마!
연수 내가 전화받았음 오빤 죽지 않았을거야. 빨리 오빠 있는데 확인하고 119 연락했음, (오열한다) 오빤, 살수도 있었을텐데...
만수 (안타깝다) 넌 그런거 생각할 필요없어. 그냥 네 인생을 살아!
연수 (절규) 내가 오빠를 죽였어! 내가 오빠를 죽였다고! 미안해, 미안해.
만수 안돼! 연수야. 그렇게 생각하지마! 아니야! 그렇지 않아!
연수 그때 난, 그때 난... (말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욱욱 댄다)
만수 연수야!
신자 (당황)
53. 터미널 앞 / 밤
신자, 연수 부축하며 걸어나온다.
신자 정말 혼자 갈 수 있겠어?
연수 네.
신자 ...
연수 ...
신자 저기, 우리 연수 자매가 정말 맘을 편하게 먹어야 돼.
연수 ...
신자 그랬음 좋겠어. 그래야, 남편도 좋고 다 잘될 수 있다니까?
연수 ...
신자 저, 아까하려다 만 얘기 지금에라두 나한테 말해주면 안 될까?
연수 (물끄러미)
신자 그래, 그래 알았어. 오늘은 일단 들어가 편히 쉬어요.
택시 오고 연수 꾸벅 인사하고 탄다.
만수 아픈 얼굴로 바라본다.
54. 연수집 거실 / 밤
연수 한참을 영정사진 보며 앉았다. 마침내 결심한 느낌
연수 오빠, 그 얘긴, 아무래도 얼굴보고 하는게 맞겠지? 내가 오빠 볼수 있고, 들을 수도 있을 때...
손을 펴면 흰 알약 수북하다.
55. 터미널 버스정비소 / 밤
만수 기도하고 있고 신자 흐뭇하게 바라본다.
만수 (자세 풀면서 씩 웃는다) 아직 별다른 느낌은 안 나네요. 그냥 맘이 좀 편해졌다고 할까?
신자 기도가 뭐 별건가, 간절한 마음을 모으면 그게 기도야. 잘 하고 있어.
만수 정말요?
신자 아~ 이 광경을 우리 목사님이 보실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이 신신자 전도역사에 길이 남을 일인데. 귀신을 하나님 앞에 데려다 놓을 줄이야.
만수 (웃다가) 어?
신자 왜?
만수 지금 몇 시죠?
신자 9시 다 되가네.
만수 근데, 아직 내가 왜 여깄죠?
신자 !
만수 원래같으면 사고나서 쓰러져 있을 시간이라고요. (펄쩍 펄쩍 기뻐한다) 이야, 이게 정말 기도의 힘인가?
신자 할렐루야~
갑자기 신자 핸드폰이 울린다.
신자 여보세요, 주님의 말씀 전하는 신신자입니다. 네? 뭐라고요!
만수 ?
56. 병원 / 밤
신자 급하게 뛰어 들어간다.
57. 병원 응급실 / 밤
연수 혼수상태고 앞에 진숙 앉아있다.
신자 (연수 앞에 다가서며) 아이고, 아이고 이를 어째!
진숙 (일어서며) 아! 벌써 오셨네? 다행히 큰 고비는 넘겼대요.
신자 도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진숙 가게일 땜에 상의하려고 전화했는데 도무지 받질 않더라고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집엘 가 봤더니...
신자 아이고, 이 어리석은 사람같으니
진숙 급한김에 연수 핸드폰 그냥 눌러본건데...
신자 (안쓰럽게 연수 바라본다)
진숙 저기, 이거 (종이를 건넨다)
신자 (받아보면) !
“우리 오빠 만나러 갑니다.”
58. 터미널 일각 / 밤
만수 화가 나 막 차고 부수고 하고 있다.
신자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만수 바보같이, 바보같이, 왜, 왜!
신자 이보게, 만수. 진정해.
만수 너라도 잘 살아야지, 너라도 잘 살아야하는데, 왜 그러냐고, (울부짖는다) 왜~!
신자 만수야, 이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만수 내가 죽일 놈이에요. 연수가 어떨지, 얼마나 힘들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살아보겠다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죽일 놈. 죽일 놈. 벌써 죽었어야 돼. 죽어. 죽어.
신자 그만, 그만! (소리 지른다) 그만해~!
만수 ...
신자 일단 한가지는 분명해졌어. 자네 마누라가 전화하지 않으면 사고는 재연되지 않는다.
만수 그래서요, 이 마당에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신자 (정면 보며)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당신 마누라 맘만 잘 풀어내면 자넨 터미널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얘기야. 우리 가설이 맞았어.
만수 아주머니
신자 문제는 자네 마누라가 언제 깨어나나 하는 건데
만수 연수 깨어나면
신자 여튼 사실대로 톡 까놓고 얘기하는게
만수 모든 거 다 잊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신자 뭐? (돌아보면 없다) 만수야!
만수E (울리는 소리) 나쁜 기억 다 잊고 행복할 수 있도록...
신자 봉만수! 야! 너 어딨어?
만수E 아주머니,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하나님은 그러실 수 있잖아요?
신자 만수야!
만수E 약속해줘요.
신자 만수야~!
만수E 약속해주세요~
신자 !
59. 병원 / 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연수
똑똑 링겔액 떨어지고, 심장박동 둥둥
60. 터미널 일각 (높은데) / 밤
만수 고개 파묻고 쭈구리고 있다. 울고 있다.
문득 손 들어보면 손 전체가 까맣다.
f.o
61. 병원외경 / 아침
자막 : D-Day
62. 병원 연수 병실앞 복도 / 낮
신자, 조심스레 주위를 살핀다.
연수 병실에서 의사 간호사 나오는 걸 확인하곤 병실로 들어간다.
63. 병원 연수병실 / 낮
링거액 똑~똑~ 여전히 혼수상태다.
신자 안타깝게 보다가 머리맡에 쪽지 놓고
신자 (가려다) 이보게, 연수자매. 자네 남편이 지금 위험해.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이제 영영 사라질 운명에 처했단 말야. (흔들어 본다) 어서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못 다한 얘기 다 털어내고, 이제 그만 만수 보내줘. 어서. (더 세게 흔든다) 어서 일어나라고, 정신차리고 일어나란 말야. 어서!
간호사 2~3명 뛰어들어와 신자 끌어낸다.
신자, 일어나 어서, 이제 그만 만수를 보내줘, 끌려나가면서도 계속 소리친다.
그 소리 멀어지면서 링거액의 똑~똑~ 소리 커진다.
64. 시내 호프집 반창회장 / 연수의 꿈
“**초등학교 6학년 5반 반창회” 플랭카드 보이고
사람들 모두 정지된 영상, 어디선가 계속 링거액 소리가 울린다.
카메라 이동하면 연수 역시 정지해 있는데,
‘어서 일어나’. 신자가 외치는 소리 울리고, 연수 눈썹이 깜박한다.
다시 한번 ‘일어나란 말야’, 소리에 연수 정지포즈 풀린다.
이때 핸드폰 벨소리, 핸드폰엔 “우리집 돌쇠오빠”다.
연수 “오빠?” 해보지만 응답 없다.
순간 문 밖에 누군가 쓱 지나가는데,
연수 황급히 따라나가면 만수 등지고 서있다.
연수 (가까이 다가가 서며) 오빠? 만수 오빠야? (가만히 손 얹는데)
만수, 고개 돌리면 얼굴이 온통 까맣다.
연수 비명을 지른다.
65. 연수병실 / 밤
연수 벌떡 일어난다. 온 몸이 식은땀 범벅이다.
머리맡에 쪽지본다.
신자E 연수자매, 만수가 위험해. 깨어나는대로 터미널로 와줘요. 부탁이야.
고개들어 시계보면 벌써 9시 넘었다. 연수 뛰어나간다.
66. 터미널 앞 / 밤
신자 시간 확인하며 초조하게 서있는데,
갑자기 하늘 한 쪽이 환한 빛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신자 (절망적인) 마침내 시작인가!
터미널 아래부터 뽀얀 빛이 모여들고 그 가운데로 누군가 들어선다. 만수다.
신자 마, 만수야!
67. 병원앞 / 밤
연수, 병원 앞에 나와 택시 잡는다.
택시 너머 터미널 방향쪽 하늘에 환한 빛.
68. 터미널 일각 / 밤
만수 천천히 올라가고 터미널 위 결계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결계에 수많은 가시가 돋아난다.
신자, 아이고 저걸 어째, 만수야, 안타까워하는데
한쪽 구석에 클리너, 괴수기사 나타난다. (신자 눈엔 보이지 않는다.)
클리너 흐흐흐... 이제 일 시작해 볼까? (몸풀기 체조)
이때, 택시 도착하고 연수 뛰어온다.
신자 아이고, 왔구만. 왔어.
연수 아주머니, 무슨 얘기에요? 오빠가 위험하다니!
신자 일단 만수한테 전화걸어! 어서!
연수 !
신자 어서!
연수 급하게 전화 건다.
‘에헤라디여’ 수신음과 함께 하늘 위의 만수 획 아래로 끌려 내려간다.
신자 됐다! 뛰어!
연수 ?
신자, 연수 낚아채서 뛰기 시작한다.
69. 터미널 대합실 / 밤
신자, 연수 앞서가고, 클리너, 괴수기사 따라간다.
70. 터미널 도착지점 / 밤
신자, 연수 도착하자 피흘리며 쓰러져있는 만수.
잠시 후 연수의 핸드폰에 전화가 울린다. 액정에 “우리집 돌쇠오빠”
연수 (놀라 보면)
신자 오빠 맞아. 어서 받아!
연수 (숨 크게 몰아쉬고 전화 받는다) 오빠?
만수E 연수야~
연수 오빠! 정말 오빠야?
만수E 연수야, 나야~ 만수야~
연수 고개들어 앞을 보면 뽀얀 불빛아래 바람이 불고 있다.
신자 시선으로보면, 만수 서서히 결계를 향해 떠오르고 시작한다.
연수 (눈물이 흐른다) 오빠!
만수 연수야, 미안해.
연수 뭐가, 뭐가 미안해?
만수 널 두고 이렇게 가는거.
연수 가지마! 가지마 오빠!
만수 ...
신자 (급하게) 제발, 이제 그만 남편 보내줘요. 이대로 결계에 닿으면 만수는 끝장이란 말야.
연수 아주머니 저 어떻해야 돼요.
신자 맘을, 맘을 내려놓으란 말야! 이러다간 만수놈 영혼은 사라져!
연수 (울부짖는다) 어떻게 어떻게해요?!
신자 네 맘에 꼭꼭 숨겨둔 이야기, 지금 다 털어놓으란 말야!
연수 !
신자 어서!
연수 (순간 주저앉는다) 내가, 내가 오빨 죽인거라고요. 내가...
만수 연수야~
연수 그때,,, 그때 오빠 전화 했을 때, 나 오빠 전환줄 알고 있었어.
71. 시내 호프집 / 회상
왁자지껄한 반창회장,
여자들 한쪽 구석에 모여 좀 삐진 느낌이고 카메라 이동하면
남자들에게 잔뜩 둘러싸인 연수 웃고 있다. (공주의 귀환 느낌)
웃으며 수다 떨던 연수, 벨소리 확인하면 “우리집 돌쇠오빠”다
연수 약간 망설이는데
남자동창생 누구야?
연수 응, 아무것도 아냐. (전화기 닫는다)
72. 터미널 옆 도로 / 밤
연수 나, 남자애들 사이에 둘러싸여선, 바보같이 으쓱해 가지고, 결혼한티 같은 거, 내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만수 (차분한) 그거였구나~
연수 네?
만수 그거였어. 그럴까봐, 그래서였어.
연수 ?
만수 나, 지금껏, 이 순간을 기다려 온거야.
연수야! 내 얘기 들어봐. 수백, 수천번도 더 생각했어.
(프롤로그 영상)
컴퓨터 본체와 무선공유기를 살피던 뿔테 낀 어리버리 학생, 환하게 웃는다.
만수 버스에서 뛰어내린다.
NA 그날 예약 고객의 인터넷망이 갑자기 멀쩡해지지만 않았어도
만수, 환희에 찬 얼굴로 대합실을 뛰고 있다.
NA 내가 그렇게 뛰지만 않았어도
만수 달려가는데 앞에서 미니스커트 아가씨 지나가고
생수통 수레와 부딛힌다.
기사A, 차로 돌아와 담배를 꺼내 물면서 차를 출발시킨다.
NA 택시기사가 동료 기사와 싸우지만 않았어도
홧김에 담배생각만 하지 않았어도,
아니, 라이터 연료가 충분하기만 했어도,
기사A 라이터가 자꾸 안켜져 짜증난다.
점점 만수와 택시는 가까워진다.
퉁~ 튕겨나오는 만수 몸뚱이, 슬로우 슬로우,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NA 수많은 ‘그랬더라면’ 중에 하나만 그랬더라도, 난 죽지 않았을텐데, 하고 말야.
순간 영상 역주행 다시 만수 미니스커트 지나 생수통 피하고
사고 택시 보내고 회심의 미소
NA 하지만 아무리 바꿔 봐도
트럭 치고 지나가고,
택시 덮치고 사라진다.
NA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어.
만수 그러니까, 그 날 난 죽을 운명이었어.
연수 아니야, 아니야! 오빤 죽을 사람 아니야.
만수 연수야, 그날밤,
FB 사고 당시
만수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전화걸고 있다.
“내귀에 캔디~^^” 핸드폰벨 소리 계속 울리고
만수NA 그날 밤,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어느 순간 머릿속이 또렷해지는 거야.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왜, 전화 따윌 걸고 있는걸까? 이대로 못 받으면, 너 힘들텐데, 정말 힘들어질텐데... 하고 말야.
연수 !
만수 그렇게 숨이 넘어가던 마지막 순간, 내 마음에 남은 건, ‘이대로 떠날 순 없다!’, 였어.
FB #1 만수 눈뜨면 괴수의 눈
연수 (울먹이는) 오빠~
만수 연수야, 네가 전화를 받았더라도 그 순간이 내 마지막이었어.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듯, 아침 햇살에 이슬이 사라지듯, 그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자연사였어.
연수 그래도, 그래도요.
만수 이 얘길 하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순간 결계가 슥~ 사라진다.
클리너 오옷! 저것은! 결계는 만수 자신이 친 것이었군!
신자 !
연수 (뛰쳐나간다) 오빠, 가지마, 제발! 어디 있어? 지금 어디 있는거야?
만수 연수야, 죽음의 순간은 생각보다 평온했어. 고통스럽지 않았어. 시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지. 그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래서 전화를 건 것 뿐이야.
연수 정말 힘들지 않았나요? 정말, 정말요?
만수 그래, 정말이야. 죽음을 맞이한 순간 내 맘을 가득채웠던 건, 너에 대한 고마움이었어. 연수야, 나, 너 만나 정말 행복했다. 외롭고 고달펐던 내 인생에 넌 정말 고마운 선물이었어.
연수 오빠,
만수 연수야, 그러니까, 나 없이도 잘 살아야 돼. 내 몫까지 곱게, 힘들지 않게, 재밌게만 살아야 돼.
연수 (울면서) 오빠, 잘 가. 잘 가요. 이제 나, (울면서) 오빠 보내줄께.
만수 부디, 부디 행복하렴. 아주머니, 정말 고마워요.
신자 만수야, 잘 가, 부디 안녕히
만수 잊지 못할거에요. 안녕히!
신자, 연수, 클리너, 괴수 기사까지
모두 두 손 흔들며 마지막 인사하는데
순간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연수, 그 바람 가운데에 가만히 손을 내민다.
만수 부드럽게 연수손을 감싼뒤 하늘 위로 사라지고
신자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f.o
73. 터미널 버스 앞 / 낮
신자와 연수, 옥자 마주보고 섰다.
신자 그간 이 터미널에 갇혀있었던 건 어쩜 나였는지 모르겠어. 옥자 자매, 잘 부탁해.
옥자 형님, 제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요?
신자 현재 시간도 버스 운행표도 확인 안 하는 사람,
옥자 TV도 신문도 보지 않고 혼자 멍 때리고 있는 사람
신자 그래! 그런 식으로 보고 또 보다보면 뭔가 보이는게 있을거야.
옥자 네? 뭐가요?
신자와 연수, 대답 않고 빙긋 웃으며 승차한다.
신자 자리에 웬 아저씨가 드러누워있다.
신자 (표 번호 확인하며) 저, 여기 내 자린데...
연수 아저씨, 남의 자리에 누워계심 어떡해요?
아저씨 (놀라며) 제가... 보이세요?
신자연수 !
아저씨 보이시는구나! 저, 저 말예요.
신자 버스에 갇혔어?
아저씨 (끄덕끄덕)
연수 얼마나 되셨어요?
아저씨 48일째
신자 아이구, 왜 이제야 나타난거야. 가족 관계 빨리 쭉 읊어봐!
신자와 연수 자리에 앉아 허공에 대고 열심히 뭔가 떠들고 있고
버스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힘차게 달린다.
하늘에 낮달로 T/U 하면 우주복 입은 만수 웃으며 손 흔들고 있다.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